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때 엠티 주도한 저는 '외국인 한국 공무원'입니다
서울글로벌센터장 폴 카버
방콕, 싱가포르보다 서울
누구나 잘 정착할 수 있는 사회
하얀 피부, 갈색 머리 그리고 살짝 어눌한 한국어. 조금은 낯선 공무원이 있다. 자신을 ‘외국인 한국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사람. 바로 서울글로벌센터장 폴 카버(43)씨다. 서울글로벌센터는 서울 시청에서 운영하는 기관으로 외국인 편의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센터장은 5급 임기제 공무원이다. 카버씨는 4년째 이곳의 센터장으로서 외국인의 한국 정착을 돕고 있다.
폴 카버씨는 1992년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고 2007년부터는 쭉 한국에서 살았다. 이제는 한국 생활 베테랑이 된 그에게 외국인 한국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들었다.
폴 카버 센터장 / jobsN
◇가족여행으로 처음 온 한국
1992년 16살 영국 소년이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다. 한국 대사관으로 파견 온 아버지 친구의 초청을 받은 것이다. 첫 방문에는 한국의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다만 먼저 다녀온 홍콩과 싱가포르보다 덜 복잡해서 좋았다.
"당시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가족을 따라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좋았던 건 한글 간판이었어요. 언어를 좋아해서 다양한 알파벳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한글은 조금 달랐습니다. 동그라미와 네모, 세모 등으로 이뤄져 있는 게 신기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10일 동안 머물다 영국으로 돌아갔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중국어를 전공했다. 2학년 때 인민대학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한국에 두 번째 방문을 할 기회가 생겼다.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 체험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기초 한국어, 태권도 등을 배웠다. 전공은 중국어였지만 한국어 공부가 더 재미있었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 앞에서 홈스테이하면서 한국문화를 깊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왼쪽부터)16살 때 판문점 방문했을 때의 폴 카버씨, 한국어 선생님과 함께, 태권도를 배우는 모습 / 본인 제공
◇영어 강사는 싫어, 회계사로 한국행
영국에서 학사를 마치고 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을 갈 수 있는 공고를 과 게시판에서 발견했다. 영국 참전용사협회에서 매해 학생을 선발해 한국에 보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를 통해 2000년 2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입학했다. "한국문화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원 생활을 하니까 또 달랐습니다. 과 사람들끼리 1박 2일 모여서 술 먹고 함께 노는 MT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영국 대학원생은 잘 놀지 않는데 신기했죠. 곧 적응해서 2학년 때는 유학생 협회 회장으로서 MT를 주도했습니다."
졸업 후 한국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어 실력이 좋지 않았다. 또 외국인 취업 시장도 좁아서 영어 강사 아니면 취직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고민 끝에 영국으로 돌아가 회계법인에 입사했다. 일하면서도 한국에 오고 싶어 한국기업 영국지점 감사에도 참석했다. 한국 지사로 파견 올 기회가 생겨 놓치지 않고 지원했다.
2007년부터 직원 3500명 중 외국인 10여명, 교포 10여명 뿐인 곳에서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학생 때와는 또 달랐다고 한다. "야근, 수직적 조직문화 등 적응해야 할 게 많았죠. 영국에서는 야근하지 말라고 하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야근이 당연했어요. 12시 넘어 막차 타고 집 갈 때도 있었고 밤새울 때도 있었죠. 또 영국에서는 어린 직원도 상무급에게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위에서 내려오는 의견을 따라야 했죠."
FC서울 팬인 그는 경기를 자주 보러다닌다고 한다(좌), 전주 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은 모습(우) / 본인제공
◇조언 댓글 달다가 서울글로벌센터장으로
2011년에는 영주권을 취득했다. 국적은 영국이지만 기간제한 없이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회사는 8년 정도 다니다 그만뒀다. 더는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승진은 영업실적을 기준으로 합니다. 영업은 인맥으로 하는 게 대부분인데 저는 외국인이라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부족했죠. 다른 걸 해볼까 생각하던 때에 서울글로벌센터장 모집 공고를 발견했죠."
서울글로벌센터는 외국인 주민의 편의를 위한 창업, 노무 소송, 부동산 등 서비스를 12개 국어로 제공한다. 한국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한국어 교실, 창업 세미나 등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센터가 하는 일이 그가 취미로 했던 일과 비슷해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국 생활 새내기들이 질문을 많이 올립니다. 저는 대학 생활도 해봤고 직장생활도 해봤기 때문에 대답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요. 시간이 나면 들어가서 댓글로 조언해주거나 모르는 걸 알려주기도 했죠. 그러다 보니 그 지식을 센터장으로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채용과정은 ‘서류심사-필기시험-면접’ 순이었다. 서류심사에는 업무 수행 계획서를 함께 제출했고 필기시험은 에세이를 쓰고 그 내용을 토론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면접에서는 ‘센터장 자리에 왜 본인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지’ ‘센터의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등을 물었다. 2주 후 발표가 났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2016년 1월 3일 글로벌센터로 첫 출근했다.
처음엔 행정 관련 업무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국말을 잘해도 공무원 용어가 따로 있고 보고서 쓸 때 사용하는 용어가 따로 있어서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죠. 굉장히 생소해서 사투리를 배우는 느낌이었습니다. 또 새로운 사업을 할 기회가 생겼지만 예산 문제뿐 아니라 절차가 많아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직원 모두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어 일할 맛이 납니다. ”
◇공무원이라 조심하게 돼…센터가 필요 없는 한국
센터장으로서 외국인이 1년 안에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상담 등을 해주고 있다. 외국인 대부분은 비자 문제, 취업 관련 문의 등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카버씨는 코리안드림을 꿈꾸고 오는 외국인들에게 따끔한 조언을 전하기도 했다.
“영어 강사로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와서 다른 일로 비자나 경력을 전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력서에 ‘????????학원 영어 강사 1~2년’은 경력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적성에 맞는 일과 직장을 찾아본 후에 와야 합니다. 최근 영국 남자, 데이브 등 유명 유튜버들도 많은데 그것만 보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유튜브를 취미로 하는 건 좋지만 그 사람들처럼 유명해져서 유튜브만으로 먹고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또 생활, 기업 문화 등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필수입니다.”
지금은 한국 생활 베테랑이지만 초반에는 실수도 많이 했다고 한다. 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시 행사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당시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을 ‘투자자를 꼬셔야 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과장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또 공무원이기 때문에 평소에 행동이나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카버씨의 목표는 ‘센터가 필요 없는 한국’이라고 한다. “한국에는 30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한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우선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또 사각지대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인프라를 잘 갖춰서 나중에는 ‘센터가 필요 없으니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듣고 싶습니다.”
글 CCBB 하늘
시시비비랩


헬적화가 많이 됐겠노 이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교탈레반에 수직적 꼰대문화에
웰캄투 hell
당시엔 못 살았으니 당연히 매력없었지 않을까요
머리머리 자라자라
투자자를 꼬셔야된다 ㅋㅋㅋ 한국말 제대로 배웠는데
한국인은 외국으로 떠나고 외국인은 한국인으로 오고 띠용
두유노 미세먼지?
전생에 무슨죄를 지어서 지옥불반도에 떨어졌누?
조선이 지옥불반도인 사람은 돈집안없는 자국민뿐인데 양남충이 해당되겠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