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덜 떨리는 소리를 내며 낡은 선풍기 한 대가 돌아간다. 미풍 버튼은 고장 난 지 오래, 눌리지 않는 선풍기는 강풍 버튼을 누르면 나비 날갯짓 같은 바람을 내뿜으며 움직인다. 긁히고 찌그러져 변색한 냄비에 담긴 라면가닥이 불어터져 죽은 물고기처럼 떠다녔다. 금방이라도 텁텁한 쇠비린내가 흠뻑 배어나올 듯 벌겋게 녹이 슨 창틀 위로 물이 튄다. 구석에 아무렇게나 뭉쳐진 채 굴러다니는 수건과 입은 속옷, 빗물에 젖은 양말.

바닥에 되는대로 깔린 요 위로 벗은 몸 두 개가 얽혔다. 마주 닿은 입술 사이로는 두 개의 벌건 살덩이가 거칠게 오가고, 얇은 거죽 아래로는 마른 근육이 들썩였다. 두 발목을 겹쳐 카이의 허리를 꽉 감은 후거는 할딱이며 그의 뒷목을 끌어안았다. 더운 숨소리에 섞어 후거는 농을 친다. 너, 엉덩이만 통통한 거 되게 섹시해. 알아? 헛소리는. 카이는 아랫배에 힘을 준다. 조금의 틈도 내어 주지 않으려는 듯 거친 허릿짓이 이어졌다. 으응, 앗, 카이, 천천히 해, 흣, 아앗! 쾅쾅 올려붙이는 박자에 맞춰 계집애처럼 가는 신음소리가 좁장한 방 안을 메운다. 우우웅 냉장고의 모터 도는 소리에 그 목소리가 섞여들었다. 하악, 하악 하고 밭은 숨이 터지고. 카이의 숨소리도 후거의 것 못지않게 뜨겁게 달아올랐다. 젖은 살갗이 멋대로 부딪치며 야한 질척임이 늘어났다. 카이의 긴 손 위로 싸구려 러브젤이 녹아내렸다. 뻑뻑해진 접합부에 손을 되는대로 문지른 후 다시 허릿짓. 후거는 좀 더 적극적으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카이, 욕해줘. 씨발년이라고 욕해줘. 카이는 거절하지 않는다. 씨발년, 발정난 암캐 같은 년. 후거는 낄낄거리며 웃는다. 좀 더, 얼르은. 보채는 목소리가 잡아 늘인 듯 길게 늘어진다. 앙살을 떠는 빨간 입술을 거칠게 물어뜯자 보채는 소리 대신 앓는 소리가 났다. 아흐, 아퍼어. 네가 짐승이야? 후거는 피가 질질 흐르는 입술로 카이의 목덜미를 앙 깨물었다. 빨갛게 잇자국이 났다. 뜨끔한 통각은 흥분을 더 짙어지게 한다. 카이의 목 안에서 으르릉, 끓는 소리가 났다. 결국 또 후거가 원하는 대로다. 동물처럼 섹스하고 짐승처럼 물어뜯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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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 나 담배 끊을까?”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거 아껴서 콘돔값 쓰려고.”


“지랄은.”



왜, 너랑 뒹구는 건 좋은데 그짓하다 병걸리긴 싫단 말이야. 집으로 들어와. 브랜드 로고 박힌 콘돔 열 박스 있다. 눈을 갸름하게 뜬 채 후거는 카이를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지랄하네, 답답한 집구석. 좆까라 그래. 카이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린다. 그래서 여기서 계속 이렇게 지지리 궁상을 떨며 사시겠다? 후거는 카이의 맨 등짝을 발로 걷어찼다. 퍽 소리가 난다. 카이는 쉽게 밀리지 않는다. 후거는 분풀이 겸 카이의 등짝에 퍽퍽 발을 내질렀다. 다섯 대 쯤 맞아준 카이는 몸을 돌려 후거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젤 다 썼어. 생으로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고분고분하다. 낡아빠진 꽃무늬 요를 맨몸에 휘두르고 후거는 팩 돌아 모로 누웠다. 아버지란 양반이 너 나랑 뒹구는 거 두고 봐? 카이는 대답했다. 알게 뭐야. 후거는 비죽비죽 웃었다. 왜, 너 그 양반 핏줄이잖아. 관심 없어. 하긴, 관심이 있으면 네가 여기 있을까. 끈적거리는 눅눅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아, 씨발. 여기 살다간 제명에 못 죽겠어. 그 전에 짜증이 나서 터져버릴 걸. 후거는 이불을 찢듯 끌어내려 허리 아래로 두른다. 무릎걸음으로 카이에게 다가가 뒤에서 끌어안으면, 뜨뜻미지근한 체온이 맞닿아 부벼진다. 치대지 마, 더워. 후거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카이의 어깨를 멋대로 간질였다. 미지근한 체온과 땀으로 끈적대는 피부. 가파르게 숨을 쉬며 후거가 카이의 어깨를 양 팔로 감싸 안는다. 불안정한 호흡이 귓가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어차피 뒈질 텐데 멋대로 살다 뒈지면 어때. 카이의 모양 좋은 손가락이 뒤로 뻗는다. 가는 목을 감고 꽈악 조를 듯 힘이 들어가는 손가락들. 후거는 목을 뒤로 젖혀 조르기 쉬운 모양새로 늘어뜨렸다. 자, 카이. 단박에 끝내줘. 넌 할 수 있잖아. 길고 단단한 엄지가 성대를 지그시 누른다.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로 다갈색 눈동자에 잿빛 하늘이 비친다. 카이는 후거의 목을 조르던 손을 그대로 위로 낚아챘다. 멀대같이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후거는 헝겊인형처럼 쓰윽 딸려 올라온다. 

끼기기긱, 끔찍한 괴음과 함께 창문이 열린다. 나지막한 턱을 두고 천장부터 내려오는 큰 창문을 열자 주먹만한 빗방울이 튀긴다. 이리저리 갈라진 콘크리트 옥상 위로 군데군데 물이 고였다. 좁은 방 안은 빗물이 들이쳐 이미 엉망이다. 후거는 맨몸이다. 카이는 후거를 창밖으로 팽개친다. 카이도 맨몸이다. 팽개쳐진 후거의 위에 카이는 엉망으로 엎어진다. 빗물에 미끄러져 중심을 잃은 탓이다. 물에 불고 콘크리트에 쓸린 맨살 위로 빨간 상처가 죽죽 그어졌다.

킥킥거리며 후거는 카이의 등 위로 팔을 두른다. 쓸린 팔뚝에서 피가 번져나 물웅덩이 위로 퍼진다. 카이는 팔꿈치의 상처를 핥는다. 찝찔하고 비리다. 빗물과 쇳물이 섞여 입안으로 들이쳤다. 후거는 여상하게 속삭인다.



“나 배고파.”



라면 국물 남은 거에 밥 말아 먹을래. 비는 눈을 뜰 수 없게 세차다. 절로 감긴 눈꺼풀 위로 빗방울이 후두두 떨어졌다. 흠뻑 젖은 카이는 흠뻑 젖은 후거를 내려다본다. 젖고 식은 몸에서도 후끈하게 열기가 오른다. 카이는 욕심껏 입을 맞췄다. 후거 쪽도 마찬가지다. 이따위로 살아도 나는 괜찮아. 너랑 형제로 사느니 이게 나아.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밥 줄게. 즉석밥 있어. 그러니까 브랜드 로고 박힌 콘돔 있는 데로 가지 마. 배고프다 말한 것은 제 쪽인데 밥을 주겠다는 것도 제 말이다. 배가 아니고 네가 고파. 후거는 밥알을 씹듯 차오르는 말을 씹는다. 카이는 자꾸만 말을 되먹는 입술을 씹는다. 찢긴 상처가 터지고 그 위로 다시 피가 배어나도 그 편이 낫다 생각한다. 죽일까, 죽을까.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쾅 때린다. 그 양반 호흡기를 뗄까. 후거는 웃는다. 난, 나라면, 네가 그 예쁜 손으로 그걸 떼 줄 때,



“너무 좋아서 서버릴지도 몰라.”


“미친년.”



미친년한텐 개새끼가 어울려. 그건 알지? 비에 흠뻑 젖은 머리 위로 비가 내린다. 덜덜거리며 돌아가던 선풍기는 물을 흠뻑 먹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유일한 냉방기가 영면에 든 것에 슬퍼하는 것은 후거 혼자였다. 편히 잠드소서. 종알거리는 입술이 빨갛다. 브랜드 콘돔 말고 브랜드 선풍기 사다 줘. 비가 잦아든다. 녹슨 창틀 위로 후거를 올려 앉히며 카이는 말이 없다. 나 올 때까지 몸 간수 잘 하고 있어. 하도 빨아대어 올이 나간 얄팍한 수건을 머리 위에 얹어주며 카이는 말한다. 다 마르지 않아 척척한 몸 위로 청바지와 셔츠를 꿰어입은 카이는 즉석 밥을 구식 전자렌지에 넣고 돌린다. 1분으로는 익을 기미조차 없는 밥을 두어 번 새로 돌린 후 젖은 방바닥에 툭 던진다. 배고프다며, 먹어. 차박거리는 발소리가 멀어진다. 

후거는 입에 밥을 퍼넣었다. 맨손으로 맨밥을 입에 퍼넣는다. 이번 장마는 언제 그칠까. 척척하고 눅눅한 방바닥에 맨몸으로 주저앉아 밥을 퍼넣는다. 햇살을 기다리듯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