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부분이라 파워 지루
곽건화에게서 특별히 화가 났거나, 감정이 상해보이는 징후는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속내가 복잡하다는 건 확실했다. 호가는 그를 달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억제제를 복용하든 중단하든, 그 이유가 반드시 곽건화에게 있는 건 아니다. 알파와의 스테디한 관계를 유지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고, 자신은 의사에게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불규칙한 주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촬영 중이었고,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그랬다.
약의 효과가 특출한 건지, 곽건화가 잘해주어서인지(?) 이유야 모르겠지만 주기는 잠잠했고 갑자기 몸이 들뜨거나 감정기복이 오르내리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가 아니라도 제 몸의 컨디션 정도야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호가는 여전히 약을 챙겼고, 그건 이미 몸에 밴 습관이라고만 보기엔 강박적이었다.
이미 충분한 커피에 더 이상 녹이지도 못할 만큼 설탕을 붓듯 호가는 약을 먹었다. 용해되지 못해 침전하는 설탕 찌꺼기들이 잔의 바닥을 가린다. 완벽한 신뢰, 백 프로의 확신은 없는 법이다. 이번엔 잘 될 거야, 잘 되겠지. 미적지근하게 남아있는 불안과 회의를 호가가 잊는 방식이었다.
곽건화를 못믿는다기보단, 어차피 곽건화만이 아니라 호가 그 자신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감정이란 그런 법이다. 태풍에도 꺾이지 않을 듯 굳게 버티다가도, 스치는 바람만으로 허무하게 제 뿌리를 드러낼 수 있다.
호가는 물도 없이 약을 삼키곤 눈을 감았다. 다시 떴을 땐 촬영장이었다. 조명 빛에 피부가 뜨거워질 지경이다. 모든 조명의 한 가운데 곽건화가 서 있었다. 카메라 속 그는 이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였다. 호가는 그것이 흐트러지지 않길 바랬다. 현실의 곽건화는 내성적이지만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선 대책 없이 일직선인 스타일이었다. 그 역시 잃지 안길 바랐다.
좀 전에 류천이 완전히 회복했고, 일주일 후 복귀할 것이란 연락을 받았다. 호가가 오늘 억제제를 하나 더 먹은 이유였다.
다음 컷에 맞춰 촬영장 세팅을 하는 데 십오 분 정도 걸릴 참이다. 호가는 휴식을 선언하곤 조연출에게 촬영장 정리를 맡긴다. 곽건화는 촬영장 세팅이 들어가기 전부터 두통을 핑계로 제 차로 들어간 상태였다. 호가는 조연출의 어깨를 툭 쳤다.
“나 전화 한통만 하고 올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뒤로 하곤 호가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당연하겠지만 곽건화가 틀어박혀 있는 차 안이었다. 다행인지 련준걸은 보이지 않았다. 호가는 가타부타 말없이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석에 몸을 파묻고 있던 곽건화가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그를 바라보다 도로 눈을 감는다.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반기는 기색이라 하기에도 민망하다. 호가는 입을 비쭉였다.
호가의 손가락에 옆구리가 찔린 곽건화가 몸을 움찔한다. 눈썹을 구긴 채 저를 보는 눈에 호가가 혀를 찼다.
“내가 약 먹는 게 그렇게 서운해?”
곽건화는 대답이 궁색해져 눈만 굴렸다. 호가는 좀 전보단 세지 않게 한 번 더 그의 옆구리를 찌른다.
“내가 약 먹는다고 어, 너하고 안 하겠다 하는 것도 아닌데, 어? 너 엊그제 하다 만 것도 그거 때문이지?”
“아 그게 아니라, 나는-”
습관처럼 머리를 쓸어 올리려다 세팅했다는 것을 깨닫곤 곽건화는 손을 내렸다. 뚱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호가를 마주보니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손을 올려 그의 얼굴을 감쌌다. 그 큰 손안에 절반쯤 담기는 얼굴은 선이 말라 있었다.
“화난 거 아니야. 서운한 건...그냥 내가 속이 좁아서 그래.”
끙 소리를 내며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가 알파 노릇을 못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꽁해진 건 사실이다. 유교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보수적인 남자다운 발상에, 호가가 들었다면 기도 안 찼을 소리였지만.
“내가 주기가 불규칙해서 그거 때문에 먹는 거야. 그걸로 서운해 하면 어떡해.”
“서운한 것보단, 내가 알파 노릇을 제대로 못했나 싶고-”
눈을 굴리며 말하는 내용에 호가가 질색하며 그의 팔을 내려친다.
“알파 노릇 같은 소리하네, 진짜. 두 번만 하려 들었다간 죽이겠다, 아주.”
“그럼 이 나이에 그 정도도 안 해?”
“너하고 나 여기 일하러 왔거든, 연애가 아니라.”
“공존하자는 거지. 누가 하나만 하재.”
능글거리는 곽건화의 말에 호가가 넌더리를 냈다.
“알파 노릇 잘하고 있잖아, 너. 우리 집에 약 박스 바리바리 싸서 보낸 게 누구야? 덕분에 아주 잘 먹었습니다, 알파 선생.”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곽건화는 침통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그 일은 호가와 종류야 달랐지만 곽건화에게도 나름 아픈 역사였다. 마침 수면 위로 부상한 그 때 기억에 호가는 새삼 해묵은 원한이 치밀어 오른다. 호가는 눈을 모로 뜨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주제에 약 먹는 거 가지고 눈치를 줘? 어? 니가 그럴 자격이 있냐.”
“뭐 자격이라면……나는 니 알파니까…….”
“왜 아주 히잡도 쓰고 다니라 하지, 미친 놈.”
머쓱한 얼굴로 곽건화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촬영 언제 시작하나? 그런 그를 앞둔 채 호가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내가 애를 데리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키우고, 하루가 다르게 늙는 기분이었다.
푹, 제 품에 안기는 호가를 곽건화는 모른 척 끌어안았다. 호가의 얼굴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그의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하나하나 일일이 곤두세우고 확인하려 하고, 그러지 마. 나도 내가 잘못했던 거 알고,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도 난 너 의심은 안 하잖아.”
호가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자신이 믿지 못하는 건 곽건화가 아니었다. 목에 입술을 붙이며 곽건화가 대답한다.
“나도 너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러니까, 너무 나한테 신경을 곤두세우지 마. 이제 연기하는 것만 신경 써. 나 요즘은 너 말 잘 듣잖아.”
“말 잘 듣는 김에 집은-”
“안 돼.”
그 와중에도 호가의 마지막 말을 잡아냈으니, 곽건화는 어쨌든 온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성공할 재목이었다.
곽건화와 엉겨 붙어 있느라 호가는 주머니 속의 진동을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발신자는 생각지 못한 공생 감독이었다. ‘뭐하느라 전화도 안 받냐, 문자 확인하는 대로 바로 전화해.’
호가는 불같이 화를 내고 있었다. 상대는 공생이 아닌 후홍량이었다.
“선배 진짜 내 선배 맞아요?! 이게 선배가 말한 선후배 간의 정이고 같은 업계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유대감이냐고!”
전화기를 붙든 채 소리치는 그의 모습은 막 터진 화산 같은 기세였다. 있던 조연출은 마치 제 발 근처로 용암이 흐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움찔거렸다.
수화기 너머의 후 사장은 태연한 목소리였다. 드라마계의 전설이자 지금은 제작자로서 새로운 신화 집필에 들어가기 시작한 남자, 10년쯤 후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자서전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예정에 있는 인간이라면 1300km를 사이에 둔 한참 어린 후배의 분노 정도에 눈 하나 깜짝할 이유가 없었다.
호가 역시 안다. 제 분노가 사장의 얼굴 표정 하나 바꾸기 힘들 거란 걸.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 피디가 제 밑의 사람들에게 화를 내느라 진이 빠지는 직종이라면 제작자는 제 밑의 사람들 우는 소리를 듣느라 혼이 나가는 위치였다. 제작자 후홍량을 믿고 그를 따라나섰기에 호가는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운하고 서러운 마음이 더 컸다. 다른 감독은 몰라도 자신의 심정은 알아줘야 했다. 그라면.
“내가, 선배 밑에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굴렀는데!”
-호 감독, 흥분하지 마라. 확정도 아닌데 왜 그렇게
“확정이 아닌데 그 새끼한테 작가는 왜 소개시켜 주냐고!”
확정할 때까지 내가 모르고 있다가 뒤통수 맞길 바랐어?! 성질이 치밀어 호가는 테이블 위에 있는 대본을 집어던졌다.
지금 호가가 찍고 있는 드라마의 원작자가 쓴 다른 소설이 내년 하반기 시즌에 드라마로 제작된다. 지금 호가가 찍고 있는 드라마 원작보다 구성은 더 탄탄했다. 원랜 이 작품만을 계약하려 했으나, 두 작품을 콜라보하여 시리즈화 시키려는 원작자의 의도 때문에 두 작품 다 판권을 산 것이다.
그 감독 역시 호가로 내정되어 있었고, 현재 각본 작업 중에 있었다. 그리고 오늘 호가는 공생으로부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들었다.
‘너 걔랑 사이 안 좋다며, 근데 후 사장이 걔 스카웃하려고 하는 모양이더라. 그러면서 너 내년에 들어갈 작품 원작자하고 자리 만들었다는데 너 알고 있냐?’
공생이 말하는 걔는 상희 시절 호가와 가장 사이가 안 좋은 동기이자, 졸전 당시 심사를 봤던 후홍량이 대상으로 밀었던 바로 그 놈이었다. 호가는 말 그대로 꼭지가 돌았다. 눈에 뵈는 게 없었고 상하관계를 포기했다.
“내가 얼마나 니 눈에 호구로 보였으면!”
-호 감독, 내가 어디까지 오냐오냐 듣고 있어야 되냐?
“끝까지 들어! 니 밑에서 십 년을 바닥서 구르다시피 했어 내가. 드마라보다 아름다운 인생이라느니, 철학이 있는 이야기라느니, 인간미가 어쩌고 이제 갓 졸업한 애 데리고 씨도 안 먹힐 감언이설로 꼬아서 여기까지 등골 빼먹었으면 양심이 아파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래서 내가 이 만큼 밀어준 게 너밖에 또 있냐? 왜 새삼 이러는데.
“나밖에 없는 게 심심해서 그래 그 새끼를 데려왔냐고요!”
호가는 뒷골이 당겼다. 너무 소리를 질러서 머리가 멍해질 지경이다. 수화기 너머 흘러나온 후 사장의 목소리는 한숨이 섞여 있었다.
-너 아직도 걔한테 감정 있냐? 걔는 안 그러던데 왜 너만
“씨발 그 새끼가 내 졸전 가로채서-아 진짜!”
졸전으로 시나리오 작업 중이던 것을 그 놈에게 고스란히 뺏기는 바람에 호가는 한 달도 남기지 못한 상태서 고스란히 새로 작품을 준비해야 했고, 마지막엔 편집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체 제출했다. 두고두고 한으로 맺힐 일이었다.
벌겋게 핏줄이 선 눈으로 호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눈에 보이는 대로 들이박을 흉흉한 기세에 조연출이 몸을 움츠렸다. 최대한 그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어차피 호가가 찾고 있는 건 다른 것이었다. 잡히는 대로 재킷과 열쇠를 챙기곤 그는 씹어뱉듯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바로 상해로 갈 거니까.”
-드라마 촬영중이잖아. 감독이 어딜 온다고 그래.
“지금 내가 드라마가 눈에 들어오게 생겼어? 멋모르고 촬영하는 사람 뒤통수를 이런 식으로 후려치고 그게 할 말이야?!”
-내가 걔 데려온 건 맞아, 니 또래에서 그 놈 능력이 최고니까.
호가는 이를 악물었다. 후홍량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호 감독, 원작자 소개시켜 준 건 내 뜻이 아니야. 투자자들 의지였지.
“투자자들이 왜 갑자기-”
-그 중에 류천 스폰서 있었던 거 너 알고 있었냐.
재킷을 쥐고 있던 손등에 힘줄이 선다.
-여기 생각보다 좁다. 말 빨리 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바닥이야.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일을 처리해?
“…….”
-그 새끼가 그렇게 더러운 짓 해대며 수십 년을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는데, 그게 아무것도 없이 그럴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 너 그렇게 순진해? 머리 안돌아가?
“…….”
-아직 확정된 거 아니다. 얌전히 처박혀서 드라마나 잘 마무리해. 니가 할 수 있는거 그거밖에 없어.
마치 물로 씻겨낸 듯 호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그는 핏기 가신 얼굴로 전화를 끊곤 재킷을 소파 위에 내던졌다. 마치 고장 난 인형처럼 소파 위에 무너지는 호가를 조연출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살핀다.
손목을 들어 눈을 가린 채 호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가 다시 입을 연 건 조연출이 차라리 혼자 있게 자리를 비켜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원작자한테 연락하고, 작가한테 각본 작업 서두르라 그래.”
“네, 네.”
“내일 촬영 차질 없이 준비하고,”
호가는 문득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끊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지금은 이거라도 없으면 견디기가 힘들 거 같았다.
“한 대만 주라.”
“어, 네 잠시만요.”
조연출이 담배와 라이터를 손바닥 위에 조심스레 올려둔다. 호가는 그것을 꽉 쥐더니 말했다. 나가라, 좀 쉬게.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였다.
막상 조연출이 자리를 피해준 이후에도 호가는 담배를 입에 대지 못했다. 희미한 담배 냄새에 갑자기 속이 역해진 까닭이었다. 오랫동안 줄여서 그런지, 아니면 속이 비틀려서 그런지 이유는 불분명했으나.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후감독 불쌍해ㅠㅠㅠ 류천 이 씹새끼ㅗㅗㅗ
시엔셩 어나더!
류천 개놈시키가 으어아앙아아 호가 억떡계ㅠㅜ
허미 후거 호..혹시?!
곽건화 능글대는거 존좋ㅋㅋㅋㅋㅋㅋㅋ
류천 시발놈이 진짜 끝까지 지랄이네
후사장도... 비즈니스로서 이해는 하지만 좀 상냥하게 위로라도 해주지 후거 어떡하냐 진짜
류천 이 씹새끼가 후거한테 무슨 추태부리고 있는거야 개놈새끼
눈에 띄지마라 시발 아오 빡쳐
내아내 미국 간 줄 알았잖아ㅠㅠㅠㅠ 사랑해ㅠㅠㅠㅠ
억나더 만나더 사랑해
억떠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센셩이 오심으로서 주말이 완벽해졌다 ㅜㅜㅜㅜㅜㅜㅜㅜㅜ
시엔셩..... 와주셔서 기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곽건화 찌질한 거 커엽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좆같은 새끼 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