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있는 글 중에서 프로모션 할 때 룩을 뒤집어서 쓰는 거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그거와 관련된 사건이 생각나는게 있었음
여기 갤러들도 체스 애호가들이니까 재미있어할 거 같아서 글재주는 없지만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함.
2017년 캐나디안 챔피언십에서 GM Bator Sambuev 하고 IM Nikolay Noritsyn 이 결승에서 맞붙었음. 둘 다 캐나다 챔피언을 먹은 적이 있는 강호들이었지. Sambuev는 두 번, Noritsyn은 한 번.
결승은 단판제가 아니니까 당연히 둘이 여러 게임을 했는데 막상막하였음. 네 번의 15+10 래피드 게임에서 둘이 각각 2승을 챙겼고, 첫 번째 5+3 블리츠 게임에서는 무승부였지.
그리고 두 번째 블리츠 게임이 시작됐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거야.
Sambuev가 백, Noritsyn이 흑이었는데, 나같은 찐따가 분석해서 설명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어쨌든 게임은 흑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어.
기보를 보면 알겠지만 49수가 끝난 상황을 보면 백은 룩과 6번째 랭크에 지나친 폰이 있었고, 흑은 나이트와 2번째 랭크에 지나친 폰이 두 개나 있었다. 흑의 지나친 폰 중 하나는 룩의 위협을 받고 있었지만 어쨌든 50번째 수에서 흑이 퀸으로 프로모션하기만 하면 흑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지.
이제 50번째 수가 시작됐어. 백은 지나친 폰을 7번째 랭크로 밀었고. 흑도 당연히 폰을 끝까지 밀어서 퀸으로 프로모션하려고 했다.
문제는 시간이 6초밖에 안 남은 급박한 상황에서 Noritsyn이 급하게 따먹혔던 룩을 갖고 와서 뒤집어 놓고 퀸이라고 선언했다는 거야. (유튜브 영상에서는 14분 16초 정도임)
이 때 심판이 시계를 멈추고 개입했어. "노노, 그거 illegal move임. 니가 갖다놓은거 퀸 아니라 룩이야. 룩으로 제대로 놓고 경기해" Noritsyn 반응이야 뻔하지 "WTF?"
심판이 왜 이랬느냐 하면 FIDE의 Law of Chess 중 6.11.2항에 '프로모션 할 때 해당하는 기물이 없을 경우 시계를 멈추고 심판에게 기물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하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야. 원문은 이래. "A player may stop the chessclock only in order to seek the arbiter’s assistance, for example when promotion has taken place and the piece required is not available."
(참고로 이야기하면 미국 체스연맹 USCF에서는 프로모션 할 때 룩을 뒤집어서 쓰는걸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USCF와 FIDE 규칙 차이점 중 가장 두드러진 것 중 하나라고 하네.)
이거 때문에 소동이 좀 일어났지만 결국에는 흑은 룩으로 프로모션 한 것으로 해서 경기가 재개됐지. 물론 51번째 수에서 백은 당연히 퀸으로 프로모션해서 기물 포인트상 유리한 위치를 점했고, 이후에 흑이 분전했지만 결국 64번째 수에서 항복하고 말았어. 이 경기에서 이겨서 Sambuev는 세 번째 캐나디안 챔피언이 됨과 동시에 체스 월드컵 자동진출권을 획득했지.
이렇게 얘기가 끝나면 그냥 규칙을 착각한 Noritsyn이 중요한 경기에서 승리를 상대에게 헌납한 것 같지. 하지만 실제로 체스 커뮤니티에서 주로 비난받은건 Sambuev였어. 왜냐고? 흑이 프로모션하려고 할 때 따먹힌 흑 기물 사이에 당연히 있어야 할 퀸이 없었거든. 6초밖에 안 남은 급박한 상황에서 당황한 Noritsyn이 룩을 뒤집어서 놓았던거지.
그럼 흑 퀸은 대체 어디에 있었냐. 바로 상대편 Sambuev의 손 안에 있었어. 유튜브 영상에서는 8분 31초쯤인데, 28번째 수에서 폰으로 흑 퀸을 먹은 후부터 그걸 계속 손에 들고 있었던거지. 그리고 50번째 수에서 흑이 룩을 뒤집어서 놓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왼손으로 슬쩍 흑 기물 사이에 퀸을 내려놔. (영상에서 보이지만 흑의 다른 기물도 들고 있었다. 비숍같아 보이는데 맞는지 모르겠네.)
이거 때문에 Sambuev가 욕을 많이 먹었던거야. 일부러 상대가 퀸으로 프로모션 하지 못하도록 한 거 아니었냐는거지. 규칙에 따먹은 말을 꼭 어디에 놓으라는 것까지 정해놓진 않았으니까 치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비신사적인 행동이라고 볼 여지는 충분하니까. 하지만 Sambuev는 이 사건에 대한 chess.com과의 인터뷰에서 "난 내 경기에 집중하느라 퀸을 들고 있다는걸 몰랐다. 나도 나중에 동영상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라고 말했어.
물론 Sambuev가 대부분의 욕을 먹는 와중에도 Noritsyn의 잘못이 확실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 규칙은 규칙이니까 퀸이 필요한데 없었으면 시계를 멈췄어야 했다는거지. 규칙을 지키지 못해서 불이익을 본 거는 자기 책임인거고.
이렇게 체스 커뮤니티에서 쌈박질이 벌어지고 있을 때 Noritsyn은 이 승부를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캐나다 체스 연맹의 소청위원회? National Appeals Committee에 청구했는데 결국은 기각되는 걸로 사건은 종결됐어.
난 이 사건을 처음 들었을 때 나름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자리에 앉아서 두기만 하면 되니까 체스랑 의도적인(?) 비신사적 행위는 별로 연관이 없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그런게 확연하게 드러나는 사건을 접하니까 이 바닥도 이기려고 치사한 짓도 꽤 하는 프로의 동네라는걸 새삼 느끼게 되더라고.
그리고 게임 끝나고 플레이어끼리 악수하는데, 그 악수도 '진짜 잘뒀다' 내지는 '좋은 경기에 감사한다' 이런 뜻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의례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영상에서도 흑이 항복하면서 악수하자고 손 내미는데, 나같으면 그냥 킹 쓰러트리고 말지 손내밀기 쉽지 않았을듯.
아래는 해당 경기 기보다. 나같은 찐따는 잘 모르겠지만 저 사건을 빼고서라도 꽤 재미난 기보라고 하네.
[Event "Canadian Championship Playoff"]
[Site "Montreal"]
[Date "2017.07.01"]
[Round "?"]
[White "Sambuev, Bator"]
[Black "Noritsyn, Nikolay"]
[Result "1-0"]
[WhiteElo "2539"]
[BlackElo "2473"]
[ECO ""]
[CurrentPosition "8/7R/P7/6p1/1p2kn2/8/3p1K1p/8 w - - 0 50"]
1.Nf3 d5 2.d4 c6 3.c4 e6 4.Nc3 Nf6 5.Bg5 Nbd7 6.cxd5 exd5 7.e3 Be7 8.Bd3 O-O 9.O-O Re8 10.Qc2 a5 11.Ne5 Nf8 12.f4 N6d7 13.Bxe7 Qxe7 14.Rf3 f6 15.Nxd7 Bxd7 16.h3 g6 17.g4 Qd6 18.Qf2 Ne6 19.Kh1 c5 20.Rg1 cxd4 21.exd4 Nf8 22.h4 Re7 23.f5 g5 24.hxg5 fxg5 25.f6 Rf7 26.Qe3 Ne6 27.Qe5 Qxe5 28.dxe5 Bc6 29.Kh2 Re8 30.Rf5 h6 31.Ne2 Nc5 32.Nd4 Bd7 33.Bb5 Bxb5 34.Nxb5 Nd3 35.Nd6 Rxe5 36.Nxf7 Kxf7 37.Rd1 Rxf5 38.gxf5 Nf4 39.Rc1 Kxf6 40.Rc7 d4 41.Rxb7 d3 42.Rd7 Kxf5 43.Kg3 Ke4 44.Kf2 h5 45.a4 h4 46.b4 axb4 47.a5 h3 48.a6 h2 49.Rh7? ( 49.a7 h1=Q ( 49...h1=N+ 50.Kg1 { and White still wins } ) 50.a8=Q+ Nd5 51.Qxd5+ Kf4 52.Qxh1 ) 49...d2 50.a7 d1=R 51.a8=Q+ Nd5 52.Rxh2 Rd2+ 53.Kg3 Rd3+ 54.Kg4 Kd4 55.Qa7+ Kc4 56.Qa6+ Kd4 57.Qa1+ Nc3 58.Rh8 Kc4 59.Qb2 Rd4+ 60.Kxg5 Rd5+ 61.Kg6 Rd6+ 62.Kf7 Rd7+ 63.Ke6 Rc7 64.Rh4+ 1-0
나름 간략하게 쓴다고 했는데 갤러들 재미있었나 모르겠네. 나중에 또 체스계 재미난 사건 생각나거나 알게 되면 적어볼께.
재밋당 개추 - dc App
굳굳 - dc App
프로모션 사건 그것도 있음 나카무라 히카루가 시간 초 단위로 남았을 때 프로모션하려고 말 집어서 보드에 놨는데 퀸이 아니라 나이트였던거
눈을 보드에 고정시키고 손만 움직여서 딱 집어서 놨는데 나이트여서 해설진이랑 상대까지 순간 당황
본인도 황당한 실수였다고..
ㄴ ㅇㅇ 맞음. 그런데 그때는 퀸으로 프로모션하나 나이트로 프로모션 하나 아무 상관 없었던 걸로 암. 어차피 그 파일에 상대 룩이 있어서 퀸으로 프로모션 했으면 바로 먹히는 거였음.
https://www.youtube.com/watch?v=B2ZhSi743rM
이거 말하는거 아님?
근데 저 캐나디안 챔피언십 경기 영상 보면 결승 플레이오프인데 세팅이 너무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음? 보드도 종이같은거 같고, 선수들 복장도 너무 후리하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변이 넓은 나라인데도 저러네. 일부러 격식 안차리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