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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을 위해 재미를 포기했다







오후까지 생각했던 촬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다음 장면을 위해 예약한 곳은 내일에나 사용 가능했기 때문에 호가는 오늘 촬영을 정리했다. 이어진 강행군에 스텝들이 지쳐 보이는 것도 있지만, 사실 아침에 둘러본 제 숙소 꼴이 말도 못하게 엉망인 게 걸려서였다. 


호가는 돌아오자마자 방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보이는 대로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기는데 개중 3분의 1 이상은 곽건화 것이다. 아예 핸드폰 충전기까지 여기에 가져다 둔 걸 보니 웃음도 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 이렇게 지저분한 인간이 아니라고. 새삼 양손에 든 빨래더미를 보니 속이 터진다. 어지르는 게 1인분 더 늘었으니 당연히 평소보다 엉망이 되지.


그리고 곽건화는 침대 위에 드러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늘 촬영은 산 속에서 이뤄졌는데, 뛰고 구르고 매달려 올라가고 하느라 아마 진력이 다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닌데. 호가는 들고 있던 옷가지를 소파 위에 대충 던지곤 침대로 다가갔다.


이불 속에 푹 파묻혀 둥근 뒤통수만 내놓은 채 곽건화는 앓는 소리를 했다.


“가기 싫은데.”

“매니저 부르기 전에 일어나.”


언제서부턴가 련준걸은 곽건화를 그의 숙소가 아닌 호가의 숙소로 찾아왔다. 태연하게 제 폰으로 전화를 걸어 옆에 곽건화 좀 두들겨 깨우라고 말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촬영장 바깥에선 저를 감독이 아닌 제수씨를 대하는 듯한 그 태도에 호가는 자괴와 쪽팔림에 약간 죽고 싶은 마음이 들던 차였다.


그리고 지금 호가의 심정은 곽건화를 찾아 제 방까지 오는 사태를 어떡해서든 막고 싶었다. 호가는 그의 등을 가볍게 후려쳤다. 내일 아침부터 촬영있다며.


올 초 곽건화가 촬영했던 화천골이 곧 방송을 앞두고 있다. 내일 첫 방송을 앞둔 기자회견과 토크쇼 녹화가 있을 예정이다. 호가가 대강 방을 치우는 동안, 곽건화는 이불에 파묻혀 죽는 소리를 몇 번 내더니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호가는 소파 앞에 늘어놓은 콘티와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두르니 얼굴을 들어 눈을 맞춰온다.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는 곽건화의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아침 10시에 기자회견. 오후부턴 토크쇼 녹화.”

“알고 있어.”

“그 다음날에 북경에서 영화 제작발표회, 점심에 잡지사 인터뷰 하나 있는데 금방 끝나.”


말끝마다 소리 내어 입을 맞춰오는 게 민망했다. 이미 매니저한테 들었다니까. 호가가 민망함에 고개를 비틀어 피했지만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세지 않게 아랫입술을 빨아 당기며 곽건화가 입을 연다.


“매니저한테 통보받는 거하고, 내 입으로 듣는 거하고 같아?”

“어차피 내용은 같잖아.”


뭘 말하고 싶은 건진 곽건화 얼굴만 보고도 알겠지만, 민망한 건 민망한 것이다. 새삼스럽게 달라진 기류는 길이 덜 든 옷처럼 껄끄러웠다. 따지자면 호가는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었다. 아무리 예전 남자라지만 적응할 텀이 필요한데, 시간이고 자시고 정신을 차려보니 곽건화는 제 옆에 누워있었다. 


시선을 피하는 호가의 옆얼굴이 뚱했다. 한 번씩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는, 고양이 짓이다. 어릴 적에 고양이를 키웠다던데, 곽건화 생각엔 어쩌면 고양이가 호가를 키운 걸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다. 


“준걸이한테 듣는 거야 일이고, 나한테 듣는 건 일이 아니잖아.”

“이거나 그거나-”


갑자기 소파 위로 주륵 미끄러지며 호가는 기겁한 얼굴을 했다. 발목을 잡아당긴 곽건화가 소파 팔걸이를 잡은 채 몸을 숙인다. 그가 만든 그늘이 마치 이불처럼 호가의 몸을 덮어 눌렀다. 


몸을 훑듯 내려다보는 눈길이 의미심장하다. 그 시선에 신경이 쓰여 제 얼굴 한 쪽을 완전히 감싸는 손은 호가의 안중에 없었다.



“이틀이나 못 보잖아.”

“십년도 넘게 못 봤어, 새삼스럽게.”

“그러니까 이제 계속 봐야지. 못 본 만큼.”

 

양 팔로 머리를 감싼 것에 흠칫 몸이 굳었지만, 맞춰오는 입술을 거절하진 않았다. 가벼운 터치가 아닌, 공을 들여 입 안을 애무하는 동안 호가는 그를 끌어안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양 손으로 상박을 움켜쥔 채 애매하게 매달려 있으니, 곽건화의 입술이 입술에서 귓가로 옮겨간다. 


“안되겠다, 하자.”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바람에 등골이 설 지경인데, 그보다 말의 내용이 문제였다. 호가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밀어낸다.


“정신 좀 차리지? 너 지금 나가야 되잖아.”

“한 번만, 어?”


목덜미에 이마를 파묻으며 조르는데, 그새 손은 바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버릇대로 가슴이 아니라 바로 아래로 가는 걸 보니 빨리 끝낼 생각이 맞는 거 같긴 한데, 문제는 곧 곽건화의 보모에게 못 볼 꼴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위기였다. 


호가는 허리를 뒤로 빼며 진저리를 쳤다. 아 이 새끼가 진짜 @#$@#$!!


“좀, 아 이 미친 인간아!”

“한 번만 하자, 너도 아쉬울 거 아냐.”


내가 너 같은 줄 아냐고 외쳐야 했고, 실제로 호가는 그럴 생각이었다. 곽건화의 손이 지나치게 빠르지만 않았다면. 성기와 회음부를 크게 쓸어내리던 손이 바로 아래를 찌르고 들어오자 호가의 입에선 화가 아니라 애매한 신음이 나온다. 아, 아아-


빠르게 밀고 들어오는 손가락을 아래 구멍은 수월하게 집어삼켰다. 근래 한두 번 한 게 아니라 사실 몸은 이미 받아들일 태세가 만반이었다. 곽건화의 손이 단골 술집 찾아가듯 수월하게 길을 트고 내부를 긁을수록 호가의 얼굴에서 서서히 의지가 흐려진다. 신음과 흐느낌 그 경계에 선 채 녹아내릴 때였다. 


진동 소리였다. 쌓아둔 콘티북 위의 핸드폰이 경련을 일으키는 걸 바라보며 호가는 눈을 깜빡거렸다. 잠깐, 혹시 련준걸 아니야?


전화- 테이블 쪽으로 손을 뻗으려던 기색에, 곽건화가 슬쩍 눈치를 보더니 예고 없이 손가락을 두개 더 집어넣는다. 푹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밀고 들어오는 기세에 호가의 마른 허리가 종이처럼 구겨진다. 호가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얼굴로 발길질을 했다.


“니 매니저잖아!”

“그러니까 왜 다른 남자를 신경 써.”


준걸이 들었다간 사직서도 던지지 않고 그대로 대만으로 야반도주할 말을 뻔뻔하게 뱉으며 곽건화는 웃었다. 그는 저를 치대려는 호가의 발을 잡아 제 성기 쪽으로 지그시 눌렀다. 맨 발바닥에 느껴지는 부피감에 호가는 붉어지는 얼굴을 양 손으로 가렸다. 아 내가 죽어야지.


제 하의가 완전히 벗겨져 나가는 것을 노려만 볼 뿐, 뭘 어찌하기엔 이미 늦었다. 울상이 된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곽건화는 제 옷을 빠르게 벗으려 했다.


“야, 너는 왜 방에 있으면서 전화를 안 받아! 자고 있냐?!”


혹시 기절했어?! 문 따고 들어갈까?!


바지 버클을 풀던 곽건화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상황판단은 호가 쪽이 더 빨랐다. 곽건화를 발로 쳐 밀어내곤 그는 재빠르게 제 바지를 끌어올렸다. 호가는 곽건화 쪽을 노려보며 문 밖의 원홍에게 외쳤다.


“잠깐만, 열어줄게!”

   

옷이나 좀 빨리 입어! 호가가 집어던진 쿠션을 맞으며 곽건화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원홍은 맞은편의 나란히 앉은 둘을 신기한 생물 쳐다보듯 했다. 호가는 민망함을 딴청으로 가장한 채 그의 시선을 피했는데, 하루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원홍의 눈엔 그의 머릿속이 훤했다. 


그에 비하면 곽건화는 지금의 언짢음을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어뵈는 투다. 뚱한 얼굴 그대로 팔짱을 낀 채였는데, 저것은 지금 나의 불쾌함을 너에게 강력히 주지시켜주고 싶다는 의지 표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원홍은 곽건화의 얼굴을 대놓고 바라보았다. 들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를 소리나게 쭉 빨아 당기자, 그림 같은 미간이 확 구겨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씹어 넘기며 원홍은 예의 사람 좋은 얼굴로 말했다.


“오랜만에 보네.”

“그러게. 좋아 보이네.”

“너도 내 생각보단 좋아 보이네. 요새 많이 시끄러웠을텐데.”


원홍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곽건화의 속을 긁어놓았다. 이제 곽건화는 본격적으로 원홍을 노려보기 시작했고. 세워둔 빗자루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던 호가가 상황 중재에 나선다.


“넌 왜 말도 없이 왔어, 갑자기.”

“내가 못 올 데 온 것처럼 말한다, 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오기 전에 말이라도 했으면,”

“새삼 내외하냐, 우리 사이에.”


등을 쭉 펴고 앉으며 원홍은 새삼 곽건화 쪽으로 시선을 준다. 곽건화는 웃음으로 그 시선을 받아치는데, 가히 호의어린 의사표현은 아니었다.


“여전히 친한가보네, 징글징글할 정도로.”

“새삼스럽게 뭘 물어봐, 보면 모르겠어?”


난들 쟤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겠냐,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 그건 니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진 말고. 원홍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 해도 예전처럼 나한테 성질나고 그런 건 없을거 아냐, 안 그래?


원홍은 곽건화를 보고 마주 웃었다.


“너랑 쟤랑 남남인데.”

“…….”

“…….”


호가는 시선을 피한 채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곽건화는, 사실 원홍이 줄곧 자신이 아니라 호가를 향해 말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곽건화는 호가를 바라보았다. 끈질기게 따라붙은 시선에 못이긴 척, 호가는 한숨을 쉬었다.


호가의 시선이 원홍이 아니라 제 쪽에 닿았을 때, 곽건화는 속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확인사살을 하듯 그가 축객령을 내린다.


“너 매니저 찾겠다, 시간 다 됐어.”


사실 시간은 지나있었다. 그럼에도 그건 곽건화의 안중에 없었다. 저를 노려보는 시선에도 호가는 요지부동이다. 


“나 쟤하고 할 말 있으니까 자리 좀 비켜줘. 모레 얘기해.”


성질을 내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곽건화는 참고 있던 숨을 짧게 토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몸으로 핸드폰만 챙긴 채 나가는 그의 등 뒤에서 원홍이 손을 흔든다.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다 그래도, 담엔 술이나 한 잔 하든가.”


열이 치밀어 뒷골이 당겨왔다. 이를 악물곤 문을 있는 대로 세게 닫았다. 유치한 분풀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