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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쉬어감










“그냥 밝히자.”


곽건화의 제안은 언제나처럼 간단명료했다. 그의 발언에 호가의 얼굴 위에 드리워졌던 근심걱정이 사라졌다. 한심한 눈으로 그를 돌아봤다는 의미다. 물론 그 불순한 눈초리에 곽건화가 딱히 드러누워 있던 자세를 고치곤 진지하게 항변하진 않았다. 호가의 복잡한 속내를 다루는 그의 태도야 언제나 가벼웠다.


“어차피 알게 될 거.”

“뭘 알게 돼.”

“당장 촬영 끝나면 같이 살 건데, 당장 기자들은 어쩌려고. 물론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이야 하겠는데 솔직히 완벽하게 숨길 수 있다고 보장은 못하겠다.”


곽건화는 어깨를 으쓱했다. 중국 파파라치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요함이야 연예인 생활 10여년 이상 해오면서 곽건화가 경험으로 체득한 바 있다(그에 버금가는 것이 있다면 중국 사생 팬의 집착이 유일했다). 상황과 한계를 인정하는 그의 태도는 담담했고 미안한 구석은 없었다. 


그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호가는 앓는 소리를 냈을 뿐 가타부타 말은 없었다. 딱히 니가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 


이걸 어쩐다. 미심쩍은 해프닝이야 두어 차례 있었지만 설명 못할 건 아니었고, 때마다 적당한 핑계로 둘러대었다. 하지만 상황이 반복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누적된 경험이 과연 전혀 영감을 주지 않을 것인가. 좀 전 저를 보는 조연출의 눈빛이 거슬려 아닌 척 내내 그를(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올 문제적 발언들) 주시하느라 온 신경이 곤두섰다. 


호가는 주먹으로 이마를 툭툭 두드렸다. 생각에 잠긴 그 얼굴을 곽건화는 아닌 척 조심스레 살핀다. 이윽고 손을 내리고 호가가 말문을 연다. 그의 목소리에선 일생일대 중차대한 결단을 내리는 자 특유의 비장함이 흘러내렸다.


“그래도 안 돼. 이건 재고의 여지가 없어.”


최소한 촬영 끝날 때까진 숨길거야. 나온 말은 역시나 곽건화가 어렵지 않게 예상한 바였다. 그리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기도 했다. 저 부질없는 고집.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누가 동네방네 떠들쟀냐. 최소한 측근이라도-”

“니가 말하는 그 측근이 누군데?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 보는 눈이 심상찮은데 누구 입을 어떻게 믿고 말을 한다는 거야?”


말을 채 다 꺼내기도 전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호가의 기세에 곽건화는 한숨만 흘린다. 그럼 아까처럼 날 자빠트리지나 말던가.


농담이 아니라 곽건화가 침대에 누워있는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좀 전 촬영장에서 자빠진 탓에 허리를 삐끗해서였다. 심각하게 다친 건 아니지만 근육이 놀란 것인지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파스를 붙인 상태로 지금까지 침대신세였다. 


그 범인은 지금 곽건화와 함께 있었다. 외부촬영 도중 구석에서 단 둘이 이야기를 나누다(별 것도 아닌 대화였다) 곽건화가 장난삼아 고개를 슬쩍 들이밀었다. 그 순간 그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호가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곽건화를 인정사정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불시의 섬광 같은 습격에 곽건화는 그대로 반항 한 번 못했다.


사람이라 생각한 것은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길 고양이었다. 촬영 관계자가 봤다면 다음날 기사에 곽건화, 작품 감독과의 불화설 따위가 대서특필되었을 것이다. 다행이 고양이는 시큰둥한 얼굴로 훌쩍 반대편 골목으로 사라졌고, 호가는 자괴감에 끙끙거리느라 바닥에 엎어진 곽건화의 신음소리를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허리 부상의 범인은 슬쩍 곽건화의 허리 쪽을 바라보더니 침대에 걸터앉았다. 


“좀 괜찮아.”


곽건화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보다가 상체에 힘을 줘 일으켰다. 앓는 소리가 나왔지만, 움직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바닥에 엎어지느라 까진 손바닥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그가 말했다.


“혹시나 싶은 거지 다치거나 한 건 아니야.”

“파스 좀 더 뿌려줘?”

“아니 됐어.”


이리 안쪽으로 더 들어와 봐. 호가는 그가 툭툭 두드리는 자리로 좀 더 몸을 움직였다. 곽건화는 훌렁 드러누운 채 그의 다리를 베었다. 


호가는 이마에 지저분하게 늘어진 곽건화의 앞머리를 슥슥 걷어내었다. 촬영장에서 카메라를 통해 보는 것과는 느낌이 또 달랐다. 느긋한 마음으로 이목구비를 훑어보았다. 잘생기긴 잘생겼네. 


눈을 감은 채 곽건화는 문득 입을 열었다. 그건 뭐 그렇다 치고. 그는 눈을 떠 호가와 시선을 맞추며 말을 잇는다.


“주택이 좋아, 아파트가 좋아?”


멀뚱히 저를 보는 호가를 올려다보며 곽건화는 팔짱을 꼈다. 눈을 깜빡거릴 뿐 대답을 못하는 호가를 기다리다 그는 픽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팔을 세워 상체를 지탱한 채, 시선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안 때문에. 그래도 니가 원하는 게 있으면 최대한 맞춰볼게.”


호가의 침묵이 길어진다. 시선을 슬쩍 피하려는 그와 눈을 꾸준히 맞춰가며, 곽건화는 대답을 기다렸다.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길어지는 침묵에 점점 초조해진다. 뭐라고 채근을 해야 하나, 고민을 실행하려 하는 순간 호가는 입을 열었다.


“그건 좀 생각해보고.”

 

곽건화는 미간을 확 구겼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고, 조건반사였다. 이사 전후로 말이 달라진 전셋집 주인에게 ‘도배는 해주기로 하셨잖아요!’ 라고 따지는 세입자와 비슷한 톤으로 말이 나갔다. 


“뭘, 뭘 생각을 해? 그때 이야기 끝난 거 아니었어?”

“그때는 뭐...같이 살자는 말은 아니었지.”


호가는 말문을 흐렸다. 말은 하지만 저 역시 자신 있게 내밀진 못하는 투가 역력했다. 곽건화는 기가 찼다. 저를 멀뚱히 보는 벙찐 얼굴에 호가는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다. 물론 자신이 있다는 건 아니었고.


“너무 좀, 빠르잖아. 다시 만난 거 얼마 되지도 않은데 바로 동거는...”

“너 나랑 석 달 만에 결혼했어, 십년 전엔.”

“그래서 석 달 만에 헤어졌...아니 이게 아니라.”


표정이 본격적으로 나빠지려는 곽건화의 얼굴에 호가는 급하게 말을 주워 담았다. 내 팔자야. 


“좀 시간을 두고 천천히 가고 싶다는 거지.”

“연애하고 싶어?”

“뭐?”


불쑥 튀어나온 단어는 전혀 예기치 못한 것이었다. 맥락에 맞지 않은 단어에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아 호가가 되묻는다. 곽건화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뭐 애들처럼 밀당, 이런 거 하는 거야? 우리 나이 안 적어. 시간낭비 하지 말자.”

“무슨 밀당은-”


이게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호가는 어이가 없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를 보는 곽건화의 표정은 뚱했다. 불만이 역력한 기색이었다. 진짜 이걸 쥐어박을 수도 없고. 호가는 복장이 터진다는 얼굴로 말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삐지지 좀 마. 아주 같이 안 살겠다는 것도 아니고 생각 좀 해보자는데 그거에 삐져가지고는 진짜 유치해서-!”

“뭐 좀생이? 유치해?”


이제 곽건화도 질세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의 무리를 무릅쓰고.


“내가 쉽게, 장난처럼 말한 건 줄 알아?”

“그럼 나는 뭐 쉬워서 거절했어? 매번 그래도 결국은 네가 하자는 대로 했잖아! 한 번쯤은 내 말대로 하면 안 돼?”

“니 말대로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


곽건화의 울분에 호가는 순간 일격을 당하고 말문을 잃었다. 그건 너무 맞는 말이었다. 입을 다무는 그를 보며 한숨을 길게 쉬며 호흡을 고르던 곽건화가 눈을 감았다. 


“같이 살기 싫은 이유가 뭐야.”

“싫은 거 아니야, 그냥-”

“싫든 어쨌든, 같이 안 살겠다는 거네.”


호가는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며 눈치를 보았다. 당장은 좀, 그래. 생각할 시간을 좀 두고. 그 ‘생각할 시간’이라는 단어에 버튼이 눌리지 않기 위해 곽건화는 내면에서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기운을 내리누르느라 스팀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저 생각할 시간에 일일이 박자를 맞추다 보면 같이 살 집이 아니라 같이 안치될 묫자리를 알아봐야 할 나이가 될 것이다.


니 맘대로 해라. 제 핸드폰을 챙기는 곽건화는 시큰둥한 얼굴이었다. 갑자기 밖으로 나가려는 그의 기세에 호가가 얼굴을 구긴다. 


곽건화는 마치 경고하듯 말했다.


“나 안 삐졌어.”


예의상으로라도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호가는 코웃음을 친다.


“웃기지 마”

“안 삐졌다고, 나 화났어. 너하고 같이 안 잘 거야.”


방을 훌쩍 나가버리는 그의 모습에 호가는 혀를 찼다. 진짜 완전 삐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