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불똥이 뜻하지 않게 국내 식품회사로 튀었다. 현지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던 러시아 시장에서 매출 감소와 현지 생산 차질 등의 문제가 피하기 어려운 현실로 닥쳤기 때문이다.

현재 러시아에 진출했거나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은 현지 경제 침체, 루블화 가치 추락, 원재료 수급 불안에 따른 수익 하락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여기에 러시아가 비우호국가 제재에 나서면서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공개한 비우호국가 명단에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을 비롯해 한국도 포함돼 있다. 기업들은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에 대비해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러시아의 초코파이 광고. /오리온
러시아의 밀키스 광고. /유튜브 채널 ‘14F 일사에프’ 캡처

러시아에 진출한 국내 식품 기업은 오리온·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팔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오리온과 롯데제과, 팔도는 러시아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초코파이의 가장 큰 세계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오리온은 12종의 초코파이를 러시아에서 생산 및 판매한다. 오리온 법인 중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실제로 오리온의 ‘초코파이情’은 러시아 국민간식으로 꼽힐만큼 인기가 많다. 오리온의 2021년 러시아 법인 매출액은 전년 대비 31.4% 증가한 1170억원에 이른다. 현지 제과시장 진출 이래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오리온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2022년 트베리주에 신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초코파이 공급을 늘리고,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여 중앙아시아와 유럽 진출을 공략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나빠지면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게 됐다. 현지 생산에 필요한 원재료를 2~3개월 분량 확보해 지금 당장은 판매에 문제가 없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현지 생산라인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롯데제과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롯데제과는 2021년 약 500억원의 연매출을 기록한데 이어 2022년 초 러시아 시장에 투자를 확대했다. 러시아 칼루가주에 있는 초코파이 공장에 약 340억원을 투자해 생산라인과 창고 건물을 증축한 것이다. 당초 롯데제과는 생산 능력을 키워 안정적으로 물량을 공급하고 판매를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터지면서 난감해진 상황이다.

롯데제과는 대응책으로 원자재 비축분을 늘리고, 현지 자금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러시아에 햄을 수출할 계획이었던 롯데푸드도 일단 사업을 보류한 상태다.

‘도시락’ 컵라면으로 유명한 팔도와 마요네즈로 인기를 끈 오뚜기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팔도는 러시아에서 도시락 컵라면으로 수년째 시장 점유율 1위를 지켜오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롯데칠성음료는 한국에서 생산한 탄산음료 밀키스와 캔커피 레쓰비를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현지 공장 없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주재사무소를 운영한다. 밀키스는 러시아에서 유성탄산음료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21년 250ml 기준 6360만캔이 수출됐다고 한다.

식품업계는 통상 3개월 정도 원재료 재고를 미리 확보해 놓기 때문에 당장은 판매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태가 길어지면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러시아 수요가 위축되고, 루블화 가치가 추락하면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매출 실적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식품업계는 이를 대비해 루블화 환율 추이와 현지 동향, 파급 영향 등을 살피고 있다.

/유튜브 채널 ‘MBCNEWS’ 캡처

글로벌 식량 위기가 고조되면서 러시아와 거래하는 국내 식품 기업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항구 폐쇄, 러시아 금융 제재 등으로 곡물 수출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지면 원가 상승이 빚어지고, 이는 결국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 발표에 따르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22년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보다 3.9% 오른 140.7포인트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곡물가격지수는 3.0% 상승한 144.8포인트를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4.8%가 올랐다.

특히 밀과 옥수수의 가격 상승이 두드러진다. 우크라이나는 2021년 기준 세계 4위 밀·옥수수 수출국이다. 러시아는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동시에 세계 6위 옥수수 수출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밀 수출량이 전세계 수출량의 30%를 차지하는데, 전쟁이 길어지면 곡물가격 상승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예컨대 국제 곡물가격 인상을 반영한 밀가루 수입∙공급 업체가 출고를 올리면 밀가루를 사용하는 빵과 과자, 라면 등의 판매가 인상이 이어질 수 있다. 이에 수입산 원료 의존도가 높은 식품기업은 원재료 구매 시기를 늦춰 대응 전략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물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유가와 곡물을 비롯해 시멘트, 수산물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수산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수입산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대게의 평균 낙찰가격은 일주일만에 22.8% 올라 1kg당 1만9900원을 기록하고 있다.

물가가 치솟으면서 이미 5개월 연속 3%대 물가 상승률이 4%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에서 2011년 12월 이후 물가 상승률이 4%를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유튜브 채널 ‘연합뉴스TV’ 캡처

식품기업 외에도 타격이 큰 국내 기업은 많다. 러시아에 진출했거나 러시아와 거래하는 한국 기업은 40여곳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러시아가 비우호국가에 포함된 외국 채권자에 대한 채무를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게 하면서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루블화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가치가 폭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배제하면서 채무 상환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에 제품을 수출한 기업이 대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사태 긴급 대책반’을 꾸린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2년 2월 26일 현재 대책반에 접수된 국내 기업들의 애로사항 35건 중 대금 결제 관련 사항이 15건으로 전체의 42.8%를 차지한다. 물류 사항은 14건, 정보제공은 6건 등이다. 앞으로도 이런 사태가 지속되면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글 시시비비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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