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사람의 말을 하다


기운화는 본래 오랫동안 물을 찾아 헤맬거라 생각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밑단의 실이 다 풀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거대한 구덩이를 보았다. 금빛으로 천지인 이곳과 달리 이 움푹 패인 땅에는 놀랍게도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푸르른 풀밭이었으며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오목한 구덩이 한가운데에는 작은 집 한 채도 있었다.

이곳의 하늘과 땅이 금빛으로 빛나지 않았다면 버드나무가 푸르게 우거지고 활짝 핀 온갖 꽃들이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이 아름다워 기운화는 자신이 어느 남쪽에 있는 마을에 들어선 것 같았다.

   무엇 하나 없는 이 십방진 속에 놀랍게도 이런 속세를 벗어난 듯한 무릉도원이 있다니, 기운화는 이를 신기하게 여겼다. 이 무릉도원을 난조를 봉인한 열 명의 어요사들이 난조를 위해 특별히 지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일한 가능성은 청우 난조가 이 곳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면서 자신을 위해 스스로 이 별천지를 만든 것이다.

“역시 이상한 요괴이긴 하네.”

기운화가 움푹 패인 거대한 땅에 발을 내딛으며 중얼거렸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곳이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새의 지저귐와 꽃향기는 하나같이 많았는데, 새소리는 들을 수 있었지만 새는 안 보이고 오직 땅 위에 금빛 돌에 조각한 작은 새만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개는 좀처럼 달려오지 않았고 멀리서 금빛 ‘개’ 한 마리가 큰 나무 뒤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는데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소리도 있고 형태도 있었지만 생명은 없었다.


기운화는 이 기이한 ‘무릉도원’에서 잠시 걸었다. 초반의 호기심과 신선함이 지나가고 뒤이어 마음속에 밀려오는 감정은 뜻밖에도 일종의 태고로부터 온 듯한 적막감이었다. 이 천지 간에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청우 난조는 이곳에서 수십 년을 들여서 그녀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와 같은 살아있는 생명은 그 어떤 것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 했다.  이 돌로 만들어진 새들과 개가 내는 소리가 얼마나 생동적이던지 지금까지 한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이 적막감에 더없이 괴로워졌다.


기운화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고 조금 어지러워졌다. 만약 그녀도 영원히 이곳에 갇히게 된다면…..이 생각이 들자 그녀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고개를 돌리니 등뒤에 계속 그녀와 교인을 이어주고 있는 무명실이 언뜻 보였다.

  기운화는 더 주저하지 않고 안쪽으로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몸을 돌려 시냇가로 갔는데, 시냇물에 손을 대보고 이 끝도 없는 시냇물이 놀랍게도 진짜라는 것을 발견했다. 기운화는 겉옷을 벗어 시냇물 속으로 던져 물을 긷더니 푹 젖은 옷을 손에 들고 실의 자취를 따라 되돌아갔다.

돌아가는 때의 길은 모름지기 떠나올 때보다 빠른 법이다..

떠나올 때의 시간에 반도 안 걸려서 교인을 다시 찾아낸 것 같았다. 교인은 여전히 그녀가 떠날 때 봤던 모습대로 옆으로 누운 채 손가락으로 붉은 실을 움켜쥐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교인을 보는 순간 기운화는 방금 찰나에 느꼈던 적막감이 찻잔 위의 거품처럼 바람에 날려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교인에게 방금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말하지 않고 그저 웅크려 앉아 옷에 길어 온 물을 교인의 꼬리 위로 짜 주었다. 물이 꼬리에 골고루 퍼지게 문질러 주면서 물었다.

“등 상처에도 필요하니?”

교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

  기운화는 여전히 살갗이 찢기고 살이 터진 그의 등을 보며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상처를 치료하는 데 서툴러. 손을 쓸 때 적당함이 없으니 네가 좀 참아.”
“넌 나를 잘 치료해 준다.”

기운화는 교인이 뜻밖에도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알게 된 그 짧은시간 동안 기운화는 벌써 세번째로 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었다. 첫번째는 감옥 안에서 진짜로 그에게 약을 발라주며 상처를 치료했고, 두번째는 아까 그녀가 그를 속여 머리를 만진 것이고 세번째가 바로 지금이었다.

“난 그저 네게 약을 발라 주고 술법을 부리고 물 좀 길은 것뿐이다.”

기운화는 말하면서 젖은 옷을 교인 등의 상처에 짰다. 물방울이 그의 피부를 따라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상처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마치 물이 상처에 스며들어 고통을 가져가는 듯 교인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잠시 후 그는 또 여느 때와 같은 얼굴빛으로 입을 열였다.

“다 효과가 있어.”

이 교인 녀석…… 기운화는 교인의 상처에 물방울이 모두 스며드는 것을 보고난 후그녀는 교인의 옆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는데 그가 전혀 농담을 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정말 마음 속으로 기운화가 교인에게 해준 ‘치료’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첫번째야 그렇다치고, 앞서 그녀가 그의 머리를 만진 것도 효과가 있다고?기운화는 갑작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정말 일종의 ‘만지면 낫는다’라는 술법이 있는게 아닐까라는……기운화는 옷에 있던 마지막 한 방울의 물까지 모두 짜낸 후 옷을 털었다.

“넌 좀 쉬어. 네 상처가 그렇게 아프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내가 널 앞으로 데려가 줄게. 거기엔 네 선배가 남긴 재산이 있어.”

궁리 끝에 그녀가 생각하기에 청우 난조가 남긴 그 움푹 패인 땅덩이를 형용할 제일 적합한 단어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녀가 말한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던 교인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몸을 일으켜 앉았다.

“우리 가자.”

기운화는 그가 일어나 앉는 것을 보고 약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

기운화는 바로 그의 등 위에 있는 상처를 보았다. 놀랍게도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던 상처가 시냇물에 촉촉하게 적셔진 후에 그의 움직임에도 더는 피가 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와, 기운화는 마음속으로 설마 진짜로 ‘만지면 낫는다’라는 이런 술법이 존재하는 것인가하고 스스로 의아해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쓰다듬으며 알 수 없이 사라진 영력을 되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두 번 만지고 나니 그녀는 또 스스로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사람이고 이 교인은 요괴다. 바다 건너 교인들이 명이 길고 몸에 기름으로 장명등(長明燈: 불상이나 신상 앞에 밤낮으로 켜 두는 등불)을 만들 수 있다고 예전부터 말을 들어왔다. 그들은 상처를 입고도 회복이 빨랐는데 그것은 아마도 종족의 속성이 우세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어느 사람이 정말 다른 사람의 상처를 만져서 낫게 할 수 있을까. 전설 중의 신선도 아니고말이다.기운화는 감탄하며 말했다.

“너희 교인 일족말야, 신체 자질이 참 괜찮아.”
“부지런히 수행했을 뿐이다.”

또 한마디의 의례적인 대답을 듣고 기운화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 커다란 꼬리 물고기는 정말 정직하고 진지한 것이 귀엽다고 느꼈다.기운화는 손을 내밀어 그의 팔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커다란 꼬리 물고기야, 너 걸을 수는 있어?”

커다란 꼬리 물고기가 고개를 숙였다. 기운화도 그를 따라 같이 고개를 숙였다.커다란 연꽃 같은 꼬리는 땅에 화려하게 펼쳐져 은은한 빛이 돌고 있어 크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걸을 수 없었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었다. 기운화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평을 하고 이내 침묵에 빠졌다. 커다란 꼬리 물고기도 다소 침묵에 잠겼다. 두 사람은 멍하니 잠시 서 있다가 커다란 꼬리 물고기 말했다.

“이곳엔 진(陣)이 있어 나는 술법을 행할 수 없다.”
“나도야.”

기운화는 한 마디를 하고나선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커다란 꼬리 물고기 앞으로 한 걸음 성큼 오더니 두 다리를 벌리고 표준적인 기마 자세로 앉았다. 몸은 앞으로 기울여서 등 전체를 보여주며 말했다.

“자, 내가 업어줄게.”

교인은 기운화의 등을 바라봤다. 그녀의 등은 곧게 편 것이 강건한 것 같았으나 골격은 여전히 여자 아이처럼 가늘고 약해 보였다.교인은 손을 내밀었는데 그의 팔 하나가 기운화의 목 굵기만 했다.그녀는 오래 기다렸는데 교인이 그녀의 등에 안 올라 타자 고개를 돌려 교인을 보니 교인이 그녀 뒤에 서서 빤히 그녀를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운화가 물었다.

“왜 그래? 내가 널 못 업을까봐?”

기운화가 입술을 올리며 웃는 것은 그녀 특유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안심해, 내가 평소에 그래도 말이지, 부지런히 수련한 사람이라고.”
“부지런히 수행하다니 아주 좋다.”

교인이 그녀의 노력을 인정했다.

“그럼, 어서 타렴. 내가 너 업는 건 문제없다구.”
“근데 넌 너무 작아.”
“……”
차라리 그를 묶어서 끌고 갈까? 기운화는 이 성실한 교인이 아무래도 좀 너무 성실한 것 같았다.

“너 스스로 힘써서 꼬리를 좀 들어 올려!”

기운화는 그가 얄미워져서 방금 좋았던 기분이 사라졌다.

“쓸데없이 꼬리는 왜 그렇게 긴 건데? 올라타라고!”

커다란 꼬리 물고기는 험악한 기세에 더는 꾸물거리지 않고 두 팔을 기운화의 어깨로 뻗었다. 기운화는 그의 두 팔을 잡아당겨 그가 자신의 목을 꽉 끌어안게 하더니 명령했다.

“꼭 잡아라. 잘 잡아라.”

교인은 순순히 기운화의 목에 팔을 둘렀다. 기운화는 손을 뒤로하고 교인의 ‘엉덩이’ 밑에 꼬리를 안아 교인이 그녀의 손 위에 딱 앉게 했다. 하지만 기운화가 뒤로 손을 뻗쳐 교인의 ‘둔부’를 안으려고 하자 교인의 온 몸이 갑자기 굳어졌다. 기운화는 자신이 그의 상처 어딘가를 눌렀다고 여겼다.

“아프니?”
“아..안 아프다.”

성실하고 진지한 교인이 갑자기 말을 더듬었다. 기운화는 더 묻지 않고 그를 업었다.기운화는 비록 은맥이 사라지고 영력도 없어졌지만 신체적 능력만 본다면 그녀는 어요사들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뛰어났기에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거 봐, 내가 너 업을 수 있다고 했지.”

그녀는 교인을 등에 업고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커다란 꼬리 물고기의 끄트머리는 여전히 땅에 질질 끌리면서 지면을 쓸었다.그들이 멀어짐에 따라 가는 길에는 쓰-윽 쓰-윽 소리만 남았다.

교인은 기운화의 등에 있으면서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한참만에야 적응되었을 쯤에 기운화가 한 말에 대답할 생각이 들었다.

“음, 난 아까 네가 못 업는다고 말하지 않았어. 내 말은 니가 너무 작다는 거야.”
“……그냥 입 다물어.”

기운화는 만약에 순덕공주가 어느 날 이 교인이 입을 열어 말하는 이 성품을 알게 된다면 공주는 아마 자기 입으로 ‘교인이 입으로 사람의 말을 하게 하라’라고 명령을 내린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교인 말하는 것이 능히 사람의 말문을 막혀 죽게 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