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독을 마친 나는 용이 왜 실종되었는지 깨달았다. 

마침내 용을 죽일 수단을 마련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갔더니, 

사악한 용은 간데 없고 유례없는 규모의 정화의 불길로 오염이 청소된 마나의 흔적과, 

찬란한 오색 생명이 자라나는 산맥만이 나를 마주하던 경이의 순간.


나는 산맥이 보여준 생의 가치를 목도하고 복수를 포기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돌다, 국경지대의 전쟁으로 발생한 실향민들을 이곳으로 이끌어 개척도시를 만들었다. 

트롤, 오크, 엘프, 드워프, 고블린, 인간 등등이 뒤섞인, 

갈 곳 없는 이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남아서 문화와 종족의 갈등을 뛰어넘은, 

다사다난하지만 시끌벅적한 수천명어치의 작은 이상향을.

 

그리고 형은 살아 돌아왔다. 

같이 떠났던 대공 각하와, 원정 병력인 성기사단과 함께.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주민들의 제보로 산에서 멧돼지를 구워먹는 정체불명의 세력을 조사하러 갔다가, 정찰을 다니던 마물로 오인당해 성기사들이 쓰는 신성망치에 맞아 죽을 뻔한 일그리고 동생 머리를 직접 깨부술뻔한 형이동생을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품에 안긴 일.


형은 용의 눈을 피해 너른 분지를 마법적 은폐 지대로 만들어, 농경과 사냥으로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남았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실장석 독으로 토양이 오염되어 굶어죽길 기다리고 있을 때, 정화의 빛이 내리쬐더니 땅이 생명을 되찾았다면서.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다.

형이 정말 용을 상대로 수년 간 성기사 수천명을 숨기는 대단한 기도비닉을 해낸것인지, 

정화의 불길로 부활한 형이 그렇게 믿고있는 것인지는, 이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옛이야기가 사실대로라면, 일의 앞뒤는 중요치 않다.

영원한 불의 용이 된 도시아킨은 생명의 인과를 뒤틀 수 있을 테니까.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용은 겹치는 일 없이 한마리가 오롯이 하나의 이름만을 가지는데,

왜 검은산맥의 탐욕스러운 마룡이 하필이면 ‘도시아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빛이 바래 옛이야기처럼 취급되는 유명한 예언 속에서, 멸망에 맞서 인간의 편에서 싸우리라고 일컬어지는 빛의 용 도시아킨.

 

아마도 그 타고난 싸가지 때문이겠지만, 실장석에 엮이면 불행해진다는 속설이 있다.

나는 내심 용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길 바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결과가 나쁘다곤 생각하지 못하겠다.

내가 저질렀다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거대한 서사가 담긴 작업물을 내려놓고, 나는 잠시 따가운 눈을 비볐다.


“이름에는 힘이 있어. 난 그렇게 믿어.

안그러냐, 미도리?"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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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실장이 불타죽은 것은 아니었다.

겨울을 헤치고 다가오는 불길을 느끼며 장녀는 생각했다. 그보다 더 끔찍한 죽음도 있으리라고.

한때 보스로서 무리를 이끌고 오크씨들의 축사 청소일을 도우며 실장생의 또다른 가능성을 꿈꾸다, 

마마가 있었다. 다른 무리들의 협공으로 실각당하고, 의도치 않게 자를 낳은 뒤 도망쳐서

자들에게 일가나 동족의 살을 입에 대게 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매일 분투하던 마마가 있었다.

마마는 며칠 전 맛있게 뜯어먹혔다. 바로 집 앞에서, 맹렬히 동족식 무리와 싸우다 제압당해서.


“살려주는데스, 살려주는데스! 뭐든 하는데스! 아직 자도 못 낳아본 데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어미의 필사적인 연기. 존재를 부정당한 차녀가 당황하는 사이, 장녀는 차녀를 밀어 운치굴로 굴려버렸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나무껍질로 그 입구를 막았다. 차녀가 꺼내달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이제 바깥에 들릴 염려는 없다. 

빈 속으로 지르는 소리인 만큼 나무껍질 사이로 자그마한 소음이 새어나올 뿐이다. 

바싹 마른 입으로 자신의 피눈물을 마시며, 장녀는 속으로 아무 대상에나 기도하며 운치굴 입구를 몸으로 눌러 막았다.


“데퍄퍄퍄, 그런데스. 몸뚱아리가 피둥피둥한걸 보니 자들을 뱃속에서 다 소화시킨 분충이 틀림없는데스. 

오마에는 정의로운 와타시가 머리부터 먹어치워 응징해주는 데수!”


“텟테로게, 텟테로게, 와타시는 자들을 낳는 데스 하지만 추워추워에 일가실각은 싫어싫어데스

초세레브한 와타시의 미래설계를 위해 고기 비축식으로서 희생하는 데샤아아!”


“데프프, 뱃속에 자가 있으니 자가 들으라고 천천히 씹어 비명을 즐기는데스! 분충! 

억울하면 와타치의 총구라도 당장 햝아보는 데챠아!”

우득, 우드득. 그리고 비명.


같은 운치색이지만 손발 긴긴 오크씨 고블린씨들의 구제보다도 견디기 힘든,

매일같이 휘몰아치는 동족의 습격과 패악질. 

수천마리가 있으면 수천마리가 전부 똑같다. 장녀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목소리를 삼키지 못하면 죽는 것은 자신뿐이 아니었다. 

비명을 지르려다 장녀의 손에 운치굴로 내던져져, 운치굴 속에서 어미를 부르다 기절한 엄지 차녀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구더기도 있었다.

 

다음 날, 완벽히 위장된 토굴 아래에서 새끼들이 기어나왔다. 

장녀는 구더기의 눈을 가렸다. 차녀는 눈을 감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못했다. 

마마와 싸우다 죽은 분충들의 시체마저 깔끔히 쓸어간 놈들은, 

마마도 눈물 맺힌 붉은 눈 하나만을 두고 전부 가져가버렸다.


엄지 차녀는 한이 담긴 눈을 공처럼 안았다. 한평생을 시리게 산 그 오른 눈을 자신의 온기로 덥혀주려는 듯이. 

그리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부동(不動)이 영원한 것임을 장녀가 깨달은 것은 이미 구더기가 통곡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장녀는 세상을 저주하며 차가운 동생을 안고 토굴 아래로 사라졌다.

실장석으로 태어나게 해 미안하다고 했던 어미, 가족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한다던 울보 동생.

일가의 몫까지, 구더기와 함께 반드시 살아남아주겠다고 맹세하며.

 

장녀는 자신을 비웃으며 생각했다. 주제에 너무 큰 것을 바랬다.

어쩌면 그때 동생을 따라가는게 나았을 지도 모른다.

 

저 멀리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기둥이 다가오고 있다. 

운치 독에 말라 죽은 산사나무와 단풍나무를 부수고, 얼어붙은 호수와 땅을 가르며, 

그 주위의 실장들을 모두 튀겨죽이는 무서운 불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사방에서 도망과 아첨, 위협과 행복회로에 빠지는 소리가 교차한다.

장녀의 심상마저 울분으로 뒤틀리는 가운데 오직 집안만이 평화롭다.


"레… 추운 레후? 집 밖인 레후? 안인 레후?"


장녀는 행복회로를 돌리면 집으로 곧장 다가오는 불길이 사라질까 생각해본다.


"레후? 프니프니 시간인 레후?"


장녀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플까? 아마도 아플것이다. 아프지 않으면 동족들이 비명을 지를리 없겠지.

그렇다면, 자기 손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장녀는 삼녀 구더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낙원에 있는 마마에게 힘을 달라고 빈다. 

하늘에게도 기도한다. 제발, 아무것도 모르는 우지챠만은, 프니프니밖에 모르는 동생의 마지막만은.

부디 내 손으로.

장녀는 손을 뻗어 구더기의 목 아래를 쥐려 했다.

굴 속에서 지져져 죽는게 그들의 운명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나은 죽음도 있다.

 

“오네챠, 프니프니는 필요없는 레후.“


장녀의 산산히 부서지는 자신의 각오에 아첨을 하면 다시 붙을까 생각해본다.


“오네챠가 울면 싫어인 레후. 그냥 그만 울어줬으면 하는 레흐… 레에엥…”


장녀는 위석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더 편했을것이다.

다른 일가의 여느 구더기처럼, 프니프니나 하라고 하면 편했겠지.

똥노예가 불성실하다고 말하면 더 편했을 거다.

참으로 못된 동생이다. 손윗것의 가슴에 철편을 박아넣다니.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대로 바보처럼 군다면, 내 동생이 아니다. 장녀는 울며 웃었다.

 

마마가 말했다.

삶은 마치 독이 섞인 별사탕과 같아 편한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장녀는 도피하는 대신 현실을 받아들였다. 똑똑한 내 동생.

장녀는 구더기를 안았다. 그리고 달래듯 흔들기 시작했다.


“텟테로게, 텟테로게. 착한 우지챠는 잠을 자는 테치.”


“레에?”


“자장가 대신 잠 오는 이야기 해주는 테치. 마음속에 프니프니 해주는 테치.


눈을 감고, 아침이 되면 마마가 오는 테치. 차녀도 돌아오는 테치. 

눈이 녹고 봄씨가 오면 장난기 많은 따뜻한 바람이 불어 우지챠의 눈썹을 간지럽힐것인 테치…”


“레에, 마음속에 프니프니후? 왠지 따뜻해져 잠이 오는 레후…”

 

그래. 따뜻할 수 밖에. 육친의 품에선 안전하리라.

비록 육체가 아닌 그 순진한 마음만이라도.

장녀는 생각한다. 최소한 그들 일가는 살아있는 동안엔 포기하지 않았노라고.

 

불길이 다가온다. 죽음이 옆구리를 간질인다.

장녀는 자장가를 멈추지 않았다. 구더기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열화 속에서 장녀는 눈을 감았다.

 

 

 

 





 

장녀인데스?

심장이 무너진다. 제발 이젠 괴로움에서 날 놓아주길. 

왜 위석이 부숴지지 않는거지? 이미 죽어서?

죽어서마저 이래야만 하는건가?

 

마마? 마… 마마가 살아있는 레치? 와타시가 살아있는 레치?

죽음이 안식일 줄 알았다.

눈을 뜬다. 더 괴롭히지 말라고 외치기 위해.

그리고 벌리던 입을 다문다. 완전히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온다.

 

그리고 쬐죄죄한 두 실장석이 장녀를 돌아본다.

어째서. 장녀는 무아지경 속에 굴 밖으로 걸어나간다.


다시는 행복한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레? 레벳! 밟지마는 레후! 우지챠 계단이 아닌 레에에!!”

“테?”

 



영문도 모르고 밟혀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구더기를 안아들고,

일가는 한참을 침묵 속에 서로 안고 있었다.

살아나고 살아남은 원리를 이해할 지성은 없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적록색으로 멍들고 응어리진 한은, 불길에 녹아내린듯 하염없이 적록색 눈물이 되어 흘렀다.

“테.. 테에….테에엥....”

“레에에엥…”

 

“....울지마는 데스. 오로롱, 오로…. 데겤?!”

 

“여이 마법사님 보시요! 아이 경치 좋은데도 똥블레세기덜 한마리도 없다더마 구신같이 있네.”

“파! 그러네! 우리 마법사님 거짓말쟁이 만들면 안되지! 당장 뚝배기를…”

“데? 데? 데갸아아아! 살려주는데스으으!”

 

불길 속에서 살아남은 그것들은 지적존재로 인정되지 못하는 족속이다.

따라서 법적으로도 왕령에 의해서도 시민권을 받을 순 없다.

그러나 그들은 부던히 잡일과 보조에 덤벼들었다, 당초 목표대로 뾰족한 쓸모를 입증하진 못했지만, 

수많은 촌극을 연출한 끝에 결국 객식구 노릇을 해도 불편치 않은 구성원이 되는데는 성공했다.

개척도시의 명물인 이 시민권 없는 시민들은 오늘도 내일을 살기 위해 분투중이다.

세모꼴 입을 앙다물고, 총구를 조여매고, 아침마다 서로를 응원하며.

 

“아, 미도리! 간밤에 동생 팔 삐끗한건 다 나았니?”

“덕분에 다 나은데스, 손님상! 주문은 뭘로 하시는데스?”

 

모든 실장이 불타죽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도 사연을 모른다. 아무도 그것들만 살아남은 이유를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모종의 자격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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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마법사가 번역한 고대어 번역본이 세간에 전부 공개되지는 않았다.

용들과 고명한 마법사들이 생명의 용에 대한 진실을 불문율에 붙여 두자고 결론지은 것도 이유 중 하나다.

더 재미있는 이유도 있다. 그가 용을 내쫓는데 사용한 수단이 너무도 악독하여, 

출판본이 발행되기도 전에 전 세계의 용들로부터 항의성명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문을 숨기기 힘들 때도 있다. 그것이 말이 안되거나 자극적일수록 더욱 그렇다.

세상을 전란에 빠트릴 음모의 방아쇠 앞에서, 허무를 깨닫고 개심한 용의 풍문은 단순히 바드의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전해졌다.

모든 분충과 운치 독을 불태우고 한 일가만 남긴 빛의 기둥 이야기는 ‘미도리’, 

즉 ‘가능성’ 이라는 남부유목민 방언인 제 놈의 이름처럼 상상력만 풍부한 어느 실장석의 공상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아득바득 전 세계에서 수천만 마리의 실장석을 긁어모아 용의 영토에 던져버린 투분 마법사’, ‘탁아 마법사’, 

또는 실장법사의 전설은, 바로 그 장대하고 어처구니없는 구석 때문에 마치 기정사실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다.

 

본인 또한 맹목의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찾았지만, 이단마법사는 도시아킨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실장석에게 패배했다고 놀림을 받을지언정 용은 적어도 이 차원을 떠나고 없었으니까. 

이단마법사는 매일 아침 집에 나서기 전 우울한 표정으로 과거의 자신을 저주하고 자신의 별명도 저주했다.

 

마법사는 때문에 자신이 만든 개척도시에만 머무르고 싶어했다. 

수백 수천명이 사는 외진 도시에서도 이 지경이라면, 바깥 세상의 수백만명은 자신을 어떻게 부를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그 용이 말한대로였다. 운명은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끈다.

하필이면 꼬일대로 꼬였다고 생각할 때, 한번 더 매듭을 묶어주면서.

 

이름에는 힘이 있다.

‘실장마법사’라는 오명아닌 오명을 가진 이단 마법사 뉴턴.

그의 모험담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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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대회에 내가 올린거 그대로 올려봄.

조회수 왜 적은지 용량제한때문에 나누다보니까 알겠다 

노잼을 떠나서 조온나 기네 내가 봐도...


이대로 그냥 판타지로 컨셉잡고 카페에 장편스크 계속 달려도 참생친구들 재밌어해줄라나?

아님 걍 접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