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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하성식 함안군수가 아라가야 왕조 계보정리를 위한 재2차 학술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함안군청)

경남 함안군은 1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아라가야 왕조 계보정리’를 위한 제2회 학술대회를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함안군이 주최하고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가 주관하여 마련, ‘안라국(=아라가야)과 ‘임나일본부’’라는 주제로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보다 분명히 밝히고 6세기 전반 안라국과 주변제국의 관계 또한 해명해 남부가야에서의 안라국의 위상과 발전양상을 살펴봤다.


학술대회는 하성식 함안군수의 환영사와 공동연구 경과보고로 시작됐으며, ‘일본에 있어서 ‘임나일본부’ 연구의 성과-1990년 이후를 중심으로-’ 등 6개 분야의 주제발표와 종합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주제발표에서는 선석열(부산대)의 사회로 제1주제 ‘일본에 있어서 ‘임나일본부’ 연구의 성과-1990년 이후를 중심으로-’(濱田耕策, 日本 九州大学), 제2주제 ‘광개토대왕릉비와 송서에 보이는 왜의 가야인식과 ‘임나일본부’’(남재우, 창원대), 제3주제 ‘일본서기의 ‘임나’와 ‘임나일본부’, 그리고 ‘임나의 조’’(박재용,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제4주제 ‘‘임나일본부’의 성립배경과 출자’(백승옥, 부산박물관), 제5주제 ‘가야지역 왜계고분의 피장자와 ‘임나일본부’’(이주헌,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6주제 ‘영산강 유역 왜계고분의 피장자와 ‘임나일본부’’(임영진, 전남대) 등 6개의 주제로 발표 진행되었다.


먼저 제1주제 ‘일본에 있어서 ‘임나일본부’ 연구의 성과 -1990년 이후를 중심으로-’에서는 한일 양 학계의 ‘임나일본부’에 대한 견해차를

좁히기 위한 한 방법으로서 최근에 일본학계에서 진행되는 ‘임나일본부’ 연구현황을 검토했다.


제2주제 ‘광개토대왕릉비와 송서에 보이는 왜의 가야인식과 ‘임나일본부’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었던 것은 '일본서기'

신공기 49년조, '광개토대왕릉비문', '송서' 왜국전 등이었지만 이러한 기록들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었고,

가야지역을 통치했던 기관으로서의 임나일본부는 존재하지도 않았음이 확인되고 있다고 서술됐다.


또한 왜가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은 가야 등을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려는 목적이었고,

그것은 임나일본부의 실체로 보여지는 ‘在安羅諸倭臣’즉 안라(아라가야 ; 함안지역)에 왜의 사신들이 주재했던 것도 마찬가지 목적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제3주제 ‘일본서기의 ‘임나’와 ‘임나일본부’, 그리고 ‘임나의 조’’에서는 현재까지의 연구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일본서기' 임나 관계기사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를 통해 ‘임나부흥’ 및 ‘임나의 조’ 문제를 새롭게 접근해 보았다.


아울러 관련 사료의 성격 구명을 위해 '일본서기' 편찬자 및 편찬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즉 ‘임나의 조’ 기사는 6~7세기 왜국의 대외 관계에서

활약한 길사씨(吉士氏) 집단의 전승을 바탕으로 윤색되었고, 그 실체는 당시 왜국에서 필요로 하던 외교물자였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서술하고 있다.


제4주제 ‘‘임나일본부’의 성립배경과 출자’에서는 '일본서기' 흠명기 2년조에 보이는

‘任那日本府’와 ‘安羅日本府’의 소재지에 대해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안라일본부는 기존의 통설대로 安羅(=아라가야)에 소재함이 틀림없지만,

任那日本府는 加羅國(=대가야)에 소재하고 있었음을 새롭게 밝혀내었다.


덧붙여 이러한 임나일본부가 가라국에 소재하게 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6세기 전반 남가라국(=금관가야)이 신라에 복속되자, 함안의 안라국과 고령의 가라국이 가야제국 세력을 양분하여 주도하게 된다.


이에 백제와 신라의 가야잠식에 대응하여 安羅와 加羅는 각각 倭 세력을 이용해 가야의 독립과 부흥에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안라일본부와 임나일본부는 등장하게 되었던 것으로 서술하였다.


제5주제 ‘가야지역 왜계고분의 피장자와 ‘임나일본부’’에서는 가야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왜계고분을 검토하여 연구를 진행했다.

왜계고분 피장자의 성격은 규슈 지역에 원향을 둔 왜인으로 추정되며, 이들은 신라와 백제의 선진 문물과 기술정보 등의 입수와 물자교류를 위해 남해안의 세력들과 교류를 도모했다.


또한 왜인들의 활발한 활동은 포상팔국의 거점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특히 아라가야권역인 대평리유적과 남강수계의 의령 운곡리고분군 등에서 확인된 왜계고분은 왜인의 일부집단이 안라국과 주변지역에서도 활발한 활동과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암시하며, 이들은 규슈를 중심으로 한 일본열도와 가야 또는 신라지역의 수장들을 연결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서술했다.


제6주제 ‘영산강 유역 왜계고분의 피장자와 ‘임나일본부’’에서는 영산강 유역의 왜계고분을 검토해 연구를 진행했다. 영산강유역권의 왜계고분은 장고분으로 대표되는데 그 피장자는 일본열도의 정치적 통합 과정에서 이주한 규슈 지역의 세력자로 추정된다.


장고분의 피장자는 가야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영산강유역을 선호하였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며, 망명처를 요청 받은 입장에서도 야마토 왕권과의 갈등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망명 세력을 수용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영산강유역권에 왜계 장고분이 축조되었던 6세기초~중엽경까지는 토착적인 마한 세력이 지속됨으로써 ‘백제-야마토’의 교류망과는 구분되는 ‘영산강유역-북규슈’의 교류망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장고분이 축조되었던 영산강유역권을 국가간의 경계가 형성되기 이전 시기에 규슈에서 연쇄적으로 확장했던 경계역으로 본 견해를 비판했다.


이어서 이영식(인제대)의 사회로 서보경(고려대), 이용현(국립대구박물관), 연민수(동북아역사재단), 홍보식(부산박물관), 하승철(경남발전연구원), 김낙중(전북대) 등 토론자 6명과 주제발표를 한 6명이 주제발표 내용을 가지고 종합토론으로 진행하고 간단한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이밖에도 공동연구로 ‘안라국과 ‘임나일본부’, 그리고 백제’(백승충, 부산대), ‘'일본서기' 신공기의 왜의 가야인식과 ‘임나일본부’’(유우창, 부산대), ‘임나일본부’의 활동 양상과 성격’(이연심, 부산대), ‘4~6세기 안라국과 왜의 교류 양상과 성격-토기를 중심으로-’(定森秀夫, 日本 滋賀県立大学) 등 4개의 연구가 소개되어 이번 학술행사의 깊이를 더했다.


‘안라국과 ‘임나일본부’ 그리고 백제’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임나일본부’에 대한 연구현황을 언급함으로써 앞으로의 연구방향을 제시하고, ‘임나일본부’와 안라국의 관련성 및 이들 양자와 백제의 관계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았다.


‘'일본서기' 신공기의 왜의 가야인식과 ‘임나일본부’’에서는 '일본서기' 신공기의 내용과 칠지도를 비교 검토했다. '일본서기'에 최초로 나타나는 숭신기 7월조의 ‘임나’는 당시 왜인들에 의해 함안의 안라국이었던 것으로 인식됐다.


'일본서기' 편찬자가 ‘가야7국 평정’ 기사를 신공기 49년조에 넣은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칠지도의 명문을 무시하고 백제로부터 ‘헌상’된 상징물로 하나의 관념체계를 만들어 낸 왜의 백제에 대한 인식 내지 관념은 안라를 포함한 가야에도 적용되었을 것으로 파악했다.


‘‘임나일본부’의 활동 양상과 성격’에서는 ‘임나일본부’가 ‘안라회의’와 ‘임나복건회의’와 같은 국제회의에 참석하면서, 친신라 외교 활동을 전개했던 것으로 보고, 이들의 활동무대가 안라국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안라국은 ‘안라회의’ 개최 이후부터 친신라 정책을 본격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자국의 독자성 확보에 힘썼기 때문에 당시 안라국에서 활동한 ‘임나일본부’도 안라국의 친신라 외교정책에 동조했을 것으로 서술했다.


’4~6세기 안라국과 왜의 교류 양상과 성격-토기를 중심으로-’에서는 한반도 남부지역 및 일본열도의 ‘함안양식토기’의 분포권에 대한 검토를 통해서 안라국과 일본열도의 교류 양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안라국 관련 문헌 및 고고 자료를 통해 ‘임나일본부’의 문제를 안라국의 발전 양상 및 대외관계의 전개와 함께 검토함으로써, ‘임나일본부’의 실체에 대해서 한걸음 더 접근하고, 종래 연구와 같이 사료상에 내재된 ‘왜의 임나지배 관념이라는 왜곡된 시각’에 벗어나, ‘임나일본부’의 실체를 보다 분명히 밝힐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6세기 전반 안라국과 주변제국의 관계 또한 해명됨으로써, 남부가야에서의 안라국의 위상과 발전양상도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요약 :

한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없다.


한국사학계는 임나일본부 즉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적,외교적,상업적으로 활동했던 왜인들이

묻힌 고분들을 전라도,경상도에서 발굴했고 이를 인정했다.


(이 한반도 남부 왜계 고분들의 연대는 5세기 초부터 6세기 초,중반까지고

야마토인들이 만든 투구,갑옷(대금식판갑,충각부주 투구,미비부주 투구)도 출토된다.)



한국사학계는 임나일본부의 위치를 한반도 남부라고 인정하고있다.


한국사학계는 임나일본부가 한반도를 지배한 식민기관이라는걸 부정할 뿐이다.




* 왜계 장고분(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 대거 축조된건 6세기 초 지만

5세기 중,후반에도 축조된게 확인된 사례가 두 개 있음.

그리고 전방후원분이 전라도에 나타나기전에도 왜계 고분들은 이미 5세기 초부터 전라도에 여럿 나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