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image.php?id=2eb5d928e0c13da27cbedbb405&no=29bcc427b28177a16fb3dab004c86b6f1241ce450ebe83e295e9f5b5e992dd3bb0d419846c0348d45fc679e61c30673e18602e122ad45534ca5ac5547d84aa54d57acc3019f973acd33309c11a8c357e83119bc3a65078


viewimage.php?id=2eb5d928e0c13da27cbedbb405&no=29bcc427b28177a16fb3dab004c86b6f1241ce450ebe83e295e9f5b5e992dd3bb0d419846c0348d45fc679e61c30673e18602e46298707679d0494547d84aa54531d7613104b595ac61aa13071d8460ec4d31469b72ab6


viewimage.php?id=2eb5d928e0c13da27cbedbb405&no=29bcc427b28177a16fb3dab004c86b6f1241ce450ebe83e295e9f5b5e992dd3bb0d419846c0348d41a932f8919336a39612b9257ba2a360bcf5be01c516c25a505bdcc72e1fee51591f12cca8b502f6cfad66d963eec340938cdf1





ㅇㅌㅈㅇ
ㄴㅈㅈㅇ
곽건화왕카이




"경염은 언제 오는가?"
"이제 곧 당도 하실 것입니다."
"폐하도 참, 왜 피곤한 사람을 붙들고 오래 끄시는지."

나름 티를 내지 않고 앉아 있는 척 하던 기진이 결국은 내관에게 물었다가 투덜댔다. 강연에 들어가기 전 보려고 했던 서책이 한 장도 넘어가지 못 하는 것을 보고 이미 태자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던 내관이었다. 기진은 오늘 승전보를 가지고 귀군할 경염을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도한 뒤, 황제와 먼저 만나야 했다. 태자인 내가 가서 고된 전투에서 승전한 그들을 치하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묻자 내관은 고개를 조아리며 현명하시다 하였으나 황제와 동석하여 경염 일행을 만나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태자는 경연에 빠지지 말고 들어가기 전 공부도 해두라. 황제의 분부였다.

"소 장군께서 드십니다."
"경염!"

서책이 다 무어야, 그냥 던져버리고 버선발로 뛰쳐나가지 않은 것도 기진에게는 용한 일이었다. 두어해 전에는 경염이 온다는 말이면 황제가 뭐라하든 쫄래쫄래 나가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하였다. 제 어미를 봐도 좋다하지 않는 기진의 경염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의아해 하는 이는 없었다. 다들 기진이 이 넓고 아름다운 동궁전에 들어 앉아 얼마나 압박을 받는지 알기 때문이다.

"태자저하를 뵙습니다."
"일어나세요, 우리 사이에 왜 꿇어 앉는단 말이오."

기진은 얼른 경염의 손을 잡았다. 태자가 친히 무릎을 굽혀 손을 끄는데야 경염도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기진은 커다란 눈을 깜박이지도 않고 경염을 살폈다.

"어디 다친데는 없습니까? 배는 곯지 않으셨습니까?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우리 나라에 장군이 어디 그대 뿐인가요, 왜 번번이.."
"저하."

기진의 입에서 기어코 황제에 대한 불만이 나오려 하자 얼른 경염이 막았다. 그 말에 제가 실언을 할 뻔 한 것을 알고 기진은 다시 입을 꾸욱 다물고 경염을 살폈다. 그새 가뜩이나 말랐던 볼이 홀쭉해졌다. 얼굴에 보이는 상처는 없지만 잡힌 손은 더 거칠어져 있어 속이 상했다. 이 길고 아름다운 손은 기진이 좋아하는 경염의 일부였다. 마음이 아파 연신 손등을 매만지고 굳은 살이 잡힌 손가락을 만졌다.

그런 기진을 경염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변방에 일어난 오랑캐를 제압하고 오는 길, 족히 4개월은 넘게 걸렸다. 그 사이 기진은 훌쩍 큰 듯 느껴졌다. 떠날 때, 목이 아프다 퉁퉁 댔던 기진은 목소리도 더 낮아지고 매끄러워져 있었다. 아직 젖살이 남아 있던 뺨이 홀쭉해지고 눈높이도 전과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그 순진하고 아름다운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가득한 그 커다란 눈동자.

"왜 그리 보십니까?"

다과를 내와서 경염에게 밀어주며 싱글벙글하던 기진이 물었다. 경염이 수저를 든 채 자신을 보는 기색에 의아해진 탓이었다. 경염은 작게 미소지었다.

"좋아보이십니다, 저하."
"내가요?"
"예, 많이 자라셨습니다. 건강해 보이셔서 안심이 됩니다."
"뭐 내가 아직도 어린앤 줄 아시오."

기진은 툴툴대는 시늉을 했지만 좋아하는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기진은 12살에 태자로 책봉 되었다. 위로 줄줄이 있는 형님들을 제치고 태자에 막내인 기진이 책봉 된 것을 두고 대신들은 말이 많았으나, 황제는 기진의 생모인 후비에게 녹아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황권이 강했고 황제는 신하들에게 잔혹하기 이를 데 없기도 했다. 감히 간하는 신하가 없었다. 단지 불만은 쌓여갔다. 물론 가장 강하게 불만을 품은 이들은 이미 죽은 황후의 아들들이었다. 황제는 아들들의 불만을 달래주기도 하고, 묵살하기도 했다. 황자들을 감시하는 일도 소홀하지 않았기지만, 그래도 불안은 쌓여갔다.

황제는 여리고 눈물많은 제 태자를 보며 고심했다. 아직 건강한 자신이니 십년은 족히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을테지만, 그래도 기진의 사람을 두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골랐다. 공신 가문 중 가장 세력이 강한 소선의 집안에서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볼모 겸 데려와 기진의 옆에 두기로 한 것이다. 그건 18세의 소경염이었다. 영특하고 강직한 성품과 장수의 기질이 남달랐다. 그리고 황제의 예상대로 경염은 훌륭한 장수로 성장했고, 기진의 가장 강한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경염은 오늘 황제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황후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 황후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태자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얼른 기진에게서 후사를 봐야했다. 기진은 15세 때 혼인 한 비와의 사이에서 아직도 아이가 없었다. 애초에 아이가 있으려면 제 부인을 가까이 해야하는데, 기진은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이미 16세에 장자를 보았던 황제는 여인에게 그리 무심히 구는 제 아들이 의아했지만 어린 탓이라 여겨 참아 주었다. 하지만 벌써 결혼 한지 3년, 아직도 후사는 커녕 부인과 만나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아 걱정이 되는 것이다.

황제가 기진에게 혹여 태자비의 외모가 탐탁치 않아 그러냐, 그래도 의무적으로 합궁은 해야한다 했으나 기진은 난처한 기색만 할 뿐 별 대답이 없었다. 태자의 외모가 워낙에 출중한 탓에 나온 질문이었다. 기진이 별 말을 않으니 외모가 뛰어난 여인을 뽑아 후궁으로 삼게 했으나 기진은 또 데면데면구니 속이 탈 뿐이었다.

그래서 황제가 기진이 껌뻑 죽는 경염에게 말한 것이다. 기진이 왜 저리 여인들에게 무심한 지 그 연유를 좀 물어보라고. 가능하면 설득해 합궁을 하게 하는게 신하된 도리요, 기진은 후사를 생산하는게 아들된 도리 아니냐는 것이다. 그 말에 경염은 자신이 나설일이 아니라 여겼으나, 황제의 근심어린 표정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얼마나 속이 타면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할까. 기진이 자란 만큼 전보다 부쩍 연로해 보이는 황제의 얼굴. 기진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황제와 황후가 죽는다면 어찌 되는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황후 마마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들었습니다."
"네, 부처님께 기도를 드려도 차도가 없으시니 걱정입니다."

나라의 고승이란 고승들은 죄다 초청해 궐에서 황후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으나 황후는 병석을 털고 일어나질 못했다. 기진이 눈을 내리깔며 우울한 낯을 했다. 기진이 눈물을 뚝뚝 흘릴 때마다 어찌 저리 반푼이같이 구냐며 혹독하게 야단치던 대찬 어머니. 그녀의 사뿐 거리는 발걸음 소리, 긴 옷감이 바닥을 쓸며 다가오는 소리만 들어도 무서워서 심장이 벌렁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저리 생사를 헤맨다. 아무리 제 욕심때문에 기진이 전혀 원하지 않는 태자 자리에 강제로 앉혀버린 이라도, 어미는 어미였다. 어머니를 떠올리면 부담감에 온몸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황손을 안겨드리면 차도가 있으시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변한 주제에 기진이 뭔말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문득 입술을 꼬옥 깨물고 경염을 본다. 원망이 득시글 차오른 눈빛은 제 아비를 닮아 금방 매서워졌다. 경염은 그래도 바르게 그 눈을 응시했다. 기진은 그런 경염의 옷을 끌어와 마구 흔들며 화를 내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저리 강직하기만 한 눈에 금세 서러워졌다. 제 마음도 모르고, 저런 말이나 하는 그가 야속했다.

"됐소, 일 없소."
"저하."
"내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고작 하실 말이 그것뿐입니까?"
"송구합니다."

당황한 얼굴로 자신의 안색을 살피는 경염을 보며 기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