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10년 트레이딩 경력과 10년 소설 읽기 경력을 녹여 쓰고 있는데 20장정도 현재 쓰는 중이다
어때 계속 써서 네이버공모전해볼까?
단권으로 출판사 찾아 써볼까?
아니면 때려치고 트레이딩이나 집중할까?
제2장: 확신의 문, 그리고 ‘입장권’을 파는 자들
빗소리는 조금 잦아들었고, 도시는 다시 정상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왕의 눈에는… 정상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붙지 않았다.
사람들은 걷고 있었다.
그런데 왕은 보았다.
누군가는 걷는 게 아니라 끌려가고 있었다.
발이 아니라 마음이, 무엇인가에 잡혀서.
왕과 서기관은 시장 궁궐의 정문 앞에 섰다.
대리석 계단은 넓고, 문은 높았다.
문 위에 새겨진 글자는 여전히 눈부셨다.
확신(確信)
왕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문을 통과하면 뭐가 나오지?”
서기관이 고개를 저었다.
“전하, 저 문을 통과하면 ‘정답’이 나오는 게 아니옵니다.
저 문은… 전하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 커지는 통로입니다.”
그 말이 끝나자, 문 옆에서 누군가가 박수쳤다.
짝. 짝. 짝.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렸다는 듯한 박수였다.
왕이 고개를 돌리자, 기이한 행색의 사내가 서 있었다.
옷은 번쩍였고, 얼굴에는 웃음이 붙어 있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입만 웃었다.
사내는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오오오— 마침내 왕께서 오셨군요!
저는 이 궁궐의 안내자, 입장권 장사꾼입니다.”
그의 어깨 너머로, 작은 상점이 하나 보였다.
간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 번만 맞히면 됩니다.”
서기관의 눈이 싸늘해졌다.
“전하, 저 자가 바로…
입장권을 파는 자들 중 가장 오래된 종류입니다.”
장사꾼은 서기관을 향해 혀를 찼다.
“아, 또 규율이냐? 또 통제냐?
요즘 젊은 왕들은 재미가 없어.
왕이란 건 원래… 크게 웃고, 크게 울고, 크게 베팅하는 거야!”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 순간, 공기 중에 수십 개의 반짝이는 표가 떠올랐다.
티켓이었다.
각 티켓에는 다른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번엔 다르다.”
“이번엔 확실하다.”
“이번엔 내 차례다.”
“이번엔 복구한다.”
“이번엔 올인이 답이다.”
왕은 무심코 티켓 하나를 잡으려 했다.
그때 서기관이 왕의 손목을 붙잡았다.
“전하.”
그 한 마디가 칼처럼 단단했다.
“저 티켓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옵니다.
전하의 내일로 결제하는 것입니다.”
장사꾼은 낄낄 웃었다.
“내일? 그런 건 없어.
시장에서 내일은 항상 오늘로 땡겨오거든.”
왕의 눈빛이 흔들렸다.
장사꾼의 말은 달콤했다.
달콤함은 늘 무섭다.
달콤함은 늘 진짜 같아서.
왕은 한 발 내디뎠다.
그때였다.
바닥이 “살짝” 꺼졌다.
정말 살짝.
눈치 못 챌 만큼.
그런데 왕의 심장이 먼저 알아챘다.
서기관이 낮게 말했다.
“함정입니다, 전하.
첫 발이 어긋나는 순간, 궁궐은 전하의 리듬을 깨뜨립니다.”
왕은 발을 거두려 했다.
하지만 바닥에서 손이 올라왔다.
수십 개의 손.
손톱엔 숫자가 박혀 있었다.
1, 2, 3, 4…
손들이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 번만.
한 번만.
한 번만.”
왕의 목이 말랐다.
서기관이 열쇠—통제—를 꺼냈다.
열쇠가 빛났다.
빛이 정리된 공기로 변해 퍼졌다.
바닥에서 올라오던 손들이 서서히 멈췄다.
장사꾼이 인상을 찌푸렸다.
“또 그거냐? 통제? 규율? 관찰?
그거 해서 뭐하나, 왕?
재밌는 건 다 포기하고… 그냥 ‘살아남기’만 하면 왕좌에 앉나?”
서기관이 대답했다.
“예.”
단 한 글자.
장사꾼은 잠깐 얼어붙었다가, 비웃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왕에게는 왕의 방식이 있고, 나에겐 내 방식이 있지.”
그는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며, 문을 하나 더 만들었다.
확신의 문 옆에, 아주 비슷한 문.
하지만 문 위 글자는 달랐다.
승률(勝率)
장사꾼이 달콤하게 말했다.
“여긴 더 합리적인 문이야.
확신은 싫다며? 그럼 ‘확률’로 와.
통계, 데이터, 승률, 백테스트…
왕이 좋아하는 단어들로 포장했지.”
왕의 눈이 잠깐 멈췄다.
“승률…?”
장사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률이 높으면, 크게 걸어도 돼.
높은 승률이면, 올인도 과학이야.”
서기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전하.
저 문은 확신의 문보다 더 위험하옵니다."
왕이 물었다.
“왜?”
서기관이 답했다.
“확신의 문은 ‘감정’으로 속입니다.
하지만 승률의 문은… 이성으로 속입니다.”
왕이 숨을 들이켰다.
서기관은 왕의 귀에 속삭였다.
“전하가 지켜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숫자를 해석하는 순간에 들어오는 ‘자기 확신’에 대한 경계심입니다.”
그때, 시장 궁궐의 어딘가에서 종이 울렸다.
딩—.
그리고 하늘에서 또 하나의 조칙이 떨어졌다.
이번엔 붉은 잉크였다.
“오늘, 왕이 시험받는다.”
“통제를 잃으면 왕이 아니다.”
왕은 조칙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서기관.”
“예, 전하.”
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저 두 문을 통과하지 않고도, 궁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나?”
서기관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아주 짧게.
“있사옵니다.”
서기관은 왕을 데리고 정문을 벗어나, 궁궐의 옆길로 향했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골목.
화려한 조명도 없는 통로.
거기엔 작은 철문 하나가 있었다.
너무 작아서, 왕이 아니면 눈에 안 띄는 문.
문 위에는 글자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
“건너뛰기(跳躍)”
왕이 문손잡이를 잡는 순간, 문 뒤에서 낮은 웃음이 들렸다.
“후후… 왕이군.”
그리고 문틈 사이로, 검은 눈이 하나 비쳤다.
서기관이 한 발 앞에 섰다.
“전하,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건 뭐지?”
서기관이 말했다.
“전하가 가장 자주 싸우는 적.
하지만 전하가 가장 자주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는 적.”
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나는… **포모(FOMO)**다.”
왕의 손이 잠깐 떨렸다.
포모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열어.
열면 네가 놓친 것들이 보일 거야.”
서기관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말했다.
“전하.
문을 여는 건 선택이옵니다.”
왕이 이를 악물었다.
“그럼… 열어야지.”
서기관이 왕의 손을 잠깐 덮었다.
“아니옵니다.”
왕이 고개를 돌렸다.
서기관은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전하께서 오늘 배워야 하는 건 ‘열기’가 아니옵니다.
오늘 배워야 하는 건…”
서기관이 천천히 말했다.
“열지 않고도, 왕좌로 가는 법이옵니다.”
문 안쪽에서 포모가 웃었다.
“그게 가능할까?”
서기관이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전하가 ‘왕’이기만 하다면.”
제3장: 세 개의 문, 하나의 왕
철문 손잡이는 차가웠다.
문 위에는 여전히 새겨져 있었다.
건너뛰기(跳躍)
문틈 사이로 비치던 검은 눈—포모(FOMO)—는 웃었다.
그 웃음은 “환영”이 아니라 “유혹”이었다.
“열어.
열면 네가 놓친 것들이 보일 거야.”
왕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서기관은 그 떨림을 놓치지 않았다.
서기관은 언제나 ‘왕의 손’부터 본다.
손이 흔들리면, 마음이 이미 반쯤 들어가 있다는 뜻이니까.
“전하,” 서기관이 말했다.
“여긴 ‘싸워서 이기는 방’이 아니옵니다.
여긴 ‘열면 지는 방’이옵니다.”
포모가 낄낄대며 말했다.
“그럼 열지 말아봐.
열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놓친 자’야.”
그 말은 창처럼 정확했다.
사람은 돈을 잃어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놓쳤다’는 단어에 찔려서 무너진다.
왕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좋아. 그럼 보자.”
서기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왕이 “보자”라고 말할 때의 위험을 서기관은 안다.
그 말은 종종 “들어가자”의 다른 표현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의 “보자”는 달랐다.
왕의 손엔 열쇠가 있었다.
통제(統制).
왕은 열쇠를 문에 꽂지 않았다.
대신 열쇠를 자신의 심장 쪽에 가까이 댔다.
“문을 열진 않는다.
대신… 너를 본다.”
그 순간, 포모가 웃음을 멈췄다.
“뭐?”
왕은 천천히 말했다.
“나는 ‘놓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손이 왜 떨리는지’를 본다.”
그 말이 끝나자, 철문은 저절로 갈라지듯 열렸다.
억지로 열어젖힌 게 아니었다.
포모가 만든 환영이, 규율 앞에서 균열 난 것이다.
문 안은 방이 아니라 전시관이었다.
유리 진열장마다 하나씩, 왕이 놓쳤던 장면들이 박제돼 있었다.
“그때 들어갔어야 했는데.”
“그때 더 걸었어야 했는데.”
“그때 올인이었는데.”
“그때만 아니었으면…”
진열장 뒤편에는, 줄지어 선 “유령들”이 있었다.
놓친 기회들의 유령.
각 유령은 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왕의 실패한 미래들, 왕의 허세로 만든 미래들, 왕의 분노로 만든 미래들.
유령들이 일제히 속삭였다.
“증명해.”
“이번엔 보여줘.”
“너는 왕이잖아.”
“왕이면, 크게 움직여.”
왕의 눈이 한순간 뜨거워졌다.
증명.
그 단어는 늘 왕을 과열시켰다.
서기관이 왕의 옆에서 낮게 읊조렸다.
“전하.
저 유령들은 전하를 이기려는 게 아니옵니다.
전하를 ‘전하 자신’에게 지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포모가 뒤에서 속삭였다.
“봐.
너는 이미 알아.
너는 너 스스로에게 ‘큰 장면’을 보여주고 싶잖아.”
왕의 목구멍이 타들어갔다.
이 방은 칼로 베면 끝나는 적이 아니었다.
베어버리면 오히려 더 커진다.
‘기억’은 베면 튄다.
왕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유령들에게 말했다.
“증명은 없다.”
유령들이 동시에 비웃었다.
“그럼 넌 뭐야?”
왕은 대답했다.
“나는 오늘 폭주만 막는다.”
그 말이 떨어지자, 유령들이 멈칫했다.
포모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건… 도망이야.”
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왕의 법이다.”
서기관이 열쇠를 들어 바닥에 살짝 찍었다.
쾅— 같은 소리가 아니라,
“딱” 하고 정갈한 소리였다.
그 순간, 전시관의 진열장들이 하나둘 흐려졌다.
유령들이 흐려졌다.
포모의 방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봉인되는 느낌이었다.
서기관이 말했다.
“전하께서 방을 ‘정복’하신 것이 아니옵니다.
전하께서 방을 ‘관리’하신 것이옵니다.”
포모가 마지막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
“그래도 넌 언젠가 열 거야.
사람은 결국 놓친 걸 보게 돼.”
왕이 대답했다.
“열 수도 있지.
하지만… 내가 정한 때만."
그때였다.
궁궐 깊은 곳에서 종이 울렸다.
딩—.
서기관의 눈이 움직였다.
왕의 눈도 움직였다.
종소리는 어디선가 “기회가 왔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종소리는 “함정이 깨어났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서기관이 낮게 말했다.
“전하.
승률의 문이 전하를 부르고 있사옵니다.”
승률의 문 앞은 시장의 중심 광장에 있었다.
확신의 문과 너무 닮았다.
다만 더 깨끗했다.
더 논리적이었다.
더 품위 있었다.
문 위의 글자—승률(勝率)—은 칼로 새긴 듯 날카로웠다.
문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줄의 사람들은 “감정”으로 달려오지 않았다.
그들은 “근거”를 들고 달려왔다.
누군가는 표를 흔들었다.
“내 승률은 높다.”
누군가는 두꺼운 책을 흔들었다.
“통계가 말한다.”
누군가는 그래프를 흔들었다.
“확률이 증명한다.”
그리고 중앙, 제단처럼 생긴 곳에
장사꾼—입장권 파는 자—가 서 있었다.
“보셨지요, 왕?”
그가 말했다.
“이건 확신이 아니라 과학입니다.
과학엔 죄가 없죠.
그러니… 크게 걸어도 됩니다.”
서기관이 왕에게 바싹 붙어 속삭였다.
“전하.
저 문은 ‘숫자’로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사람은 숫자로 무너질 때, 더 늦게 깨닫습니다.”
왕은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승률이 높으면, 크게 걸어도 된다는 말…
그럴듯하긴 하다.”
장사꾼이 미소 지었다.
“그렇죠.
승률이 높으면 ‘올인’은 무식이 아니라 ‘최적화’가 됩니다.”
왕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왕이 들어간다.”
“왕이 승률로 간다.”
그 순간, 왕은 발을 멈췄다.
발밑에서 아주 작은 글씨가 보였다.
대리석 바닥에, 누군가 일부러 안 보이게 새겨 둔 글씨.
“승률은 왕을 안전하게 하지 않는다.”
“승률은 왕을 과감하게 만든다.”
왕은 그 문장을 읽고, 웃었다.
웃음이 아니라—깨달음이었다.
왕이 장사꾼을 바라봤다.
“너, 승률을 파는 게 아니구나.”
장사꾼이 태연하게 말했다.
“저는 가능성을 팝니다.”
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는 ‘면죄부’를 판다.
사람들이 크게 베팅해도 죄책감이 덜하도록.”
장사꾼의 얼굴이 잠깐 굳었다.
“왕, 말 조심해.”
왕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왕의 목소리는 조용했다.
조용한 목소리가 가장 위험하다.
“승률이 높으면, 크게 걸어도 되는 게 아니다.
승률이 높아질수록…
내가 지켜야 할 건 더 단단해진다.”
서기관이 옆에서 딱 한 마디를 보탰다.
“전하의 계좌가 무너진 순간은
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증명하려 했을 때였사옵니다.”
장사꾼이 이를 드러냈다.
“그럼 넌 뭘 할 건데?
다들 저 문으로 들어가.
왕도 결국 들어가게 돼.”
왕은 손에 든 열쇠—통제—를 문에 대지 않았다.
대신 문 위의 글자 “승률”에 대고, 아주 가볍게 톡 건드렸다.
그 순간, 문 전체가 떨렸다.
사람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왕이 말했다.
“내가 파괴할 건 문이 아니다.”
왕은 장사꾼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파괴할 건…
‘승률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착각’이다.”
그러자 승률의 문이 갈라졌다.
대리석처럼 보였던 문이 사실은
얇은 유리 조각들이 겹친 것이었다는 듯이,
금이 퍼져나갔다.
그 금 사이로 보이는 건 왕좌가 아니었다.
그 안엔 무수한 작은 문들이 있었다.
“이번엔 더 크게.”
“이번엔 더 빠르게.”
“이번엔 더 자주.”
“이번엔 더 확신으로.”
승률의 문은 하나가 아니라
사람을 과열시키는 문들을 숨기고 있었다.
왕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 한 마디가 규율처럼 떨어지자,
문이 와장창 부서졌다.
하지만 놀라운 건, 부서진 조각들이
사람들을 베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각들은 바닥에 떨어지며
모두 같은 문장으로 변했다.
“좋은 자리보다 계좌 안정이 먼저다.”
서기관이 낮게 웃었다.
“전하.
문을 부순 것이 아니라…
문이 가지고 있던 ‘거짓말’을 드러내셨사옵니다.”
장사꾼은 뒷걸음질 치며 사라졌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독처럼 흘렀다.
“그럼 왕은 어디로 가나?
확신도 아니고 승률도 아니면…
왕좌는 못 가지.”
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왕은 발밑을 보았다.
부서진 문 조각 아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바닥에
작은 홈이 하나 있었다.
홈은 길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줄을 서느라 발로 밟고 지나가서
더 깊게 패인 흔적.
서기관이 숨을 들이켰다.
“전하… 저건…”
왕이 말했다.
“숨은 길.”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하.
아무도 안 보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
‘화려한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길.”
그 길의 시작엔 아주 작은 글씨가 있었다.
관찰(觀察)
사람들은 문만 보느라 저 글씨를 못 봤다.
문은 화려했고, 길은 초라했으니까.
왕이 그 길로 발을 디뎠다.
그 순간, 궁궐 전체의 소리가 멀어졌다.
웅성거림이 희미해지고
광장의 열기가 빠지고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길은 좁았다.
벽은 거칠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안전했다.
서기관이 말했다.
“전하, 이 길은 ‘승리’로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왕이 걸으며 물었다.
“그럼 어디로 가는 길이지?”
서기관이 대답했다.
“전하가 전하를 잃지 않도록 만드는 길.
그리고… 전하가 왕좌를 ‘받는’ 게 아니라
왕좌를 ‘만드는’ 길.”
길의 끝에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문은 없었다.
그냥 열려 있었다.
그 방 안에는 왕좌가 없었다.
대신, 빈 바닥 한가운데에
낡은 의자 하나가 있었다.
누가 봐도 싸구려였다.
그런데 왕이 보기에 그 의자엔
이상한 기운이 있었다.
서기관이 낮게 말했다.
“전하.
이게 첫 번째 왕좌이옵니다.”
왕이 멈췄다.
“이게… 왕좌?”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왕좌는 화려해서 왕좌가 되는 게 아니옵니다.
왕이 앉아서… 왕좌가 되는 것이옵니다.”
왕이 의자에 앉았다.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딱히 빛이 터진 것도 아니고
천둥이 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왕의 심장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주 먼 곳에서
또 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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