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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글쓴이는 원작을 본 적이 없으며 극장판으로 처음 룩 백을 접하는 것이기에 원작과의 차이점을 모릅니다. 만안분같은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먼저 작화에 대해서 말하자면,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가장 걸맞는 스타일이라 생각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선 처리나 머리칼의 모양은 만화의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미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쿄모토를 로우앵글로 비출 때는 메마른 나무 위로 텅 빈 하늘을 보여주며 긴장감을 조성하고, 후지노와 갈등하는 장면에서는 중간에 메마른 나무를 배치하여 둘의 단절을 묘사하며 쿄모토가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상술된 나무가 왼쪽으로 이동하며 둘 사이의 벽이 사라져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열망은 후지노도 쿄모토도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등 영화적 연출도 잘 녹아들어 있다.
룩 백은 그 제목에 걸맞게 등을 비추는 컷이 굉장히 많다. 개인적으로 본 작품에서 등이 비춰지는 사람은 "홀로 세상을 나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잠깐 만화를 포기하고 친구들과 놀러다니며 세상에 나온 후지노의 모습은 분명 즐거워보이지만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림을 그릴 때의 후지노는 그렇게나 음침하고 무뚝뚝해보이는데도 쿄모토에게 인정받고 데뷔작이 입상했을 때처럼 격렬한 감정의 쇄도를 보이며 그 어떤 때보다 더 생기로 넘쳐난다. 진정 살아있는 것이고, 후지노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림이라는 사실의 반증이다. 또 후지노와 쿄모토가 같이 그림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후지노와 달리 쿄모토는 옆모습이 비춰지는데, 이는 후지노와 함께할 때의 쿄모토가 홀로 설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후지노와 달리 쿄모토의 길은 중간에 끊길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를 고양하는 2인조였던 후지노와 쿄모토는 때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따라, 또 때로는 순전히 우연의 소치로 서로와 만난 것을 시작 삼아 그림을 그려간다. 그림 실력 자체는 그닥이지만 그리는 속도가 빨랐던 후지노는 절대적인 실력이 좋았던 쿄모토의 재능에 때로는 절망과 질투를, 또 그 안에 동경을 품은 채 바라봐왔고, 졸업식 날 나눈 짧은 대화로 단순히 어린 시절 칭찬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던 그림을 생의 사명으로 삼기에 이른다. 반면 그림 실력이 좋지만 그리는 속도가 느렸던 쿄모토는 그렇기에 매주 연재를 했던 후지노를 크게 존경했고, 졸업식 날의 대화에서 자신도 모르게 존경과 선망의 대상을 개화시킴으로서 그 손에 이끌려 세상에 나온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둘은 협력을 통해 계속 그림을 그려나갔고, 결국 공모전에서 상을 타기에 이른다. 10만 엔으로 집을 사자고 하거나 실컷 있는 대로 돈을 쓰고 다녔는데도 5,000엔밖에 못 쓴 장면에서는 어린 순수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 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장면은 계속해서 후지노가 쿄모토의 손을 잡고 앞서가며 쿄모토는 후지노의 등을 바라보는 구도를 강조하는데, 이는 쿄모토가 여전히 후지노를 동경하면서도 아직은 그 손에 끌려다니고 있음을 암시한다.
둘의 이런 구도는 고교 생활의 끝에 정기 연재를 제안받으며 깨지게 된다. 후지노는 정기 연재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어했지만, 쿄모토는 그림을 더 잘 그리기 위해서라도, 혼자 힘으로 세상에 서고 싶어서라도 후지노에게서 독립하고 싶어했다. 두 이유 모두를 꺾을 만한 명분이 후지노에게는 없었고, 그렇기에 둘의 앞길이 갈라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렇게 쿄모토와 헤어져 다른 배경 어시스턴트를 구하고 연재에 들어가 인기 만화가로서의 생활을 이어가던 후지노는 어느 날 비보를 전해듣는다. 대학에서의 흉기 난동이라는 뉴스. 의심이 확인되고 불안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비록 수 년 전에 헤어졌을지언정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친우가 죽었다.
완전히 무너져 연재도 그만두고 쿄모토의 집으로 찾아간 후지노는 옛날 자신이 그렸던 만화를 보게 된다.
"나와라, 나와라."
자신이 쿄모토를 세상에 나오게 했기에, 그 손을 잡고 앞에서 달려 이끌어줬기에, 그 날 나름 많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연습량을 빛바래게 할 정도의 엄청난 연습량을 보고 괜히 자존심에 상처가 나 그려본, 약간의 미움과 약간의 동경을 담은 그 만화 때문에, 쿄모토가 죽었다고 후지노는 믿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 세상을 상상한다.
그 곳에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나와라"가 "나오지 마"가 되었고, 그렇게 쿄모토는 세상에 나오지 않고 그 어떤 감정의 교류도 없이 미대에 진학했다. 그리고 죽음의 위기에서도 구원자 후지노의 가라테 발차기로 살아남는다. 거기다 지금껏 함께 보내지 못했던 세월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그 결말에서 둘은 다시 그림으로 묶인다.
하지만 어떻게?
두 번째 세계에서의 후지노는 최소 6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아왔다. 살아남은 쿄모토와 다시 만나 같이 그림을 그린다 해도 둘의 실력이 평행선이라 간주될 수 있는 수준에 안착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계의 쿄모토는 후지노와 일찍이 만나지 못했고, 선망의 대상과 함께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로 유년기를 수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두 번째 세상은 반드시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긍정적이지도 않다.
무엇보다, 이 두 번째 세상은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는다. 모두 후지노의 상상이니까.
그러나 후지노는 그 사색 속에서 무언가 찾아낸다. 그 무언가가 다시 4컷 만화의 형태로 문 너머에서 날아온다.
두 번째 세계의 살아남은 쿄모토가, 혹은 후지노가 자신에게 전한 메시지 "룩 백"은 후지노가 과거를 바꾸기를 원하며 문틈으로 던져넣었던 메시지 "나오지 마"와 대비를 이룬다. 그 문구는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다. 4컷 만화라는 맥락에서는 곡괭이가 꽂힌 후지노 자신의 등을 돌아보라는 뜻이지만, 현실의 후지노에게는 그 먼 옛날 쿄모토를 걷고 또 걸어 세상에 나오게 했던 사인이 있는, 주황 스웨터의 등을 보라는 의미이고, 나아가서는 그렇기에 과거를 기억해달라는 의미이다.
죽은 쿄모토는, 그렇게 산 후지노에게 말해준 것이다. 그림을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했고 당신을 사랑했던 내가 진정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후지노가 나를 기억하고, 그렇게 살아주는 것 밖에는 없다고.
나를 기억하며 살아가달라고. 당신과 함께했던 세월이 행복했으니 이제 슬픔에 묻혀 무너지지는 말아달라고. 분노에 차 뒤를 돌아보는 대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줬던 당신의 사인이 있는 내 등을 보아달라고.
후지노는 다시 걸었다. 다시 그렸고 또 다시 살아갔다. 그러기로 결심했다.
밤하늘에 언제까지고 떠있을 달처럼, 나아가기로 했다.
쿄애니 방화 사건의 추모라는 의미에서도 룩 백은 굉장히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범인의 동기나 쿄모토라는 이름 하며. 작품의 주제가 그림이기는 해도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삶이자 좋아하는 것으로써 살아가는 법이지만, 그림을 그렸고 그림을 사랑했던 이들을 기릴 방법은 역시 그림이 걸맞겠죠.
또 후지노라는 이름이나 마지막에 묘사되는 후지노의 작화 스타일을 보면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역시 안녕 에리 엔딩씬 오마주나 샤크 킥 표지 등에서 그런 셀프 오마주가 많이 나와서 그런 부분들도 소소하게 좋았어요.
좋은글 감사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