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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 파이어펀치를 봤을 땐 이 작품이 극적인 묘사를 위해 현실성을 포기한 작품이라 느꼈었다. 

이해가 잘 안 가고 지나치게 과장된 묘사들이 많다 느껴지는 게 당연한, 특별히 생각할 가치가 없이 단지 순간의 인상을 즐길 뿐인 작품이라고.


그런데 다시 몰아보니 전혀 그런 작품이 아니었음. 생각보다 확고한 세계관을 갖추고 있으며, 단지 메세지의 전달을 위해 존재할 뿐인 인격성이 배제된 캐릭터 또한 없었어.

모든 캐릭터가 사실적인 인간상으로 존재하며 하나하나가 다 이해가 가는 캐릭터들임. 

그걸 깨달은 상태에서 아그니가 도마를 죽이는 장면을 다시보니 굉장히 충격적이다…


아그니는 베헴도르그 탈출 이후부터 도마를 죽이는 것에 대한 열망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음. 자신 나름의 가치관을 정의하였고, 그랬기에 더욱이 자신 손에 불 타 죽은 베헴도르그의 무고한 사람들을 보고 망연자실 하기도 한거지.

도마와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을 때도 아그니는 딱히 도마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지 않았고, 실제로 완만히 넘어가며 악연의 끝을 내는 걸로 보였음. 실제로 아그니의 가치관 상에서 도마를 죽일 이유는 더이상 없고, 아그니가 딱히 죽고 죽임에 무심한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아그니가 도마를 죽인 건 정말 간단한 이유였음. ‘자신과 마을을 불태우고, 여동생을 죽이던 도마의 모습이 순간 떠올라서’, ‘그 순간의 충동이 불러일으킨 살의를 못참아서‘ 이게 이유였음.

아그니 본인또한 이걸로 도마를 죽이는 건 잘못됐다는 걸 알곤 있었기에 루나의 환영을 만들어내 ’어차피 온 세상이 다 쇼일 뿐이니까 그냥 눈 딱 감고 파이어 펀치 연기해서 다 조지자‘라는 식으로 순간적인 자기 합리화 후 정신을 놓어버렸다.

막말로 그냥 ‘홧김에 질러버렸다’, 이게 이유임…


물론 아그니의 이 행동이 딱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님. 아그니는  불에 타는 고통을 끝도 없이 느끼며, 딴 생각을 하지 않으면 괴로움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많이 불안정한 상태임.

매사에 거슬림을 느끼며, 이성이 제 구실이 안되어 언제 어느새 충동적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르는 상태이고 실제로 그런 묘사를 꾸준히 보이기도 했지.

작중에서 보여진 대부분의 행동들이 단지 당장의 고통을 잊고 살아야 이유를 마련하기 위한 연기였을 정도니까…


아그니의 행동 자체는 이해 못 할건 없음… 단지… 그 타이밍에 그랑 식으로 되어버렸다는 이야기 자체가 되게 충격적이었음.

베햄도르그 에피를 거치며 자아가 각성하고, 자기 사람들에 대한 책임에 고민하며, 자신 때문에 벌어진 죽음에 대한 갈등을 속에 담고 있고 있던 아그니에게 벌어진 바로 다음 일이 이렇게나 무시무시하고 갈등의 정점을 찍어버리는 방향이 되어버렸다는 것 자체가 너무 쇼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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