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이날치 꿈꿔요”…전통문화로 ‘내사업’하는 청년들
전통문화에 디지털 기술 입혀 한국화, 한글 재탄생시켜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서울편.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캡처

한복에 족두리를 쓰고 요상한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에서 울려퍼지는 노래 한 구절. ‘범 내려 온다. 범이 내려 온다’. 그룹 ‘이날치’가 부른 노래 ‘범 내려온다’다. 2021년 이 노래는 간첩이 아니고서야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 노래가 유행하면서 방송사들은 우리 소리와 현대 음악을 컬래버레이션한 음악으로 경쟁을 벌이는 프로그램들을 앞다투어 내놓았고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이 일은 우리 옛 문화가 현재에 어떻게 녹아드느냐에 따라 ‘힙’한 것이 될 수도, ‘낡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고려청자 갤럭시 버즈 케이스(왼쪽 사진)와 국립고궁박물관의 사각 유리등 굿즈.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전통이 얼마든지 힙할 수 있다는 건 소리 영역에서 뿐 아니라 공예와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작가들을 통해 증명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청자와 신사임당의 초충도 등에서 영감을 얻은 기념품들을 만들어 ‘굿즈 맛집’으로 소문이 났고, 국립고궁박물관은 170여년 전 조선 왕실의 밤 잔치를 환하게 밝힌 ‘사각 유리등’을 문화 상품으로 만들어 품절대란을 일으켰다. 전통문화를 활용한 문화 사업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한국 공예·디자인 문화 진흥원(Korea Craft & Design Foundation, KCDF)이 2020년 ‘전통문화 청년 창업육성 지원 사업’을 시작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사업은 전통문화 사업을 하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창업 보육 서비스(창업 교육과 전문가 멘토링, 직접 투자 등)와 사업화 지원금(3년간 평균 1억원)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사업은 청년들이 주도적으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환기해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면서, 문화산업까지 함께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KCDF는 매년 참가사들을 모집해왔으며 2022년 2월 말 기준 총 48개사를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KCDF 지원사 가운데는 전통문화에 디지털 기술을 입혀 새로운 사업 영역을 만들어나가는 회사들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훼손·갈변된 그림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사업을 진행하는 ‘댓타임비(That Time B)’와 문자인 한글을 그림으로 만들어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한글공방’, 아티스트와 기업 간 중계 플랫폼을 운영하는 ‘아트블렌딩’ 등이 바로 그런 곳이다.

세월 탓에 빛을 잃은 한국화에 혼 불어넣는 ‘댓타임비’

댓타임비는 전통 회화 및 복원, 보정 전문가들과 함께 2년 간의 연구 개발 끝에 한국화를 디지털로 복원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토대로 2021년 단원 김홍도의 그림들을 복원해 묶은 ‘한국화 시리즈1, 단원 김홍도 도서’를 펴냈다. 이 책은 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서 약 9600만원(펀딩 달성비율 551%)의 펀딩을 달성했다. 책 한 권을 내면 1000만원어치도 채 팔리지 않는다는 요즘 출판업계 사정을 고려하면 엄청난 성과다.

한국화 디지털 복원 작품. /댓타임비

이밖에도 댓타임비는 조선 최고의 천재 화가 단원 김홍도,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 조선 화단의 마지막 거장 오원 장승업, 조선 남종화(南宗畵)의 대가 현재 심사정의 작품들을 복원한 아트포스터 북인 ‘마리 갤(My little gallery)’ 시리즈를 제작했다.

송혜연 댓타임비 대표는 “KCDF의 지원 덕분에 높은 품질의 한국화 전문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개발할 수 있었고 기술, 마케팅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한층 더 성장했다”며 “지원이 헛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한국화를 보다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해 한국화의 진정한 멋을 알리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림으로 그려낸 한글로 디지털 세상의 세종대왕을 꿈꾸는 ‘한글공방’

한글공방은 한글의 알고리즘을 연구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는 회사다. 문자인 한글 2350자를 그림으로 치환한 ‘밈(Meme)’을 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만든 ‘크립토 한글’을 NFT(Non-Fungibla Token, 대체불가토큰)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밈은 문화적 요소를 담은 그림이나 글자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다양한 그림, 유행 단어 등은 전부 밈이라 할 수 있다. NFT는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의 원본을 증명하는 기능을 가진 일종의 권리 증명서이다. 원본을 인증하고 소유권을 증명하는 게 핵심이다.

한글공방의 제품들. /한글공방

한글공방은 또 자체적으로 제작한 3D 캐릭터 문화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한글 NFT 갤러리 플랫폼인 메타버스 ‘KOALA’를 제작했다.

한글공방은 2010년 대한민국 국가상징공모전에서 ‘한글이 그리는 그림’으로 대상에 해당하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중소벤처기업부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의 디딤돌창업과제와 문화기술 상업화 지원과제로 선정되는 등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2021년에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개최한 대한민국 디자인전람회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정유진 한글공방 대표는 “KCDF 지원 사업을 통해 크립토 한글을 추가 개발했고, 한글공방의 브랜드 캐릭터를 적용한 볼마커 굿즈 또한 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티스트와 기업, 아티스트와 세상을 연결하는 ‘아트블렌딩’

아트블렌딩은 신진 아티스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공모전 및 전시를 기획하고, 일방적으로 기업이 아티스트를 선택해 일감을 줬던 외주 방식에서 벗어나 공모와 AI(인공지능) 매칭 솔루션을 통해 기업과 아티스트가 대등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는 플랫폼 ‘꼴라보M’을 운영 중이다.

이 플랫폼에서 매칭된 건의 결과물을 전시하는 플랫폼인 ‘꼴라보마켓’도 개발했다. 2021년에는 사업 경쟁력을 인정 받아 1000만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아트블렌딩이 운영 중인 플랫폼 화면. /아트블렌딩

장윤주 아트블렌딩 대표는 “지원 사업을 통해 플랫폼을 개발은 물론 다양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사업에 큰 보탬이 되는 시드투자까지 유치할 수 있었다”며 “KCDF의 창업 지원 덕분에 아트블렌딩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아티스트들의 창작활동을 세상에 알려나가는 역할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2022년 전통문화 청년 초기창업기업 공모는 3월 28일부터 4월 27일까지 진행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KCDF는 올해도 전통문화 분야에서 초기 창업기업 38곳을 선정할 계획이다. 전통문화산업 분야에 창업을 희망하는 39세 이하 청년 대표자이면서, 공고일 기준 3년 이내 기업이면 지원할 수 있다.

글 시시비비 고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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