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오후 아홉시 반을 가리키는 심야, 축제의 분위기는 절정을 이루고 검푸른 하늘의 별들이 여름밤을 장식한다.
배전 옆, 덴지와 나유타가 종을 울렸던 그 장소 옆에 줄무늬 천막과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노란 전구의 빛을 한몸에 받으며 가지런하게 올려져 있는 경품들은 덴지와 나유타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덴지, 체인소맨 퀴즈.”
입가에 당고소스를 묻힌 채로, 덴지를 바라보는 노란 빛의 두 눈은 나유타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곁들여져 하늘의 별과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덴지는 그런 나유타를 보며 무언가 서로 통했다는 마냥,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고개를 돌려 바라 본 뒤 앞으로 나아간다.
“좋아! 작년 전국대회 스피드 퀴즈 우승자가 나서볼까“
의기양양한 덴지와 약간은 질색하며 바라보는 아사와 요루.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자기만의 고집보다 존중을 선택한 아사는 덴지를 향해 응원한다.
모여드는 인파 속에 가느다란 홍조와 신의에 가득 찬 눈빛을 보내며 덴지를 보내려는 찰나, 아사는 이내 악마라도 발견한듯 어딘가를 보며 기겁하며 덴지를 저지한다.
기타 줄 처럼 파르르 떨리는 아사의 손이 덴지의 손목을 붙잡는다.
의아해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그런 아사를 바라보는 덴지.
“그... 그만 불꽃놀이 장소로 먼저 가는게 좋을 것 같아. 퀴즈는 다음에 하자...”
고개를 푹 숙인 채 저어대며, 머리 장식의 끈만이 살랑이며 흔들린다.
덴지의 입술이 열리며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를 말하려는 찰나, 인파로 이루어진 강의 건너편에서 희끄무레한 조명에 비춘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낯익은 교복을 입고 순찰 완장을 찬 앳된 소년4인방이 보인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탓에 행사장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흥분하며 서성이던 그들을 남 몰래 애틋한 데이트를 즐기는 덴지 일행은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듯 했으나... 공교롭게도 눈치가 빠른 요시다만이 덴지와 눈이 마주친다.
덴지 역시 당황하며 비밀을 들킨 아이마냥 쑥스러워하는 아사와 요시다의 여유로운 웃음을 번갈아 바라보며, 무언가를 깨닫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휘젓고, 상황을 부정하며 덴지는 다시 한번 요시다를 쳐다보자 그저 웃으며 팔 모양을 가위자로 나타낸다.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지만 무언가 통한 듯, 알겠다는 듯이 덴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나유타를 안고 아사의 손을 잡고 인파를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한다.
당황한 아사는 남은 한쪽 손으로 하의가 바닥에 쓸려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신사의 뒷면 방향으로 덴지에 의해 이끌려 달려가기 시작한다.
수족관 데이트가 연상되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때보다 더 행복해서 그랬을까... 의도치 않게 누군가로부터 도망가고 쫓기는 신세처럼 되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즐겁고 행복했다.
아사는 그와 함께 있을때면 비록 엉거주춤한 자세라도, 달리다가 넘어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 한다.
‘신기해... 중요한 순간인데도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달려나갔어.
두 다리로 혼자 서 있는 느낌이 아니야... 나를 일으켜 세우는 느낌이야...’
”무슨 헛소리를 하고... 허억..허억 있는거냐 아사. 힘들어 죽겠다. 더 이상 달리다간 진이 빠져버릴거다.”
엄살피우는 요루와 그런 모습을 보고 기묘한 웃음을 짓는 아사.
연심일까, 전력으로 질주해서일까, 모호한 이유로 심장은 요동치며 감정또한 주체 할 수 없는 두 인격은 몰아두었던 거친 숨을 몰아쉬머 동시에 또렷하게 덴지를 쳐다본다.
“후우... 죽는 줄 알았네... 괜찮은거 맞지?”
덴지 역시 나무에 기대 나유타를 내려놓고, 숨을 헐떡이며 땀으로 젖어 머리가 헝클어진 아사를 쳐다본다.
쓰러지듯이 덴지의 품에 기대는 아사, 아니 어쩌면 요루일지도 모르겠다.
찰나의 순간 동안 서로의 인격은 몸을 차지하려 애쓰며 품에 안긴 그 순간까지도, 둘의 내면에선 서로간의 알 수 없는 질투 같은 것을 느끼고 있을 뿐이였다.
덴지의 목덜미에 그녀의, 아니 그녀들의 숨소리가 몰아쳐 간지럽힌다.
귓바퀴를 따라, 거친 숨소리가 관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상대의 달아오른 체온과 땀이 가슴팍으로 부터 전신을 휘감으며 느껴진다.
‘포치타... 제발 내 안에서 요동치지 말란말이야... 네가 그러고 있는거지..? 그냥 전력질주 해서 그렇다고 해’
애꿎은 포치타를 마음속에서 진정하라고 외치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덴지는 벌린 양팔을 닫아 끌어 안아야 할 지 망설였지만, 고민을 너무 오래한 탓일까, 엉뚱하게도 멀뚱히 지켜보던 나유타가 말을 꺼내며 정적이 흐른다.
”덴지, 나도 안아줘“
귀뚜라미 소리와, 풀잎과 나뭇잎을 훑는 바람소리만이 그들을 구경하다가 떠나가듯이 그들을 에워싸며, 정신을 차리는 덴지와 그녀들의 모습이 풋풋 할 뿐이였다.
“아사, 방금은 모른척해라. 네 녀석 때문에 나까지 이렇게 되지 않았느냐.”
얼굴을 붉히며 아사에게 삿대질을 하는 요루는 애써 자신이 했던 일을 부정하려고 비난하고 소리친다.
“아~ 그러셔? 그렇게 몸을 차지하고, 순간을 놓치기 싫어서 쥐어 뜯고 소리지르고, 말렸던거야..?”
자신만만한 표정의 아사는 석산화처럼 붉게 피어오른 요루의 얼굴을 보며 비웃듯이 그녀를 쏘아 붙인다.
아무말도 못한 채, 어금니를 물고 부정하는 요루.
“어...음... 방금은... 그래... 나름 최고였어”
나유타를 안고, 신사 뒷편 오솔길을 억지로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고 떨고있는 채로 말하는 덴지의 모습은 바보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살랑살랑 두 인격의 마음을 간지럽히기 충분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해맑게 웃는 아사와, 미소 짓는 요루.
“이...이제 곧 불꽃놀이가 시작 될테니까, 기.. 길 잃지말고 나만 잘 따라오라고!”
여전히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포치타는 덴지를 비웃듯이 악마화는 제쳐두고, 그 어느때보다 거칠고 강하게 뛰고 있었다.
“덴지, 불꽃놀이 보고싶다.”
나유타가 덴지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표정없이, 그러나 입술은 삐죽 나온채로 뾰루퉁하게 재촉한다.
“그래 그래 아가씨들~ 어서어서 보러가자고”
언덕 위로 올라가는 오솔길, 밤하늘처럼 어두컴컴한 자그마한 가로등과 함께 포장이 엉성하게 되어 있는 불친절한 길을 따라 일행들은 나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소리가 멀어지고, 도시의 인공적인 불 빛들은 희미해져 가는 동시에, 그에 대비되는 밤하늘의 별빛들은 쏟아지듯이 밝게, 힘차게 강줄기를 이루기 시작하고, 그에 호응 하듯이 달은 환하게 소년과 소녀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조명 역할을 수행했다.
깊은 밤, 아홉시 사십 오분
안고있던 나유타를 내려놓고, 언덕 위 벤치에 일행들과 나란히 앉아, 황혼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의 전경을 카메라와 두 눈에 스며들듯이 담아둔다.
셔터소리가 두어번 정도 들리고, 덴지는 크로스 백을 열어 캔커피와 라무네를 꺼내 뚜껑을 열고 각각 아사와 나유타에게 쥐어준다.
“커피... 좋아할지 모르겠네...“
덴지 역시 캔커피를 열어 입술을 적시며 맛을 조금씩 음미한다.
이내 쌉사름한 맛이 입안을 감돌고 카페인이 몸으로 퍼지며 생각이 많아진 복잡한 덴지의 표정이 나타난다.
한 모금, 입술과 목을 적시며 말을 이어간다.
“나 말이지, 전에는 커피를 마시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어. 담배와 술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전의 삶을 생각해보면 그건 도저히 못따라하겠더라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덴지는 마음속으로부터 차갑게 식은 응어리진 언어를 꺼내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왜일까, 처음에는 시궁창 물 같던 커피가 이제는 좋아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된거 같지 않아. 공부도 열심히 하고, 평범을 넘어 특별해지기 위해 부단히 나유타도, 개들과 냐코도 책임지며 노력하고 있는데, 어딘가 나아지는 기색이 없어... 역시 나는 글러먹은 걸까...”
“아니야 덴지, 너는 그렇지 않아.”
무게가 느껴질 만큼 차가워진 덴지의 심장을 녹여내는 아사의 언어, 더불어 직접 손수건으로 섬세하게 덴지의 이마를 들어 닦아준다.
“커피는... 그냥 추출해서 먹을땐 쓰디 쓴 맛이 날 뿐이야. 그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과거의 덴지처럼 싫어하는 사람이 있지. 하지만, 우유를 타먹기도 하고 설탕을 섞기도 하고, 캬라멜을 녹여내는 경우도 있지.”
바람이 아사를 향해 스치며, 그 바람을 타고 덴지의 시선이 아사에게 향한다.
“덴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노력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개인의 인생에 무언가를 섞고 녹여내는 과정일지도 몰라. 어떻게보면 멋지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다들 부단히 배우고 책임지는 과정일테지.”
낡고 녹슨 벤치에 손을 짚으며, 고개와 허리를 앞으로 빼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아사.
그런 아사에게, 덴지는 집중하고 경청한다.
귀뚜라미와 여치의 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을정도로 그녀에게 시선이 빠져있는 덴지.
“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쓰고 맛없는 커피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완벽히 옳은 방법으로 추출해냈기에, 틀리지 않았기에 그런 맛과 향이 풍기는 커피라고 합리화 했지. 하지만 덴지를 만나고, 네가 나에게 섞여들며, 그리고 내가 너에게 녹아들며 더 나아진 형태의 커피가 되었어. ”
나긋나긋 웃으며 덴지에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아사.
그런 아사를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바라보는 요루와, 나유타.
그리고 조금은 놀란듯한 표정의 덴지.
“완벽한건 이 세상에 없고, 그저 방향과 취향이 있을 뿐인데 말이야...”
말을 마치며, 침묵하며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아사.
그리고, 그런 아사를 따듯하게 안아주는 덴지.
바람과 별빛, 초승달, 나뭇잎과 풀잎의 내음, 저 멀리 도시의 야경과 신사의 음악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며 한데 어우러지며, 잔잔하게 그들을 감싸고 위로한다.
깊어진 밤, 열시
저 멀리, 자그마한 불꽃이 튀어오르며, 이제껏 그들을 감싸던 빛이 우습다는듯이 더 환하게, 더 밝게 비춘다.
“덴지, 불꽃놀이. 사진”
이윽고 불꽃은 소멸하고, 다른 신호탄이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말 없이 아사를 안아주다, 나유타의 말을 듣고 크로스백에서 카메라를 꺼내는 덴지.
왜일까, 시궁창에서 벗어나 행복해 질 줄 알았지만, 남이 마련해 준 무대 위에서 놀아 날 뿐이였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싶었지만, 평범이라는 번뇌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겪던 모든 일들이 스스로에게 만큼은 진실이였다고 깨닫는 순간이였다.
조용히 서서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요루는 아사의 옆에 같은 자세로 나란히 앉는다.
“낯설다. 처음의 네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그러게... 어쩌다 이리 되었을까.”
“그건 나도 모른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러번의 불꽃이 터지는 소리와 셔터소리.
그리고 소년기를 장식하며, 그들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를 끊고, 한줌의 섬광에 모든 것을 날려버린다.
“나유타! 좀 더 멋지게!”
화려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나유타는 표정없이 브이자를 선보이며 포즈를 잡는다.
불꽃이 터지며, 모두에게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는 영락없이 네 사람의 모습을 비출 뿐, 그 어디에도 악마의 모습은 비추지 않는다.
언젠가 끝나버릴 이 순간도, 이 장면도, 필름과 기억속에서 아름답게 스며들고, 머무르겠지.
- (完) -
야밤에 올려서 그런가 추천수에 목말라있음..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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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으으으으으~~~~~ - dc App
그래....이게 문학이지...... - dc App
청춘을 즐기는 평화로운 일상물 넘 조와 사람 간의 관계를 커피에 빗댄 부분이 정말 멋지네
아키가 처음 커피를 내리던 장면, 레제편 초입부, 마키마가 늘상 커피를 마시던 장면을 떠올려봤습니다. 덴지가 위를 바라보며 배우고, 한편으로는 나쁘던 좋던 가르침을 내려준 사람들이라 어떻게보면 어른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그들을 따라했지만, 아직은 느껴지지 않는 덴지의 심정부터 아사의 생각까지 표현해 봤습니다 - dc App
나중에 몰아봐야징 - dc App
필력 개좆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