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세계문학전집 작품은 당연 러시아 문학일 겁니다.

레제 나라 최고의 자랑거리이기도 한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시킨, 고골, 레르몬토프, 투르게네프, 체호프 등등 기라성같은 작가들이 지금도 읽히고 있죠.

그러나 한때는 러시아어로 된 문서를 다루는 것도 위험시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문학작품은 원서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아 일본어 중역이 범람하던 시기.

여기서 한 노(老)학자의 삶을 들춰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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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иг Асс를 독파중인 레제양)

때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덴지와 친구들이 속한 공안기관의 할애비들이 동아시아를 떡 주무르던 시대.

두만강 건너면 이용악 시인이 노래한 마우재 땅에서 몰아치던 바람을 맞으며 큰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명태라는 말의 유래가 된 고향 명천군에서 동해바다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함경북도 나남군이 나옵니다. 지금은 '나선시'라고 불리우는 곳.

일본군 제19사단 주둔지이기도 한 이곳에서 중등과정을 마친 소년은, 더 넓은 진로를 꿈꾸며 '만주국'이라는, 안타깝게도 닉값은 겁나게 못하는 곳의 최고 교육기관인 만주건국대학에 입학합니다.

당시 조선인들이 선망하던 대학은 내지(일본)의 동경제대를 위시한 구 제대가 물론 일순위고, 경성제대 또한 선망의 대상이었죠. 그 다음으로 쳐 주던 곳이 이 만주 건국대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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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학 정문. 여담으로 육당 최남선이 이 학교 교수를 지냅니다.
소년이 한때 기미독립선언서로 이름을 날린 이 사람의 수업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이 대학 예과를 거쳐 정치학과 학도였던 소년은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견뎌내면서도(실제 이 대학 수업과정은 거의 사관학교 수준으로 빡셌습니다. 이유는 유사시 전쟁을 위해 학생들을 잠재적 장교로 봤기 때문), 언어덕후의 진면목을 드러내면서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에 푹 빠집니다.

문제는 졸업 후 2년 뒤 양키 원산지 핵의 악마가 일본에 GG 투샷을 선사합니다. 더 큰 문제는 그가 당시에 학식이 아닌 병식을 먹고 살던 신세, 즉 징병 상태였던 것이죠.

이 조선인 야판스키(일본놈)의 여정은 이제 레제가 훈련을 받을법 했던 곳인 소련 극동지역, 그 이름도 유명한 Сибири(시베리아)로 옮겨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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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소련을 지배한 젊은 시절 강철의 대원수 사진. 덴지급으로 훈남이라 말하면 차단당하려나?)

이제 Re:제로부터 시작하는 수용소 생활이 시작됩니다. 소년 티를 완전히 벗긴 청년이 배운 건 고기압뿐만이 아니라 러시아 말도 있었습니다. 그럴만도 한게 4년 동안 살아남아야 했으니 자연히 생존의 악마랑 계약하지 않는 이상 배워나갔고, 학부생 시절 덕질은 암튼 과정이 좀 이상하지만 덕업일체를 이뤄냅니다.

암튼 49년 풀려난 그는 강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 이듬해에 전쟁을 또다시 겪게 됩니다. 차이점이라면 일본군 군복이 인민군 군복으로 바뀐 거죠. 온갖 고생을 하다가 51년 9월 투항하고 나서야 군복 색이 국방색으로 바뀌는, 그러나 작지만 거대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전쟁 때 미군 군속을 거쳐, 휴전 뒤에는 공군사관학교를 거쳐 54년 9월 외대 러시아어과 교수를 지내게 되면서 대한민국 노어노문과의 기초를 닦기 시작하십니다.

이때 교수 재직 시절 번역한 러시아 문학 작품들은 지금도 한국 번역문학의 최고봉 중 하나라고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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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소유한 안나 카레니나 역본. 정음사 출간)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부활(톨스토이), 대위의 딸/현대의 영웅(푸쉬킨/레르몬토프), 미성년(도스토예프스키) 등등... 문학작품뿐 아니라 소련에서 나온 논문 등도 번역하시면서 72년에는 동구문제연구소를 세워 여러 출판물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그 서슬퍼른 시절에 말이죠.

이후 고려대학교로 옮기시면서 후학 양성에 주력, 거기서 러시아문화연구소를 세우시고 노한사전도 편찬하시는 등 동분서주하십니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러시아(소련) 거주 경험이 있던 학자셨습니다. 다른 분들은 일제강점기에 수학하거나 북한에서 배우다가 전쟁 때 월남하신 사례.

그렇게 국내 노어노문학의 전설로 남은 그는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어, 1973년 공식적으로 다시 소련을 방문합니다. 신문에도 소련 방문일지를 연재하셨죠. 이때 현지에서 산 보드카를 귀국 뒤에도 애지중지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머나먼 모스크바에는 다시 어떻게나마 그 시절에 들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리적으로 훨씬 가까운 고향에는 끝내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1997년 영면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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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학자의 이름은 동완(董玩) 선생님입니다. 노문과를 나왔다면 한 번쯤은 들어 보신 이름일 수도 있겠네요.

암튼 썰이 좀 길어졌습니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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