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성 메디컬AU ABO
아성 30세 레지던트 4년차
명루 39세 부교수




좆됐다.
아성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손을 보며 생각했다. 아픔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신경을 베인게 아니어야 할텐데, 라는 걱정이었다. 아성은 거즈를 한웅큼 집어 상처에 얹고 지긋히 눌렀다. 하얀 거즈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ER 존나 싫어 진짜.

새벽의 ER은 늘 전쟁터같았다. 열이 끓는 아이를 안고 달려오는 젊은 엄마부터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실려오는 환자들까지. 그 중 최악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취객들이었다. 휴게실에서 쪽잠을 청하던 아성은 시끄럽게 울리는 호출벨 소리에 벌떡 일어나 가운을 주워 입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진한 알코올 냄새를 풀풀 풍기며 진상을 부리는 취객을 본 아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깨진 주사약, 널브러진 소독솜과 핀셋, 당황한 표정의 간호사들. 상황은 불보듯 뻔했다. 손찌검까지 할 지경인 취객에게 다가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거즈를 자르는 용도로 비치해놓은 가위를 휘두른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얼굴로 다가오는 희번득한 쇠붙이에 아성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가위를 잡았고, 눈 앞이 번뜩이는 고통이 찾아왔다. 아성은 피가 퐁퐁 솟아나는 기다란 상처를 보며 비틀리게 웃었다. 씨발, 좆됐네.


\"정 과장님, 저 환자 분 격리해주세요. 피 봤으니 술은 좀 깼겠죠. 치료는 굳이 안해도 될 것 같네요, 저렇게 건강한데.\"


아성의 말대로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본 취객은 소리를 지르고 진상을 부리던 것을 멈춘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대충 보니 가벼운 찰과상 같은데, 애초에 진료 순서 운운하며 따질 수 있을 정도면 ER에서는 우선순위 축에도 들지 못했다. 알싸한 감각이 손을 타고 올라와 팔뚝이 저릿저릿했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아성은 희게 질려 발을 동동거리며 곁을 맴도는 1년차에게 손짓을 했다.


\"우만려, 니가 꿰매.\"



*



GS(외과)의 사탄이 취객의 칼부림에 오른손을 다쳤다는 소문은 빠르게 병원을 돌았다. AN(마취과) 고 선생이 굳이 아성을 찾아가 놀리다가 발로 다리를 맞고 쫓겨났다는 소문을 꼬리처럼 단 채로. 그리고 아성은 사고가 난지 정확히 두 시간만에 명루의 연구실로 호출되었다. 명루는 하얀 붕대가 감긴 아성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아성은 손을 슬그머니 뒤로 숨겼다. 아성의 손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명루는 아성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성.\"

\"예, 교수님.\"

\"말했지만… 나는 너를 치프로 둘 계획이다. 손을 다치면 많이 곤란해.\"

\"죄송합니다.\"

\"이리 오렴.\"


명루는 아성에게 손짓을 했다. 아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두어걸음을 내딛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아성을 보고 명루는 낮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큼 발을 내딛어 다친 손을 잡자 아성이 몸을 뒤로 뺐다.


\"교수님.\"

\"지도교수로서의 용무는 끝. 좀 보자.\"

\"…형님.\"


명루는 능숙하게 붕대를 풀어냈다. 아직 드레싱 안해도 괜찮은데요. 명루는 아성의 변명섞인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손바닥의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꼼꼼히 상처를 살피던 명루는 불만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꽤 깔끔하게 꿰멨구나.


\"그럼요. 왜요?\"

\"처리가 시원치 않거든 내가 다시 꿰매려고 했거든.\"

\"불만이세요?\"

\"퍽 귀엽더구나.\"

\"질투하세요?\"


아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명루는 말없이 새 붕대를 꺼내 단단히 고정시켰다. 너한테는 늘 그렇지.




(중략)



OB(산과) 왕천풍 교수는 세상에서 제일 재수없는 악우惡友와 그 악우에게 창창한 인생을 조진 능력있는 후배와 검사 결과지를 바라보았다. 저 빌어먹을 새끼는 굳이 왜 나한테 온건지. 아성의 손목을 끌고 연구실로 들이닥친 명루를 쫓아내지 않은 것은 의사로서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혼자 들을래, 같이 들을래.\"

\"…왕 교수.\"

\"혼자요.\"

\"아성!\"

\"좋아. 명 교수, 이만 나가주시게. 내 환자랑 얘기를 해야하니 말이야.\"

\"왕천풍.\"

\"나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어버렸을 정도로 멍청해진건 아니겠지?\"


왕천풍은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명루가 왕천풍을 만난 이래 가장 진심어리고, 재수없는 미소였다. 명루는 아성을 내려다보았다. 그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명루는 아성의 손을 천천히 놓았다. 묵직한 나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머리속을 울렸다.





\"아성.\"

\"…….\"

\"자네가 복용하는 그 쓰레기가 뭔지는 몰라도 당장 버려. 이번 임신도 기적에 가까우니 말이야.\"

\"교수님.\"

\"왜. 지울거야? 지우든 아니든 그 좆같은 호르몬제는 버리고.\"


아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가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