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안읽는 시대에 시를 보여주려면




박신규 미디어창비 출판본부장

매일 시 한 편 시요일 앱  사용자 32만명 돌파

고시조 등 4만2000편 수록


대학에서 시를 전공한 문학청년은 시인을 꿈꿨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른살이 되던 해 문예 계간지 ‘창작과비평’을 출간하는 창비에 입사했다. 이후 청년은 창비 출판부서에서 계간지와 단행본을 만들며 선후배 문인들의 시집과 소설 출판에 열을 쏟았다. 30대 전부와 40대 대부분을 창비에서 보낸 그는 미디어창비 출판본부장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바로 스마트폰에서 시를 읽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박신규(47) 본부장은 스마트폰에서 최대한 시를 잘 보여줘야 한다는 고민에 빠졌다. 스마트폰 사용과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짧은 글에 익숙해졌다. 그와 동시에 가볍고 재미있는 것만 찾았다. 자연스레 진지하게 고민하며 시집을 읽는 모습은 사라졌다.



박신규 미디어창비 출판본부장 /jobsN


“사람들이 시를 읽게 하려면 접근의 편리성을 가지고 보기 좋은 구성으로 시를 보여줘야 합니다. ‘시요일’은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죠.”


창비가 2017년 4월 시작한 시요일은 시 큐레이션 앱으로, 이용자가 벌써 32만명을 넘었다. 매일 한 편씩 골라 보여주는 ‘오늘의 시’ 말고도 3.1절·한글날 등 기념일이나 계절과 상황을 주제로 ‘테마별 추천시’ 페이지도 있다. 월 5000원 유료 서비스에 가입하면 시요일에 담긴 4만2000여편을 전부 감상할 수 있다. 시요일 기획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박 본부장을 만나 변화가 빠른 현대 사회에서 시를 읽는 의미에 대해 들었다.


-출판본부장을 맡고 있고 또 시집도 냈다. 시인의 일상에 대해 말해 달라.


“전업 시인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시인 대부분은 시인 말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생활인으로서 시인은 힘들다. 일상을 살면서 시적 순간이 오면 메모를 하거나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 그 생각들을 시어로 다듬는다.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이 드는 소설가의 일상과는 조금 다르다.”


-시인들이 직업을 갖는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인가.


“그럴 것이다. 출판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시 읽는 독자보다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다. 일부 인기 작가의 책 판매가 도드라지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시인의 삶은 열악하다. 보통 시집은 초판으로 2000~3000부 정도 찍는데, 그것마저 안 팔리는 경우가 상당수다.”



시요일 /사진 창비 제공


-시요일을 기획한 배경이 궁금하다.


“노래도 앨범으로 듣지 않고 한곡씩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이 대세다. 이제 시도 시집이 아니라 편당 독서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고민이 창비에서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루에 시 한 편이라도 원문을 훼손하지 않고 제대로 보여주자는 생각에 시요일을 시작했다.”


-시요일 준비 과정은 어땠나.


“시작은 2015년 초부터였다. 2년 넘는 준비기간이 든 이유는 종이 인쇄물을 디지털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전에 나온 책은 디지털 파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출판물을 스캔해 디지털화’(OCR)하거나 손으로 다시 입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스캔해 입력하는 경우에도 완벽하지 않으니 꼼꼼하게 대조 검수해야 했다. 


또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주제의 시를 찾기 쉽도록 모든 시에 태그를 분류해 입력하는 작업도 해야 했다. 시에 주제를 의미하는 시어가 바로 나오면 간단하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사랑시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그런 것이다. 젊은 시인 10여명과 함께 서비스 시작 전에 3만편 넘는 시를 분석했다. 시집 한권을 분석해 색인작업을 하는 데 한나절에서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앱 개발은 어떻게 했나.


“창비에 개발자가 있다. 외주를 맡길 수도 있었지만 의사소통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내부에서 진행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프로그램의 논리로 생각하는 개발자들과 감성적인 시 구현에 대해 소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계속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니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시요일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지났다. 그동안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


“전체 수록 시가 3만3000여편에서 4만2000편으로 늘었다. 창비 말고도 사계절, 걷는사람, 최측의농간, 삶창, 반걸음 등 출판사 5곳의 시집이 들어왔다. 최근에는 고시조 6843편도 추가했다. 


작년에는 독자들의 시 쓰기 공간인 ‘시作일기’ 코너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독자가 쓴 시는 1만2000편을 넘는다.”



함민복 시인의 '가을'(왼쪽)과 잘못된 정보를 수정해주는 이용자 /사진 시요일 캡처


-시요일이 시 읽기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나.


“인터넷과 SNS에서 많은 시들을 공유한다. 그런데 그 시 중에는 잘못 전달하는 경우도 많다. 도종환 시인의 산문을 행갈이만 해서 시인 것처럼 공유하는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다.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시는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라는 짧은 한 행짜리 시다. 그런데 누군가 시 뒤에 다른 행과 연을 덧붙여서 마치 함민복 시인의 작품인 것처럼 공유하고 떠돌고 있다. 그런 것을 바로잡아주는 역할도 시요일이 하는 것 같다. 작품의 원본(Canon) 그대로 보여주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시집이 나올 때 오탈자가 있을 수 있다. 출판물은 중쇄를 찍을 때에야 수정이 가능하다. 시요일에 들어온 시는 언제든 그때그때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시요일 독자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10대와 20대가 가장 많다. 전체 이용자의 65% 정도다. 시집을 사서 보는 층이 주로 30~50대인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이전까지 시를 많이 읽지 않았던 세대까지 시를 읽게 만든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짧은 메시지를 공유하던 사람들도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고급 콘텐츠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시요일이 충족시켜준 것 같다.”



박신규 출판본부장


-시를 창작하는 일과 출판을 하는 일이 충돌하지는 않았나.


“사실 시 창작과 출판은 모두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어느 한쪽만 집중하면 다른 쪽 작업에 방해가 될 수밖에 없다. 순간순간 시적 상상력을 책 만드는 일에 양보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충돌을 피했다면 더 많은 시를 썼을 테지만, 출판 또한 소중한 나의 길이니 아쉬움은 없다.


책을 만드는 일은 원고를 교정교열하는 단순 작업이 아니다. 표지부터 제목, 구성에 대한 전체적인 부분을 깊이 숙고해야 하고 방향을 잡아 수정도 해야 한다. 디자인은 물론 심지어 페이지와 각주 위치, 크기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편집자가 고민해야 한다. 시 본문도 편집자가 손 보는 경우가 있다. 내 시집을 출판할 때도 작품 중 몇몇 구절을 수정하자는 의견을 반영하기도 했다. 편집자의 말이 맞는 경우가 많다. 책이 온전히 작가(시인)의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모든 힘은 일상의 성실함에서 나온다. 꾸준히 좋은 시를 큐레이션하고 콘텐츠를 늘리고 이용자의 편의에 맞게 앱을 고도화할 것이다. 또 시요일에 참여하는 출판사를 더 늘리고 싶다. 좋은 시를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출판사라면 언제든 문호를 열 생각이다. 외국 시 중에서 ‘퍼블릭 도메인’(저작권 만료로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저작물) 시들도 추가하고 싶다. 고시조처럼 한국시의 소중한 부분인 고전들도 더 많이 확보해서 소개하고 싶다.”


-끝으로, 지금 이 시대에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진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각박한 정도가 아니라 세상이 온통 분노로 가득차 있는 것 같다. 무슨 약점이 드러나거나 누군가 잘못을 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달려든다. 서로를 물어뜯고 공격하는 일이 더 빈번해진 세상이다.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함만 남은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시적 순간과 시적 충동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그런 순간에 누군가는 시적 표현을 메모하거나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그럴 수 없다면 5분 정도를 투자해 시 한 편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시 읽는 데 하루에 5분을 투자하는 사람의 일상은, 당장 눈에 띄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변화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 편씩이라도 시를 읽으며 보낸 일상은 그렇지 않은 삶보다 아름답고 따뜻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밤 벚꽃과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면서 올해의 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안에만 있으면서 그대로 봄을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번 봄은 작년과 또 내년의 봄과는 다른 유일한 계절이다. 시를 읽는 것은 다시는 없을 단 한번의 봄날에 잠시라도 꽃빛을 붙잡고 있다가 낙화를 떠나보내는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글 CCBB CB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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