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0년 208일, 초가을임에도 열기가 넘친다. 

장마도 다 씻어내지 못한 분변은 흙에 섞여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열까지 방출한다. 

나무열매들은 시름시름 앓다 시들어 떨어진다. 

짐승도 곤충도 거부하는 그것을 땅에 있는 똥벌레들은 좋다고 달려들어 주워먹는다.

헷갈리기 시작한다. 이 산맥의 주인이 나였던가.

내가 주인이라면, 이제 이런 땅을 가져서 무슨 의미가 있지.


본보기가 되길 바라며 우두머리 실장석들을 죽였는데, 실장석들의 행패는 오히려 심해졌다.

오히려 우두머리들이 그 행동을 억제해왔는지, 제 새끼와 욕설, 똥 따위를 아무렇게나 던지길 이제 멈추지 않는다.

상대의 종족이 오크든 서큐버스든 식인식물이든 탁아도 폭행도 거리낌없다. 

굳이 자신이 지옥으로 굴러들어간 다음 남의 탓을 한다.

그리고 그런 놈이 수 억마리다. 미칠 노릇이다.


오크와 하피 등 전사들은 실장석이 보이는 족족 밟아죽인다. 

다크엘프 연금술사들이 대규모 ‘구제’ 작업에 쓰일 독을 개발해 사방에 뿌린다. 실장석들은 아작나서 죽고 독약에 장을 비워내며 죽는다아군의 피해는 전무한 실로 쉬운 전투다

그런 전투에서 아군이 사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비애를 느꼈다.


그간 산맥의 자원을 갉아먹는 실장석을 쓸모있게 이용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본격적으로 저장형 군량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몇 달 가까이 야생에서 자란 실장석은 그 녹색 변의 냄새가 깊게 배었을뿐더러 온갖 기생충이 가득했다. 건포, 훈제, 가공육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가축이나 야생동물들도 실장석을 먹길 거부했다.

마그란이 수억마리 실장석들이 죽을때까지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 영토를 확장 및 이주하자는 실로 무서운 계획을 주창했지만, 

놈들은 언데드로 살아나지 못했다. 머리가 잘려도 영양이 충분하면 살지만, ‘위석’ 이라는 마력담긴 돌이 깨지면 시체조차 마법이 통하지 않아 어떤 방법으로도 살아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생물과도 같지 않은, 마치 골렘 같은 작동 방식이었다.

즉, 아무리 죽여도 다시 증식하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나는 다시 실장석들을 고문했다.

어떤 오크가 실장석의 위석을 빼내 과일술에 담그면 짓이겨도 살아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그 오크에게 인간에게서 약탈한 포도주 열 통을 하사했다.

그리고 백년은 따지 않을 것만 같았던 보물 중 하나인 159년산 우스타브르 적포도주에, 

나를 찔러대던 그 똥벌레의 위석을 담갔다.

마침내 내 지옥불꽃을 쓸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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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토나와서 못해먹겠네.

131일부터 275일까지 거의 다 학대 이야기밖에 없어…

마석으로 어딜 꿰멨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밑줄쳐서 자랑스럽게 적어놨네.

신이 빚은 고귀한 첫번째 종족은 무슨, 냄새나는 도마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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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년 275일.

초겨울, 슬슬 물이 차가워지기 시작하자 실장석 놈들이 이상행동을 보였다. 

가까운 군단병들의 주거지에 찾아가, 집의 소유권을 주장하거나 제 새끼를 물주머니 따위에 숨겨넣기 시작한 것이다. 

보고를 총합한 결과, 마그란은 기쁜 듯 보고했다. 이 똥벌레들의 대부분은 겨울을 견딜 수 없어 본능적으로 다른 지적 개체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수집과 약탈만 알 뿐 자생력따윈 없던 똥벌레들의 개체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은 기뻤지만, 

마력으로 일대를 조사한 결과 수 억에서 수천만으로 줄어든 정도다. 삶이 너무 힘들다.

유일한 낙은 실장석 고문이었다. 백여일 동안, 놈들중 몇의 비명을 오래도록 들을때마다 마치 모든 일이 해결되고 있는 듯 한 감상에 빠져있었다. 말도 안되는 현실도피였고 책임 방기였다.

 

그간 산하 군단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 지시가 부재하는 사이, 똥벌레들이 필사적으로 따뜻한 곳에 기어들어오기 시작하자 식량은 못 쓰게 되고 병장기는 죄다 삭아들어 피해가 컸다. 


그리고 그 불만이 오늘 기어이 폭발했다.

검은칼날 오크 부족 최고의 전사 ‘보툴’이 반기를 들었다.

반항 정도가 아니라,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둥지 앞까지 찾아와 내게 결투를 신청했다.


녀석은 내가 내 둥지에서 생각없고 지질한 '실장석 학대'라는 취미를 즐기고 있다고 온 산맥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도발했다. 

자신의 도끼는 똥무더기를 치우는 용도가 아니라고도 외쳤다. 둘 다 사실이었다.

나는 현실을 회피하듯 둥지에 웅크려 몸을 말았다. 실장석 놈들이 말하는 ‘구더기’ 같이.

검은칼날 오크들의 족장이 나타나 놈을 만류했고, 놈은 명령에 따라 부족과 함께 이 산맥을 떠났다. 

주제를 잊은 것들의 행동에 실장석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순간 욱해서 날아가 모두 태워죽이려 했으나

검은칼날 오크들은 쓸모있는 전사들이니 사태가 진정되면 다시 설득하겠다는 부관들의 만류로 그만두었다


유목 오크들이 겨울이 시작되었는데 아녀자들을 이끌고 내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은길고 고된 행군이 될 것이다

실장석 때문에즉 그들이 아닌 나의 오판으로 인해 강제된 이주행위.

그래. 나 같아도 떠나겠다. 제 자식 먹일 일이 더 급할 테니.


가축들 먹일 풀이 전부 똥투성이인데, 군주가 해결해주지 못한다면 충의를 지킬 필요가 있을까?

나는 영문모를 심상의 격류를,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감정을 느꼈다.

책임감이던가? 아니면 죄책감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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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년 330일. 정신적 스트레스로 앓아누웠던 이후로 처음 쓰는 기록이다.

한겨울. 눈이 호우처럼 내린다. 


모두 포기했다.

오늘 아침, 요새 지붕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방은 약간의 적색과 높은 비율의 녹색이 섞인 질척하고 징그러운 질감의 눈밭이었다. 내가 만든 나의 이상적 영토는 이제 없다.


마나를 추출할 마력식물들도, 정복을 보조할 군단도 없다.

이미 군단을 구성하던 지적생명체들에겐 보물과 식량 한 보따리씩 들려서 피난을 보낸지 오래다. 녀석들은 감동한 눈치였다

쓸모없어졌다고 죽임을 당하면 당했지, 학살의 대명사나 마찬가지인 마룡한테서 이런 대우를 받을줄은 몰랐겠지.

부당하다고 느낄 때 가장 크고 짜증나는 소리를 지르는 이 똥벌레들은, 추위와 기아로 굶어죽어가는 지금, 이 산맥의 역사에 있어 본 적 없는 가장 거대한 소음공해를 내뿜고 있다.

어지럽던 내 마음은 이제서야 평화로우나, 본래 평화로워야 할 겨울은 현재 전쟁터보다 시끄럽다.

 

이제 리치 부관들도 없다.

누군가는 더 이상 섬겨도 득이 없다고 도망갔다. 

누군가는 장렬하게 실장석의 물결과 싸우다 자신의 군단과 함께 똥독에 부스러져 사라졌다.

그리고, 불과 한달 간 정성껏 날 곁에서 간호하던 충직한 마그란은, 자신의 사무실 창문으로 100번째로 탁아를 당하자 결국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했다

그는 높은 첨탑에서 뛰어내려 리치의 생을 마감했다.


나는 고집스레 1층의 위치를 고수한 마그란의 사무실에서

‘노예의 임무 방기는 똥마마의 죄와 같아 백번 죽고 운치를 먹어 사죄해야하는 레치’ 라고 지껄이는 놈 하나,

떨어진 마그란의 파편과 부딪혀 ‘탁아를 성공했는데 어째서 아직 바깥신세인 데스, 들어가기만 하면 엄지 먼저 솎아 죽이는 데스’ 라고 지껄이는 놈 하나를 집어,

둘 모두 두뇌를 뭉갠 뒤 마그란의 뼛가루를 뿌린 강에 던졌다. 내 가신의 한이 조금이나마 덜어지길 바라며.


(그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실장 소음의 괴로움 때문에 딱 100번째로 탁아당하는 날 정녕 자살하기로 마음먹었기에 사무실을 다른 층으로 옮기지 않은 듯 하다. - 역주)


수천의 마법사와 마귀들을, 그리고 녹색용을 결투로 꺾은 위대한 마도사여, 가는 길이 평안했기를.


(이 대목 덕분에, 검은용 도시아킨의 수하였던 악명높은 리치 마그란의 정체가 황제력 130년에 실종된 대마도사 ‘후타바르 마그란’임이 밝혀졌다. 엘프의 삼림에서 숲의 용을 살해한 그마저도 산맥을 뒤덮은 수억의 실장석을 박멸하지 못했고, 마력폭주를 견디는 대마법사의 지성도 실장석의 스트레스를 버티지 못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전국적 동원으로 실장석의 정기구제를 행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기에 이보다 좋은 예는 없을 것이다. - 역주)

 

나는 이 산맥에 대한 내 소유권을 포기하기로 했다.

내일, 모든 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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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0년 331일.

태생이 자생할 수 없는 걸식자인 실장석들은, 다음 해가 되기 전에 이미 불과 수 천도 남지 않을 것이다. 

수억에서 수천으로. 자연의 힘은 나의 어떤 계책보다도 더 훌륭한 구제수단이었다.

그러나 이 산맥에선 자연도 더 이상 자생할 수 없다. 일개 국가의 면적에 달하는 산맥이 전부 죽어가고 있다. 

실장석 때문에.

산어귀를 뒤덮은 실장석의 분변, 운치더미가 식물의 부활을 막고 있다.

 

쥐에게도 물려죽는 미물에 패배한 내게 이 땅의 소유권은 없다.

아니, 더 이상 내 소유는 없다. 내 것일 수 없다. 

길어야 수십년을 사는 존재들은 목숨을 걸고 다투어 하루 먹을것을 벌고 발 뻗을 땅을 얻는다.

그리고 나는 날갯짓 한번에 그 투쟁을 무용히 만든다.

폐허와 불바다로 만들고, 아무 의미 없는 약탈을 즐기며.

만물을 비웃으며 아무도 못 쓰도록 똥으로 물들이는 저 실장석들처럼.

 

인간들의 도시를 파괴할때마다 나는 뭐라고 했던가. 너희는 땅을 지킬 힘이 없으니 권리도 없다고 했었지. 

조막만한 생물들의 손에 의해 거대한 자승자박이 된 것은 차라리 희극이리라.

나는 마침내 업보의 순환을 깨달았다. 나는 죽음 뒤에 숨는 필멸자처럼 간단히 악업을 회피할 수 없다. 해가 수억번 뜨고 져도 살아있을 존재들에겐 언젠가 저지른 일의 반동이 돌아온다.

나는 마침내 내 엽행의 무게를 직면했다.

 

나는 어떤 광인의 형을 죽였다. 아니, 그 전에 수많은 군대를 짓밟고 집을 불태웠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로 죽였다

그리고 그 수천 년의 대가로는 모자라지만, 광인은 내게 업보로서 똥무더기를 주었다. 

그리고 수천년 생애에도 얻지 못한 가르침을 나는 똥무더기에서 얻었다.

나는 내 스승이 되어준 광인에게 감사한다.

 

웬만해선 죽을 수도 없어 수 만년을 사는 존재가, 필멸자들에게 무언가를 빼앗아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차라리 죄악이 아닌가. 

나는 저주받아 마땅한 희락에 빠져있었다.

나는 더 큰 힘과 보물을 위해 동족을 죽이고 필멸자들을 해하는 거대하고 추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이 한낱 ‘똥벌레’들에게 수포로 돌아가고서야 그 무의미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전쟁을 준비했다. 하루 동안의, 그러나 내 생애를 바꿀 전쟁을.

 

나는 하늘 높이 날아, 산맥을 향해 지옥불길을 뿜었다.

즉시 데기야아 하고 산맥을 쩌렁히 울리는 비명이 들렸다.

수백 마리가 이유모를 뜨거움에 괴성의 메아리를 만들며 죽어갔다.

나는 모든 구릉과 험로를 세심하게 지졌다. 

아첨하며 그만 뜨거워달라고 울부짖는 놈들의 소리를 기억했다. 

따뜻해졌다며 기뻐하다 불이 붙어 하늘을 저주하며 죽는 놈들의 소리를 현인의 가르침처럼 새겨들었다. 

이것은 나의 업이다. 산맥에 악을 흩뿌린 것은 결국 나의 업이므로, 나는 다시 회수해야 한다.

끊임없이 뿜었다. 고대의 사념체가 내게 선물한 증오의 용광로는,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한도가 있기에 단시간의 파괴에 적합하다. 수 시간을 뿜으면 과부하가 일어나 온몸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몸을 죄고 부수고 삼키는 고통.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는 불을 뿜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분노를 토해내고 동시에 사과를 토해내듯. 

마지막 실장석이 불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로. 내가 삼킨 업보가 모두 빠져나올때까지 견디겠다는 듯이.

그 와중에 나의 영혼은 비명을 질렀다. 수십 번 정신을 잃었다. 

초목의 시체들이 녹색 똥더미와, 실장석들의 눈물과 함께 불길 속에 사그라졌다.

 

수천, 수만, 수십만마리 실장석의 비명이 들렸다. 

내 영혼 속의 무언가가 같이 비명을 지르는 듯 했다. 

그리고 수십만 개체의 비명은 수만, 수천, 수백의 것으로 줄어들었다.


이윽고,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통이 줄어들었다. 나는 마침내 자살로서 안식을 얻었노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육신은 아직도 산에 불을 내뿜고 있었다.

검은 불길이 아닌, 눈부시게 하얀 불길을.

 

그리고 결코 흘려본 적 없던 눈물이 흘렀다.

내려다 본 산맥, 불길이 닿는 곳마다 새 생명의 가능성이 움텄다.

비열함과 사악함으로 온몸에 냄새를 풍기는 실장석들 대신 말이다.

죽었던 나무가 싹으로 회귀해 봄을 기다리려 한다. 독이 올라 죽었던 겨울꽃과 겨우살이가 폭발적으로 피어난다. 

빛을 신호로 삼듯 겨울 철새들이 우두머리를 따라 날아오른다.

어미의 시체를 햝던 어린 사슴은, 살아난 영문을 몰라 당황한 어미에게 달려들어 몸을 부빈다.

 

눈물과 기쁨으로 나는 마지막까지 불길을 뿜었다.

나는 나를 유혹해 타락시킨 악한 영혼들의 손으로부터 놓여났다. 정화되었다.

 

용의 예감은 미래를 볼 수 있다. 나는 운명이 그대를 나의 기록으로 인도할 것을 안다.

마법의 길을 걷는 자여, 모든 용의 영혼에 빌어, 그대와 그대의 가족에게 사과한다.

백 번을 다시 불타도 내가 그 고통을 알 순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과거를 읽는 그대여. 그대가 나의 미래를 인도했다.

그대의 유머감각을 위해서 첨언하자면, 그대가 똥벌레로 나를 구원했다.

아마 당황스럽겠지.

당황해라. 운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법이다.

 

나는 이제 빛이 있는 곳으로 날아오른다.

그대의 앞길을 비추는 영원한 불길이 함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