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말, 일본에서 기묘한 생물체가 나타났다.

어미의 뱃속에서 부터 두르고 나오는 녹색옷
적/녹 오드아이와 탐욕스럽게 늘어진 양 볼 사이 항상 반쯤 열린채인 언청이입
어떻게 뱃속에 담고 다니는지 믿어지지 않는 산더미처럼 싸지르는 고약한 냄새의 배설물
위석이라는 정체불명의 돌만 무사하면 어떤 짓을 당해도 살아남는 기묘한 존재
짐승치고는 높은 지능과 어설프게 인간과 비슷한 감성
성서 속 칠대 죄악을 똘똘 뭉쳐 놓은듯한 본성을 타고난 똥벌레

「실장석」

한국에서는 최초 수입명인 「참피」라 통하는 녹색 난쟁이들

이 참피들에겐 다른 동물들에겐 없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으니 링갈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과 회화,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기존 애완동물들에겐 없는 엄청난 메리트였다.

링갈이 발명된 2000년대 초, 본산지인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참피 열풍이 불었다.

말이 통하고 다소 뒤틀렸지만 인간과 유사한 감성을 가진 참피들에게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던 욕망을 투영시켰다.

참피를 다루는 전문 브리더들의 출현과 참피를 주제로한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잡지, 참피 테마파크, 로젠 & 메이든 두 회사가 주축이 된 참피 산업의 발달까지...

그 과정에서 참피 사랑하는 사람들, 애호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개중에는 정도가 지나쳐 인간과 참피를 동등하게 여기는, 삐뚤어진 애정을가진 애오파라는 족속들이 나타나 사회적 갑론을박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참피 열풍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한때 전세계를 강타한 참피 열풍은 한 브리더의 노력을 계기로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참피의 아종들, 다른 실석류 동물들의 인위적 번식이 성공한 것이다.

앙증맞은 실크모자 쓴 충직한 파수꾼 실창석
풍성하고 금발이 아름다운 도도한 실홍석
나긋나긋 하늘을 나아다니는 신비로운 실등석 등등

그 전까지는 아주 드물게 참피의 출산 중 돌연변이로 태어나거나 야생에서 포획해야했던 아종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되었다.
그 날 이후로 이제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귀여운 실석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실석류지만 참피와 아종들의 성격은 천지차이였다.
타고난 분충인 참피와는 대조되는 담백한 본성덕에 훨씬 훈육이 용이했고 가진 재주가 많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배설물, 똥을 제 몸집보다 많이 싸지르는 참피에 아종들의 것은 귀여운수준이니 아조은 모든면에서 참피보다 나은 선택이었다.

아종 실석류 보급이 본격화 되면서 샵에서 참피를 찾는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참피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며 부르짖던 애오파들도 참피를 향한 대중적 관심이 아종들로 옮겨가자 너 나 할 것 없이 아종들로 갈아타버렸다.

잠시나마 인간의 귀여움을 독차지, 분에 넘치는 호사를 누리던 이 녹색 난쟁이들은 하루아침에 애물단지로 전락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사실 참피들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변한 것은 유행과 그것에 휩쓸린 사람들의 기분 뿐

한국의 들참피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건 이 무렵의 일이다.




1월 서울 강북에 위치한 모 빌딩, 한국에서 유일하게 실석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잡지 「월간 실석류」의 사무실이 위치한 곳이다.

월간 실석류의 기자, 철웅씨는 오늘도 책상머리에서 눈앞 노트북과 씨름하고 있었다.

아이디어가 없다

펜대를 잡고 씨름하는 직종의 사람들의 영원한 딜레마가 철웅씨의 머리를 아프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시기가 실석류 업계에서 가장 한가한 시기, 스포츠로 따지면 오프시즌과 같은 시기였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이무렵은 항상 그랬다.

새로운 실석 품종 개발에 열을 올리던 브리더들도
항상 기삿거리를 쏟아내주던 대기업들도 쥐죽은듯 조용하게 1월을 보내고 있었다.

기여코 작년 1월에 기삿거리로 썼던 \'실창석 신년 코디 특집\' 기사를 재탕해야 하는가 깊은 고민에 빠쳐있던 철웅의 머릿속에 참피라는 단어가 우연하게 스쳐지나갔다.

\"...참피?\"

철웅은 머릿속에서 스쳐간 오래된 기억을 다시 들춰내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실석류 전문 기자인 철웅도 살아있는 참피를 본 것은 꽤 오래전 일
고등학생 시절, 집의 사육 실등석 메리의 번식용 숙주로 쓰기 위해 샵에서 팔던 숙주용 참피를 구입했던 것이 참피를 본 마지막이었다.

메리의 자를 기생당한 참피는 일주일만에 텅빈 거죽이 되어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졌고 그때 나온 메리의 새끼는 천수를 다한 어미 대신 철웅의 집 새로운 메리 (2세)가 되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었다.

참피를 제외한 실석류가 애완동물의 주류를 이룬지 벌써 십수년, 참피들은 주로 저가 가공육이나 동물의 사료로 쓰이는 가축이 되었다.
식품이 아닌 살아있는 참피는 좀처럼 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