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네놈, 이것을 풀어라!”

찰캉. 차륵.

피의 마인의 손목에 채워진 수갑이 찰캉거렸다. 옆의 난간과 수갑이 연결되어 움직일 수도 없는 탓이었다.

‘그냥 팔을 잘라야 하나....’

어차피 마인이다. 게다가 반 불사라 피만 먹이면 재생된다.

귀철(鬼徹)의 칼날을 약간 빼내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노을빛이 반사된 주홍빛 도신(刀身)은 이가 나갔지만 휘어지진 않았고 오히려 이상 없다는 듯 원래의 기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파워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보급형 공안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와이셔츠뿐이기에 흉부나 복부가 아닌, 어깨는 방검 소재가 아니었다.

“뭐, 뭘 보는 것이냐...!”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듯 파워의 몸이 공벌레처럼 움츠러들었다.

‘뭐, 됐다.’

옆에는 히메노 선배도 있으니까, 굳이 이런 짓을 해서 평판을 떨어뜨리는 건 효율적이지도 않다.

빼꼼 얼굴을 내민 귀철의 칼날을 도로 집어넣었다.
난간에 매달리듯이 붙어있던 파워도 이내 잠잠해졌다.

“아키 선배는 언제 나온대요?”

“뭐... 들어가서 한참을 안 나오니, 별 수 있겠어? 기다리는 수밖에.”

히메노 선배가 피곤함이 조금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노을의 주홍빛으로 물들은 하늘, 창밖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금세 지나가버렸다.

드르륵- 탁.

드디어, 덴지가 누워있는 병실의 미닫이문이 열렸다.
꽁지머리 선배의 볼 일이 끝났다는 말이기도 했다.

“거, 봐라~ 무죄였을 테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태연히 거짓말을 치는 파워, 사건의 내막을 정확히 알고 있는 나나 대략적이라도 알고 있는 아키에게는 필시, 철면피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알았으면 얼른 이거나 풀어라.”

수갑을 차고 난 뒤로는 항상 답답하다는 게 얼굴에 태가 날 정도로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손목에 찬, 난간에 고정된 수갑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진짜 괜찮은 걸지 몰라, 이 마인쨩이 언젠가 사람을 죽였을 때는... 못 본 척 해준 아키 군이 책임져야 하거든-?”

히메노 선배는 늘상 그렇듯 아키 선배 걱정만 한다.
아키 선배 이외의 사람들도 걱정을 하지만 아키 선배를 신경 쓰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우리는 데블 헌터입니다. 악마든, 마인이든 쓸 수 있는 건 뭐든 써야죠.”

아키 선배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파워의 손목에 찬 수갑을 풀었다.
파워가 손목을 이리저리 만져대며 몇 시간동안 묶여있던 손목의 뻐근함을 풀었다.

“하지만 결국 적인 건 변함없어요. 이용할 뿐입니다.”
“친목질이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요.”

그의 미래 행적은 방금 한 말과 정확히 반대된다.
덴지와 파워가 죽을 것을 염려해 총의 악마 토벌전에 참전하지 않고 그들을 세심하게 신경 쓰며 결국 그들을 가족 같이 여긴다.

그러나 그가 마주할 마지막은.... 실로 참담할 것이다.

‘그러니까 바꿔야지, 여기 등장인물 중 대다수는 불쌍한 놈들인데.’

자신의 두 번째 목표에 대한 확신을 세우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그의 첫 번째 목표는 자신의 안락한 인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게 되나, 억지력이 메인 스토리에 들어가라고 쌩 난리를 치는데.’

자신을 강제로 메인 스토리에 욱여넣은 ‘억지력’을 향해 쌍욕을 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 * *

우우웅- 띵.

엘리베이터가 6층에서 멈췄다.
거기에 타고 있는 건 언제나 멀끔한 인상의 아키 선배, 그리고 살짝 졸음에 젖은 나였다.

덜컹-

문이 열렸다. 아키 선배가 각으로 잰 듯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각을 딱딱 맞춘 것 같은 군인의 발 같은 걸음걸이와 그와 반대되는 털렁털렁 움직이는 걸음걸이가 미묘하게 대조를 이루며 마키마의 집무실로 향했다.

슥- 스륵-

유리에 비친 그를 보며 넥타이를 곱게 정리하고 아주 조금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렬하는 꽁지머리 선배.
마키마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건 알겠는데 저건 좀 심하게 의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들어오세요.”

늘 똑같은 나긋나긋한 목소리, 확실한 미성인데다 얼굴까지 예쁘장하니 덴지가 첫눈에 반한 인물다웠다.

문을 열었다.
문의 오른편에 잠깐 멈춰서 아키 선배가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는 끝내 먼저 들어가지 않았다.

‘어유, 저 부끄럼쟁이.’

속으로 흉을 보며 내가 먼저 들어갔다. 아무리 원래의 미래를 단편적으로나마 아는 나라도 ‘지배의 악마’를 직접 맞닥뜨리는 건 부담이 되었다.

“그럼. 아키 군, 오늘 덴지 군과 파워 쨩에 대해, 토벌한 악마에 대해 보고 부탁해.”

마키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입은 그녀.
수트핏이 상당해 보는 맛이 있었지만, 이미 나는 거의 반수면 상태이기에 그녀와 아키 선배의 목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다.

‘아, 진짜 졸리다. 씨X....’


“-새에 깨닫고 보니, 어느샌가 순찰 구역 밖으로 나가버렸다는지.”
“거기에서 완전 나쁜 악마가 살고 있어 보이는 집을 발견하여 박쥐의 악마와 조우했다고 합니다.”

졸았다. 졸아버렸다. 아키 선배의 브리핑이 너무 지루해서 선 채로 졸아버렸다.
이럴 때 ‘파워 식 논리’가 죄책감이 들지 않게 하는 데에는 최고였지만, 나는 파워 같은 철면피가 아니기에 그냥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게 전부였다.

“덴지는 체인소가 되어 박쥐의 악마를 제거한 뒤, 이번에는 거머리의 악마에게 습격 받았습니다만, 이쪽은 저희 4과가 제거했습니다.”

내가 그리 오래 졸진 않았나보다. 덴지와 파워의 일에 대해서 전부 못 들은 건 아니니, 한 2-3분? 정도 존 것 같았다.

“또한 박쥐, 거머리에게서는 양쪽 모두 ‘총’의 살점은 발견되지 않았죠.”

사실이다. 내가 귀철로 내장을 헤집어본 결과, 총의 살점은커녕, 반쯤 소환된 시체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보고는 이상입니다.”

드디어 날 졸게 만든 브리핑이 끝났다.
이제, 마키마의 말 몇 마디만 듣고 집에 가서 귀철을 손질하고 자면 된다.

“수고 많았어.”

마키마가 의자를 제자리로 돌리며 말했다.

“그런데.... 덴지 군과 파워쨩. 알게 모르게 그 정도로 멀리 갔었구나?”

표정과 톤, 하나도 변하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가는 마키마. 어여쁜 얼굴과는 반대로 뭔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특유의 아우라가 있다.

“녀석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바보니까요.”

나름대로 아키가 신경써주는 태도였다. 무지(無知)는 그리 쉽게 죄로 판결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덴지를 보면 동생 생각이 떠올라서 일 것이다.

“순찰 구역 밖으로 일탈하는 건, 위반 행위인데?”

직시하기 어려운 동심원 형태의 동공을 포함한 황금빛 눈동자와 그녀 특유의 섬뜩한 아우라가 맞물려 진실만을 말하게 만드는 고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번에는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는데다, 결과적으로 악마 2마리를 제거하는데도 성공했으니 불문으로 부쳐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역시나 아키 선배도 거짓말을 하기엔 태가 날 것이라 생각했는지, 정보를 약간 빠뜨려 대답했다.
물론, 하등생물과 시야를 공유해 관찰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넓은 마키마에겐 통하지 않을 것 같지만 말이다.

“......”

우리 셋 사이에 흐르는 잠깐의 정적, 나는 뭔 일이 일어날까 조마조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병기(兵器)에 손을 가까이 댈 순 없었다. 마키마가 낌새를 알아채고 질문을 해오면 답변을 할 때 금방 티가 날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키마가 그냥 넘어가줬다. 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키 같은 실력‘만’ 있는 데블 헌터가 아는 정보를 마키마가 모를 리 없었다.

또한 내각관방장관 직속의 데블 헌터로서 흔히 말하는 ‘높은 분’에 속하는 마키마가 각 잡고 은폐한다면 이런 사소한 사건쯤은 없던 일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키가 꾸벅-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았다. 나도 고개를 까딱이며 방을 빠져나오려 할 참이었다.

“하야카와 군도 살짝 성격이 유해진 걸까?”
“덴지 군과.... 함께 살고 있는 영향인 걸까?”

아키 선배의 발이 멈췄다.

“설마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건가.’

덴지와 파워를 향한 아키의 사뭇 다른 태도, 그것은 아마 마키마의 말에서의 덴지와 함께 살고 있는 게 원인일 것이다.

손잡이를 잡았다.

“쿠로이 군은 남아.”

몸이 굳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난 것 같았다. 아키 선배는 열린 문을 통해 유유히 빠져나갔다.

‘마키마 좋아하던 거 아니었어?!’

이렇게 미련 없이 가버린 아키 선배한테 원망감이 생겼다.

그것도 잠시, 내 머릿속은 불길한 가정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번에야말로 미간에 사슬을 박을 작정인건가? 아니면 내가 존 걸 안건가?’

사실 쿠로이가 졸아버린 걸 못 본 건 눈이 없거나, 아니면 눈치가 더럽게 없거나 둘 중 하나였다.

후드도 아닌 정장을 입었는데 눈을 감은 걸 못 볼 리가 없었다.

‘살려줘.’

호랑이의 아가리가 아닌 위장 속까지 들어온 기분이었다.



+)주운 마키마 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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