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대신 영어 이름, 닉네임으로 불러달라
호칭 파괴, 격식 없애고 소통 강화 나서

“앞으로 토니(Tony)라고 불러주세요”

지난 3월 SK텔레콤 인공지능(AI) 사업팀원들과 만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앞으로 자신을 회장님이 아닌 토니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토니는 최 회장의 영문 이름. ‘아빠 곰 토니’라는 뜻의 인스타그램 아이디 파파토니베어(papatonybear)도 여기서 나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자신을 회장님 대신 ‘토니(Tony)’로 불러달라 요청하는 등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다./SK그룹


최 회장은 지난 2월부터 SK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SK텔레콤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 처음으로 SK텔레콤 임직원들과 만나 경영 현안과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호칭부터 바꿨다. 직원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하며 사업을 이끌겠다는 의지다.

딱딱한 호칭 대신 영어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자신을 편하게 불러달라는 회장님의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격식을 벗고 소통을 입는 회장님들이 늘어난 것이다. 호칭뿐 아니라 회장님의 옷 입는 방식, 소통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딱딱한 호칭 떼고 “소통합시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X 부문장(부회장)은 지난 1일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자신을  ‘부회장님 대신 JH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행사는 VD(영상 디스플레이), MX(모바일), DA(생활 가전), 네트워크, 의료 기기 등 DX(Device Experience) 전 사업부 임직원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여해 CEO와 소통하는 자리였다.

한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수평적 문화를 강조하고 소통 강화를 위해 호칭 파괴를 주문했다.  삼성전자는 이름에 프로나 님을 붙여 부르지만 파트·그룹장, 팀장, 임원은 직책을 불러왔다.


임직원들에게 자신을 편하게 ‘JH’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겸 DX 부문장. /삼성전자


롯데그룹 유통 사업을 총괄하는 김상현 부회장은 지난 2월 취임 직후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영상 메시지에서 자신을 영어 이름인 ‘샘’(Sam)이나 ‘김상현’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임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기 위해 자신의 호칭부터 바꾼 것이다.  

지난 3월 퇴임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그동안 영어 이름으로 ‘정태’의 약자인 ‘JT’를 사용해 왔다. JT에는 ‘Joy Together’(함께 즐기자)’라는 의미도 있다. 회장실을 ‘Joy Together Room’으로 이름 붙여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IT기업, 스타트업 등에선 영어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편하게 대표를 부르는 사례는 많았다. 이제는 전통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들도 회장님, 사장님 대신 이름을 불러달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장 벗고, 실시간 소통도 활발

회장님 하면 넥타이에 정장을 입은 딱딱한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이런 격식을 벗어던졌다. 지난해 12월 신한금융그룹 본사에서 열린 ‘제4회 신한 쉬어로즈 콘퍼런스(SHeroes Conference)’에 조 회장은 검은색 정장 대신 해외 명품 브랜드인 톰브라운(Thom Brown)의 회색 니트를 입고 참석했다. 지난해 7월 계열사 CEO와 임원 등이 모인 한 행사에는 백(白)바지와 파란 니트를 입고 나타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회사 내부 행사의 경우 직원들과 편하게 소통하기 위해 정장을 갖춰 입기보다는 캐주얼 복장을 선호하시는 것 같다”며 “직원들 입장에선 훨씬 다가가기 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소통 카드를 꺼내든 대표들도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매주 수요일에 진행하는 사내방송 ‘위톡’으로 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실시간 방송과 채팅을 통해 경 사장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최근 이 자리에서 경 사장은 회사의 이익이 막대한 것에 비해 보상이 부족하다는 불만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명령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공감하는 경영자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취임사를 통해 “임직원의 목소리를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자세로 듣겠다”라고 밝혔다. 이청득심은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일이 곧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의미. 권 부회장은 온라인 소통 채널 ‘엔톡’을 통해 전세계 2만4000여명의 임직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엔톡으로 직원들이 건의사항과 아이디어 등을 남기면 권 부회장이 직접 답변해준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젊은 직원들과 소통하는 코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LG화학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은 지난해 말 최고경영진과 MZ세대 직원이 서로의 멘토가 되어주는 프로그램 ‘코멘토링(co-mentoring)’을 진행했다. 신 부회장은 이날 사원·선임 등으로 구성된 4명의 젊은 직원들로부터 멘토링을 받았다. ‘밸런스 게임’과 ‘무엇이든 물어보살’ 등의 코너와 신조어 게임으로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회사 전체 구성원의 약 55%를 차지하고 있는 MZ세대 구성원이 빠르게 증가함에 따라 회사 경영진과 구성원 간 원활하게 소통하고 업무적 시너지를 내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신 부회장은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와 공감이 이뤄져야 진정한 협업의 시너지가 발생한다”며 “앞으로도 세대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새로운 소통 혁신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용진이형으로 불러달라”

대외적으로 소통을 늘리는 회장님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다. ‘JY’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74만4000명을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리와 운동을 즐기는 모습을 공유하며 소통하는 CEO란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난해 2월에는 소셜미디어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와이번스 야구단과 관련된 내용들을 허심탄회하게 밝히며 대중과 직접적인 소통에 나서기도 했다. 이때 정 부회장은 “야구팬들이 NC다이노스의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택진이형’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자신을 ‘용진이형’으로 불러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동네형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택진이형’으로 불리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사진 왼쪽)와 ‘용진이형’으로 불리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 2019년 자사 게임인 ‘리니지2M’ 광고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수차례 광고 출연으로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고 ‘택진이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택진이형과 용진이형을 위협하는 ‘태원이형’도 있다. 지난해 6월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일상을 공유하며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최 회장은 출근길 동영상, 어릴적 사진, 업무를 보는 사진 등을 공개하고 있다. 자택에서 평범하게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나 스마트폰으로 게임 하는 모습, 반려 고양이와 함께하는 모습 등 소탈한 모습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글 시시비비 키코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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