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가무

기운화는 시냇가에서 온갖 방법으로 본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종전과 다른 모양으로 꾸미려고 애쓰는데, 장의는 냇가에 앉아 기운화를 조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만약에 난조가 왕년의 그 남자를 그렇게 좋아했다면 어찌 다른 사람을 그로 착각할 수 있지?”

기운화는 냇가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 쳐다보며 대답했다.

“난조는 반드시 알아볼 테지만 그녀는 난조의 감정 덩어리에서 생겨난 부요일뿐이야. 실성한 것처럼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아…….”

기운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말을 할 필요도 없이 기운화는 바로 알았다. 이 정의롭고 단순한 커다란 꼬리 물고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이봐, 커다란 꼬리 물고기야.”

기운화는 교인을 설득하려고 했다.

“네가 알아야 할 게 있어, 그녀는 청우 난조가 이곳에 버린 감정일 뿐이고 실체도 없고 생명이라고 할 수도 없어. 우리가 그녀를 속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너도 이곳에 영원히 갇혀 있고 싶지 않잖아, 그렇지?”

아름다운 푸른 눈동자가 풀이 죽은 듯 가라앉았다. 기운화는 불현듯 자기가 어린 아이를 달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기운화는 장의 곂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청우 난조가 여길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이수가 목숨을 받쳐서 얻어낸 기회야. 너와 내가 이 기회를 이용해 다시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이 한방에 달려있다고.”

기운화는 줄곧 몸에서 떼놓지 않았던 해약 상자를 만지다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들어가더니 눈빛이 형형해져서 장의를 바라봤다.

“그러니 나는 그 부요를 속여야만 해. 반드시 그녀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서 사라지게 할 거야. 그게 어떠한 방법이든지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볼 거라고.”

장의가 다시 눈을 들어 가만히 기운화를 응시했다. 마치 기운화의 눈동자 속에서 그런 강렬한 감정을 볼 줄 몰랐던 듯이 그는 잠시 말없이 잠잠코 있었다.

“어떻게 해 보려고 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기운화의 눈빛에 서렸던 날카로움과 위엄이 전부 사라지고 원래의 제멋대로 구는 모습으로 되돌아간 듯 기운화가 미소를 지었다.  
“난 말이지……”

그녀는 입가를 비스듬히 올리며 웃었다.

“나는 그녀에게 가서 신분을 밝힐 생각이야. 그러고 나서 시ㆍ사ㆍ가ㆍ부(詩詞歌賦)를 읊어서 마음을 고백할려고 해. 만약 이때까지도 일이 잘못되지 않는다면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그녀를 품에 껴안고 살며시 어루만져야지.”

기운화가 머리카락를 쓸어 올리고 눈썹 끝을 살짝 추켜올리며 멋있게 돌아봤다.

“어쨌든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거지.”

장의가 듣다가 더는 못 보고 고개를 저어버렸다.

“네 이런 말은 진심이 전혀 없어 성공하기 어렵다.”
“진심이 전혀 없다고?”
이 말이 마치 기운화를 자극한 것 같았다. 그녀는 몸을 굽히고 앉아 반 보 앞으로 내디디며 장의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손을 들어 장의의 긴 은빛 머리카락을 올렸다.

“물론...”

그녀는 머리를 약간 숙여 은빛 긴 머리카락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왔다. 장의가 아직 반응하기도 전에 살짝 메마른 입술을 아직은 촉촉하게 젖어 있는 긴 머리카락에 도장을 찍듯 댔다.

“님을 뵈오는데 어찌 이 진심을 잡아 둘 수 있으리까.”

기운화는 장의의 은발에 계속 입맞춤을 하며 시선을 들어올리는데 그 눈빛에 약간의 부드러우면서도 상당히 예리함이 묻어나오는 것이 마치 화살과 갈고리처럼 장의의 심장을 그의 눈 속에서 꺼내 버릴 듯했다.

그러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모든 강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기운화의 이런 부드러움과 도발도 모두 받아들이는 듯장의의 얼굴빛은 평온했고 그 마음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솜을 주먹으로 치듯이 기운화도 아무렇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장의를 잠시 마주했지만 곧 패배한 것을 깨달았다.‘죄송합니다, 소생이 경거망동했고 무례를 범했으며 폐를 끼쳤습니다’와 같은 제목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울컥 북받쳤다.

순간 기운화는 그의 머리카락에 입맞춤한 입술이 마치 독초에 베인 듯 어색하다 못해 아릿해져왔다. 기운화는 기침 소리를 내더니 뒤로 약간 물러섰다. 입술은 그의 머라카락에서 벗어났고 손도 은빛 머리카락을 내려놓았다. 기운화는 손을 툭툭 치더니 입술을 오므리고는 잔잔한 바람에 구름이 살짝 보이는 듯 평온한 장의 시선에서 몸을 일으켰다. 코를 비비며 머쓱하게 몸을 돌렸다.

“너 이 교인 녀석, 사람들과 어울려 본 적이 없어서 세상 물정을 모르네. 어쨌든 내가 부요한테 이렇게 하면 십중팔구는 성공할 거라고.”

기운화는 말을 마치고 또 못 참겠다는 듯이 교인을 한 번 보는데 여전히 교인은 얼굴빛이 평안하기 그지없었다. 기운화는 교인의 입술을 슬쩍 흘겨보며 앞뒤가 꽉막힌 벽창호를 들이박았다고만 말할 뿐이었다.기운화는 곁눈질로 이리저리 힐끔힐끔 보다가 교인의 목을 넘어 교인의 등을 얼핏 보더니 제멋대로 다른 말을 하기시작했다.

“그거 어떻게 된거야. 상처가 빨리 나았네. 교인의 몸이 이렇게 좋다니깐. 너 여기서 나 딱 기다리고 있어. 잘되면 우리들은 곧 나갈 수 있을 거야. 간다. 기다려.”

말을 마친 기운화는 손을 흔들며 도망치듯 가버렸다.

장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커다란 연꽃 꼬리 끝부분을 시냇물에 걸쳐 놓고 두어번 타닥타닥 쳤다. 그는 점점 멀어져가는 기운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방금 기운화가 입맞춤한 머리카락을 들더니 가만히 잠시동안 손에 쥐었다. 장의는 고개를 돌려 시냇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차가운 푸른 두 눈은 그 푸른빛이 오히려 전보다 훨씬 짙어져 있었다. 장의는 가만히시냇가에 앉아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두 눈의 색은 여전히 옅어지지 않았다. 별안간 커다란 연꽃 큰 꼬리를 가볍게 내두르더니 시냇물을 끌어올려 ‘쏴악’ 소리 함께 온 몸의 고요함을 깨뜨렸다. 시원한 시냇물이 머리 위로 쏟아지더니 얼굴을 덮고 몸과 머리카락을 흠뻑 적셨다. 꼬리가 휘저은 물은 부서지더니 다시 모여 물결이 부딪치고 솟구치다가 마침내 다시 잔잔해졌다. 거울 같은 수면 위로 다시 장의의 눈동자 색이 선명하게 비쳐졌다. 짙푸른빛은 사라지고 장의 눈동자 색이 드디어 여느 때처럼 남이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서늘함을 되찾았다.  


기운화는 거의 종종걸음으로 뛰다시피 깊은 못으로 돌아왔다.부요를 만나기 전에 기운화는 방금 전의 어색했던 감정을 추스르고 목청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무상성자는 이미 백 년 전의 사람이었다. 책에는 비록 무상성자의 업적에 대한 기록이 적지 않았지만 그 기록은 모두 그의 공훈과 힘의 강대함을 말하는 것이지 희노애락 같은 감정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 혹은 필자의 붓놀림 아래에선 성인은 모두 희로애락 같은 감정따위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기운화는 자신이 읽었던 내용에서는 이 사람의 성격을 추측할 순 없었지만 방금 부요의 말에서는 알 수 있었다.

  이 무상성자 영약초는 결코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기운화는 오히려 무상성자도 역시 청우 난조에게 정을 품었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난조의 신의와 사랑을 가지고 굳이 그녀를 속여서 봉인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바로 죽여버리는 것이 나았을 텐데. ‘그녀와 함께 하겠다’라는 맹세는 왜 또 남겼겠는가? 이 영약초는 정도 있고 의리도 있는 어요사였어야 했다. 기운화는 머릿속으로 이를 정리하고 다소 무거운 기색을 띤 채 굳은 표정으로 깊은 못에 있는 부요를 찾으러 갔다.

부요는 여전히 깊은 못 위에서 아까와 달리 앉아 있지 않고 서서 뜻밖에도 춤을 추고 있었다.  모든 요괴들 가운에서 교인이 노랫소리가 가장 아름다웠고 새에서 요괴가 된 이들은 춤을 가장 잘 췄다.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봉황이 구천에서 춤을 추면 뭇새들이 알현하러 온다고 했다. 난조가 비록 봉황은 아니었지만 그 춤추는 자태가 가히 천하 제일이었다.

부요는 연못 한 가운데서 마치 밝은 거울 위를 사뿐사뿐 밟는 것처럼 곁에 있던 시든 연꽃을 돌면서 춤을 췄다. 유려한 춤사위는 서서히 추다가도 격렬해졌다. 검은 기는 보일 듯 말 듯한 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는 듯해 기운화의 눈에는 마치 전에 보았던 한 폭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이 그림 속 여인은 맹세를 한 그 이를 찾아 헤메이며 기다리지만 그 이는 기다려도 영원히 올 수가 없었다.기운화는 부요의 춤추는 자태를 보다가 어느 순간 잠시 넋을 잃었다. 부요가 춤을 추며 돌다가 뒤를 돌아 기운화를 볼 때까지. 한쪽에 서 있던 기운화를 갑자기 발견하고 부요가 재빨리 걸음을 멈췄다. 잔잔한 물결에 밀려나온 깊은 못 물도 그와 함께 잠잠해졌다.

“너는 누구냐?

또 이 질문이라니. 이 부요 녀석 과연 제정신이 아니라 그런지 앞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는 나를 잊은 것이오?”

기운화가 말했다.

“나 영약초요.”

부요의 온몸이 굳어지는데 발밑은 마치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는 듯 약간 물러서자 다시 물 위로 파문이 일었다. 부요 스스로 자신의 눈을 못 믿겠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기운화를 꿰뚫어 볼 듯한 기세로 바라봤다. 그러나 부요가 어떻게 살폈는지 결국 그녀는 입술을 떨면서 기운화에게 물었다.

“당신 어째서 이제야 나를 찾으러 온 건가요?”

아무런 의심도 없이 더 알아볼 것도 없이 부요는 이리 기운화를 믿어버렸다. 심지어 기운화가 자신을 가슴을 동여매지 않아도, 머리를 남자처럼 올려 묶지 않아도, 일부러 목소리를 낮게 깔지 않고 부요를 찾아왔어도 부요는 여전히 기운화를 영약초로 믿었을 것이다.

기운화는 이유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부요가 생겨나면서부터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였을까? 그렇지 않다면 너무 오래도록 기다려서 사리분별을 못하게 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영약초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부요에게 있어서는 어쩌면 반드시 완성해야하는 임무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장의가 반드시 이곳을 나가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부요도 그런 것이겠지.

부요는 청우 난조의 집념으로 생겨났기에 이 집념을 반드시 풀어야지만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누가 오든지 간에 부요는 모두 영약초로 여겼다. 기운화는 이 외에 더 이상 다른 이유를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부요가 한 걸음 한 걸음 기운화를 향해 다가왔다. 기운화는 진짜 영약초가 이때 무슨 말을 할 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운화는 아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부요의 눈만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연못가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두 사람이 가까워졌으나 부요는 연못을 떠날 수가 없었고 기운화도 역시 발을 물로 내딛지 않았다.

부요가 가만히 기운화를 바라보는데 핏빛 붉은 눈동자에 기운화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기운화는 이렇게 가까이 와서야 원래 이 감정이란 분명하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정말로 눈에서 뚫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신 나와 함께 한다고 말했었어요.”

부요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나 정말 당신을 오래도록 기다렸어요.”

기운화는 마음속으로 정말 잘 우는 부요라고 생각했다. 청우 난조는 세상에서 이름을 떨친 요괴였는데 이렇게 잘 울리가 없었다. 때문에 이 버려진 감정은 아마도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매우 기특한 여린 마음일 것이다.

“미안하오.”

흐느끼는 여자 아이가 애틋함이 넘치는 눈으로 바라보자 기운화도 이 한 마디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한 마디는 마치 모든 것을 건드리는 동인(動因)과도 같았다.

부요는 손을 내밀어 두 손 감싸며 기운화를 끌어안았다. 부요는 몸에 온기가 없었는데 마치 연못 물처럼 차디 찼지만,그녀의 말은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근데 나는 알았어요. 당신이 꼭 올 거라는 걸요.”

그녀는 기운화를 안고 흐느끼며 말했지만 숨길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운화는 별안간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는데 그 가능성이란 이 부요가 이처럼 너무나 쉽게 남을 믿는다는 것이었다.이 부요가 기운화를 영약초라 믿는 것은 부요 혹은 청우 난조 자신이 처음부터 마음속으로 얼마나 걸리든지 어느 때이든지 영약초가 꼭 오기만 한다면 그녀가 반드시 그를 기다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십방진에 누가 오든지 간에 그 사람이 스스로 영약초라 하면 그것이 남자든 여자든, 혹은 신이든 귀신이든지 간에 그 사람이 말만 하면 그녀는 반드시 믿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 사람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영야초를 믿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꼭 맹세를 지킬 것라는 것을 믿은 것이다. 그가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꼭 지키러 올 것라는 것을 믿어서이다.

이 십방진에서 청우 난조는 백 년 동안이나 외로움을 참아왔다. 한이 생겼을 수도 있고 원망이 생겼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한과 원망은 다 끔찍할 정도로 강렬했지만 결국 이런 감정들은 단 한 마디로 인해 모두 풀어졌다.

“내가 드디어 당신을 기다렸다구요.”

부요가 이렇게 말하자 기운화는 마치 명치를 맞은 듯했다.부요의 온 몸에서 검은 기운이 크게 휘몰아치더니 마침내 백년 동안 맺혀 있던 한과 원망을, 간직하며 바라왔던 연약해진 기다림과 끝없는 적막함을 끝냈다.

검은 기운이 춤을 추듯 공중에 흩날리는데, 그 모습이 검은 봉황이 깃털을 나부끼며 아름다운 춤사위를 밟듯이 하늘 높이 나풀나풀 날아올라갔다. 검은 기운이 솟아오를 때 먼 곳에서 마치 무심코 노랫소리를 읊조리는 듯한 몇 마디가 유유하게 들려왔다. 노랫소리는 목이 잠긴 듯 검은 기운을 따라 춤을 추며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은은하게 들려오다가 흩어졌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춤과 더없이 아름다운 노래는 같이 어우러지니 신들린 것 같은 천하의 걸작품 같았다. 미리 연습을 한 것도 아닌 데 기운화가 보았던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한 춤과 노래였다. 노랫소리가 멎고 춤사위도 사라지고 허공에는 아득히 먼 곳에서 난조의 울음소리만이 잠시 되들리다가 결국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기운화는 끝도 없이 넓은 금빛 하늘을 바라보는데 한참이 지나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귀가에 문득 물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고 나서야 경우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 가득 차 있던 깊은 못이 부요가 사라지고 나자 마치 밑에서 빨아들이기라도 하듯이 요란하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기운화는 놀래서 상황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유일하게 떠오는 것은 진안(陣眼)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곳에서 나가고자 하는데 지금 진안에 변화가 일어났다. 비록 무슨 변화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가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못 나갈 것 같았다!기운화는 발을 빼자마자 연못 속으로 몸을 날리지 않고 장의가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그녀는 영약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고 기다리래 놓고 백 년이라니! 기운화에게 있어서 입 밖으로 내뱉은 맹세는 반드시 지켜야했다.그러나 기운화가 그리 멀리 달리지도 않았는데 시냇가 너머로 화살처럼 빠르게 커다란 꼬리 물고기가 헤엄치며 오고 있었다. 세상에나 기운화의 두 다리보다 얼마나 빠른지 모른다. 기운화가 이 상황을 보고 화가 약간 났다.

“너 혼자 헤엄칠 수 있었어! 전에 왜 나보고 이리저리 업고 다니게 한거야!!”

장의가 다가오자마 욕설을 듣더니 당황해서 말했다.“전엔 시냇가에 있지도 않았거든.”
“됐다. 따질 시간이 없다.”

기운화가 장의 곁으로 다가갔다. 두 사람은 시냇물이 연못으로 모여드는 곳에 서 있었는데 기운화가 못의 물길을 가리켰다.

“우리 의논 좀 해야겠어.”
“무슨 의논?”
“봐봐, 방금 연못 물이 가득 찼을 때는 못에서 물이 시냇가로 흘러나갔는데, 지금 못이 가라앉으면서 모든 냇물이 거꾸로 연못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어. 이 십방진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치대로라면 물도 있어선 안돼. 근데 오행으로 보면 물이 생을 주관하는데 지금 물이 급속도록 빠지고 있어.내 생각으로는 살길이 서서히 끊어지고 있는 거지. 이 십방진 곧 하나의 사진(死陣()으로 변할 것이야. 나가려면 우리는 뛰어들어야만 해.”

장의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럼 뛰어들어.”
“근데 이건 내 추측일 뿐, 이 추측이 틀렸을 가능성도 커. 뛰어들었다가 우리는 오히려 갇힐 수도 있어. 이 아래에 뭐가 있는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도 모른다.”

장의가 고개를 돌려 기운화를 봤다.

“양쪽이 모두 불확실한 선택인데 나랑 무슨 의논을 한다는 거지?”

기운화가 정색을 하고 장의를 바라봤다.

“너 가위바위보 할 줄 알아?”
“…….”

장의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게 무엇이냐?”

장의는 지금 같은 시기에 제안하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무슨 대단한 술법이나 법기라고 여겼다.

“자.”  

기운화가 손을 내밀었다. 장의도 따라서 손을 내밀었다. 기운화가 이어 말했다.

“이건 가위고, 이건 바위야. 얜 보구.”

기운화가 말하면서 손으로 시범을 보였다. 장의도 곧이 듣고 진지하게 기억했다. 기운화가 장의의 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설명했다.

“내가 하나, 둘, 셋을 세면 너는 방금 손동작 중에서 하나를 골라 봐. 하나, 둘, 셋!”

기운화가 보를 내고 장의는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주먹을 내보였다. 기운화가 손바닥을 펴서 장의의 주먹을 감쌌다.

“내가 보를 냈으니 보는 네 주먹을 감쌀 수 있어. 그래서 내가 이겼다.”

장의는 잠시 충격을 받았다. 아래로 가라앉는 물소리가 여전히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장의가 가만히 기운화를 바라봤다.

“그래서?”
“난 방금 마음속에서 결정을 내렸어. 내가 이기면 우리는 뛰어들고 네가 이기면 우리는 여기에 남는 걸로.”

기운화가 장의의 주먹을 감싸더니 입을 벌리고 씩 웃었다.

“자 우리 뛰자!”

원래 남들이 가까이하지 못할 만큼 고결함을 갖고 있던 교인, 장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했어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대해의 혼’이라 불리던 그의 온 얼굴에 지금 의문이 던져졌다.

“이렇게 멋대로?”어쨌든 생사가 걸린 일인데…..”
“선택이 어려울 때는 하늘에 맡기자!”

기운화가 말을 마치자 장의가 거절할 기회도 더 주지 않고 뒤로 넘어지면서 장의를 웃으며 바라봤다. 몸은 어두운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지만 장의의 주먹을 감싸던 손바닥을 돌려 그의 손바닥 한가운데로 달려들어 손바닥을 움켜쥐더니 더 이상 놓지 않았다.

인간들의 손바닥은 장의보다 훨씬 따듯하다. 손바닥에서부터 그의 심장까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꼬리 지느러미에 있는 비늘 하나 하나까지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은발이 흩날리는데 머리카락 위에 아직도 기운화의 입술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장의는 기운화의 웃고 있는 눈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녀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기며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장의는 발버둥치지도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장의는 웃으면서 미지의 어둠속으로 뛰어든 이 어요사야말로 자신보다는 인간들이 입으로 말하는 그것과 더 닮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요괴.


1. 시ㆍ사ㆍ가ㆍ부(詩詞歌賦): 詩는 한시를 이르고 詞는 한문 문체의 명칭으로 넓은 의미에서 시라고 할 수 있지만 시와는 형식과 풍격이 다른 운문이다. 수당 시기에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졌고 이 음악에 노래 가사를 붙여 詞라 했다. 歌는 가사(歌辭)의 줄임말로 악부(樂府: 한나라 시기에 나타난 음악을 곁들인 시)가 쇠락한 후 詞가 생기기 전 새로운 음악을 곁들인 근체시(近體詩: 한시의 종류로 고체시(古體詩)에 대한 새로운 한시체(漢詩體)를 가리키며, 고체시가 형식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데 반해 근체시는 일정한 격률(格律)과 엄격한 규범을 갖고 있다. 賦 역시 한문 문체로 시와 같은 음운 특색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엄격한 글자 수나 장법상의 제한이 없어 산문의 경향을 나타낸다. 전국 시기에 이미 일정한 발전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