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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체인소맨을 제대로 정주행한 건 아니라 부정확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음


타츠키가 워낙 자기 멋대로 작품 만들고 자기 멋대로 인물들 죽여대긴 하지만 그와중에도 한 가지 이론을 바탕으로 작품을 연재하는게 보임
난 그 이론이 실존주의라고 생각함


실존주의는 1960년대 프랑스 철학가인 장폴 사르트르가 기존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론인데 아마 실존주의는 모르지만 이 문장을 아는 사람은 있을 거임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여기서 실존은 말 그대로 실체를 말하는 거고 본질은 개개인을 특정 지을 수 있는 정신적 특징 등을 의미함 인간은 먼저 존재한 다음에 본질을 찾아내는 거지, 본질이 만들어진 다음에 존재한다는 게 아니란 거임


사르트르는 이걸 가위 등의 공구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함
가위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가위를 만들 수는 없잖아? 종이를 자르는 도구란 걸 알고 만드는 거지. 그래서 사물은 언제나 본질이 실존에 앞섬

하지만 아기가 태어날 때 얘는 이런 성격이어야 한다면서 수정되고 태어나는 건 아니잖아. 실존주의는 그런 얘기를 하는 거임. 일단 태어나고 보는 거라고.

그럼 인간 개개인의 본질은 어케 만드는 걸까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다.

실존주의의 관점에서 인간은 무한한 자유로움을 갖고 있음. 성별, 인종, 외모 이런 기본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들과 죽음처럼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을 제외하면 인간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음

내일 아침에 토스트와 커피를 마실지, 제육볶음을 먹을지, 아님 길가의 고양이를 구할지까지 선택은 누구나 가능하고 누구나 마주하게 됨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한 경험에서 인간의 본질이 쌓여가는 거지


이 장면에서 덴지는 선택했음. 청년과 노인 중 고양이를 구하는 것으로 선택한 거임. 제3의 선택지를 고른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음. 인간은 자유로우니까.

단지 덴지가 인간의 목숨보다 동물의 목숨을 더 중시하는 한 명의 존재가 되어간다는 걸 의미할 뿐임


그리고 그 선택이 또다른 비극을 만들어내도 받아들여야 함. 이게 덴지가 한 선택의 결과고, 덴지가 청년의 쌍둥이 형제를 죽이기로 선택했을 뿐임.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음. 이게 덴지의 선택이 만들어낸 덴지의 본질이니까.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선택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님. 왜냐면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는게 아니니까. 세상에는 나와 똑같이 무한히 자유로운 삶 속에서 선택하는 존재가 가득함


사르트르는 이 상황에 대해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음.

왜냐면 모든 인간은 '쟤는 저런 사람이야.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면서 타인을 선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원래 그런 존재로 끌어내리려고 하거든.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면서 갈등이 벌어지는 거임. '난 이런 사람이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갈등이 내가 서있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줌. 무한히 자유로운 탓에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 떨어져버리니까 타인의 시선이 불쾌하면서도 곧 행동의 근거가 되어주는 거지.


불의 악마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너는 악마니까."는 자신을 정의의 편이라 생각하고 행동해온 덴지를 태어날 때부터 악마인 존재로 폄하하는 행위임. 근데 그게 아니잖아. 태어날 때부터 악마인게 아니라 수많은 선택 끝에 그런 존재가 된 거지. 덴지는 이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거임. 원래 악마가 아닌 것도 알고, 이게 자기 선택 때문인 걸 아니까.


그러다 이번엔 아사가 "왜냐면 우린 정의의 편이잖아?!"라고 말하면서 다시 덴지를 정의의 편이라고 규정해버림. 이것조차 덴지에겐 본질을 정하려는 타인의 폭력이지만 동시에 선택의 근거가 되어줌


그리고 다시 한 번 덴지는 선택함. "시이도 좆같고 요루도 좆같으니까 난 정의의 편이 되어서 아사 너와 함께하겠다." 그동안 덴지는 자유롭게 선택해왔고, 두 가지 선택지만 고르는 짓을 안 하는 사람으로 살아왔기에 이번에도 자유롭게 제삼의 선택지를 골랐음.

바보 병신 같을 수도 있지만 이게 덴지가 만들어낸 본질임. 얘는 할 수만 있다면 후회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병신인 거임

마치며


사실 이것 외에도 체인소맨 작품 전체에 선택의 중요성이 녹아있음. 포치타와 계약한 것, 레제와 도망치기로 한 것, 레제가 덴지와 같이 도망치기로 한 것, 덴지가 마키마의 개가 되기로 한 것, 덴지가 문을 열어버린 것 등등

특히 덴지가 개가 되기로 한 부분은 부조리한 상황에서 선택을 포기하고 죽기로 결정한 것과 다름 없어서 실존주의 철학에 있어서 가장 비판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만화에서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음

이런 점들 때문에 난 타츠키가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해서 작품을 쓴다고 생각함

마키마를 1부 최종보스로 선택한 것도 그래서임. 마키마는 지배의 악마로서 타인의 선택할 자유를 빼앗고 한낱 인간으로 격하시킬려고 했으니까. 근데 마키마는 그러면서도 동등한 관계를 원하는 모순적인 인물로 그려져. 마키마도 하나의 존재거든. 타츠키의 이념이 그대로 묻어나온 보스인 거임.


그럼 앞으로 타츠키가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까?

그건 모르지. 덴지가 뭘 선택하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될텐데 개씹자유로운 영혼인 덴지를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잖아.

그치만 죽음의 악마인 시이가 최종보스라면 난 포치타가 죽음의 악마를 먹는다거나 하진 않을 거 같음

왜냐면 죽음은 가장 원초적인 사실이고,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죽음이란 끝이 있기에 인간의 모든 선택이 소중하고 고귀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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