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괴물'로 규정된 레제에게 경멸 대신 깊은 연민을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녀의 개인적 서사(Saga) 를 이해하는 관점의 차이 때문임.

악당의 행위가 이해의 범주, 즉 인간적인 취약성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 독자는 권선징악적 도덕률을 넘어선 포용의 대상으로 인물을 대하게 됨.


그녀는 덴지를 단순한 '처리 대상'이 아닌, 자신과 마찬가지로 통제되고 이용당하는 시스템의 희생자, 즉 '같은 과거와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 인식했음.

레제가 덴지에게 건넸던 "평범한 삶을 살아라" 또는 "자유를 누려라" 같은 말들은, 사실 그녀 스스로에게 절실했던 자유와 인간적인 삶에 대한 열망을 투영한 것이었음.


레제는 16세라는 나이가 이 모든 기만과 비극적 선택을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했으나, 그건 본인에게도 해당되지. 레제가 덴지에게 하는 걱정 대부분 본인에게도 적용되는말들



레제 편의 비극성은 그녀의 마지막 선택에서 극대화됨. 레제는 생존을 위한 '합리적인' 길 대신, 덴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페로 돌아가는 비합리적이고 인간적인 방식을 선택함.

악마 혹은 무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잠시 내려놓고, 마키마에게 쫓길걸 알면서도(덴지가 그러했듯).


이 인간적인 선택이야말로 레제를 죽음으로 이끌었음.


레제 입장에서 '존 도(John Doe)'처럼 무의미하게 죽어야 할 덴지가 더이상 존 도가 아니게 됬듯이, 정작 자신은 임무나 탈출을 망각하고 인간적인 선택을 한 대가로 '제인 도(Jane Doe)'로서 죽는 아이러니한 최후를 맞이하게됨.

임무에 충실했다면 살았을 그녀가, 인간적으로 움직였기에 죽음을 맞이한 이 역설이야말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 영화의 킥임.



" 애니라는 건 인간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건데


지금 일본 만화는 인간을 싫어하고 애니만 좋아하는 자들이 그리고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많은 현대 창작물 속 캐릭터들이 오직 서사의 효율성이나 장르적 클리셰에 따라 움직이데,


사실 현실의 인간은 기계처럼 합리적이고 단순하게 동작하지 않음


인간적이기 위해 비합리를 선택하는거지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김춘수

------------------------------------------------------------


레제는 전화부스의 첫 만남때 얼굴이 가려지는 연출을 함. 


이름없는 제인 도는 덴지에게 꽃을받고 레제가 되었고


소련으로 돌아갈 무기인간에서 다시 또 레제가 되기 위해


덴지에게로 다시 돌아가 꽃이 되고 싶었을 것 같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