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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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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간다. <파이어 펀치>다. 파이어 펀치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타츠키의 문제의식을 집대성한 만화다. 파이어 펀치에서 타츠키 끊임없이 독자들을 혼란 속에 빠뜨리고, 독자들이 스스로 주제의식을 발견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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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 유다, 토가타. 파이어펀치의 주역들은 모두 연기 속에 갇혀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본성, 자발적 페르소나, 타의적 페르소나의 경계를 오가며 그 과정 속에서 독자를 혼란시킨다.


파이어 펀치의 주인공, "아그니"의 행적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여동생을 아끼는 소년 "아그니"는 살아가기 위해 복수자를 연기했고, 토가타의 도움을 받기 위해 베헴도르그를 부수는 복수자 "파이어펀치"를 연기했으며, 자신이 구출한 베헴도르그 출신 노예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신 아그니"를 연기했고, 유다를 지키기 위해 "오빠"를 연기했다. 유다의 "오빠"로 10년을 살아간 아그니는, "오빠"로서 사귄 친구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파이어 펀치"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아그니, 파이어 펀치, 신 아그니, 오빠, 이 중 무엇이 아그니의 본성이고, 페르소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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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플렉이 쓰고 있던 웃음의 가면은 피부에 엉겨붙어 소시민 아서 플렉을 조커로 만들었다. 아그니가 쓰고 있던 복수의 불꽃은 아그니의 얼굴을 불태우고 복수자 파이어 펀치로 변모시킨다.



복수를 포기하고 노예들을 이끄는 도덕적인 "신 아그니"로 살아가려던 아그니는 여동생의 환각을 보고 복수자 "파이어 펀치"로 돌아가 학살을 저지른다. 앞서 이야기한 아그니가 복수자를 연기했다는 부분에서 문장구조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을 텐데, 나중에서야 밝혀지는 사실이지만 아그니는 토가타의 요청을 받고 "파이어 펀치"가 되기 전부터 이미 복수자를 연기하고 있었다. 작중 내내 아그니의 본심은 딱히 복수에 관심이 없다고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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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니는 그저 몸이 불타는 고통을 잊고, 억지로라도 삶의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복수를 목표로 삼았을 뿐이다. 독자들은 1화부터 등장한 "복수자 아그니"가 토가타를 만나 자연스럽게 "복수자 파이어펀치"로 변화했고, "복수자 아그니">"복수자 파이어펀치"를 아그니의 본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 "복수자 아그니"는 연기, 페르소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딱히 복수를 원하지 않았던 아그니는, 머릿속으로는 도마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납득했으면서도 순간 이성을 잃어버리고 복수자로 변해 도마와 도마가 거둔 고아들을 살해한다. 복수자의 연기, 페르소나가 본성을 잡아먹어버리며 낳은 끔찍한 결과다. 이 사건 이후, 불안정한 아그니의 인격을 버리고 "오빠"이기를 택한 아그니는 살인을 해야 되는 일이 생기면 화염의 가면을 뒤집어쓴다.

이제 아그니의 진짜 본성에 대해서 탐구해보자. 일단 "파이어펀치"와 "신 아그니"는 본성이 아니다. 저 위 장면에서도 나오듯이, 아그니는 삶의 이유였던 여동생이 죽어버리자 삶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복수자의 연기를 하고 있다고 언급된다. 그렇다면 복수자 아그니의 전, 여동생을 아끼는 아그니는 아그니의 본성인가? 사실 이조차도 아니다. 아그니는 여동생 루나와 같이 찍은 사진에서 억지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고 나온다. 여동생을 아끼는 아그니조차 하나의 연기, 페르소나였을 뿐이다. 타츠키는 지독할 정도로 아그니의 본성을 베일 속에 감추고, 독자는 끝없이 혼란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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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능력자인 유다는 죽어가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얼어붙은 세계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었다. 130년의 세월 동안, 유다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가치, 교양과 상식과 도덕과 문화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숴야 했다. 싸구려 B급 영화의 조악한 CG를 두른 등장인물을 신이라고 믿는 베헴도르그의 주민들은 강간과 노예제, 고문을 상식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유일하게 옛 세대의 상식을 간직하고 있는 유다는 자신이 만든 괴물들 사이에서 홀로 130년동안 베헴도르그의 신을 섬기는 신관을 연기해왔다.


"파이어 펀치"의 복수가 끝나자 유다는 기억을 잃어버렸다. 죽은 여동생 "루나"와 유다를 겹쳐본 "아그니"는 모든 기억을 잃은 유다를 자신의 여동생, "루나"로 만들어 10년 동안 같이 살아간다. 독자들은 "유다"의 자아가 진짜이며, "루나"는 연기, 혹은 세뇌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루나"는 물론 연기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지배자 "유다" 역시 연기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마찬가지 아니던가. "루나"가 가짜라면 같은 논리로 "유다" 역시 가짜다. 유다와 루나의 차이라고는 연기해온 기간 뿐이다.

여동생을 아끼는 "아그니"와 "복수자 아그니", "파이어 펀치", "신 아그니", "오빠"는 동일인물인가? "유다"와 "루나" 중 진정한 자신은 누구인가? 본성만이 진정한 자신이며, 페르소나는 거짓된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애초에 본성과 페르소나를 완전히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가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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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펀치의 종반부, 모든 기억을 되찾은 유다=루나는 자신이 루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루나도, 유다도, 하나의 배역이었다고 받아들인다. 자신의 본성이 무엇인지, 본래 무엇이 연기였고 무엇이 본성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자신"을 연기한다면, 그건 이미 가면이 아니라 본성이니까. <파이어 펀치>는 만화가 후지모토 타츠키가 그토록 강조하고 집착하는 주체성에 대한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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