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충 주의, 노잼주의




곽건화의 집안은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집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법조계 인사가 꽤 많았으며, 교육자도 있었다. 이런 집안의 특징은 많겠지만 그중 하나는 대부분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그의 집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그런 집안에서 자란 것 치고 배우가 됐다는 것은 곽건화의 성격이 꽤 자유분방한, 다른 말로는 반항적인 편이었다는 말이다. 혹은 그것조차 뛰어넘을 만큼 배우가 하고 싶었거나. 


곽건화는 자라면서 자신이 꽤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연예계에 들어오며 상당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로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곽건화 또한 그러했다.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은 집안사람과 비교에서의 이야기였고, 사회적인 통념에서 생각했을 때 곽건화는 꽤 보수적인 편이었다. 가끔은 부정하기도 했지만, 연예계에서 살아남기엔 ‘정말로’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외모와 성실함, 직업정신은 어떻게든 이 악물고 연예계에서 성공하게 해주었다. 그만큼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했고, 보람을 느꼈다. 돈이야 이미 평생 쓸 수 있을 만큼 벌었지만 이 직업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의 상황이 겹쳐서 성적 취향을 자각했을 때, 그는 그것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상대를 찾는 대신 참는 편을 택했다. 


그는 사디스트였으며 완벽하게 상대를 컨트롤하고 지배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남자였다. 모를 때는 몰랐지만, 자각하고 난 뒤의 연애는 전부 미열에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 연애의 낮은 온도는 보통 곽건화를 연애의 갑으로 만들어주었고, 그나마 그런 점들이 미지근하게나마 곽건화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었다.


보통은 그 취향을 조금 불편한 단점 정도로 취급하곤 했지만, 가끔씩 마음이 끓어오를 때면 하필이면 이런 취향이냐고 자신을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후거를 만나고는 그런 점마저 운명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디스트였지만 의외로 로맨티스트기도 했다.





후거를 처음 만난 것은 패션쇼장이었는데, 이미 다음 드라마를 같이 찍기로 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저 얼굴이나 봐둘까 하는 마음으로 봤을 때, 곽건화는 귓가에 종이 울리는 환청을 들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데는 고작 3초면 된다고 한다. 곽건화는 줄곧 그 말을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금 어두운 편이었던 객석에서 구부정하게 앉아있던 그 남자애 혼자만 빛나던 순간, 그때부터는 수긍을 할 수밖에 없었다.


후거는 꽤 초식동물 같은 사람이었다. 경계심이 강했고, 벽이 높았으며, 어릴 때부터 많은 사람을 접하며 얻은 사교성 스킬은 쉽게 친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선을 넘지 못하게 했다. 곽건화에게 그 선을 넘어가는 것은 우정이었으며, 연애였고, 만족이었다. 사람이 너무 소중하면 손도 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곽건화에게는 후거가 그랬다. 후거를 알아가는 것 자체가 그의 취향적으로도 연애적으로도 딱 들어맞는 무언가였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하다고 여겨졌다. 그것은 후거를 알아갈수록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게 변한 것은 후거의 연애였다.


어느 정도 벽이 허물어진 후거는 조금씩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그 중에는 연애 이야기도 있었다. 공개 연애는 아니었지만, 후거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되는 사이였기에 알린 이야기였다. 곽건화는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후거가 곽건화의 손을 벗어나는 것이다.


충격을 받았을 때, 그 상태로 정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냉정하게 머리를 굴리는 사람이 있다. 곽건화는 단연코 후자였다. 원하는 방향과 해야 할 일을 자각한 남자는 거침이 없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아주 명확했고, 연애 방면에 서툰 남자도 아니었다. 후거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빈틈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곽건화는 기다리는 것도, 타이밍을 낚아채는 것도 아주 잘하는 남자였다.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길었지만, 또한 아주 짧았다. 무언가를 길들이는데 필요한 것은 시간과 인내심이었다.


곽건화는 후거를 길들이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공을 들였다. 후거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었고, 타인과의 트러블, 특히나 가까운 사람과의 트러블은 더 못 견디는 타입이었다. 가끔 불편하거나 부당함을 느껴도 웃으며 참고 넘어가는 타입이었다. 그것은 곽건화의 연애에 큰 도움이 되었다. 


후거에 대한 곽건화의 태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변했다. 후거는 이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평소의 곽건화는 아주 다정하고 세상에 후거만 있는 듯이 굴었기에 사소한 것은 참았다. 연애관계는 아니었지만, 후거의 세계는 상냥했기에 그렇게 눈에 띄게 이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길들임의 일환이었다. 무언가에 길들인다는 것은 익숙해진다는 것이었다. 후거는 점점 곽건화에게 의지하고 풀어졌다. 그리고 애인과 헤어지고 약해진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기다긴 기다림 끝에 얻은 연인의 자리에서도 곽건화는 방심하지 않았다. 질투심도 소유욕도 후거가 안다면 도망치고 싶어 할 만큼 강했지만 그걸 드러내진 않았다. 눈치 빠른 초식동물에게 자신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이빨과 발톱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한번 도망간 동물은 다신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그러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만들었다. 후거는 상냥하고 눈치가 빠른 편이었으며 연인에게 더더욱 맞춰주는 타입이었다. 후거는 스스로 일과를 곽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변해갔으며, 큰 스케줄은 후거의 매니저와 련준걸 사이에 오가는 문자 속에서 정해졌다.


연예계는 그 화려함만큼이나 유혹이 많은 곳이었지만 그는 후거를 믿었다. 물론 무작정 믿을 수는 없어 안전장치는 해놓은 상태였다.


사람은 맛있는 것을 먹고 났을 때 그 맛을 잊지 못한다. 그것이 얻기 어려울 때 돌 맛있는 것을 이것저것 먹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그 하나를 다시 맛보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 있다. 후거는 후자였다. 곽건화는 후거가 어느 누구와 자도 만족이 안 되는 몸으로 만들었다. 상냥하게 쾌감만 주는 섹스부터 아주 조금씩 더해지는 플레이와 수치는 후거가 모르는 사이 그의 몸에 쌓였다. 후거는 바닐라였기에 아주 어려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쯤 되니까 뭐 보고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