1996년 서비스 시작해 이듬해 영화 ‘접속’으로 유명세
인터넷 보급으로 사양길, 유료 포털 변신 역부족
유니텔 사업 종료로 PC 통신 역사 속으로

‘삐익! 삐~삐~’ 한밤중 요란하게 울리던 모뎀 접속 소리에 마음을 졸이고, 파란 화면을 배경 삼아 “방가방가”로 시작한 채팅에 날 새는 줄 몰랐던 시절. 전화 모뎀을 끌어다 쓴 탓에 집전화는 통화 중이기 일쑤였다. “중요한 전화를 놓쳤다”며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부모님과 경악스러운 전화요금 폭탄에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까지. 1990년대를 보낸 청춘들이라면 공감할  ‘PC통신’의 추억이다.

PC통신이라 하면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코넷, 넷츠고, 유니텔 등 많은 서비스 업체들이 있었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중 유일하게 남아있던 곳이 유니텔이다. 그러나 유니텔도 시대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2022년 6월 30일 사업 종료를 알렸다. 이로써 PC통신은 완전한 종말을 맞게 됐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나온 PC통신 화면.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캡처

◇작별 고한 마지막 PC통신, 유니텔

유니텔은 지난 3월 4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6월 30일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1996년 서비스를 시작한 지 26년 만이다.

유니텔은 “1996년 서비스를 시작해 웹 포털사이트로 변경 후 지금까지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나 부득이하게 종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이용해 준 고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끝까지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고객들의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유니텔 서비스 종료 안내문. /유니텔 홈페이지 캡처

유니텔은 1996년 삼성SDS가 시작한 PC통신 서비스다. 1997년 개봉한 한석규, 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에 나온 채팅방으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었다.

초창기 유니텔에는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등 벤처붐을 주도했던 인력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 GIO는 삼성SDS 검색엔진팀에서 유니텔 신문기사 통합 검색엔진 개발을 담당했다. 이 팀은 1997년 탄생한 삼성그룹 최초의 사내벤처 네이버다.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유니텔 초창기 멤버로 활약했다. /조선 DB

하지만 PC통신은 초고속인터넷 전용 통신망인 ADSL의 보급과 다음, 야후, 라이코스 등 무료 포털 사이트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사양길로 들어섰다. 결국 2004년 천리안, 2007년 하이텔, 2013년 나우누리가 PC통신 서비스를 중단했고 2015년 6월 이후로는 유니텔만 남았다.

유니텔은 2000년 독립법인으로 변신한 이후 삼성SDS에 재인수된 사업부문을 제외한 채 PC통신 서비스 업체로 남았다가 다우기술에 인수됐다. 이후 사명을 유니텔네트웍스로 바꿨고 2008년 다우기술에 흡수합병됐다.

유니텔은 유료 서비스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웠지만 대형 포털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유니텔의 서비스 종료로 1990년대 청춘들의 소통 창구였던 PC통신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90년대 문화 이끈 소통의 창

PC통신은 1980년대 ‘PC를 통해 통신한다’는 개념을 정착시킨 후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 등 이른바 ‘4대 천왕’이 활약하던 90년대 초반 황금기를 누렸다. 대중음악과 문학, 영화 등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대표적인 PC통신 서비스였던 ‘하이텔’ 전용 접속 기기. /KT 제공

대표적인 것이 동호회 문화다. PC통신으로 동호회가 활성화되면서 ‘정모’, ‘번개’ 등의 신조어와 문화가 유행했다. ‘방가방가’, ‘하이루’ 등의 채팅 용어도 일상화됐다. ‘^^’, ‘ㅠㅠ’ 등 감정 이모티콘의 시초도 PC통신이다. 밴드 ‘자우림’과 ‘언니네 이발관’의 시작도 PC통신 동호회라고 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선 단골 메뉴로 쓰였다. 1997년 개봉한 한석규·전도연 주연의 영화 ‘접속’은 유니텔을 통해 아픔을 간직한 두 남녀가 가까워지는 로맨스 영화로 대박을 쳤다. 엔딩에 흐르는 사라 본의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는 그해 국민팝송이 됐고, 디지털 요소가 가미된 한국영화의 새 장을 열었다.

영화 '접속'의 한 장면. /영화 '접속' 캡처

tvN에서 만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모든 편에서도 PC통신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등장한다. 최근 1998년을 배경으로 한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도 주인공인 나희도(김태리)와 고유림(보나)이 PC통신으로 소통하는 장면이 등장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전지현의 대표작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나우누리 게시판 인기글을 영화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1999년 5월부터 PC통신 ID ‘견우74’가 PC통신 나우누리 유머난에 연재한 자전적 코미디 소설 ‘지하철의 엽기적인 그녀’가 원작이다.

이런 식으로 PC통신의 게시판에 올라온 소설들이 1990년대 문학계 주류로 떠오르기도 했다. 1990년 전후 천리안의 시범 서비스를 시작으로 하이텔(1992년), 나우누리(1994년), 유니텔(1996년)은 PC통신 문학 전용 게시판을 만들어 신인 등단의 기회를 열어줬다.

90년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PC통신은 인터넷 보급으로 사양길에 들어섰다. 30여년간 인터넷의 발전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나 다름없다. PC통신의 당시 속도는 3Kbps. 현재 인터넷 평균 속도(100Mbps)의 3만 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현재는 PC통신보다 30만배 더 빠른 ‘기가인터넷’(1Gbps)도 상용화돼 있다.

1996년 당시 PC통신 소비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 접속 지연, 접속상태 불안정 등 서비스 장애(37.5%)였을 정도로 빠른 속도는 기대조차 못했고, 접속만 끊기지 않기를 바랐다. 수시로 튕기는 통신 장애로 ‘통장’이라는 약어가 생길 정도였다.

이런 악조건에도 PC통신은 ID(닉네임)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 시대의 유일한 탈출구였고 하나의 문화였다. 꽤나 비싼 서비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텍스트가 고작인 게시판 서비스와 모뎀 이용료 등으로 월 5만~6만원의 요금을 내야 했으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꽤 비싼 서비스인 셈이다.

글 시시비비 키코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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