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타갤에 올렸던 거 좀 수정해서 재업함


ㄴㅈㄱㅈㅅㅈㅇ

+글먹해서 나눠서 올림



3.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을 피한다고 했고 가위바위보도 길어야 세 판인데. 카이는 오래 전 셋을 세다 못해 다섯 손가락을 다 접었었다. 그리고 지금, 일곱 번 째다. 마지막 그가 떠난 이후로 2년 만에, 다시 연락이 왔다. 카이는 앞에 앉은 남자의 흥미로운 표정을 무시하고 빠르게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아까부터 독하디 독한 머스크향에 에스프레소 향이 섞여서 빈 속이 메슥거렸다.

 

 

[금방 갈게]

 




카이가 보낸 웨이신을 읽고, 건화는 뒤통수에 손을 둘러 머리를 받쳤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고민은 짧게 끝이 났다. 결국 자신이 이렇게 만든 거였다.

밖을 보니 날씨마저 이상하다. 비가 오던지 해가 비치던지 하나만 하지. 넌 어정쩡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들어버린 이도저도 아닌 이 관계에 계속 동참하고 있다.

비가 좀 들이치는 것 같은데, 간만에 보이는 햇빛이 차마 아쉬웠던 건화는 창문을 닫지 않았다. 아마 카이가 오기 전에 물기를 닦아야 잔소리를 듣지 않겠지만, 저 빗방울들이 다 마를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자 그냥 방치하기로 한다.

 




누구야?”

너한테는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은 사람.”

나 말고 다른 연애 진행 중이야?”

그 사람 말고 너랑 연애를 진행중이었지.”

 


메인과 서브를 다시 정리한 카이는 창밖의 날씨에 인상을 살짝 찌푸리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나 향수를 뿌린 건지 카이의 코 높이에 있는 공기마저 향수의 향이 진동했다.



간다.”

뭐하냐, ?”

아 그래, 예의는 갖춰야지.”

 


카이의 앞에 앉은 남자는 cf업계의 알아주는 모델이었다. 사방팔방에 있는 파파라치를 대비해 형식적으로 챙겨온 업무용 서류를 브리프케이스에 집어넣고 일어섰다. 

의자 뒤에 느긋하게 기댄 채 저를 올려다보는 남자를 향해 카이는 짧게 툭 던졌다.

 


헤어지자, 미안.”




 

햇빛 나는데 비까지 내린다니. 카이는 편의점에서 우산을 살지 고민하다가 그냥 비를 맞기로 했다. 지금 이 날씨가 건화와 카이 자신의 관계 같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날씨. 혹은 남들에겐 신기하거나 불쾌할 수도 있는 날씨. 카이는 후거에게 전화를 걸어 예정되어 있던 저녁 약속을 취소했다.



나 대신 근동형이 갈거야. 이번 광고에는 흑백보다는 쨍한 컬러감 있는 사진으로 쓰려고 하니까,”

-넌 왜 못 오는데? 니가 요구한 조건에 맞는 거 몇 개 새로 찍은 걸로 보여주려고 했더니.“

“........형한테 연락 왔어.”

-또냐.



후거는 이제 놀란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카이는 빗방울이 묻은 구두 끝만 쳐다봤다. 아까 카페에서의 오만한 모습은 이미 사라진 채였다. 

카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던 후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자꾸 널 떠나는 형이나, 형이 올 때마다 받아주는 너나, 둘 다 비정상이야.”

사람 감정에 정상이 어딨냐.”

-난 적어도 세상 사람들의 감정선 보통치를 따라가긴 하거든?”

...나도 모르겠다. 2년 넘게 그 집에 안 갔으니까 짐 새로 싸서 가야할 거 같아. 아무튼, 오늘은 힘들고, 내일 외근 핑계대고 작업실 찾아갈게. 알았어, .”



2. 2년 전 건화가 떠난 그 날 밤, 카이는 미련 없이 후거의 작업실로 찾아가 암실에 있던 그를 끌고 클럽으로 향했다. 어깨를 스쳐가며 춤추던 옆 사람과 적당히 사귀다 헤어지거나 업계 바닥에 소문이 난 연예인과 반년 가까이 사귀거나. 여러 번의 이별은 카이를 담담하게 만들었다. 광고업계에서 오래 구른 카이에게 상대를 구슬릴 줄 아는 말빨은 작정하면 나오는 것이었다.

 

근데 왜 화꺼만 보면 그게 안 되느냔 말이지.’

 


턱을 괴고 자못 심각하게 저를 바라보던 후거의 표정이 아른거린다.

 


너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

네가 자꾸 받아주니까, 형이 돌아오는 거라고.’

그러겠지.’

간단하게 말고 바보야. 네가 계속 받아주니까, 형이 다른 사람을 만나려다가도 그 사람과 뭔가 잘 맞지 않는다 싶으면 바로 그 관계를 포기하고 너한테 돌아오는 거 아닌 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

‘..........’

네 속은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형이나 너나 계속되면, 둘 다 앞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거 불가능하다고 봐.’




세상에 딱 둘 뿐인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카이는 후거의 말대로 이런 이상한 관계를 만드는 데에 자신도 한 몫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아니야. 이렇게 계속 하면 안 돼.


정처 없이 걷던 걸음이 멈추고, 긴 팔이 마침 근방을 지나던 택시를 잡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