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전설*
ㄴㅈㅈㅇ ㅇㅌㅈㅇ 곽건화왕카이
5. 경염
남자가 경염에게 다가와 손가락을 입에 대며 나가자고 손짓했다. 만난 지 열흘 가량밖에 되지 않았지만 남자와 친해진 경염은 의심 없이 남자를 따라나섰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아무도 서로를 해칠 수 없었다. 남자는 인적이 드문 곳에 오자 아직 10살밖에 안 돼서 작은 경염의 앞에 몸을 숙이고 앉았다.
[아- 해 봐.]
[아?]
[더 크게.]
경염이 입을 벌리자 남자가 경염의 입 안으로 다식을 넣어 주었다. 약간 쌉싸래한 맛이 나는 다식은 견과류가 들어 있는지 고소하고 달콤함 맛까지 어우러져서 개임다식을 좋아하는 경염의 입에도 잘 맞았다. 기뻐하는 게 얼굴에도 드러났는지 남자는 빙긋 웃더니 하나 더 꺼내서 작은 입에 넣어 주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지만 어머니가 늘 만들어 주시던 개암 다식과 비슷하면서 더 고소해서 경염의 입맛에도 아주 맛있었다.
[맛있어?]
[응, 뭘로 만든 거야?]
[율리.]
[율리?]
[마침 내가 여기 오기 전이 율리 철이라 다식을 만들게 해서 가지고 왔지. 넉넉하게 가지고 왔으니까 많이 먹어.]
경염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곳에서는 각국의 문화를 알린다는 취지에서 자국의 옷이나 서책 등은 가지고 오게 했지만 모인 사람이 모두 어리다보니 지나치게 풀어지는 걸 방지하고자 개별적으로 간식 등을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건 하지 말아야 하는 줄 알고 있었던 경염이 여전히 커다래진 눈을 깜빡이자 남자가 율리 다식을 하나 더 꺼내 입 앞에 내밀어 주었다. 아직 입 안에 고여 있는 고소한 맛에 더 먹고 싶지만 규칙을 어기는 거라 망설이고 있자, 남자는 다식을 들고 경염의 작은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이 정도는 괜찮아. 들키게 하지도 않을 거고. 네가 다식을 먹는다고 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도 없잖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경염은 입을 벌렸다.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남자가 자기도 다식을 하나 집어서 입에 집어넣으며 한쪽 눈을 깜빡이는 걸 보자 배시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제 우린 공범이야.]
경염은 그 무서운 말에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릉에서보다 더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어른들의 훈계를 듣고 왔는데도, 좋아하는 사람과 은밀한 일탈을 즐기는 기분이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다식의 맛보다 더 달콤했다.
6. 경염
경염은 쓰러진 이후 열흘이나 앓아누워 있었지만 열흘째 되는 날 아침에는 열이 내려 몸 상태도 나아져 있었고 간밤에 좋은 꿈을 꾸었는지, 침상에서 일어나는 기분도 좋았다.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포근하고 안락한 꿈을 꾼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연무장에서 가볍게 목검을 들고 훈련을 하면서 아픈 동안 내내 누워 있느라 찌뿌듯해진 몸을 풀고 목욕을 즐기고 나자 오후에 태자가 차를 마시러 올 거라는 소식이 들어 와 있었다.
태자가 오실 거라 전한 시비가 적갈색 비단에 화려한 무늬가 수놓인 옷을 꺼내들고 왔다. 경염은 목욕 후에 새 옷을 입고 나왔지만, 시비가 건네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소현이라는 이름의 이 시비는 옷과 장식들이 전혀 튀지 않고 조화롭게 보이도록 하는 재주가 있어서 경염의 치장을 전담하고 있었다. 경염이 남자인지라 화려한 귀걸이나 머리장식은 없었지만 소현은 태자비인 경염의 지위에 맞는 몇 가지의 옥패와 관 중에서 그날그날 어울리는 것을 적절하게 골라냈다. 관 하나만 보면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무난해 보여도 옷을 입고 치장을 끝내면 소현의 선택이 옳았음을 알 수 있었다. 발랄하면서도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는 소현은 경염의 누이인 경녕 공주를 떠올리게 해서 경염도 소현에게는 조금 더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경염을 찾을 때마다 선물을 챙기곤 하는 연성은 오늘 뒤따르는 태감에게 다식 상자를 들려서 왔다. 어머니가 늘 챙겨주시던 간식들을 생각나게 하는 그 상자에 경염이 미소를 짓자 연성이 다가와 경염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은 좀 내렸다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으시오?]
[이제 괜찮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전하.]
[그동안 애를 많이 태웠을 텐데, 신경 써 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아닙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걱정될 수도 있지. 회임에는 아무 문제없다 하니 이제 마음 쓰지 마시오.]
[네, 전하.]
시비들이 차를 내 온 후, 그새 태감에게 건네받은 건지 접시 위에 소담하게 다식을 올려서 내 왔다.
[비의 입맛에도 잘 맞을 것이오, 맛을 보시오.]
왠지 뿌듯해 하는 듯한 연성의 말투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나 집어 맛을 본 경염은 입 안 가득 퍼지는 고소하고 달콤한 맛에 천천히 눈을 깜빡거렸다. 어쩐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과 함께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율리 다식이오. 율리는 북연에서만 나는 열매지.]
[율리...]
[왜 그러시오?]
[왠지 들어본 이름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허나 북연에서만 나는 열매라 하시니, 착각이겠지요.]
연성은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입맛에 맞으시오?]
[네, 맛이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이 율리가 나는 철이오. 비의 입맛에 잘 맞을 것 같아 넉넉하게 만들라 했으니 많이 드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많이 먹고 빨리 건강해져야 가을 사냥에서도 비의 실력을 보일 수 있지 않겠소.]
[사냥이 열립니까?]
[열흘 후에 열릴 것이오.]
[제가 가도 됩니까?]
[궁에만 있어 답답할 테고, 무장으로 이름을 날린 비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하니, 꼭 같이 가서 뛰어난 솜씨를 보여 주시오. 내가 없는 궁에 남아 있는 것보다, 나와 함께 사냥을 가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오.]
[그렇다면 함께 가겠습니다.]
안 그래도 병석을 털고 일어나자마자 태자의 측비 연형궁 심씨가 선물 받은 차에 들어 있던 독에 당해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경염은 다시 한 번 살벌한 북연의 궁 분위기에 질렸다. 제가 아팠던 건 누군가의 수작 때문이 아니었지만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자의궁 현씨와 아마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할 연형궁 심씨는 사악한 손들에 당한 것이 확실했다. 경염 역시 늘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장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전장의 죽음은 이렇게 음험하지 않았다. 모두 제 고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곳이라 치열했고 당당했다. 하지만 북연의 궁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는 음습하고 악독했다. 경염은 태자의 측비들이 사경을 헤맨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물 밖에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숨이 막혔다. 그렇기에 사냥 이야기는 경염이 회임을 할 수 있는 몸이라는 말보다 더 반가웠다.
7. 경염
사냥은 즐거웠다. 북연에 올 때 양나라에서 주로 쓰던 칼과 활을 모두 두고 온 경염을 위해 연성이 보여준 몇 개의 활 중에서 제게 맞는 걸 들고 초원과 숲을 누비며 말을 달리자 혼인 후에 은근히 쌓여 가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굳이 사냥을 하지 않아도 말을 달리는 것만으로 근심과 불안이 사라지는 듯했으나, 연성과 나란히 말을 달리자 남들에게 떨어지지 않는 연성의 사냥 실력에 자극을 받아 어느새 경염도 사냥에 열중하게 됐다. 결국 두 사람은 연성의 형인 4황자가 다가 와 이러다 사냥터 짐승들은 태자 전하와 태자비 마마께서 다 잡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했을 때야 멋쩍게 막사로 돌아왔다.
교역이 발달한 현재와 달리 과거에는 긴 겨울을 앞두고 겨우내 먹을 고기를 마련해 두는 의미로 가을 사냥을 했기에 북연에서 가을 사냥은 매우 큰 행사라고 했다. 그 덕에 황제와 조정 신료들, 황자들이 모두 사냥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연성은 다른 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태자비 경염과 호위들만 데리고 사냥을 즐기고 식사를 했다.
연성과 경염은 잡아 온 몇 마리의 토끼와 멧돼지에 각종 채소와 향신료를 곁들여 밥과 함께 먹었다. 식사 중에는 몇몇 다른 황자들이 와서 경염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경염 자신도 황자였지만 양나라의 황자들은 서로 적대적이거나 소원했다. 그러나 연성의 형제들은 형이든 동생이든 모두 사이가 좋았다. 물론 연성은 태자의 신분이라 격의 없이 대하지는 못했지만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황위계승권을 노리는 황자들의 난이 한 번도 없었던 나라. 경염은 북연으로 오기 전 들었던 말이 사실일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황자들은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는데 태자의 비들은 황자들의 몫까지 하겠다는 듯 더 사납고 치열하게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나라. 그리고 자신은 태자의 측비들의 공적인 태자의 정비였다. 사냥에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았을 당시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들었던 연형궁 심씨는 가을 사냥이 시작되기 전 결국 눈을 감았다. 몇 달 새 세상을 떠난 비가 벌써 둘이었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사냥으로 사기를 끌어올린 보람도 없이 경염의 등골을 따라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연성은 경염의 불안한 기색을 알아챈 건지 어깨에 망토를 둘러주었다.
[여기 있는 동안은 그대도 긴장을 좀 풀어도 좋소, 비. 내 호위들은 모두 뛰어난 자들이니 그대에게 해를 끼치려는 이들이 다가오게 하지 않을 것이오.]
[네, 전하.]
[그대에게 위험한 곳은 이 사나운 숲이 아니라 사냥터보다 더 피바람이 몰아치는 궁이오. 허나 그대가 태자비 궁을 벗어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대에게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답답해도 견뎌 주시오.]
[그리 하겠습니다. 전하께서도 보위에 오르실 몸이니 언제나 조심하십시오.]
연성은 경염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부드럽지만 왠지 서글퍼 보이는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위험하지 않소, 경염. 부황도 모후도, 내 형제들도 안전하오.]
[...네?]
[궁에서 위험한 건 경염 그대와 시시때때로 사선을 넘나들고 있는 나의 비들뿐이오.]
[...]
[아직 북연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대에게는 이 상황이 기이하게 느껴지겠지만, 그 궁에서 지금 언제나 바람 앞의 등불이 된 심정으로 살아야 하는 건 태자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이들 뿐이오.]
[... 역시 그렇습니까...]
[조금만 더 견뎌주시오, 비.]
[네?]
[길어도 2년은 걸리지 않소. 그 일이 아니었다면 1년이면 충분했겠지만...]
알 수 없는 말에 대답을 못하고 있자, 연성의 얼굴이 굳었다. 아름다운 얼굴 위로 낭패라는 표정이 선명했다. 연성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무겁게 말을 이었다.
[실언이었소. 내가 비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해서는 안 되오. 그대의 시비들이나 태감들에게도, 내 형제들에게도 내게 이런 말을 들었다는 티를 내서는 안 되오, 약속할 수 있겠소, 경염?]
[연유가 있습니까?]
[나중에 알게 될 것이오. 그대를 위해서이니 약속해 주시오.]
[... 약속하겠습니다.]
[내일도 사냥을 해야 하니 좀 더 드시오.]
8. 연성
연성은 막사의 침상에 경염을 안고 누워 있었다. 경염은 내내 궁에서만 지내다가 오랜만에 말을 타고 달려서 그런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경염의 얼굴에는 아직 10살 때의 그 얼굴이 남아 있었다. 연성은 지금도 경염을 보면 볼에 젖살이 통통해서 귀여운 얼굴로 오물오물 다식을 먹던 어린 경염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율리 다식을 받아먹던 경염은 아팠던 뒤라 볼에 살이 내리고 눈빛에 불안과 근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렇게 힘들게 하려고 데려 온 게 아니었는데.
연성은 청룡의 반려가 청룡의 아이를 낳기 위해 1년간이나 청룡의 기를 받아야 한다고 정해 둔 천제를 맘속으로 몰래 원망했다. 기왕 축복을 내릴 거라면 한 달만 받아도 낳게 해 주면 좋았을 것 아닌가. 아니, 원흉은 역시 소선이었다. 경염의 아기집을 복원하느라 시간이 꽤 지나갔기 때문에 이제야 막 기와 정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었다. 혼인한 지 몇 달이 됐음에도, 여전히 경염은 약 1년간 더 연성의 기와 정을 받아야 청룡의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아기집을 복원해 두지 않았다면 얼마 전 경염이 제 몸에 대해 고백했을 때 안심시켜주지 못했을 테니, 현명한 선택이었기는 했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경염은 현명하고 입이 무거운 사람이니 연성의 반려임을 알려주고 경염만은 저 피냄새 나는 궁에서 안전할 거라 말해주고 싶지만, 오래 전 한 태자가 제 반려가 누군지를 미리 공개했다가 그 반려가 살해되고 청룡의 피가 끊길 뻔한 사례가 있었던지라 청룡의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반려를 알리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연성은 꿈자리가 좋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리는 경염의 입에 입을 맞추며 자신의 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곧 경염의 얼굴이 밝아지고 경염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연성...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딱 10살 때 저를 불러주던 그 귀여운 어투라 연성의 마음에 가득하던 근심도 흩어졌다. 연성은 20년 전 저와 경염이 만났을 때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랑스러운 비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소리 내어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만 속삭였다.
[사랑하오. 나의 비. 나의 반려. 경염.]
재업은 사랑
나의 반려 억나더!
재업은사랑!!!
재업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