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신었던 명품이 이젠 먹고 마시는 시대로 진화하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Gucci)’의 레스토랑이 오는 2022년 3월 28일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다. 구찌 레스토랑의 상륙으로, 글로벌 명품 패션 업체들의 한국 식음료(F&B) 사업이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차별화된 경험’과 ‘고객 확대’를 내걸고 F&B 사업에 진출하는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몸에 걸치던 명품이 이젠 먹고 마시며 즐기는 대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는 28일 서울 이태원에 오픈하는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내부/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구찌·디올, 명품 ‘멋’에서 ‘맛’으로

구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이 3월 28일 서울 이태원 구찌가옥에서 문을 연다고 3월 16일 밝혔다. 구찌 오스테리아는 전 세계 유명 도시에 구찌의 브랜드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만든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지난 2018년 피렌체 구찌가든 1호점, 2020년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2호점, 2021년 도쿄 긴자 3호점에 이은 전 세계 4번째 구찌 레스토랑이다.

구찌 레스토랑이 문을 여는 구찌가옥은 한국 전통주택인 가옥(家屋)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장 곳곳을 색동으로 꾸미는 등 한국적인 정취를 담으면서도, 신상품 스니커즈를 증강현실(AR)로 신어볼 수 있는 등 각종 체험형 콘텐츠를 선보이는 구찌의 플래그십 매장이다.

구찌가 서울에서 선보일 메뉴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레스토랑 운영자인 유명 셰프 마시모 보투라, 다비데 카델리니 셰프,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총괄인 전형규 셰프가 개발했다. 구찌 오스테리아의 시그니처 메뉴로 유명한 에밀리아 버거와 파마산 레지아노 크림을 곁들인 토르텔리니 등을 비롯해, 한국의 계절에서 영감을 받은 신메뉴와 창의적인 이탈리아 요리 등도 선보일 계획이다. 약 200개 품종의 와인 리스트와 칵테일 등 다양한 음료도 마련돼 풍부한 미식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이 선보일 메뉴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과 구찌의 미학적 요소에서 영감 받은 인테리어는 색다른 식사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의 인테리어는 기존의 구찌 오스테리아 피렌체와 동일하게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과 구찌의 미학적 요소들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으로 꾸며진다.

국내에 F&B 매장을 선보이는 명품 브랜드는 구찌가 처음은 아니다. 국내 F&B에 가장 먼저 진출한 명품 브랜드는 ‘디올(Dior)’이다. 지난 2015년 서울 청담동에 들어선 ‘하우스 오브 디올’ 5층에선 ‘카페 디올’이 문을 열었다.

이곳에선 프랑스 유명 제과 셰프인 피에르 에르메가 만든 마카롱 등 브런치와 디저트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카페 아메리카노가 1만9000원, 차와 각종 디저트로 구성된 ‘애프터눈 티 세트’는 12만원으로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디올의 맛과 분위기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수천만원대 시계 브랜드도 레스토랑·카페 열어

최근에는 수천만원대의 명품 시계 브랜드도 레스토랑과 카페를 열고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은 2022년 2월 서울 이태원에 세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총 2개층에 연면적은 750m²(약 227평)에 이른다. 브라이틀링은 세계 최초로 이곳에 레스토랑을 열고 토마호크 스테이크와 생면 파스타 등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 이태원에 문을 연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의 레스토랑. /브라이틀링

주 메뉴는 스프와 바비큐, 스파게티, 스테이크 등 최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정갈한 이탈리안 요리다. 봉골레 스파게티(2만8000원)나 최상급 한우 스테이크(200g 기준 11만6000원) 등 메뉴의 가격대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양이 많아 여럿이 즐기기에 적합하다. 5성급 호텔 출신 파티시에들을 영입한 카페에선 9000원짜리 음료와 각종 디저트를 선보인다.

브라이틀링 키친은 비행기 격납고를 닮은 인테리어와 프로펠러가 특징이다. 브라이틀링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항공, 해상, 지상 콘셉트의 개별 룸도 갖추고 있다. 브랜드 고유의 느낌을 살린 이국적이고 특별한 공간에서 색다른 식사와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브라이틀링 관계자는 “시계 제작이라는 핵심 사업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약점”이라고 말했다.

2021년 7월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IWC’가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5층에 카페 ‘빅파일럿 바’를 열었다. IWC가 전 세계 최초로 운영하는 공식 커피 매장(카페)이다. 브랜드를 상징하는 손목시계 ‘빅 파일럿’을 주제로 실내를 꾸몄고, 디저트와 커피에도 시계의 특징을 반영했다. 이 카페는 IWC가 2017년 스위스 제네바에 개장한 칵테일바 이후 두 번째 F&B 매장이다.

빅 파일럿 바는 실용성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IWC의 브랜드 정체성을 그대로 차용했다. 빅 파일럿 워치의 다이얼 크기를 반영해 10m에 달하는 테이블을 바의 정중앙에 배치했고, 그 안에 6m의 스크린을 설치해 이른바 빅 테이블과 빅 스크린의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계의 무브먼트나 다이얼 모양을 연상시키는 바의 원형 홈과 홈에 고정시킬 수 있는 컵을 따로 제작해 세밀한 작업이 진행되는 시계 제조사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브랜드 경험 확대, 새로운 먹거리 창출

요즘 대세인 럭셔리 브랜드의 F&B 진출도 활발하다. 프랑스 의류 브랜드 ‘메종 키츠네’는 지난 2018년 한국에 첫 단독 매장을 내고 매장 안에 ‘카페 키츠네’를 열었다. 파리, 도쿄에 이어 메종 키츠네가 서울에 만든 세번째 카페로 30인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꽤 넓은 공간에서 커피와 음료, 디저트 등을 판매한다. 특히, 대나무 숲과 조명으로 멋을 낸 야외 공간은 인증샷 명소로 인기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여우 쿠키와 커피 인증샷도 SNS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SNS 인증샷 명소로 인기인 메종 키츠네의 ‘카페 키츠네’. /메종 키츠네

사람들이 줄을 서며 찾을 정도로 인기였던 ‘카페 키츠네’의 성공 이후, 많은 브랜드가 카페 복합형 매장을 선보였다. 2021년 8월 경기도 동탄 롯데백화점이 문을 열었을 때는 프랑스 의류 브랜드 A.P.C의 카페가 화제를 모았다. 의류 매장이라기보다 카페에 가까운 공간으로, 카페 한쪽에서 A.P.C의 티셔츠와 에코백 등을 함께 파는 식이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이 같은 외도에는 브랜드 경험 확대라는 전략이 깔려 있다. 기존의 의류와 잡화 만으로는 요즘 젊은 고객들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브랜드 충성도를 장기간 가져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구찌나 디올 등 명품 브랜드의 F&B 진출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향후 가구, 호텔 등 다른 라이프 스타일 영역으로 먹거리를 확대해나갈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F&B 진출은 기대 효과가 크다.

다만 패션 브랜드가 식음료 매장을 제대로 운영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주로 현지 전문가들과 함께 식음료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지만,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교한 설계 없이 운영할 경우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껏 많은 금액을 투자해도 얼마 못 가 문을 닫을 수도 있다. 브랜드 이름값으로 반짝 손님을 끌 순 있어도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글 시시비비 키코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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