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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에서 명공관까지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명대에겐 시간이 멈춘 것 처럼 지겹게도 침묵은 계속 되었다. 방안에서부터 조심스레 저를 부축하던 형은 계단을 내려오다 다리가 풀려버린 명대를 가까스로 잡아챘지만, 그 때부터 제 팔을 붙들고 있던 손엔 아플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명루형이 화났다. 아까처럼 소리라도 지르면 마음이 편해지련만, 조용한 형들의 굳은 얼굴에 명대는 속이 탔다.하필이면  조수석을 놓고 뒷자리에 함께 앉는 명루 덕분에 복잡한 머릿속을 숨기기도 여의치가 않았다. 호텔이 있는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명대는 눈치를 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아성형. 누나는 모르는 거지?"

"..."

"... 명루혀엉."

"네가 걱정이란 걸 하고 살긴 하는 거냐."

"말씀드리지 말아요, 응? 누님 걱정 하신단 말이에요. 내가 아무 남자 붙잡고 그런 것도 아니고, 어차피 혼인..."

"시끄러워!"



 결국 언성이 높아진 명장관은 결국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형을 힐끔보고 다시 고개를 숙인 명대는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는 듯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형이 무서워 먼저 말을 꺼내진 못하는 눈치였다. 한 숨을 푹푹 내쉬던 명루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명대를 바라보더니 애써 시선을 피하며, 아성에게 말했다.



"차 안에 고청명 냄새가 진동을 하는 군...누님에게는 내가 알아서 둘러댈테니, 넌 들어가자 마자 애부터 씻겨."

"누님이 보내셨는데 어떻게 말씀하시려구요. 이미 잔뜩 화나셔서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실겁니다."

"뭐! 누나가 벌써 다 안다구?"

"지금 누님이 문제야! 애가 애를 베게 생겼는데!"

"그러니 누님이 제일 문제지요. 다같이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겁니다,명대 이 자식도 이 기회에 혼 좀 나야 하구요."

"혀..형.진짜 누나가 보냈어?"

"마지막으로 말한다. 명대...넌 조용히 해."



 아까 호텔방에선 그래도 걱정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었는데, 어느 새 싸늘해진 형의 모습에 명대는 평소처럼 받아치지도 못하고 애꿎은 손톱만 잡아뜯었다.    



"잔말말고 네가 확실히 긁어내, 혼인도 전에 임신했다간 누님이 앓아 누우시는 걸로는 안끝날거다."

"임신? 형, 뭐...뭘 긁어?"

"누님이 눈치채지 못하실리가 없습니다. 혼나게 두시죠 그냥."

"다리가 풀려서 걷지도 못하는 애를 어디 세워두겠단 거야! 일단 데리고 올라가서 그 놈의 씨부터 빼내라고! 난 누님만 진정시키고 곧장 닥터소에게 들려 약부터 받아올테니.별 효과는 없겠지만 안 먹는 것보단 나을 거다."

"뭐를 빼? 명루혀..형! 뭘 시키는 거야 지금!"

"그럼 누님께는 뭐라고..."

"어제 혼난 것 때문에 명대가 반항하려고 일부러 꾸민 짓이라고 하면, 화만 좀 내시고 마실거다. 청명이가 나한테 바로 연락했다고 말씀드릴테니까, 넌 이 자식 믿지말고 확실히 처리해."

"...알겠습니다.안 그래도 직접 씻길 생각이었습니다." 

"싫어! 왜, 왜 그래 진짜!나 안했어, 청명형이랑 안 했다구!"

"가서 명성 말 안듣고 소란스럽게 했다간, 머리를 박박 밀어버릴테니 그런 줄 알아라. 얌전히 굴어."

"그래서 지금 억지로라도 씻기겠다는 거야? 내,내가 아무리 남자라도 엄연히 형질이 다른데...미쳤어! 싫어!"



 형들의 대화를 듣던 명대가 버럭 소리를 지르니, 명루가 머리가 울린다는 듯 또 인상을 찌푸렸다. 명대는 이미 입이 벌어져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누나가 제가 남자를 끼고 호텔에 들어갔단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형들은 제가 고청명과 정을 통했다고 거의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지금 이 사단은 네가 자초했다. 명가 사전에 혼전임신이란 없어."

"아..안했다니까? 형, 진짜야!"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부정해오는 명대를 지긋이 바라보던 명루는 더 이상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바로 딱딱하게 굳어오는 형의 표정에 명대의 억울함은 커져만 갔지만, 자신이 지금 적극적으로 변명을 할 만한 입장이 못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고청명을 불러들인 것도 저였고, 싫다는 고청명에게 벗고 달려든 것도 자신이었다. 거기다가 끝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거의 갈 뻔했단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다 벗고 양인이랑 침대위에서 뒹군 걸 내 눈으로 봤는데 변명을 해?"

"그...그게. 아! 진짜야! 어쨌튼 임신은 절대 안한다니까!"

"다리가 풀려 걷지도 못하는 놈이 입 하나는 살았구나."

"아니! 아.. 그, 그거 안했단 말이야... 진짜야. 나 애기 안 가져. 형 내가 진짜 약속할게. 절대, 절대루...!"

"명대, 정사 중에 사정을 꼭 안에 안했다고 해서 무조건 임신하지 않는 게 아니다."

"아! 아성형!"



 침대에서 고청명가 제가 뒹구는 모습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아성까지 이렇게 말해버리니, 명대는 억울해도 할 말이 없었다. 삽입이 없었으니 임신 가능성이란 단 0.01 퍼센트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명루는 제 말을 믿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거기다 아성이 사정이라는 단어를 쓰자마자 ,명루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며 얼굴 근육이 미친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붉어진 얼굴은 이미 타들어갈 것처럼 분노로 달아올라있었고, 차마 그런 형을 보고있던 명대는 입이 안 떨어졌다.고청명꺼 내 안에 진짜 안들어갔어! 라고 주장하기엔 풀려버린 다리와 정액으로 엉망이 되어있던 침대위를 설명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고청명의 입술과 손가락으로 절정에 올랐다는 둥 자세한 둘의 이불 속 사정을 아버지같은 큰 형에게 설명할만큼 명대는 뻔뻔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대로 오해를 받기엔 뭔가 억울했는지 명대는 이제 눈꼬리에 눈물까지 달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형님! 나 진짜 형이 생각하는 그런 거까지 안했어요!그러니까 안 씻겨줘도 돼!"

"어쩔 수 없어! 더 이상 토 달지마."

"정말 답답하네. 나 임신할 일 없다니까? 아성형! 형이 말려봐!"

"이런일은 확실히 하는 게 좋아."

"싫다고! 내가 애야? 형이 왜 날 씻겨줘! 싫단 말이에요!명루형! 차라리 그렇게 걱정되면 내,내가 씻어요. 내가 형 말대로 긁어내든 씻든 알아서 할테니..."

"닥쳐!...명대. 누님이 널 키우시면서 어떤 추문에 휘말리셨는지 모르는 거냐!"



 벼락같이 소리를 질러오는 명루의 분노한 얼굴에 명대는 결국 울먹이며 형을 바라봤다.


"널 데려오고 혼인도 안 한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며 평생을 추문에 쌓여 사시느라 혼인도 못하신 누님이시다! 그걸 아는 놈이 호기심을 못참고 이 사단을 만들어! 네가 그래놓고도 지금 할 말이 있어! 너 하나만 믿고 사신 누님이 네가 이런 짓을 했단 걸 아시면 얼마나 무너지실지 모르겠어!"

"...나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마라. 나도 네게 지금 실망이 크다."

"죄송해요..."

"누님 의심하시지 않게 도착하자마자 조용히 욕실로 들어가 있고."

"형님...그래도 저 혼자 씻고 싶어요.제발요."

"아성이 시키는 데로 가만히 따라. 거역했다간 넌 더 이상 명가가 아니다."



 명대는 결국 눈 안에 고여있던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리며 조용히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겨우 코트만 벗어놓고 욕실로 들어온 명대는 쭈그리고 앉아서 애꿏은 물만 바닥에 튕겨내고 있었다. 잠시후 문이 열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빼꼼 들었던 명대는 도로 고개를 무릎에 묻어버렸다. 터벅터벅 욕실을 울리는 발걸음 소리가 멈추고 차가운 손바닥이 머리 위를 덮었다.



"왜 그러고 있어. 물 다 식게 먼저 씻고 있지."

"... 왜 명루형한테 사실대로 말 안했어."

"내가 뭘."

"나 청명형이랑 안 한 거 형은 알잖아. 왜 명루형 오해하게 하냔 말이야!"



 같이 바닥에 주저앉은 아성의 손이 명대의 얼굴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바로 눈 앞에 다가와있는 다정한 눈빛의 아성의 얼굴에 명대는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드는 것 같아서,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걸."

"형 봤잖아... 고청명은 바지도 안 벗고 있었던 거 알잖아."

"추측일 뿐이지 확실하다곤 할 수 없지. 난 몰라."

"내가 아니라고 했어"

"네 말을 내가 어떻게 믿겠어."

"아니, 형 알아. 형 일부러 나한테 이러는 거야."

"형님 말씀대로 명가에서 혼전 임신은 금기다. 네 주장을 진실인지 거짓인 지는 상관없어,내가 그 가능성만 없애면 되는거니 ."  


 

 일부러 아성이 명루의 오해를 묵인하고 있었음을 확신한 명대는 사납게 그를 올려다 봤다. 그리고 곧장 제 옆에 있던 비누 그릇을 거칠게 집어들어 손을 올렸고, 아성은 순식간에 명대의 팔목을 잡아 챘다.


"억지로 약혼 시키고! 결혼하라고 몰아붙였잖아! 널 사랑한다니까 그 딴 소리는 약혼자한테나 가서 하랬잖아!"

"밤이야, 소란 피우지마. 누님 우시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얌전히 있어."

"하아. 진짜... 형이 싫어질 것 같아."

"투정 그만 부려."

"...명루형은."

"닥터소에게 가셨다. 임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시겠다고."

"쓸 데 없는 짓 하시러 가셨네."

"그래. 하루 종일 시달리셨는데, 너 때문에 밤까지 바쁘게 돌아다니신다고. 




 아성의 말의 한숨을 푹 내쉬던 명대가 다시 벌떡 일어났다. 바로 따라 일어난 아성이 커프스를 풀더니 바로 소매를 접어올렸고, 명대는 그런 아성을 보며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다가 기어들어갈 듯한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진짜... 나 안했어. 형 소,손가락만 넣었어... 아얘 바지도 안 벗었어, "

"안까지 씻어낸다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야. 지체될 수록 위험하니 어서 바지 벗어."

"왜 그래... 정말!"

"이렇게 질질 끌다가, 형님까지 세워놓고 씻어야 하는 수가 있다."

"있지도 않은 정액 긁어내자고, 약혼자도 있는 막내 동생 벗겨놓고 씻기겠다는게 제 정신이야?차라리 고청명한테 시키지 그랬어, 어차피 결혼하면 수도 없이 만질 몸인데."

"어차피 결혼한다는 말 따윈 없어. 그 자식은 네 약혼자일 뿐이고, 넌 아직 명가 사람이야. 그 딴 정신머리로 몸이나 굴리고 다녔다간 오늘처럼은 안끝날 거다."

"...형,후회할 거야."

"벗기기 전에 네가 벗어. 젖을테니 윗 옷도 벗는게 좋겠지만...정 부끄럽다면 그건 말리지 않겠다."



 명대의 얼굴엔 수치스러움이 가득 했다. 아성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모습이었다. 항상 저를 묘한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며 조금 더 닿기 위해, 만지고, 갖고 싶은 시선으로 달려들던 명대에겐 보지 못했던 표정은 수줍음과 조금 닮아있었다. 발가벗고 같이 씻던 어린 시절처럼 아이취급은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애정의 대상에게 다른 이에게 맡겼던 몸을 숨김없이 보여야 한다는 곤란함이 섞여있는 듯 했지만 그 어떤 쪽이라도 아성에게는 나쁘지 않았다. 사실 오늘은 그 놈 밑에서 신음을 내뱉는 아이를 보며 정말 가슴이 철렁했으니까.



"못 벗겠으면 내가 벗겨주.."

"...손 대지마."




 예민한 아이를 더 이상 건드려 좋을 것 없다는 판단이었다. 대답하고도 한참을 망설이던 명대는 결국 포기한 얼굴로 숨을 크게 내쉬더니 다시 아성의 눈을 한참 바라봤다.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아성의 시선을 보는 명대의 눈엔 눈물이 그득했다.




"왜 자꾸 울려고 그래."

"형은 내가 싫다면서... 자꾸 날 희망 고문해."

"누가 널 싫어한다고 그래. 형님과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형은 ..나 갖고 노는 게 재밌지?"



명대 너 또... 아성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명대는 빠르게 벨트를 풀렀다. 금방 바닥으로 풀썩 떨어지는 명대의 바지를 ㅗ보고는 아성은 천천히 말을 삼켰다. 체념한 얼굴로 욕조에 걸터 앉은 명대가 양말을 벗었고, 하얗게 질려있는 발끝이 드러났다. 그리고 지체없이 바로 속옷을 내리는 명대의 모습에 아성은 순간적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위에 걸친 셔츠가 허벅지 위를 겨우 가리고 있었다.



"손가락 넣어서 씻으란 거지..."

"힘들어도 최대한 안 쪽까지 넣어서 일단 긁어내야 돼, 그리고 주사기로 레몬즙 넣고 몇 번 씩이나 씻어 내야하고. 아플거야. 너 혼자 못해."

"...형 마음대로 해."

"일단 물에 들어가."



 순순히 따르는 명대의 태도가 오히려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표정없이 서있던 명대가 뒤로 돌더니 셔츠까지 완전히 벗어버리고는 깊고 커다란 욕조 속으로 들어갔다. 찰랑거리던 물이 조금 잠잠해지자, 아성은 아래에서 챙겨온 주사기와  레몬즙이 담긴 병을 탁자위에 조심스레 올려두고는 명대 곁으로 다가갔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이 완전히 등진 명대가 나무 욕조의 모서리를 붙잡고는 엎드렸다. 아성은 별 말 없이 작게 한숨을 쉬고는 모아진 다리를 살짝 벌렸다. 처음 선명하게 바라본 밀지는 이미 무언가로 자극 받았단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는 듯 살짝 붉어져 있었다.



"왜 이렇게 부었어. 너 진짜 안 한 거 맞아?"

"어차피 내 말 안 믿는다며."

"...벌겋게 됐잖아."

"그래, 엄청 했어. 청명 형 거기가 커서 아팠거든, 그래서 부었나보네. 찢어지진 않았어? 잘 봐봐."

 


 문장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에 비꼼이 가득해 그대로 믿을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아성의 기분은 완전히 가라앉아버렸다. 아까 분명히 그 새끼는 바지에 벨트까지 매고 있었다. 명대가 흥분해 신음할 때도 이불 속에 있어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그 자식의 머리통이 밑에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끝까지 가능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더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까불지 마."



 악! 낮게 일갈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바로 손가락 두 개를 끝까지 밀어넣었다. 풀어주는 것도 없이 윤활제라고는 물 뿐이니 첫 통증이 심했는지 헉헉거리는 명대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리는게 가여울만도 했지만 아성은 부러 더 아프라는 듯 거칠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축축하게 젖어있는 내부를 확인했다. 성적인 의도없이 제 안을 막무가내로 헤집는 형의 손에 명대의 고개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다가 결국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마 아까 애정이 담겨있던 청명의 행위와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손길에 겨우 다잡으려 했던 마음을 결국 다친 모양이었다. 아성은 그 떨림을 눈치채긴 했으나, 무시하고 빠른 속도록 안을 긁어내렸다.



"윽...아파."

"좀 참아."

"으흑."



 빼낸 손가락은 투명하게 젖어있긴 했지만, 역시나 정액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다른 양인의 향이 강하게 느껴진 것도 아니었다. 어찌됐든 절정을 느꼈으니 명대의 몸도 분명 그에 맞춰 반응을 했으리라. 그 자식의 흔적은 아니었지만, 그 놈이 만든 몸의 변화는 맞았다. 아성의 표정은 굳어졌고, 묵묵히 다시 밀부를 벌리듯 고정하고는 뜨거운 물로 씻어내듯 내부를 다시 훑어내렸다. 



"다신 이런 짓하게 만들지마."

"윽...안 그래도 형 귀찮게하는 놈인데. 이런 짓까지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네."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넌 명가의 보물이야. 쉽게 굴지 말란 말이다."

"하-."


 찰팍, 뒷 물을 하듯 몇 차례 따뜻한 물이 끼얹어졌다. 불을 미리 떼놓아서 욕실은 따뜻했지만, 명대는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었다. 바들거리며 떨며 끈질기게 버티고 서있던 명대를 주저 앉힌 아성은 커다란 주사기에 레몬수를 따라내며 말했다.


"춥지?"

"..."

"두 번 정도만 씻어내는 게 좋겠다, 더 있다가는 너 감기 들겠어."

"..."

"배 아프더라도 조금만 참아."



 명대는 제 아래를 헤짚는 형의 커다란 손과, 이어 밀려 들어오는 차가운 액체의 이질감에 어깨를 떨었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흐르고 있는 눈물을 몰래 닦아냈다. 




*





"명대는."

"자기 방에 있습니다. 약은요?"

"아 양약은 몸에 부담만 되고 효과가 없다면서, 약재 처방을 일러주더구나. 내일 일찍 약재를 구하는데로 다려서 바로 먹여야겠다. 아향에게도 몰래 일러두고."




 명루는 받아온 처방을 아성에게 건냈다. 종이를 대충 훑어본 아성은 주머니에 그것을 넣고는 들고있던 명루의 코트를 걸며 말했다.


"너무 걱정마세요.아마 괜찮을 겁니다. 싸이클 기간도 아니었으니까요."

".명대는 좀 어때."

"씻고 누워서 쉬고 있어요. 억울한 건지 자꾸 울더라구요, 보아하니 아마 명대 말대로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네네, 긁어내고 레몬까지 넣어서 씻어내는데 물 한 통을 다 썼다니까요. 저도 이제 겨우 씻고 나왔다구요."

"뭐? 지금까지 애를 씻겼다는 거냐? 몸도 약한 애를 이렇게 오래 씻기면 어떡해!"

"그럼 대충 씻는 척만 합니까?"



 하여튼 융통성이라곤 없다며 아성을 노려본 명루는 다급히 서재문을 열고 계단으로 향했다. 뛰어가는 제 형님의 뒷모습을 보며 아성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제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똑똑.



"명대...자니?"




 문 앞에서 기다려도 좀처럼 들려오지 않는 대답에 망설이던 명루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뒤돌아 누운 제 막내 동생의 어깨가 작게 떨리는 것을 보고 명루는 입술을 악 다물며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명대..."

"약 주려고 올라왔으면...놓고 나가."

"형 얼굴 좀 보면서 얘기해라. 응?"

"나가라구요..."




  아까 차에서 화를 냈던 일이 거짓말처럼 명루는 제 동생의 젖은 얼굴을 보자마자 눈 녹듯이 화가 풀려버렸다는 걸 느꼈다. 얼마나 지쳤는지 그 짧은 사이에 얼굴이 반쪽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울지마라, 형이 화내서 미안하다."

"...으흡."

"약은 내일 아향이 다리는데로 올릴 거야. 삼일만 참고 꼬박꼬박 먹어. 알았지?"

"흑..."

"명대 너한테 무슨일이라도 생기면 난 못 산다. 그래서 그러는 거야. 이 형님 마음을 모르겠니?"

"으흑, 알아요."



 이리와라. 손을 벌리며 침대에 걸터앉는 명장관의 품에 그대로 폭 안겨서는 훌쩍이기 시작하는 명대의 몸이 사정없이 떨렸다. 그런 막내 동생이 가여워 등을 토닥이던 명루의 얼굴에도 안쓰러움이 가득 차올랐다.



"네가 미워서 그런 게 아니란 거 알지?"

"...네."

"아무리 혼인을 할 사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순서란게 있는게야. 그걸 어기고 멋대로 굴면 손가락질을 받는 거고. 우리 예쁜 막내가 다른 사람들 입에 아무렇게나 오르내리는 걸...난 못 본다."

"...흐윽, 잘못했어요."

"십 년을 고청명한테 관심도 안주더니...우리 명대가 이제 혼인할 때가 되긴 되었나보구나."

"으흑-, 흐윽."

"많이 힘들었지?"



 명루의 말대로 몸이 심하게 고단하긴 했다. 처음 양인에게 몸을 맡기면서 형질도 심하게 날뛰는 데, 갑자기 형들이 나타나 총까지 꺼내들어서 엄청나게 긴장해버렸다. 거기에 집으로 끌려오자마자 아성은 뒷처리를 한다며 오늘 처음 열렸던 제 몸을 아주 깊은 곳까지 막무가내로 다시 헤집어댔고, 레몬즙으로 뱃속을 씻어내는 건 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그렇게 오랜시간 발가벗은채로 수치스러움을 견디며 한참을 떨었다. 



"아성도 오늘 많이 속상했을거다. 네게 안 좋은 소리를 했더라도 그냥 넘겨주거라."

"흐윽, 아니에요. 아성형은 절 싫어해요."

"이 집에서 누가 널 싫어해!"

"어렸을 때 부터...으흑, 형은 나 미워했어."

"명대. 아성도 좋아서 그런게 아니야. 네가 임신이라도 하면 큰일이니 어쩔 수 없이 그런게야. 우리 명대가 오늘 많이 고됐나보구나. 혹시 다치기라도 한거니? 아픈 곳이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하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보거라."

"으흑, 괜찮아요... 힘들어서 그래요."

" 자, 명대. 힘든데 어서 눕자. 형님이 오랜만에 팔베게를 해줄테니."

  



 침대는 커다랬기에 비좁지는 않았다. 제게 한 쪽 팔을 내미는 명루는 평소처럼 따뜻한 미소로 명대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고, 명대는 눈물을 대충 훔쳐내고는 그 팔에 머리를 기대고 누웠다. 조금 뒤척이며 자리를 잡다가 불편했는지 몸을 돌려 제 형의 품에 안기며 살짝 파고들었다. 그제야 어렸을 적처럼 다시 등을 토닥이기 시작한 명루가 명대의 젖은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눈물이 아직도 이렇게 많은데 우리 명대가 스물셋이라니."

"...이제 곧 스물 넷이에요."

"그래, 다 컸다."

"응...나 다 컸어요."

"오늘 하루 고됐으니 얼른 눈 감거라, 빨리 쉬어야 감기에 걸리지 않지. 자. 자장,자장..."




 형님의 바람이 무색하게 명대는 결국 다음날 아침부터 몸이 절절 끓었다. 심한 몸살기운에 거의 눈도 못뜨는 동생을 보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간호하는 명장관은 그래도 피임탕을 먹이겠다며 기어코 약을 다려오게 했으나, 내막을 아는 아성은 약을 먹었다 둘러대고는 명대에게 가져가지조차 않았다. 아프기까지한 동생을 이깟 핑계로 괴롭히기엔 아성에겐 그래도 양심이 남아있었다.



"아이, 왜 이리 열이 떨어지질 않을까... 아성! 얼른 물수건 좀 갈아오거라!"



 명경은 밤낮으로 명대의 곁에 붙어있었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열병에 시달리긴 했지만 이번해에는 조금 달랐다. 아직 앓을 시기가 아닌데 절절 끓는 열에 아파하는 막내를 보며 아이의 체력이 더 나빠지진 않았을까 걱정하느라 한숨이 입에서 떠나질 않았다. 금이야 옥이야 달래가며 일주일을 꼬박 간호해가며 겨우 기력을 차리게 만든 명대가 아침 식사 시간 폭탄 발언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뭐...뭐라고 했니, 명대?"

"왜요? 누님은 싫어요?"

"어? 싫기는! 누가 싫다고 했니! 이 누나야 누구보다도 바라던 일이지! 정말이니? 결심한게야?"

"명대!"

"명대야!"




 명루와 아성이 뒤 늦게 소리를 질러봤자 이미 눈빛이 반짝거리는 명경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결혼이 그냥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 명대야, 혹시 청명이가 무슨 말이라도 있던거니?"

"응? 아... 청혼. 나한테 무슨 욕을 먹으려고 청혼을 해요. 그런데 고청명은 나랑 원래 결혼하고 싶어했으니까 상관없어요."

"그래, 그래! 청명이가 우리 명대를 엄청 좋아하지! 맞다 맞아, 내가 괜한 소리를 했구나!"

"명대! 성급하게 이게 무슨..."

"명장관! 우리 명대가 이제야 기특한 결심을 했는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어디서 큰 소리야!"

"누님...! 명대는!"

"명성! 애 마음 바뀌기 전에 쓸데없는 소리는 꺼내지도 마라!"



 아얘 입에 자물쇠를 달아버리는 듯한 누님의 일갈에 아침 식사자리엔 침묵을 빙자한 살기가 흘렀다. 오로지 명경과 명대만이 화기애애할 뿐이었고, 두 형님의 눈빛은 수없이 오가며 침묵 속에 수많은 얘기가 오가는 듯 했다.



"청명이 어머님과는 내가 가까운 시일내로 약속을 잡아보마."

"네네, 누나. 그런 김에 오늘 청명이형 집으로 부를까요? 내가 아무말도 안하고 결정한 거라 어머님한테 들으면 좀 놀랄수도 있거든요."

"그래, 그러자꾸나. 조금 있다 점심 같이 들고, 차도 마시고! 아니지, 청명이와 영화라도 보러갈래?"

"아..뭐 그건 상황봐서..."

"그래 너희들 뜻대로 하렴! 어머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청명이한테 연락도 해야하고..."


 느긋한 명대의 목소리와는 달리 명경의 목소리엔 다급함이 가득했다. 변덕스러운 막내가 마음이라도 바꿀까봐 불안한 듯 했다. 도저히 파고들 낌새가 없다고 느낀 명장관은 먼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지만, 앞에 앉은 아성은 조금도 꼼짝하지 않고 제 앞에 놓인 애꿏은 밥그릇만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성을 표정없이 잠시동안 바라보고 있던 명대는 결국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