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도 이런식으로 일뽕빨다가 진짜로 공안한테 끌려가서 처맞다온거 아닐까
철웅이가 한국에 왜왔을지 생각해봤는데
익명(59.31)
2019-03-15 23:50
추천 18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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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게 사실임
근거는?
안됐지만 중국은 난징대학살을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단다.
https://ja.wikipedia.org/wiki/%E5%94%90%E7%94%9F%E6%99?1931
년 광저우 국민 정부 군사위원회 상무 위원이되었다. 만주 사변 후, 다시 난징 정부에 돌아와 난징 국민 정부 군사 참의원 원장에 복구 맡겨했다. 1935 년 4 월 상장 의 지위를 부여했다. 1937 년 11 월에 일본군이 난징 에 진격했을 때, 그는 사수를 주장하고 스스로 지원해 수도 경비 사령관의 장관이 중국 측의 난징 방어전의 최고 지휘관이되었다. 그는 수도 함께 존망을 같이하는 것을 공언하고 남경에서 장강 이북으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나룻배를 파괴하고 시민의 대부분이 대피 할 수 없도록했다.
당나라 사령관에 의한 수도 방위 전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을뿐 아니라
https://ko.wikipedia.org/wiki/%EB%82%9C%EC%A7%95_%EB%8C%80%ED%95%99%EC%82%B4
난징을 완전히 포위한 일본군은 중국군 사령관에게 투항하라는 경고를 했다. 그러나 난징을 지키고있던 탕셩즈 사령관 휘하의 15만 명의 중국군은 투항을 끝내 거부했다. 중국군의 당시 전략은 도시 밖 요충지를 포기하고 성 안에 고립한 채로 방어하겠다는 전략 방식으로 나가려했었다. 12월 10일, 일본군은 중국군에 "항복하지 않으면 피의 양쯔강을 만들겠다"고 최후통첩을 한다. 결국 역시 중국군은 끝까지 투항을 거부했고, 일본군은 전면적인 공격에 들어간다
→ 이 문구는 왜 뺏냐? 전투 지휘부가 공백이 되버리고 군기가 엉망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에 대한 결사항전은 충분히 있었다.
니가 한 말만 놓고 보면 중국을 겁쟁이로 만들어 놓네. 그렇게 선동과 날조를 해서야 되겠냐? 그리고 링크 되는 걸로 갖고 와서 주장을 해. 어디서 링크가 되지도 않는 걸로 갖고 와서 주장이야.
아 근데 이렇게 말해봤자 소용없겠다. 어차피 'ㄴㄴ' 아니면 '아니지. 그것은 ~' 이렇게 운을 뗄게 뻔하니까.
지가 선동 어쩌구 하면서 취사선택 운운하더니 오히려 할 줄 아는게 취사선택뿐인 불쌍한 조선족ㅠㅠ
ㅋㅋㅋ
편의병전술 했다고 민간인 30만명 학살한게 정당해짐?
같은종족 한테도 버림받는급이면 얼마나 저런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