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어로 사탕을 의미하는 콘페이투(confeito)가 포르투갈에서 일본으로 전해지고
일본내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한 콘페이토(金平糖)가 한국으로 넘어와 별사탕이 되었다
뜻만 보면 콘페이토 = 별사탕 이긴한데 만드는 방법이나 인식의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콘페이토의 제조방법은 쌀가루나 양귀비꽃 씨앗등 작은핵을 솥 속에 넣고
설탕물을 조금씩 부어가면서 1주~2주 정도 계속 저어가며 졸여서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작업 해야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다 옛날엔 설탕자체가 귀해서 대단히 고급 과자였다
고급 과자이기에 다른 고급 음식인 스시, 스테이크와 함께 실정석이 환장하는 대표적인 음식으로 설정이 된듯하다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현재로도 기계로 만드는데 4일이 걸리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별사탕은 몇십g에 만원이 넘는 콘페이토와
따로 파는건 보기 힘들고 건빵속에든 싸구려 설탕 덩어리 정도의 인식만 있는 한국의 별사탕은 인식의 차이가 많이난다
이런 인식의 차이 때문에 일본 스크립트와는 다르게 한국 스크립트에선
"이런 싸구려 설탕 덩어리 따위를 왜그렇게 갈구 하는거냐?" 라는 대사가 보이거나 별사탕 대신 일반적인 사탕이 등장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카스텔라도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1682년 조선 통신사가 에도를 방문했을때 카스텔라와 별사탕, 양갱을 대접 받았는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나중에 재정 문제로 카스텔라를 대접하지 않게 되자 왜 대접하지 않느냐고 삐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래 콘페이토는 별사탕이 아닌 그냥 사탕을 의미하므로 퍼스트건담에서 솔로몬을 콘페이토로 개명한건 지극히 일본적인 단견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음 - dc App
일본식 한자어라도 금평당이 대체 뭔뜻이냐 했는데 음차였어?ㅋㅋㅋㅋ
건빵 + 별사탕 조합은 1931년부터 일본군이 비상식량으로 건빵 220g 에 별사탕 10g를 같이 포장해서 배포했다고 해
그리고 이 건빵이라는 비상식량을 한국군이 채용하면서 지금까지도 내려온거라고 해
한때 건빵 별사탕에 성욕감퇴제나 발기부전을 일으키는 약이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은 심리적인 요인이고 군대생활에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해
스테이크, 스시가 각각 실장석이 인지할 수 있는 고기와 밥의 최종테크라면 콘페이토는 과자의 최종테크라는 느낌인가봄.
와...1682년...이미우리는실장석이었다!
설탕의 원재료인 사탕수수가 일본내에 재배돼지 않았고 17세기 당시엔 사탕수수 재배지역 대부분을 포르투갈이 장악중이어서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다고해
원료도 이렇게 귀한데다 만드는 기술도 특급 비밀이었는데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만 해도 콘페이토 만드는 기술만 알면 대대손손 부자로 먹고 살수 있다고 할 정도였대
초호화 사치품목에 특급 무역품목 이었기때문에 지방 영주인 다아묘가 기술보호에 신경을 썼는데 기술이 다른 지역으로 세나가지 못하게 여행을 제한할 정도였다고 해
100% 설탕으로 만드는 콘페이토는 극소수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일반 백성은 감히 꿈도 못꿀 사치품이었대 18세기만 해도 다이묘가 쇼군에게 보내는 공물중 하나였고 차를 마실때 곁들여 먹는 최고의 사치품이었대
2차세계대전 당시 건빵과 함께 다른 사탕류가 아닌 콘페이토가 들어간 이유가 이렇듯 일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사탕이라서 였을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대
수십년 전까지만해도 귀족들과 부자들만 먹던 사치품이었고 특별한날에 황제가 신하들에게 하사품으로 주던 선물이었는데 일본군에 들어가면 그런 콘페이토를 먹을수 있다는게 군대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했을거라는 말도 있어
일본은 설탕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식민지들을 이용했는데 1차세계대전 직후 오키나와의 밭을 싹다 사탕수수밭으로 전환시켜 버렸대
그러다 설탕값이 폭락하자 설탕을 팔지도못하고 식량도 구할수 없게된 오키나와 주민들이 대량으로 굶어죽는일도 있었대
요약 : 일본인들에게 콘페이토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치품이었고 설탕확보를 위해 주변 식민지들을 쥐어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