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리와 한효주가 입은 한복 만든 디자이너 김영진




‘차이 김영진’, ‘차이킴’ 김영진 대표

연기→명품 브랜드 수퍼바이저→디자이너

나를 표현하는 옷을 만드는 것이 목표


세계적인 모델 나오미 캠벨,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이 직접 사간 한복을 만든 사람이 있다. 바로 디자이너이자 ‘차이 김영진’ ‘차이킴’ 두 한복 브랜드를 운영하는 김영진(47)대표다. 차이 김영진은 맞춤 한복 브랜드다. 손님 취향과 생김새에 맞춰 한복을 디자인한다. 차이킴은 기성 한복 브랜드다. 15세기, 16세기 한복에 영감을 받아 린넨, 면 등 익숙한 소재로 패션 한복을 만든다.


처음부터 한복 디자이너를 꿈꾸지 않았다. 연기자와 명품 브랜드 수퍼바이저를 거쳐 뒤늦게 한복 디자인을 시작했다. 서울 한남동에서 김영진 대표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영진 대표 / jobsN


◇연기 배우다 패션 유통업 종사자로


학생 김영진은 어렸을 때부터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싶었다.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공연예술아카데미 연극연출부에 들어갔다. 직접 연기를 하면서 연출도 배웠다. 공연 의상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그때 연극이 좋아 일주일에 4번은 공연을 보러 다녔다. 또래 친구들은 마이클 잭슨, 아가씨와 건달들 등 외국 팝과 뮤지컬을 좋아했다. 김대표는 친구들과 달리 한국적인 연극을 찾아봤다. 


"외국 연극은 배우들의 연기가 과장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남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감동과 내용이 잘 와닿지 않더군요. 저와는 잘 맞지 않았어요. 극을 하더라도 내가 잘 알고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통극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방학에는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찾아 직접 판소리와 탈춤을 배웠어요. 한국적인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연기하면서 어색하지 않으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연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부모님 의견에 반하는 길을 가다 보니 금전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생계 때문에 연극을 그만둬야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월급을 받는 일이라면 어디든 지원했다. 마침 코오롱 판매 사원 공고가 올라와 면접을 보러 갔다. 판매·유통 경력은 없었지만 합격했다. "당시 면접관이 ‘자기보다 말 많이 하는 애는 처음 봤다’고 ‘저런 애는 영업 잘할 것’이라고 했어요. 제 붙임성을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차이 김영진·차이킴 한복 / 차이 김영진 제공


◇체루티(CERRUTI) 1881→루이뷔통 거쳐 한복 


1994년 코오롱이 운영하는 체루티 1881 매장 사원으로 입사했다.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손님을 응대하고 매장을 꾸몄다. 세일기간에는 백화점에서 직접 매대도 관리했다. "매대 관리할 때는 종일 서 있어야 했고 계단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어요. 어느 날은 수선을 잘못했다면서 옷을 제 얼굴에 던지는 손님도 있었죠. 몸은 힘들었지만 앞서 연극이라는 더 힘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연극과 달리 현장에서 직접 배우면서 일을 하는데 월급이 나오는 상황에 감사했죠."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6개월 뒤 중간관리자를 맡았다. 당시 김대표는 27살이었다. 원단 구매부터 브랜딩까지 책임졌다. 당시 그의 능력을 알아본 한국 루이뷔통 조현욱 회장이 그를 섭외했다. 체루티와 코오롱의 계약이 끝난 뒤 김대표는 루이뷔통으로 이직했다. 남성 의류 팀장으로 있다가 나중엔 여성 의류까지 맡았다. 슈퍼바이저로 10년 동안 근무하던 그는 개인 사정으로 일을 그만 둬야했다.


"건강에 무리가 와 6개월 동안 쉬었습니다. 바쁘게 살다가 일을 쉬니 허전했습니다. 뭐든 배우고 싶어 취미로 한복을 배웠습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박선영 선생님을 찾아가 침선을 배웠죠. 바느질 방법인 홈질부터 시작해 배냇저고리 등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한복까지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만든 한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고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는 것을 보면서 이 길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6 헤라 서울 패션 위크 / 차이킴 공식홈페이지


◇맞춤 한복 '차이 김영진' 기성 한복 '차이킴'


지인과 가족의 적극적인 응원에 힘입어 2004년 맞춤 한복 브랜드 차이 김영진을 열었다. 치마 바로 밑에 입는 속옷인 단속곳부터 저고리, 치마, 신발까지 고객에 맞춰 디자인하고 만든다. "먼저 고객이 어떤 디자인을 원하는지 듣습니다. 또 파티에서 입을 것인지, 결혼식에서 입을 건지를 파악하죠. 그리고 입는 사람의 머리카락·피부·눈동자 색깔에 어울리는 디자인과 색을 추천합니다. 면담을 통해 고객의 니즈와 저의 추천을 적절히 맞춰 한복을 만들죠."


디자인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는 김대표는 박물관과 책을 통해 혼자 공부했다. 시대별로 어떤 한복을 입었는지 연구했다. 공부 끝에 차이 김영진 한복은 18세기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 속 한복 비율을 기본으로 옷을 만든다. 다른 한복과 달리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의류 브랜드에서 일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옷 소재를 많이 알고 써봤습니다. 프랑스의 레이스부터 모시, 상주 명주 등 전통 원단까지 다양한 소재로 한복을 만들어요. 적재적소에 맞는 소재로 디자인하죠."


맞춤 한복을 하던 김대표는 2013년 새로운 한복 브랜드 차이킴을 런칭했다. 차이킴은 기성 한복이다. 맞춤복만 하다 보니 디자이너로서 상상력에 제한이 생겼다. 디자인 영역을 넓혀보고 싶어 시작했다고 한다. “가브리엘 샤넬이 죽어도 샤넬 브랜드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맞춤이 아니고 기성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15세기, 16세기 한복에서 영감을 받아 린넨, 면, 실크와 같이 다양한 소재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패션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차이킴의 대표적인 옷은 철릭 원피스다. 철릭은 조선 말기까지 군관의 공복(公服)으로 입었던 전통 복식 중 하나다. 김대표는 철릭을 보고 허리선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주름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남자 옷이지만 보는 순간 여자 원피스가 떠올랐고 철릭을 모티브로 원피스를 디자인했다. 철릭원피스는 입소문을 타 대중에게도 많이 알려졌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에서 열린 한복 패션쇼에 참가했고 2016년 5월에는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에서 피날레 무대에 섰다.



(왼쪽부터)차이킴의 답호를 입은 틸다 스윈튼, 드라마와 영화에서 김영진 대표가 디자인 한 한복을 입은 배우 김태리와 한효주 / 차이킴 인스타그램, tvN


◇틸다 스윈튼과 나오미 캠벨이 사가는 한복


홍보나 마케팅에 따로 돈을 쓰지 않았지만 일주일에 1~2명씩 꾸준히 차이 김영진을 찾는다. 차이킴을 방문하는 고객의 수는 따로 계산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성 한복은 30만~40만원대. 맞춤 한복은 고객에 따라 다르지만 2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김대표의 솜씨를 알아보고 외국에서도 찾아왔다. 유명 모델 나오미 캠벨, 영화배우 틸다 스윈튼, 배두나 등이 직접 매장에 다녀가기도 했다.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는 그의 한복 3벌을 사서 전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줄리어드 스쿨에 다니던 학생이라고 한다. “공연 무대에서 한복을 입고 싶다고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본인이 아닌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음악을 한다고 하더군요. 기특해서 할인을 해주겠다고 했더니 가치가 있는 작품인데 그 값을 깎으면 안 된다고 거부했습니다. 10여년 한복을 하면서 할인을 거절한 건 처음이었어요. 고마웠죠.”


브랜드 운영 외에도 공연이나 드라마, 영화 의상 디자인도 한다. 워낙 무대 의상을 좋아하기도 하고 창의성을 개발하는 활동 중 하나라고 한다. 햄릿, 동백꽃 아가씨 등 공연은 물론 해어화, 계룡선녀전, 미스터 션샤인 등 영화와 드라마 의상을 맡았다. “작업할 때 역사적인 고증은 큰 그림입니다. 제가 100년 전으로 갈 수 없으니 역사라는 큰 그림에 저의 개성이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미스터 션샤인에 고애신씨에게 꽃레이스 한복을 입혔어요. 당시 레이스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비주얼을 살리기 위해 의상에 레이스를 썼죠.”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는 김대표의 목표는 사업을 확장하기보단 나를 표현하는 옷을 만드는 것이다. 소리꾼과 자신의 브랜드의 협업 등 프로젝트도 생각 중이다. 마지막으로 한복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한복만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본인 브랜드를 하고 싶으면 인문학적인 소양은 물론 창의력도 키워야 해요. 그리고 지금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학생이면 그림이나 연극을 보러 다니거나 그림을 그리세요. 기초에 충실하면 나중에 디자인 등 스킬을 배울 때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글 CCBB 에디터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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