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처지가 비슷하다

기운화는 감방 밖으로 나와 부적이 잔뜩 붙여진 굵은 철장 사이로 머리를 넣어 안을 올려 보았다. 교인은 두 손이 매달려 있는 채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그의 어깨뼈는 현철에 꿰여 있었다. 쇠사슬 하나가 푸른 색과 흰 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꼬리를 휘감아 그의  모든 움직임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의 온몸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치 쇠사슬을 피로 담가버릴 듯이. 흐릿한 달빛 아래 보이는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기운화는 어요곡에 들어온 지 이미 여러 해였고 피비린내가 나는 광경을 수없이 보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저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살벌한 풍경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거와는 별개로 이 교인의 용모에 기운화는 넋을 잃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사람이, 혹은 물건이 있어 그 속에서는 일이 잘 될 때는 잘 될 때만의 두려움이, 일이 안 풀리 때는 안 풀릴 때만의 조바심이 자연히 생기기 마련이다.(이거 뭔말인지 모르겠고 갑자기 이 순간에 왜 튀어나오는지 모르겠음..빼버릴까 하다가 그냥 넣음..ㅡㅡ)

기운화는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이 한 걸음은 마치 교인의 경계선안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속눈썹이 가볍게 떨리고 눈꺼풀이 올려지더니 사람을 홀릴 것 같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차가운 푸른 눈동자에 광채가 돌더니 기운화의 몸에 시선이 내려앉았다. 눈동자에 지하 감옥안에 어두움과 불꽃이 비춰졌다. 흰 옷을 입은 흐릿한 형체와 함께. 처진 입가에 차가움이 서렸다.

그에게는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위엄과 타고난 귀티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위협적이었고 경계심을 드러냈다.살기와 냉담함이 극에 달해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 마치 차가운 칼날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교인은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교인을 데려온 태감은 이 교인에 대해 그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몸 상태는 어떠한지, 요력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당연하게도 여요곡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교인이 말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조차도.

교인이 입으로 말을 내뱉으라는 것이 그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라는 것일까?

기운화는 교인의 시선에 물러서지 않고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섰다. 봉인된 감방 난간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해서 그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두 눈이 서로 마주치고 각자 생각에 잠겼다. 기운화는 이 교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기이하게도 자신의 지금 처지와 앞에 있는 이 요괴가 서로 닮았다고 느껴졌다.

궁지.

어요곡에 남는다 해도 지내기 어려울 것이고 떠난다고 해도 무슨 좋은 결과가 있을까? 만약 어요곡이 교인을 길들이지 못한다면, 교인은 아마도 북쪽 여교대(驭妖台), 동쪽의 어요도(驭妖島), 혹은 서쪽에 있는 여요산(驭妖山)에 보내질 수 있었다. 이 곳은  조정의 관리 하에 요괴를 다룰 수 있는 능력자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된 장소였다. 이제는 천하에 오직 이 네 곳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느 곳이나 요괴를 곱지 않게 대했다.
기운화가 현재 직면한 이 상황이 그와 무엇이 다를까?

임호청, 임창란.

임호청은 그녀를 경계하고 질투하여 없애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악독했으며 임창란은 온갖 극악무도한 수단을 다해 그녀를 가지고 이용만 했다. 그저 그녀의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짜지 못해 한스러워할 뿐이었다.

그녀가 제멋대로 어요곡을 빠져나간다면, 몸 안의 독이 발작하는 것은 물론이요,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황실은 그녀가 어요사들 사이에서 반역을 했다고 간주할 것이다. 4대 어요 영지에서는 다시는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녀는 이 감옥에 갇힌 요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하나는 권력의 노리개요, 하나는 남의 손에 움직이는 장기짝일 뿐이었다.

“뚝뚝”

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감옥 안에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기운화의 시선이 아래로 향해 단단한 가슴과 근육이 뚜렷한 아랫배를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마음속으로 감탄했다. 이 교인은 장난 아니게 힘이 있어 보이잖아.

  밑으로 더 내려다보니 그 꼬리는 낮에 처음 보았을 때처럼 매끈매끈하지 않았다. 수분이 부족했고 거기다 낮에 받았던 번개로 인해 몇몇 비늘조각들이 솟구쳐 올라 있었고 살은 찢기고 터져서 보기에 좀 무서운 느낌이 있었다.

기운화는 요괴를 길들일 때, 사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손바닥을 한번 돌리자 손바닥 한가운데서 저절로 맑은 샘이 나왔다. 손을 휘두르자 샘물이 공중으로 떠가더니 교인의 꼬리를 휘감아올렸다.
교인을 동정한 것인지 그와 비슷한 처지인 스스로를 동정한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교인은 몸을 조금 움직여 무의식적으로 저항했다. 그가 가볍게 움직였음에도 몸에 있던 현철이 ‘와르르’ 큰 소리를 냈다. 그 순간 법술에 걸려 있던 현철이 즉시 번개를 내리쳤다 ‘타다닥타다닥’ 소리가 잠시동안 작렬했다. 살갖으로 스며들어 교인의 뼛속까지 쿡쿡 쑤셔댔다. 교인은 온몸을 거의 기계처럼 덜덜 떨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온몸의 상처에서 또다시 피가 줄줄 흐르게 내버려두었다. 이런 고통을 그는 혼자 묵묵히 견디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아파할 힘이 없는 건지도 모른다.

“움직이지마.”

기운화가 입을 열자, 여느 여인들보다는 약간 낮은 목소리가 감옥안을 맴돌았다. 부드러움이 약간 느껴지는 듯했다.

“널 해치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기운화는 시선을 또 위를 올려 교인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법술이 그녀의 손에서 계속 이어지자 그녀의 손바닥 한가운데서는 그녀의 체온과 비슷한 맑은 샘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와 교인의 꼬리 위를 덮었다. 맑은 물의 촉촉함으로 인해 솟구쳐올라 있던 비늘들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한 조각 한 조각씩 빠른 속도로 스스로 아물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은 비늘은 재빨리 착 몸에 달라붙어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눈부신 빛을 내고 있었다.

차디찬 교인의 눈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났는지 거의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없다는 듯이 기운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운화는 그가 대답할 거라고 꿈도 꾸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거두더니 쥐먹을 꼭 쥐자 샘물이 즉시 사라졌다. 그녀는 교인을 바라보며,

“넌 벗어나고 싶어. 그렇지?”

교인은 기운화의 말을 전혀 못 들은 것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벗어나고 싶어.”

그녀가 속삭이듯이 작은 목소리로 이 말을 했다.

“말 잘 듣자구나, 그럼 좀 괜찮아질 거야.”

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들고 교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고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왔을 때와 같이 발길 가는 대로 걸어 나갔다.

지하 감옥을 벗어나 기운화는 머리를 들어 하늘 위의 밝은 달을 바라보았다. 계곡 늘 있는 꽃향기가 코 끝에 느껴지자 그녀는 숨을 깊이 들이 마셨다. 비록 이 남쪽 어요곡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기운화는 도리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따스한, 일년 내내 꽃이 피어 있는 이 남쪽이 좋았다. 그리고 항상 자유롭게 부는 따뜻한 바람도.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줄곧 천천히 계획을 세워 스스로 이 어요곡에서 안전하게 몸을 빠져나올 수 있도록 준비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보아하니 그녀가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는 듯했다.

임창란이 정해 준 내일부터 시작될 다툼은 그녀가 피할 수 없었다.
그럼 그냥 참가할 수밖에.  


그녀의 적수는 임호청이 아니라 바로 여풍당 가운데 줄곧 앉아 있는, 늙었다고는 하나 눈빛은 음험한 곡주 임창란이었다.

임창란은 오래 전에 그녀에게 말했었다. 기운화 몸에 있는 독은 해약이 있는데 한 달에 한번 한 알씩 복용할 필요없이 단지 그가 그녀에게 시킨 일을 끝까지 잘 처리하기만 하면 그는 마지막 해약 한 알을 그녀에게 줄 수 있다고.

기운화는 한때 임창란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심지어 해약의 존재에 대해서도 의심을 했다. 하지만 상관없다. 해약이 없다 치더라도 그녀가 매달 독성을 억제하는 약처방만 손에 넣는다면 바로 이 어요곡을 떠날 것이다. 심지어 처방전이 없어도 괜찮았다. 단지 발작을 늦출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약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것만 있다면 다른 사람을 시켜 연구하도록 한 후 해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설사 만보를 양보한다 할지라도 해약만 손에 넣는다면 그녀는 어요곡을 떠날 것이다.

그녀는 참을만큼 참았다. 이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참을만큼 참았단 말이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어떤한 통제나 지배도 없이 자기가 보고 싶은 달을 보고 꽃을 감상하고 가보고 싶었던 온갖 세상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와 임창란은 최후의 일전을 치룰 때가 되었다.

바로 이 교인이 시작이었다.

“금상.”

  기운화는 몸을 숙여 길가에 있는 꽃잎을 입술에 살며시 갖다 대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멀리서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꽃잎이 날리고 꽃도 부드럽게 흔들렸다. 기운화가 방금 한 그 말이 어디로 전했는지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