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의 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떠보니 이 숲 한가운데에 있었을 뿐.

하지만 그 생물의 머리 속에서 본능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속세에서 악마라고 부르는 존재요,

이곳은 인간이라 부르는 존재들의 세상이란 것을.

머리 속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온다.

인간을 죽여서 그 피를 마셔라.

그것을 몇번이고 반복해라.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너의 유일한 존재 의의일 뿐.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악마는 숲을 벗어나 걸어갔다.

이내 아주 크고 네모난 돌덩어리들이 수도 없이 늘어진 넓은 장소가 악마의 눈에 띄었다.

돌덩어리들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또 다른 생물들의 모습에 악마는 저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군침을 다셨다.

"악마다!"

자신을 발견한 그 생물들의 외침과 동시에 악마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굶주림, 목마름 등의 생리적 욕구가 이내 알 수 없는 증오심, 짜증, 분노로 뒤바뀌기 시작한다.

이윽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악마의 괴성과 함께 날카로운 이빨이 단도처럼 스쳐 지나갔다.





"미야기 현의, 센다이 시에서 포획된 악마라고요."

주홍빛 불빛이 비추는 복도 속에서 울려퍼지는 또각거리는 구두소리.

"네, 1993년 8월 21일,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토벌된 개체가 다시 나타난 것 같습니다."

남자의 브리핑을 들으며 붉은 빛의 댕기머리를 한 여성은 복도 양 옆을 슬쩍 둘러보고 있었다.

꾀꼬리의 악마,
돼지풀의 악마,
청바지의 악마,
통나무의 악마,
단추의 악마,
주사기의 악마,
조울증의 악마,
하수구에 떠다니는 기름찌꺼기의 악마,
백혈병의 악마,
몽키스패너의 악마,
1987년 도쿄 대정전 사태의 악마...

온갖 기이한 것들의 '악마'란 팻말이 붙은 수십개의 강철 문들 틈새로 힘없는 신음소리, 짐승의 울부짖음, 뭐라 중얼대는 듯한 말소리 등이 복합다발적으로 울려퍼졌다.

어찌 보면, 그녀에겐 꽤 낯익은 광경일지도.

"사망자는?"

"사망자까지는 없는 것으로..."

남자가 멈춰선 바로 앞의 암호키를 몇번 조작하자 그 두껍던 강철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여기서부턴 저 혼자,"

남자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마키마는 철문 안쪽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본래 공안에 잡힌 악마들은 대개 처분되지만,"

악마는 눈 앞의 여인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기만 할 뿐.

"당신은 사망자까지 내진 않았으므로, 한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하는데요."

돌아오는 답은 없다.

"알아들은 걸로 할까요.
공안에 협조해서 데블 헌터와 계약을 맺으면 살 수 있어요. 하지만 거절한다면 당신은 지금 즉시 처분당할 테죠. 당신의 그 능력은 상부에서 꽤 눈여겨보고 있으니 좋은 거래가 될 거에요. 어떤가요?"

"넌 인간이 아니구나."

딱딱한 것이 맞부딪히는, 까득대는 듯한 목소리가 마키마의 귓가에 울려퍼진다. 구속장 안 깊숙히에서 여태 얘기를 듣고만 있던 악마가 그늘 밖으로 걸어나오자 온몸에 새겨진 상처와 흉터, 지져진 자국 등이 드러났다.

...공안은 수감된 악마들을 통제하기 위해 가끔 폭력적인 수단을 쓰기도 하는 법이었다.

"왜 악마가 인간의 편을 드는 거지?"

"제가 인간을 좋아해서랄까요."

"거짓말."

마키마는 그저 지긋히 미소지었다.

"네가 말하는 인간이란 것들을 볼 때마다 그것들의 살을 찢어 넘기고 싶다는 마음밖에 들지 않는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본능처럼 솟구쳐 올라. 악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인간을 좋아할 수 없다."

"하지만, 전 정말 인간을 좋아하는 걸요."

"돌연변이인가 보지."

"제 생각엔, 당신은 살아서 계약하는 편이 나은 것 같아요."

마키마가 손뼉을 가볍게 치자 문 너머에서 또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안경을 쓴 남자는 악마의 모습을 보고 꽤 놀란 눈치였다.

"이 사람과 계약하도록 하세요."

저항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악마의 입을 억지로 틀어막았다. 악마가 반강제적으로 고개를 숙이자 마키마는 만족했다는 듯이 문 밖으로 걸어나가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당신도 이렇게라도 무언가 인연을 쌓는다면, 제 의견에 공감하게 될지 모르겠네요."





"왜 그때 했던 얘기가 지금 떠오르는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암야 속에서 피부가 조각조각 뜯겨나가는 듯한 공포가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지배의 악마,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어."

악마는 주위를 둘러본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거든."

한번도 와보지 않은 곳이지만 낯익은 공간이다.

"녀석과 난 나름대로 인연을 쌓았다."

어둠 저 너머에서 인간의 부속품들로 구성된 무언가가 시커먼 망토를 드리운 채 한편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 녀석을 좋아하게 되버린 걸지도."

사방에 널부러진 사지가 분해된 인간들과 마인들은 이제 겁먹은 눈으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왜 덤비게 되는 걸까."

악마의 눈이 그의 파트너, 쿠사카베와 마주친다.

"뭐, 어쩌면 나도 돌연변이일지도."

돌의 악마가 어둠의 악마를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톱과 이빨을 들이밀고 덤벼들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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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소맨 최고의 의리짱 '돌의 악마'의 오리진 스토리를 구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