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장 무상성자(無常聖者)


기운화는 남아 있던 자신의 겉옷을 찢어 가늘고 긴 천 조각으로 만들어 가슴을 싸맨 후 다시 머리카락을 전부 묶어 올려 남자처럼 상투를 튼 후 천으로 감쌌다.

  장의는 기운화를 등지고 풀밭에 앉아 있었다. 기운화가 그에게 머리를 돌리지 말라고 해서 그는 고개도 까닥하지 않고 가만히 조금 무료하다는 듯이 그저 꼬리로 땅바닥을 툭툭 쳐대기만 했다. 한번 치고 또한번 치고.  

“다 됐다.”

장의가 머리를 돌려 보기도 전에 기운화 스스로 장의 얼굴 앞에 다가섰다.

“어때? 남자 같아?”

장의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꼼꼼하게 기운화를 두 번 훑어보더니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같다. 체격부터 기백, 얼굴에 오관(五官:눈, 코, 입, 귀, 피부)까지 다 남자 같지 않다.”

기운화가 머리를 숙이고 장의를 흘겨보더니 곧 눈을 부릅떴다.

“그럼 네가 가든가.”

장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안 간다.”

이 교인 녀석 정말이지 신선처럼 외모가 아름다워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얄밉게 말하는데 능했다.기운화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뭘 어쩔 수 있겠어. 될 대로 되라지.”

말을 끝내고 기운하는 몸을 돌려 걸어가는데 그 걸음걸이가 마치 전장(戰場)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기운화는 원래 환영받지는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갔는데, 의외로 일이 그리 순조롭게 풀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기운화가 이미 난장판이 되어버린 집에 도착하니 부요가 여전히 그곳에 있고 오히려 사람의 형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실컷 난리를 쳐서 지친 듯이 깊은 못 한가운데서 무릎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그녀 곁에는 시든 연꽃이 있고 발 밑에는 거울처럼 흐르지 않는 물이 있었다. 그녀와 드리워진 물그림자는 서로 오르락 내리락하며 별개의 세계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지고 있었다. 어느 모로 보나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일종의 시들어가는 아름다움이었다.

기운화의 발기척에 놀란 부요가 눈을 약간 크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몸이 살짝 움직이자 밭밑의 흐르지 않던 물도 놀라 잔잔한 물결이 너울거리면서 물에 비친 그림자가 흔들려 깨어졌다. 부요가 기운화를 보더니 몸을 일어섰다.

“너는 누구냐?”

  이렇게 잠깐 사이에 이 부요가 나를 몰라본다고? 이 상황이 좋기는 했다. 기운화 자신이 방금 전의 ‘여자’와 왜 똑같이 생겼는지 이유를 꾸며서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저는 그저 지나가던 서생(書生)입니다.”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부요를 바라봤다. 그녀는 오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우선 그녀가 만약 부요에게 여자인 것을 들키게 되면 바로 발을 빼서 도망친 후 돌아가서 방법을 다시 찾는 것이고 만약에 들키지 않으면 자기를 서생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요곡 밖에서 흘러들어온 속세의 화본(話本: 중국 송ㆍ원 시기에 유행한 민간 이야기꾼의 대본으로 일반 대중이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구어체로 쓰였다)에서 여자 요괴가 서생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운화는 이런 서생과 여자 요괴가 사랑에 빠지는 틀에 박힌 이야기 구성을 어요곡에서 적지 않은 책에서 보았기에 이미 머릿속에 박혀 훤하게 알고 있었다. 기운화는 수줍은 척하며 말을 이었다.

“방금 멀리서 고낭(姑娘: 시집가지 아니한 여자)이 홀로 여기에 있는 것을 보았는데, 고낭에게 이끌..이끌려서 왔습니다.”

부요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기운화를 살폈다. 기운화는 마음 속으로 망했다라고 생각했다. 또 스스로가 가소로울만큼 어리석게 느꼈다. 여자가 남장하는 이런 속임수가 어디 그리 쉽사리 이루어지겠는가. 부요는 기운화를 한참 동안 살폈다. 기운화 스스로조차 들킨 줄 알고 있을 무렵 부요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서생이 무엇이지? 너는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는거냐? 또 어째서 나한테 이끌렸다는 것이지?”

이렇게나 많은 질문을 했지만 되려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감히 남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기운화는 이 부요가 진짜로 이 속임수를 믿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그러나 잠잠해진 부요는 마치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아이와 같아서 던지는 질문들이 기운화가 예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기운화는천천히 부요에게 다가가면서 부요가 저항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연못 가에 이르러 부요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서생은 바로 학문을 닦는 사람입니다. 이곳에 실수로 들어왔다가 홀로 그대가 여기에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얼굴빛이 이리 근심스러운 걸 보니 상심하신 일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상처받은 여인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우선 그 여인에 대해 이해해야 하고 여인의 과거를 알아서 무엇으로 인해 정에 낙심하는지 원인을 찾아야 한다. 증세에 맞게 약을 쓰는 것이 상책이다.이 청우 난조와 무상성자 간의 은원이 모두 백 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세상 어떤 책에서도 알 도리가 없으니 오직 이 부요 스스로가 말하게 해서 들어 볼 수밖에 없었다. 부요는 기운화의 말을 듣더니 두어번 혼자 중얼거렸다.

“상심? 내가 무슨 상심할 일이 있겠어?”

부요는 고개를 숙인 것이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잠시 후 고개를 들고 기운화를 바라보는데, 이미 또다시 정신이 나간 듯한 눈빛이었다.

“내가 일개 어요사따위한테 속았어.”

기운화가 가만히 부요를 바라보며 그녀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 마치 토로할 곳을 찾은 듯한 넋이 나간 부요의 눈빛이 기운화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자의 이름은 영약초(寧若初)인데, 참 대단한 대어요사지. 처음엔 그자가 날 죽이려고 했어. 우리는 한바탕 싸웠고 둘 다 심하게 다쳐서 나란히 산골짜기에 빠졌지.”

부요가 말하는데 눈빛은 이미 기운화를 떠나 사방을 둘러보는데 마치 주위의 경치를 보는 듯했고 혹은 더 먼 그 어딘가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 산골짜기는 풀과 꽃이 있고 버려진 나무로 만든 집도 있고, 작은 시냇물이 있어 깊은 못도 이루고 있어서 이곳과 매우 비슷하지.”

기운화가 다시 주위를 둘러보는데 이곳은 청우 난조가 백 년을 지낸 곳으로 그녀 자신이 진안(陣眼)인 깊은 못 속에 있는 물의 힘으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만들어 낸 곳이기도 했다. 기운화는 이곳이 애초의 그 산골짜기와 ‘매우 비슷한’ 뿐만 아니라 완전히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골짜기에는 맹수도 있었는데 우리는 둘 다 중상을 입어서 나는 요력이 없고 그는 영력이 없었기에 우리는 오로지 몸만 가지고 같이 힘을 합쳐서 맹수를 쳐죽였어. 그리고 나서 그는 나를 좋아하게 되었고 나도 그를 좋아하게 되었어. 하지만 나는 요괴고 그는 어요사였지……”

부요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기운화는 바로 알았다. 설사 어요사들이 자유를 누리던 백 년 전이었을지라도 이런 관계는 세상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어요사는 본래 요괴를 다루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였다.

“ 후에 우리는 산골짜기를 벗어났고 나는 내가 있던 곳으로, 그는 그가 있던 사문(師門)으로 돌아갔지. 그런데 몇 년 후에 그의 사문들이 고양이 요괴왕의 아들인 이수(離殊)를 죽이려고 했어……”

이 일까지 언급하고 나자 검은 난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고 기운화도 익숙한 이 이름을 듣자 약간 멍해졌다.  백 년 전에 청우의 난(亂)전에 어요사들에게 가장 골칫거리는 아마도 고양이 요괴왕이었을 것이다. 고양이 요괴왕은 사람의 심장을 먹기 좋아하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죽여서 그 죄악이 심히 무거웠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고양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 후에 수백 명의 어요사들이 힘을 합해 고양이 요괴왕을 제압하니 사극(沙棘:보리수나무과)산 속에서 목이 베여 저 세상으로 사라졌다. 고양이 요괴왕의 수십에 달하는 아들 딸들도 모조리 죽임을 당했으나 유일하게 어린 아들이었던 이수는 줄곧 밖으로 떠돌아다녔기에 어요사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이로부터 역대 어요사들 기록에는 고양이 요괴왕 및 그 후대에 관한 기록은 없었다.기운화는 그제서야 그 어린 아들이 바로 이수였다는 것을 알았다. 어쩐지 이수가 앞서 어요곡에서 십방진을 무너뜨릴 때 그처럼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것이 당연했다. 고양이 요괴왕의 핏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부요가 계속 말했다.

“그들은 이수를 죽이려 했지만 난 이수를 구했지. 내가 이수를 보호하려 하자 그들은 나도 죽이려고 했어. 영약초도 나를 죽이려 했어.”

여기까지 말하자 부요의 눈에 서서히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다른 어요사들과 다를 줄 알고 그에게 나와 이수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았다고 설명했어. 내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나를 해치려는 사람들이었고 하나같이 다 악인이라고 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어. 아니, 그는 나에게 믿는 척을 했지. 그는 나를 속여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골짜기에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 십방진을 펼치고 열 사람의 힘을 모아 나를 봉인하였어. 그가..….나를 봉인했어..….”

부요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자 깊은 못이 또다시 일렁거렸다.

“영약초!”

부요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

“네가 말했지, 나를 봉인하면 너도 와서 나랑 함께 지낸다고! 왜!대체 왜!”

그녀가 이 말을 외치는 것을 듣자 기운화는 문득 깨달았다. 알고 보니 이 청희가 이리 괴로워하는 이유는 무상성자가 그녀를 봉인해서가 아니라 바로 무상성자가 그녀와 같이 지내려 이 봉인된 곳으로 오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무상성자 영약초가 십방진을 완성한 그 순간 이미 죽었는데. 설마 청희는 여태껏 계속 모르고 있는 것인가?

“백 년이나 감금되었다고, 백 년 동안 홀로 외로웠어! 대체 당신은 왜 안 온 것이지! 왜 아직도 안 오는 것이냐고!”

기운화의 입술이 뭔가 말하려는 듯 움직였지만 순간 입가에 맴도는 진실을 그녀는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기운화가다시 생각해보니 부요에게 영약초가 이미 죽은 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생각이라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이 부요의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이런 감정들을 더 자극시켜버린다면 이는 진짜로 일이 성가셔진다.

부요가 점점 더 격앙되어 연못의 물이 파도를 일으켜 다시 한번 세차게 치솟았다. 보고 있자니 부요가 또 형태를 바꾸려 하고 있었다. 기운화가 재빨리 물러나니 난조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장의한테 되돌아가는 길이었다. 기운화가 머리를 돌려 작은 뜰쪽을 바라보니 부요가 이번에는 주위를 마구 훼손하지 않고 그저 목을 길게 빼고 피눈물을 흘리며 우는 듯 긴 울음소리를 낼 뿐이었다. 이 끝없는 넓고 넓은 하늘에 구멍 하나를 내려는 듯 울부짖는데,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인에게 묻는 듯했다.

기운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오자 장의가 그녀에게 물었다.

“들켰나?”
“아니. 근데 일이 우리가 예상하는 거랑 좀 달라졌어.”

기운화가 책상다리를 하고 장의 면전에 앉았다.

“내 생각에 서생으로 분하면 안 되겠어. 아무래도 다른 사람으로 분해야 할 것 같아.”
“누구로 분하려고?”
“무상성자, 영약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