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비딕'은 1990년에 세상에 알려져 사회적 파장을 낳았던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그 당시 사찰을 위해 만든 모비딕 술집이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오늘은 영화 '모비딕'의 모티브가 되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은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가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벌인 사실이 폭로된 사건입니다. 당시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의 사찰 대상 민간인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들고 탈영해 그 목록을 공개하여 많은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화 모비딕 포스터)


윤석양 이병은 보안사가 무려 정치계, 노동계, 종교계, 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303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벌였다고 폭로했습니다. 당시, 이 디스크를 세상에 공개하기 위해 윤석양 이병은 큰 모험을 감행해 더욱 많은 화제를 낳았죠. 위병소 근무자가 다음 근무자를 깨우기 위해 내무반으로 들어간 시간을 이용하여 윤석양 이병은 미리 빼낸 이른바 청명 계획이라는 민간인 사찰 계획의 사찰 대상자 명부철과 세 장의 플로피디스크를 가지고 탈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언론에 폭로하고 양심선언을 하였죠. '청명 계획'의 무서운 점은 계획 발동시 체포만 남은 상황이었다는 점입니다. 자택의 가구 배치, 진입/도주 가능 경로, 친인척 주거지 및 세세한 인적사항이 모두 포함되었던 사찰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청명계획이 발동되었다면 근시일내에 체포작전이 실행되었을 것이라는게 전문가의 소견입니다. 



(보안사령부)


'청명계획'은 1989년 3월 당시 보안사령부가 친위쿠데타를 성공시키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사찰해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D-데이 전후로 전원 검거한다는 예비검속 작전명을 뜻합니다. 또다시 친위 쿠테타식 비상계엄이 발동될 경우를 대비하여 방해가 될만한 민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보안사령부에서 미리 체포목록을 작성한 것이죠.




하지만 윤이병의 폭로 사건으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제5의 군사 쿠데타가 실행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양 이병은 대학시절 '혁명적 노동자계급투쟁동맹(사노맹)' 사건에 연루된 것 때문에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된 후 서빙고 분실에서 강제로 대공 및 학원사찰 업무를 80일 동안 담당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고문을 못이겨 운동권 동료 리스트를 실토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덕에 모비딕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자신은 이 후, 운동권 동료 리스트를 실토한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이와 같은 폭로 사건을 벌였다고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하여 밝혔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서도 솔직히 언급했는데요. 하지만 윤석양 이병의 이와같은 폭로가 없었다면 지금의 사회를 꿈꾸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그의 공로는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사건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은 군무이탈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했습니다. 비록 부대에 복귀할 경우의 심각한 보복을 우려한 판결이었다 할지라도 그의 폭로사건이 그의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는 긍적적인 영향만을 끼쳤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출소 후 1995년 '올해의 인권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꽤나 오랫동안 숨죽이며 지내야 했던 윤석양씨입니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의 평화도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폭로로 인해 사회가 발칵 뒤집힘을 물론이고 민주화 세력이 들불처럼 일어나 당시 하나회 해체와 함께 반민주적인 잔재들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사찰 대상이던 노무현(A급 분류), 한승헌, 김승훈, 문동환, 강동규, 이효재 등 각계의 주요 인사 145명은1991년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당시 재판부도 보안사는 군사 기밀과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만 사찰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보안사가 군과 무관한 정치인, 교수, 종교인, 언론인을 부당한 방법으로 사찰한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 행위였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국군보안사령부가 헌법상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점을 인정하여 원고들에게 각각 200만 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렸죠. 




이 사건으로 과거 정보기관의 정치사찰 행위가 특정 인물의 사생활을 침해했음이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옴과 동시에 큰 변혁을 일으킨 폭로사건이 아닐 수 없는데요. 때문에 윤석양 이병의 용기있는 행동에 대해 네티즌들도 "모든 것을 포기하며 진실을 밝힌 저분의 용기에 존경을 보냅니다", 목숨걸고 탈영한 장병 하나가 큰일을 해냈다' 등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글 CCBB 오토앤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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