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의 끝을 알 리는 종이 울리자, 덴지는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나 교실 뒤편에 앉은 레제에게 눈짓했다.
레제는 느릿하게 책을 가방에 집어넣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둘만의 하교 신호였다.
소도시의 현립 고교, 다른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잘거리는 동안에도 둘은 그들만의 섬에 있었다.
교문을 벗어나자 역 앞 상점가를 지나 주택가로 이어지는 길이 펼쳐졌다.
집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걸렸지만, 둘에게는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아~ 배고프다. 오늘 저녁 뭐야?”
덴지가 길가의 자판기를 발로 툭 차며 물었다.
“냉장고에 당근밖에 없던데.”
“젠장, 또 당근이야?”
“싫으면 굶든가.”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지만, 맞잡은 손은 놓는 법이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새까맣게 변하더니, 콩알만 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악! 비 온다!”
덴지가 소리치자마자 빗줄기는 순식간에 장대비로 변했다. 둘은 비명을 지르며 무작정 달렸다.
마침 길가에 있던, 녹슨 지붕의 낡은 버스 정류장이 그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헉… 헉… 죽는 줄 알았네.”
덴지가 무릎을 짚고 숨을 고르자, 레제는 말없이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짰다.
비에 젖은 얇은 여름 교복 셔츠가 그녀의 몸에 그대로 달라붙어, 어깨와 등의 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덴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더럽게 예쁘네.
“…뭘 봐?”
레제가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안 봤어!”
“거짓말. 다 보고 있었잖아.”
“그, 그게…”
덴지가 변명하려 하자, 레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가 부끄러워. 어차피 다 봤으면서.”
덴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레제는 재미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저기… 레제, 추워?”
덴지는 황급히 화제를 돌리며, 자신의 젖은 교복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려고 했다.
땀과 비에 젖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재킷이었다.
레제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바보야? 네 것도 젖었잖아. 그리고 이거 냄새나. 젖은 개 냄새.“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해서…”
시무룩해진 덴지의 모습에, 레제는 결국 피식 웃으며 그의 재킷을 어깨에 제대로 걸쳤다.
생각보다 따뜻했다. 덴지의 체온이 남아있는 걸까.
빗소리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 거세졌다.
정류장 안, 좁은 공간에 나란히 앉은 둘의 어깨가 맞닿았다.
레제는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비 오는 날,”
그녀의 목소리는 빗소리에 섞여 아득하게 들렸다.
“널 죽이기 딱 좋았을 텐데.”
섬뜩한 말이었지만, 덴지는 놀라지 않았다. 그는 그저 레제를 바라볼 뿐이었다.
“빗소리에 비명도 묻히고, 핏자국도 씻겨 내려가니까. 아주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겠지.”
레제는 그렇게 말하며, 덴지의 뺨으로 손을 뻗었다.
빗물에 차가워진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따뜻한 피부에 닿았다.
그녀는 마치 처음 보는 것을 관찰하듯, 그의 눈, 코, 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그런데 지금은… 네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 걱정하고 있네.”
그녀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야. 전부 너 때문에.”
그녀의 손길에, 덴지는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레제는 저항 없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덴지의 심장 소리가 빗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쳤다.”
덴지가 말하자, 레제는 아쉽다는 듯 그의 품에서 천천히 떨어졌다.
둘은 다시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젖은 옷이 찝찝했지만, 기분은 이상할 만큼 상쾌했다.
2층짜리 낡은 목조 임대주택에 도착하자, 레제가 먼저 욕실로 향했다.
“나 먼저 씻을게.”
“어? 같이 씻으면 안 돼?”
덴지가 능글맞게 웃으며 물었다.
레제는 욕실 문 앞에서 멈춰 서서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덴지 군, 참을성이 없네.”
“그럼… 나중에?”
“밥 먹고.”
짧은 대답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덴지의 얼굴이 또다시 빨개졌다.
레제는 피식 웃으며 욕실 문을 닫았다.
샤워 소리가 들렸다. 덴지는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냉장고를 열어 당근 두 개를 꺼냈다.
오늘은 내가 만들어야지.
도마 위에서 서툰 칼질 소리가 울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좁은 골목길,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저녁 준비 소리, 멀리서 지나가는 전철 소리.
지루할 만큼 평범한 하루.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다른 곳에도 올렸던 거긴 한데, 여기에도 올려보고 싶어서 한 번 올려봄(오늘 3회차 보고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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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