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엉청 떠올라 어스름하게 흘러내리는 어여쁜 달빛은, 81번 방 죄수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뚫려있는 천장 틈새로 떨어지고 있었다.
방에 누운 소녀 죄수는 목에 감긴 테이프가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다.
질기고 얼기설기 묶인 테이프는 호흡을 분명하게 방해하고 있었다.
그 남자와 만나던 날에는 달이 떴던가.
아침은 딱딱한 호밀빵과 진흙 같은 커피였다.
잘린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빵을 집어, 이로 끊어먹을 수 밖에 없다.
뽑힌 왼눈 때문에 거리감은 희미했다.
무릎 바로 아래까지 잘린 왼다리는 이젠 허전하기보단 익숙했다.
무기인간이니 피를 받고 트리거를 당기면 바로 나을 수 있다.
물론 소련의 공산당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굳이 왼쪽-오른쪽-왼쪽 순으로 절단한 것은 그들의 앙증맞은 심술이기도 했다.
딱 적당한 정도로 불편하다는게 이유였다.
그날 마셨던 커피, 맛있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스터가 준 커피는 꽤나 먹을만 했다.
그 남자는 아직 아이 같아서 마시기 힘들어했지만.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을 하다, 벌써 식사시간이 끝나버렸다.
팔에 거친 털이 숭숭 난 간수는, 그대로 식사판을 빼앗아 가보렸다.
이 수용소에서 끼니는 딱 한 번만 배급된다.
이제 더이상 먹을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 8번 독방은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다.
오로지 혼자서, 그 고독으로 고통을 느끼도록 가둬두는 관이다.
영혼의 융해.
녹아버리는 정신을 주체할 수가 없게된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 선택을 의심하게 된다.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지.
그게 반복되다가, 어느 순간 이미 지나간 세월 앞에서 자신의 선택권은 더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정신의 중추는 점점 마모되기 시작한다.
피만 있으면 불사신인 무기인간이라도 피할 수 없는 영혼의 죽음인 셈이다.
어쩌면, 그렇게 모진 말까진 안했으면 어땠을까.
시베리아의 추위는 이미 익숙했다.
그러나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냉기는, 뼈 속으로 스며들다가, 심장을 아프게 찔러오는 것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악마의 심장.
그런데도 고통스러웠다.
꼭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드는 지독한 동장군은, 다시금 어렵게 묻어둔 추억들을 꺼내 차갑게 얼린다.
눈물은 떨어져 우박처럼 내린다.
그날, 소녀 죄수는 꿈을 꾸었다.
한 보라색 머리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어느날 노란 머리의 소년과 만났다.
소년은 소녀에게 마술도 보여주고, 같이 음식도 먹으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소녀는 소년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고, 같이 데이트도 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소녀가 소년에게 고백을 하고...
소년과 소녀는 서로 손을 맞잡고 행복을 찾아 떠나는...
그런...
슬픈 꿈이었다.
구해줘 체인소맨 아니 덴지 그때 부아앙 거리는 엔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