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덴지
체인소의 심장을 가진 소년.
많은 아픔과 상실을 겪고, 한층 더 내면의 성장을 이뤄냈다.
과거의 상처 속에서 길을 잃은 레제와 재회한 후,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며 함께하는 소박한 일상을 꿈꾼다.
서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고 따뜻한 진심으로 서로의 구원자가 되어 깊은 유대를 쌓아간다.
레제
폭 탄 악마의 심장을 가진 소녀.
조국에 버림받고 무기로서 살아온 과거의 악몽 속에서 홀로 고통받고 있었다.
덴지와의 재회를 통해 처음으로 따뜻한 일상과 진정한 사랑을 배우며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때로는 그를 가르치는 능숙한 선생이자, 때로는 그의 품에서 위로받는 연약한 소녀의 모습으로 함께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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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는 눈을 떴다.
그녀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종류의 아침이었다.
언제나처럼 뇌리에 경보를 울리는 날카로운 각성이 아니었다.
얕은 물가에서부터 서서히 의식이 뭍으로 밀려 나오는 듯한, 나른하고 평온한 과정이었다.
끔찍한 악몽도, 쫓기는 자의 편집증적인 경계심도 없었다.
그저 아주 길고 깊은 잠을 잔 뒤의 개운함만이 솜이불처럼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꼼짝 않고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두꺼운 암막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지만, 그 틈새를 비집고 아침 햇살 한 줄기가 가늘고 선명하게 방 안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 빛줄기 안에서, 방 안을 부유하던 무수한 먼지들이 금가루처럼 반짝이며 느릿하게 춤을 추었다.
어젯밤에는 그저 절망의 색으로만 보였던 퀴퀴한 방의 풍경이, 아침 햇살이라는 필터를 거치자 어딘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띤 채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공기 중에 떠도는 냄새조차 어젯밤의 그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눅눅한 곰팡내와 먼지 냄새에 더해, 희미하게나마 살아있는 사람의 체취와 밤새 마른 과자 부스러기의 고소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상반신을 일으켰다.
삐걱, 하고 낡은 매트리스가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방바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덴지가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그는 이불도 없이, 딱딱한 마룻바닥에 아무렇게나 몸을 말고 누워 있었다.
한쪽 팔은 머리 밑에 괴고 다른 쪽 팔은 배 위에 얹은 채, 완전히 무방비한 자세였다.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규칙적인 숨소리와 함께 희미한 색색거림이 새어 나왔다.
까치집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중력을 거스르듯 사방으로 뻗쳐 있었다.
그는 마치 긴 여행에 지쳐 아무 데서나 쓰러져 잠든 어린아이 같았다.
레제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그녀는 저 남자의 심장을 꺼내려 했었다.
그리고 그는 그런 그녀의 모든 절망을 받아주고, 그녀에게 ‘새’가 되자고 말했다.
그의 과거를 들었고, 그의 투박한 위로에 기대어 한참을 울었다.
그 모든 격렬했던 밤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그는 그저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 간극이 너무나도 커서, 레제는 어젯밤의 일들이 모두 꿈이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꿈이 아니었다.
그의 숨소리가, 그의 체취가, 그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부피가 모든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는 실재했다.
그의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레제의 마음속에서 아주 낯선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수년간의 훈련 과정에서 가장 먼저 제거되었던, 임무 수행에 가장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던 감정.
장난기.
아무런 목적도, 계산도 없는 순수한 유희의 감정이었다.
그녀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변화였다.
그녀는 소리 없이 매트리스에서 내려와,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그에게 다가갔다.
바닥을 딛는 발걸음은 훈련받은 대로 소리가 없었지만, 그 목적은 암살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머리맡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그의 얼굴 가까이로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그의 숨결에서 희미하게 과자 냄새가 났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지금 자신이 하려는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저 하고 싶었다.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그의 귓가에 조준하듯 입술을 모으고는 바람을 불어넣었다.
후우ㅡ
따뜻하고 축축한 바람이 그의 귓구멍으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그 순간, 덴지의 몸이 마치 용수철처럼 튕겨 올랐다.
“으악! 뭐야! 벌레냐?! 귀에 벌레 들어갔어!”
그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귀를 손바닥으로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아직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아까보다 한층 더 장엄하게 솟구쳐 올라 있었다.
그 모습은 당황했다기보다는, 지극히 원초적인 공포에 질린 동물의 반응에 가까웠다.
그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레제는 순간 숨을 멈췄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흐...!”
처음에는 작은 소리였지만, 한번 터져 나온 웃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푸하하, 아하하하하!”
그녀는 배를 잡고 바닥을 뒹굴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난생 처음으로 터뜨려보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방심시키기 위한 계산된 웃음도, 고통을 감추기 위한 건조한 웃음도 아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순수하게 우러나오는, 맑고 청아한 소녀의 웃음소리였다.
그 웃음소리는 곰팡내 나던 방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정화하는 듯했다.
한참을 자신의 귀와 사투를 벌이던 덴지는 그제야 웃고 있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그녀와 자신의 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네가 한 거냐?”
그의 멍청한 질문에 레제는 웃음을 참으려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너...”
덴지는 무언가 화를 내려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고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는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사람 놀래키고 지랄이야.”
그의 투덜거림에는 화가 섞여 있지 않았다.
그저 잠이 덜 깬 자의 나른한 불평일 뿐이었다.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그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아침이냐 벌써...”
그는 다시 한번 길게 하품을 했다.
그 모습마저도 레제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여, 그녀는 또다시 ‘후후’ 하고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그다운 반응이었다.
그 예측 가능한 단순함이 이상하게도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덴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기지개를 쭉 켰다.
우두둑, 하고 그의 등뼈에서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배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르르륵—.
그 소리는 너무나도 우렁차서, 방 안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킬 정도였다.
레제의 웃음도 순간 멎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가 난 곳, 즉 그의 배를 쳐다보았다.
덴지는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자신의 배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 배고파 뒤지겠네.”
그의 얼굴에는 오직 ‘허기’라는 두 글자만이 쓰여 있는 듯했다.
어젯밤의 깊은 대화도, 그녀의 눈물도, 그 모든 감정의 격류도 굶주린 배 앞에서는 모두 하찮은 것이라는 듯한 태도였다.
레제는 어이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다시 웃음이 나왔다.
정말이지 한결같은 남자였다.
“어제 먹다 남은 과자 있잖아.”
그녀가 방구석의 편의 점 봉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나 덴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런 걸로는 이 위대한 공복감을 달랠 수 없어. 아침은 밥을 먹어야지. 따뜻한 밥에, 미소시루랑... 그래, 소시지 구이 같은 거. 계란 프라이도 있으면 좋고.”
그는 눈을 감고 황홀한 표정으로 자신이 먹고 싶은 아침 식사 메뉴를 읊조렸다.
그의 상상 속에서는 이미 풍성한 식탁이 차려져 있는 듯했다.
레제는 그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미소시루, 소시지 구이, 계란 프라이.
그녀에게는 모두 낯선 단어들이었다.
그가 말하는 ‘평범한 아침 식사’는 그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돈 있어?”
그녀가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덴지의 황홀한 표정이 순간 멈칫했다.
그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잠시 뒤, 그는 몇 장의 지폐와 동전 몇 개를 꺼내 보였다.
액수는 보잘것없었다.
“.....젠장.”
덴지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려다보며 짧게 욕설을 뱉었다.
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행복한 상상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다시 배고픈 짐승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머리를 감싸 쥐고 신음했다.
“어떡하지... 이대로는 굶어 죽어... 모처럼 제대로 된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진심으로 절망하고 있었다.
레제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젯밤, 그녀는 존재의의를 잃고 절망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아침밥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절망의 무게는 다를지언정,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일하러 가야겠네.”
덴지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일?”
레제가 되물었다.
“그래, 일. 데블헌터 일. 어디 가서 약해빠진 악마라도 한 마리 잡아다 주면, 돈을 좀 벌 수 있겠지. 그걸로 아침밥 사 먹는 거야. 완벽한 계획 아니냐?”
그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배가 고프다, 돈이 없다, 돈을 번다, 밥을 먹는다.
그의 사고방식은 지극히 단순하고 직선적이었다.
단순히 아침밥을 먹기 위해 악마를 잡는다는 발상은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했다.
“자, 가자!”
덴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듯,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얼굴에는 ‘당장이라도 악마를 찢어발기고 소시지를 쟁취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서려 있었다.
레제는 그의 내밀어진 손을 잠시 바라보았다.
크고, 투박한 손.
어젯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손이었다.
그녀는 망설였다.
이 손을 잡아도 되는 걸까.
이 문밖으로 나가도 괜찮을까.
문밖의 세상은 여전히 그녀에게는 위험하고 두려운 곳이었다.
그녀의 망설임을 읽었는지, 덴지가 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뭐 해? 빨리 안 가면 아침밥이 점심밥 된다고.”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강요도 없었다.
그저 배고픈 아이의 투정과도 같았다.
그 순수한 식욕이, 역설적으로 그녀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그래,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라면.
아침밥을 먹기 위한 싸움이라면.
레제는 결심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단단했다.
그가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아 일으켜주었다.
“좋아, 그럼 출발이다! 우리의 위대한 아침 식사를 위하여!”
덴지는 유치한 구호를 외치며 앞장서서 문으로 향했다.
레제는 그의 뒤를 따르며 저도 모르게 작은 미소를 지었다.
문이 열리고, 아침의 눈부신 햇살과 도시의 소음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레제는 순간 눈을 찡그렸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덴지의 등 뒤에 서서, 아주 오랜만에 세상의 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두렵지만, 더 이상 혼자는 아니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부서진 날개를 가진 두 마리의 새는 그렇게 그들의 첫 번째 공동 비행을 위해, 아침 식사라는 소박한 목적지를 향해 낡은 새장을 나섰다.
...
...
도시의 뒷골목은 언제나 제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그 생태계의 정적을 깨뜨렸던 소음의 주인은 이제 형체 없는 얼룩이 되어 바닥에 넓게 퍼져 있었다.
끈적이는 녹색 점액질은 아직도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고, 그 중심부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다 스러졌다.
덴지는 그 얼룩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양팔과 머리에서 튀어나왔던 기계톱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전투의 여파는 그의 온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찢어진 셔츠는 악마의 체액과 그의 피가 뒤섞여 눅눅하게 몸에 달라붙어 있었고,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어깨가 크게 들썩였다.
"아, 씨... 존나 오래 걸렸네. 아침 먹으려고 나왔는데 해 다 졌잖아. 완전 저녁이네, 퉷."
그는 잠시 허리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퉤, 하고 바닥에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몸에 났던 자잘한 상처들은 이미 흔적도 없이 아물어 있었다.
레제는 그 모든 광경을 골목의 어귀,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운 곳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전투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신변 노 출의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덴지가 혼자 악마를 상대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그녀의 깨끗한 모습은 전투의 흔적이 역력한 덴지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덴지는 숨을 고른 뒤, 바닥에 널브러진 악마의 잔해 중에서 가장 큰 살점 덩어리를 증거물로 챙겼다.
비닐봉지에 그것을 대충 쑤셔 넣자 역한 냄새가 확 풍겨왔지만 그는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았다.
그에게 그것은 더 이상 혐오스러운 악마의 시체가 아니라, 따뜻한 밥과 생활비로 교환될 화폐였다.
“끝났다.”
그가 레제를 돌아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가자. 돈 받으러.”
그는 앞장서서 골목을 빠져나갔다.
레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어두컴컴한 뒷골목을 벗어나자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은 도시의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게들의 네온사인이 하나둘씩 불을 밝히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아침과는 다른 여유를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걷지 않았다.
덴지가 서너 걸음 앞서 걸었고, 레제는 그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림자처럼 뒤따랐다.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그녀의 몸에 밴 습관에 가까웠다.
누군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는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덴지는 그런 그녀의 거리 두기를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걸음걸이에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적지를 향한 의지만은 분명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돈’과 ‘밥’이라는 두 단어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이 정도면 꽤 짭짤할 거야.”
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레제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에 가까운 소리였다.
“적어도 일주일은 넉넉하게 생활할 수 있겠지. 일단 오늘은 무조건 고기다. 쇼가야키...는 말고, 아무튼! 밥은 곱빼기로 시키고!”
그는 벌써부터 저녁 메뉴를 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레제는 말없이 그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걸었다.
찢어진 셔츠 너머로 보이는 그의 등은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했지만, 동시에 수많은 상처와 싸움의 흔적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지극히 솔직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그 단순하고 명쾌한 삶의 방식이 레제에게는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어딘가 눈부시게 느껴졌다.
민간 데블헌터들을 위한 보수 지급처는 변두리에 위치한 낡은 공안 건물의 작은 별관에 있었다.
덴지는 익숙하게 접수 창구로 다가가 악마의 사체 일부가 담긴 비닐봉지를 내밀고 서류 몇 장을 작성했다.
레제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 옆 벽에 기대어 그를 기다렸다.
혹시라도 아는 얼굴과 마주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낡은 신발 코만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세상은 그녀에게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고, 그녀는 그 세상 속에서 유령 같은 존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덴지가 건물 안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두툼한 현금 봉투가 들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목표를 달성한 사냥개의 표정이었다.
“봤냐? 이 정도면 일주일은 무슨, 열흘도 버티겠다!”
그는 레제에게 봉투를 흔들어 보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레제는 그런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기쁨은 너무나도 순수하고 전염성이 강해서, 그녀의 마음속에 드리워져 있던 불안의 그림자마저 잠시 잊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어젯밤 머물렀던 낡은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는 이미 지평선 너머로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고, 도시는 완연한 밤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덴지는 아까와는 달리 조용했다.
그는 주머니에 한 손을 찔러 넣은 채, 말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의 옆얼굴에는 조금 전까지의 들뜬 기색은 사라지고 어딘가 낯선 종류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레제는 그의 그런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했다.
그녀는 그의 뒤를 따르며, 그의 보폭이 미세하게 불규칙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몇 번이고 입을 열려다가 말고, 괜히 헛기침을 하기도 했다.
마치 아주 어렵고 중요한 말을 꺼내기 직전의 사람처럼.
그들이 마침내 그녀의 낡은 아파트가 있는 골목 어귀에 다다랐을 때였다.
덴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뒤따르던 레제도 멈춰 섰다.
그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길 건너편의 불 꺼진 상점 간판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어깨는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
“저기...”
그가 아주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잔뜩 잠겨 있었고, 어딘가 쑥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 뭐냐.”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뒷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레제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녀의 심장이 저도 모르게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계속... 거기서 살 거냐?”
그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보지 못하고, 마치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 뭐, 네가 괜찮다면 상관없는데... 거긴 좀 그렇잖아. 춥고, 습하고... 뭣보다 안전하지도 않고.”
그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레제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섣불리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덴지는 깊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마침내 결심했다는 듯, 그러나 여전히 먼 산을 바라보며 넌지시 말을 던졌다.
“그러니까... 내 말은...”
“......”
“혹시... 머물 곳이 없으면...”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래?”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골목 안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는 듯했다.
오직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가르고 있었다.
레제는 숨을 멈췄다.
그의 제안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또 너무나도 대담해서 그녀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같이 살자고? 나랑?
덴지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고역이라는 듯,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의 얼굴은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붉게 달아오른 것처럼 보였다.
“아, 물론! 이상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그냥 너 혼자 그런 닭장 같은 데 있는 게 영 마음에 걸려서 그래! 내 집도 뭐... 좁아터지긴 했는데, 그래도 거보다는 나을 거야! 방이 하나뿐이긴 한데... 뭐, 내가 바닥에서 자면 되니까! 둘이 살기엔... 어떻게든 충분할 거라고!”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하고 있었다.
횡설수설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너무나도 투명하게 레제의 마음에 와닿았다.
동정도, 욕망도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서툴지만 진실된 호의였다.
어젯밤, 그녀에게 ‘새’가 되자고 말했던 그 남자가 이제는 함께 머물 ‘둥지’를 내밀고 있는 것이었다.
레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을 보지 못하고 먼 산만 바라보며 뻣뻣하게 굳어 있는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그의 귀 끝을 보니,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게 아려오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젯밤 무너져 내렸던 벽의 잔해 위로, 아주 작고 따뜻한 무언가가 조심스럽게 쌓아 올려지고 있었다.
어쩌면 신뢰라는 이름의 첫 번째 벽돌일지도 몰랐다.
침묵이 길어졌다.
거절의 전조와도 같았다.
덴지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괜한 소리를 했나.
역시 부담스러웠던 걸까.
그의 귀 끝은 이미 뜨겁다 못해 따가울 지경이었다.
이 어색한 상황을 견디다 못한 그가 먼저 무어라고 변명을 둘러대며 말을 거두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고요하던 공기를 깨고 아주 작고 맑은 질문이 들려왔다.
“나, 은근히 많이 먹는데.”
덴지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가 예상했던 대답의 범주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말이었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뻣뻣하게 굳어 있던 목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어젯밤의 처절했던 울음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그녀의 얼굴에는 옅고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녀의 녹색 눈동자에 내려앉아 작은 반딧불이처럼 반짝였다.
그 미소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계산된 미소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훨씬 더 가볍고, 투명하며 순수한 미소였다.
마치 얇은 얼음이 깨지며 그 아래에 갇혀 있던 봄의 시냇물이 처음으로 햇살을 만나는 순간과도 같았다.
“그래도 괜찮겠어?”
그녀가 덧붙여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 조금 쉬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놀림의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그리고 잔뜩 긴장해서 뻣뻣하게 굳어 있는 그를 즐기고 있었다.
덴지는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완전히 이해했다.
그리고 그의 뇌는 과부하에 걸린 낡은 기계처럼 작동을 멈췄다.
그의 입이 뻐끔, 하고 열렸다가 닫혔다.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많이 먹는다’와 ‘식비’ 그리고 방금 손에 넣은 현금 봉투의 두께 사이에서 격렬한 계산을 시작하고 있었다.
“어... 그, 그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불안하게 흔들리며 그녀의 얼굴과 자신의 손에 들린 돈 봉투,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 사이를 오갔다.
그의 단순한 사고 회로는 ‘동거 제안’이라는 낭만적인 이벤트에서 순식간에 ‘추가되는 식구의 식비 문제’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의 문제로 전환되어 버렸다.
그의 그런 속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을 본 레제의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그녀는 보폭을 좁혀 그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는 장난스럽게 허리에 손을 얹고 고개를 까딱이며 그를 추궁하듯 물었다.
“어라? 왜 대답을 주저하는 거지?”
그녀의 목소리는 명백히 웃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둘이 살기에 충분할 거라고 큰소리 뻥뻥 쳤으면서. 설마 벌써부터 내 밥값이 걱정되는 거야?”
그녀의 짓궂은 추궁에 덴지는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
그는 마치 재판정에 선 피고인처럼 억울함과 당혹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당연히 괜찮지! 괜찮고말고!”
그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네가 뭐... 코끼리만큼 먹는 것도 아닐 테고! 정 부족하면... 부족하면 내가 악마를 더 잡으면 돼! 그래, 하루에 두 마리씩 잡으면 되겠다! 그러면 고기도 매일 먹을 수 있을 거야! 문제없어!”
그의 대답은 너무나도 그다워서, 레제는 결국 참지 못하고 ‘후훗’ 하고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밤의 골목 안에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덴지는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자신이 왜 놀림을 당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어젯밤의 위태롭고 부서질 것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그저 짓궂은 장난을 즐기는 평범한 소녀였다.
한참을 웃던 레제는 눈가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간신히 웃음을 멈췄다.
그녀는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
“알았어. 그럼.”
그녀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해, 집주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처음으로 그에게 장난스럽게 윙크를 해 보였다.
그 순간, 덴지는 자신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이전에 그녀가 그를 유혹할 때 느꼈던 인위적인 설렘과는 다른 종류의, 훨씬 더 무방비하고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당혹스러운 파동이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어, 어어! 가, 가자! 밥 먹으러 가야지! 배고프잖아!”
그는 어색하게 소리치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허둥대는 듯했다.
레제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걷지 않았다.
그녀는 보폭을 넓혀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두 사람의 어깨가 스치자 덴지의 어깨가 움찔하고 굳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모른 척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밤의 거리를 걸었다.
더 이상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지 않았다.
대신 간간이 덴지가 읊조리는 저녁 메뉴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듣는 레제의 작은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채웠다.
덴지의 집은 그의 말대로 좁아터진 곳이었다.
오래된 목조 아파트 2층, 현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좁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방 하나에 작은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인 전형적인 독신자용 원룸.
방 안에는 얇은 이불이 아무렇게나 개켜져 있었고, 벽에는 낡은 포스터 몇 장이 붙어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텔레비전과 읽다 만 만화책 몇 권이 쌓여 있었고, 낮은 탁자 위에는 어제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정리정돈과는 거리가 먼, 딱 잠만 자고 나가는 남자의 방.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다.
레제는 문턱에 서서 말없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어젯밤까지 머물렀던 관 속 같던 방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곳은 살아있다는 흔적을 지우기 위한 공간이었지만, 이곳은 살아있다는 흔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어지럽게 널린 물건 하나하나가 덴지라는 인간의 삶의 궤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뭐... 보다시피 이래.”
덴지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
“치운다고 치운 건데... 티도 안 나네.”
그는 황급히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 몇 개를 발로 툭툭 차서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 서툰 행동에 레제는 작게 미소 지었다.
“아니. 괜찮아.”
그녀가 말했다.
“...아늑하네.”
진심이었다.
그녀의 기준에서 이 정도면 궁궐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이곳에는 창문이 있었고, 그 창문 너머로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그녀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된 통로로서의 창문.
그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두 사람은 오는 길에 편의 점에서 사 온 도시락을 낮은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따뜻하게 데워진 도시락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두 사람은 말없이 마주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두 사람의 첫 번째 공동 식사였다.
좁은 방, 허름한 탁자, 편의 점 도시락.
그 무엇 하나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지만, 레제에게는 그 어떤 화려한 만찬보다도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이 온기 속에서, 이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그 단순한 사실이 그녀의 텅 비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것을 느꼈다.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를 정하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덴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이 바닥에서 자겠다고 했고, 레제는 자신이 손님이라며 극구 사양했다.
작은 실랑이 끝에 결국 방 한가운데에 이불 두 채를 나란히 까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불 사이에는 한 뼘 정도의 간격이 있었다.
가깝지만 닿지는 않는 거리.
불이 꺼지고, 방 안에는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젯밤의 그 숨 막히는 어둠과는 달랐다.
창문 너머로 흘러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고,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가 든든한 배경음처럼 그녀의 귓가를 채웠다.
레제는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불과 하루 만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어둠 속에 숨어 지내는 도망자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이름 모를 감정을 공유하는 동료가 생겼고, 비록 허름할지언정 함께 밤을 보낼 둥지가 생겼다.
물론,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다.
그녀를 쫓는 위협은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 존재했고, 그녀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었다.
자유라는 단어는 여전히 그녀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이미 잠이 든 듯,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도 한쪽 날개가 없어.’
어젯밤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둘이 같이 날갯짓하면, 그러면 날 수 있잖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두 이불 사이의 그 한 뼘 남짓한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이불 쪽으로 손을 조금 움직였다.
그녀의 손가락 끝과 그의 이불 끝이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그녀는 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지만, 마치 그의 온기가 그 작은 틈을 넘어 그녀에게 전해져 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래, 어쩌면 정말로 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는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서로의 존재에 기댄다면.
부서진 날개를 가진 새 두 마리가, 위태롭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그렇게 그들의 첫 번째 밤을 함께 보내고 있었다.
내일의 하늘이 어떤 색일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적어도 오늘 밤, 이 둥지 안은 안전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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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가 점점 본래 성격을 되찾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음
그리고 조만간 야스하니까 관심좀
글쟁이는 관심이 고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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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구평인데 3줄 요약좀
소설추
개추 존나 드셈
이야 점점 레제 밝아지는게 미식이네
나중에 몰아볼게 - dc App
개추는 하루에 한번ㅜㅜ
왜 개추는 하루의 한번인가ㅠㅠ - dc App
개맛있어요 요즘 이거만 기다립니다 - dc App
요즘 이거 보는 낙에 삽니다 오래오래 연재해줘용
어흐 레제 본래 성격 찾아가는 과정이 참 좋아
댓글 쓰려고 회원가입했다 요즘 이거 보는 맛에 개념글 새로고침한다 완결까지 파이팅
밤에 자기 전에 매번 읽으러옴 ㄱㅅ 맛있어요 - dc App
조용히 개추
이번 화는 마음이 따뜻해지도 눙물이 흐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