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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뚜라미 소리, 풀잎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다채로운 풀벌레의 구애소리만큼 여름을 달콤하게 적시는 음색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이다.

학교의 화단에 우뚝 솟아오른 나무와, 관리가 부실한듯 자연의 생명력을 세차게 자랑하는 잡초줄기와 솟아오른 풀들의 키만큼 향기로운 이슬냄새를 머금은 밤공기가 산들바람을 타고, 도둑처럼 교문을 침입한 두 남녀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 덴지, 조심조심! 학교의 담장은 꽤나 높으니 조심해. ”

“ 아가씨, 이래뵈어도 공안 최고의 요원이니까, 걱정 붙들어매셔! ”

“ 하여튼, 남자들이란... ”

술래잡기를 하듯, 티격태격하며 높다란 콘크리트 담장을 넘어가는 소년과 소녀의 로맨스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달빛만이 그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밝은 달빛을 피해 부끄러운듯 붉어진 얼굴을 어둠속에 감추는 소년은 먼저 담장에 올라간 소녀의 손에 이끌려 학교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으려 하고 있었다.

담벼락 위에 걸터앉은 두 사람은 넓다란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것을 기점으로 건너편의 고즈넉한 배움의 장이 그들을 자애롭게 맞이하는듯,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가로로 넓게 뻗은 건물만이 어린 두 남녀를 끌어안듯, 어딘지 모를 포근함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난생 처음 바라보는 교육의 터전을 달빛이 반사해 소년의 동공에 닿자, 덴지는 놀라움과 더불어 동경의 빛이 반짝거리며 꿈만 같은 황홀함에 젖어 넋을 놓고 있었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내심 뿌듯하게 바라보매, 높다란 담장 밑으로 가볍게 폴짝 뛰어내려 학교 건물의 자태와 비슷하게 팔을 펼쳐 안아주듯이 그를 기다리며 사랑스런 눈동자로 한 없이 온기를 실어나르기 바빴다.

“ 이쪽이야, 그렇게 멍때리지 말고 직접 들어가보자고. ”

정신을 차리고, 영역의 선을 넘어 담장밑으로 떨어지는 덴지, 그리고 자신과 달리 묵직하게 착지하는 소년을 가볍게 안아주는 레제는 자신의 품을 기꺼이 내어주며, 땀에 살짝 젖은 자신의 살결의 촉감을 그에게 전달해주니, 소년은 부드럽지만 살짝 끈적한 포옹에 젖어들어 행복감에 적셔져, 그 역시 그대로 소녀를 가볍게 끌어 안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소년, 소녀의 체취가 감미롭게 느껴지는 것을 즐기며 그녀의 살짝 젖은 목덜미에 날숨을 자그맣게 내쉰다.

“ 하읏... ”

간지러운걸까, 아니면 보드랍게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가녀린 호흡을 느끼는 것일까, 소녀는 야릇한 소리를 내며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홍조만큼 뜨거워진 공기를 풀숲의 산들바람만이 시원하게 식혀주고 있었다.

소년의 코에 차가운 손가락이 톡 올려진다.

마치 강아지를 훈육하듯, 어르며 그에게 이르길

“ 안돼. 거기까지. 간지럽단 말이야. 착하지...? ”

상냥하게 웃음짓는 그녀의 미소, 제 주인의 명령을 따르듯 귀를 쫑긋 세우곤 딱딱하게 굳어버린 채 아무런 행동조차 취할 수 없었고, 뜨겁게 데워진 적막함으로 기득 찬 공기를 가르는 숨소리만이 풀바람을 제치고 나지막히 들려오는듯 하였다.

이윽고, 소녀는 소년을 퉁명스레 밀어내며 어느정도의 거리를 벌리지만, 서늘하고 얄상한 여성의 손가락만은 소년의 코 끝에 올려진채 야릇하다 못해, 요망한 감정선을 자극하고 있었다.

소녀는 그의 모습을 보고 흡족하더니, 특유의 요염한 미소를 짓고, 덴지의 코 끝에 올려진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벼이 쓸어내려 마침내 턱 밑에 가느다란 검지를 갖다 대곤, 거친 들개를 길들이는듯 조곤히 목소리를 속삭였다.

“ 착하지, 덴지군은 역시 내가 키우던 개와 닮았으려나~? ”

“ 레제... 너무해... ”

소년의 욕망이 묻어나오는 그녀의 가슴께와 쇄골이 바람과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비추었고, 카페의 디저트와 같이 달콤하게 속삭이는듯 유혹하며 소년을 애타게 만드는 소녀의 목소리는 들개 같은 그를 더욱 자극하여, 점점 짐승으로 변모시키는 듯 하였다.

소년은 한걸음씩, 그런 유혹에 저항해보지만, 그녀를 향해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었고, 그 박자에 맞추어 손가락을 고스란히 올린채로 뒷걸음질 치는 잔망스런 소녀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소녀의 실루엣이 자꾸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자, 소년은 이윽고 한숨을 쉬머 포기하던 찰나, 날렵하게 그의 손목을 감싸는 다섯개의 새하얀 손가락이 덴지의 두터운 손목을 붙잡는다.

“ 자, 이리와, 아직 네게 상을 주기는 이른걸. 학교탐방은 한참 남았으니까 말이야. ”

소년의 붙들린 손목이 소녀의 당기는 힘 앞에 순응하며 허무하게 이끌린다.

목줄을 잡힌 것 처럼, 앞장 서 나아가는 소녀의 기세에 짖눌려 학교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덴지는 어느덧 신이나 레제의 발걸음에 맞추어 뜀박질을 하기 시작하였고, 건조한 사막같은 흙바닥을 지나, 방학동안 관리되지 않아 교정의 보도블럭 틈으로 뻗어있는 잡초들을 즈려밟으며 마침내 신발장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학교의 현관에 도착한다.

무방비한 두 남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인지, 너무나도 간단하게, 허술한 잠금장치가 소녀의 손짓 몇번에 마법같이 풀리매 둘은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실내로 선을 넘어 안으로 진입하였고, 이름모를 누군가의 명찰들이 적혀있는 신발장의 틈새를 지나 현관으로 들어가니, 그곳엔 중앙계단이 버젓이 존재하였다.

“ 공안이니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공무수행 공무수행! ”

“ 아하하하! 그게 뭐야 덴지군! 여기엔 악마따위는 없다고. ”

“ 그런건 아무도 모른다고, 행여나 나온다면 히어로가 나서서 지켜주도록 하지. ”

함부로 다른이의 영역에 침입한 탓일까, 아니면 어스름한 고요함을 쫓아내고 싶어했던 탓일까, 좀 전의 담벼락에서 느끼던 긴장이 무색하게도, 덴지는 능글맞게 소리를 흘려대며 공안증을 펼치곤 이리저리 허공에 선보였고, 소녀는 배꼽을 잡고 연신 웃음소리를 길게 펼쳐진 복도에 흩뿌렸다.

계단 옆의 벽에서, 두 사람의 홍조만큼이나 발갛게 달아오른 불빛이 퇴폐적인 분위기를 가미하며, 그것으로 인해 만들어진 두 개의 그림자가 위를 향해 올라갔고, 2층에 당도한 소년과 소년은 애틋하게 달콤한 목소리로 서로의 상태를 물으며 자신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었다.

“ 덴지군, 안무서워? ”

“ 아아... 무섭다고 해야하나, 이상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

“ 뭐야 그게. ”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벽, 그리고 나무로 이루어진 바닥, 세월의 흠집으로 뒤덮인 유리창에 그들의 목소리가 잘게 부수어져 습한 지하실의 냄새와 함께 울려퍼지며, 다시 한번 두 사람에게 되돌아 온다.

“ 좀 무서워서 그런데, 손 잡아도 돼..? ”

“ 으응... 물론.. 이지. ”

차가운 여성의 손가락이 뜨거운 남성의 손 틈으로 파고들어 깍지를 이룬다.

내친김에 팔짱까지 끼며, 살갗을 최대한 닿게 하고 새하얀 살결과, 약간은 탄듯한 근육질의 섬세한 굴곡이 오묘한 대비를 이루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그렇게 도착한 3학년 B반 교실.

선생과 학생,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연인과 친구.

모든것이 선명하게 대비를 이룬채, 레제는 교탁에 서서 칠판에 글자를 적기 시작하고, 이에 호응하며 답을 외치는 덴지.

“ 1+1 은 무엇일까요~? ”

“ 네네네! 저요! 2! 2! ”

“ 정답! 천재! ”

“ 그렇다면 다음문제. 이것은 뭐라고 읽을까요? ”

“ 네! 몰라요! ”

“ 정답은 큰 엉덩이! ”

“ 변태! ”

저속하고 음흉한 농담, 초등학생조차 눈 감고도 풀 수 있을 것 같은 산수문제, 그렇지만 난생 처음 겪어보는 순정만화같은 이 상황이 썩 나쁘지 않은지, 아니, 오히려 즐기는지 덴지는 한결 평온한 표정을 지은채로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 하아~... 학교는 이런느낌이구나. 대충 알겠어. ”

일반적인 16세의 소년이라면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은 반응에 적잖이 당황한듯, 난처한 표정을 짓는 레제는, 그의 반응에 조심스레 질문하며 분필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 덴지 군, 진짜 초등학교도 안나왔어...? ”

곤혹이 서려있는 레제의 눈동자, 그리고 상어이빨을 살짝 비춘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능청스레 답변하는 덴지. 

“ 그거 말이야... 뭔가... 음... 그... 안되는거 아니야..? ”

“ 안돼...? ”

“ 안된다고 해야하나... 이상해... ”

상식에 어긋나는 일은 대부분의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의아함을 자아내는데 부족함이 없었을테지.

그리고, 상식을 벗어나는 것 같은 여태의 행동을 보여주던 소녀는 정작 궤도에서 이탈한 그의 모습을 마주하자, 싱그러운 소녀는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덴지의 상황에 궁금증과 의문을 표했다.

“ 16살이면 아직 아이잖아.. 보통은 수험공부를 하고, 부 활동을 하고, 친구와 놀고...  정말 이상해. ”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단아하고 맑은 목소리는 의아함에 젖어 점점 어른스러운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었고, 소녀는 아직 자신의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말을 덧붙이며 직접적으로 소년에게 질문을 갖추었다.

“ 그런데 덴지군은 악마를 죽이고, 악마한테 죽을 뻔하고... 지금 있는 공안이란 곳, 정말 좋은 곳 맞아...? ”

“ 엄청 좋은 곳인데..? 하루에 3끼도 꼬박꼬박 먹을 수 있고, 이불 덮고 잘수도 있고. ”

아무렇지도 않게, 정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답변하는 덴지의 태도에 난색을 표하는 레제는 말까지 더듬으며, 이건 아니라는듯이 그저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 하지만... 그건 일본인으로써 최저한의 당연한 일인데...? ”

머리를 긁적이다, 생각이 복잡해졌는지 그저 고개를 푹 숙이는 덴지는 약간의 식은땀을 흘리며, 그 역시 그녀에게 난처함을 표하고 있었다.

“ 평범... 한거 아닌가...? 뭔지 모르겠어... 너무 생각을 많이 했더니 머리가 뜨거워졌어. ”

“ 그럼 좀 식힐까. ”

교사를 자처해 교탁에 위치하던 소녀는, 학생의 역할을 맡는 소년에게 다가가 운동장에서 그렇게 하였듯이, 나긋하게 덴지의 손목을 잡고 일으켜 세워, 퀘퀘한 냄새가
서린 교실을 허겁지겁 빠져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