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웅은 훗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 일제시대에 강도강간살인을 하다니 정말 훌륭한 항일민족투사입니다!


윤철웅 : 그렇습니다


심사위원 비서 : 강도강간살인이 조선독립에 어떤 영향을 줬나요?


심사위원 : 지엽적인 문제에 몰두하고 있구나. 일본제국에 순응하던 다른 조선인들과 달리 조선의 독립의지를 알렷으니 블라블라


윤철웅은 자신이 왜 감옥에 갔는지 알고 있었다.


노인이 불을 껐기때문에 증거가 남았기 때문이다


윤철웅은 애호파 단체를 선동했다.


애호파 단체에게 노인은 일제부역자니 반드시 처단해야하고


자신은 독립유공자라고 소개했다.


애호파 단체는 그의 주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노인이 해방 후 어느 화재 사건 당시, 화재를 진압했지만


사육실장의 응급호흡 보다 사람의 응급호흡을 우선시 했다고 비난받은 사실이 나왔다한다.


노인은 이렇게 말해서 공분을 샀다한다.


노인 : 인간이 사육실장보다 우선시 해야지, 어떻게 사육실장을 먼저 구하나? 인간 구하기도 바쁘다


이 주장은 애호파 단체를 격분시켰다.


애호파 단체는 윤철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노인을 찾아가서 살해 뒤, 실장석을 풀어놓아서 시체를 뜯어먹게했다.


윤철웅도 이건 경악했다.


왜냐하면 애호파 단체는 사육실장과 인간의 대우를 동등, 학대파는 하대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증거 인멸의 달인, 윤철웅의 도움이 없어서 그들은 수사과정에 체포,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의 변호는 애호파 변호사 Z의 변호사 있었으나 아무튼 그렇게 되었다.


윤철웅은 살인방조로 징역을 먹었으며 감옥에서 여생을 마치게 되었다



인물소개


노인


일제시대부터 소방관을 했으며 일제에 부역했다며 훗날 비난받는다


사육실장은 안구하고 사람만 구했다고 애호파 단체에게 살해된 뒤에 시체가 먹힌다


윤철웅


일제시대에 활동하던 항일 독립운동가.

독립군자금을 강도로 벌은뒤 독립운동단체에 송금,

증거 인멸을 위하여 방화도 하며 집이 전소되지 않을때를 대비하여

시간도 하지만 결국 잡힌다. 

해방 이후에도 테러하다가 감옥가고 한국전쟁때 풀려난다.

훗날 애호파 단체를 선동하다가 그들이 너무 흥분하여 살인방조로 감옥가고 감옥에서 여생을 마친다


애호단체

사육실장,양충을 인간과 동일대우해야한다는 실장권리 단체

윤철웅의 선동으로 노인을 죽이고 감옥간다


애호파 변호사

사육실장 납치 살해범을 죽인 R,

양충일가 몰살범 살해한 E,

등을 변호했던 유명 애호파 변호사


이번 애호단체도 변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