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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잼 ㅈㅇ , 알오 ㅈㅇ, 스크롤 ㅈㅇ 전부 다 ㅈㅇ









언제나와 같은 아침이었다.

명공관의 아침은 조용한 부산함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부산함 속에는 우아함도 넘쳐흘렀는데 그것은 때때로 명공관 내부 서열 또는 계급으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아성.”

“네?”


막 다이닝룸으로 들어서던 아성을 명경이 불러 세웠다. 무슨 용건이십니까? 하는 눈빛으로 아성이 명경을 바라보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손을 저으며 얼른 앉으라 말했다.


“아성. 다음 주에 있을 미국 출장을 좀 미뤘으면 좋겠는데.”

“아. 가능한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후에…….”


식탁에 앉자마자 업무 지시를 하는 명루를 보며 명경을 인상을 확 구겼다. 그 결과로 명루는 마지막 말까지 다 잇지 못했다. 명경이 명루의 단단하고 두툼한 등짝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누님!”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얻어맞은 명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명경을 바라보았다. 명경의 찰진 후려치기에 아성의 앞으로 아침을 내어놓던 아향도 깜짝 놀라 행동을 순간 멈췄다.


“넌 애를!”

“제가 또 이번엔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니?!”


아성이 식당으로 들어설 때부터 명경은 느끼고 있었다. 아성의 안색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그러다 명경의 눈에 아성의 팔목이 들어왔다. 원래 잘 먹는 성격도 아니었고 살이 찌는 체질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요즘은 너무 심하다 싶었다. 꼭 들어맞았던 시계가 헐렁해져 아성이 움직일 때마다 이리저리 움직였다. 명경은 이게 다 누구 탓이겠냐 싶었다.


“누님 왜 그러세요.”


아성이 말리고 들자 그제야 명경의 표정이 풀렸다.


“시계 줄 조절을 좀 해야겠구나.”


명경의 말을 듣고서야 현 상황을 눈치 챈 명루가 머쓱함에 음음 헛기침을 했고 아성은 흐리게 웃으며 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 두었는데. 시간 나는 대로 조절하러 다녀오겠습니다.”

“명루.”

“네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나직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명루는 단번에 누님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양손을 들어 올려 저항의 의사가 절대 없음을 내보였다.


“아성. 한 동안 쉬는 게 어떻겠니?”

“그게…….”


능글맞게 구는 저의 첫째 동생을 향해 눈을 흘긴 명경은 다정하게 아성에게 권했다. 그녀의 그런 말에 아성은 빤히 제 형님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아성의 시선을 그대로 따라간 명경은 크게 한숨을 내쉬고 이번에도 짝! 찰진 손바닥 마사지를 선사했다.


“윽! 누님!”


예기치 않게 또 얻어맞은 명루는 딱 울고 싶은 기분으로 누님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명경은 식사에 몰두했다. 이것보다 더 억울할 수 없다며 명루는 아성이 얼굴을 보았지만 그 역시 모른 척 말간 국물을 뜬 수저를 입에 넣었다.


“하아. 늘 제가 죄인이지요. 죄인.”


명공관 서열을 나이순대로 한다면야 모두가 알다시피 명경, 명루, 명성, 명대였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사실상 명공관의 최하위 계층 명루는 오늘도 부산함 속의 우아함을 지키지 못한 채 식사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평소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일상이었다. 회사 사람들이 본다면 기겁을 하겠지만 어쨌든 말이다.


“아, 그런데 명대 이 녀석은 또 왜 안 내려온다니.”

“제가…….”

“제가 가보겠습니다. 마저 먹거라.”


명경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아성을 막고 명루가 날래게 일어섰다. 명루의 밥그릇은 제법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 상태였기에 아성은 명루의 만류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2층에서부터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울렸다.


“누나, 큰형이 날 어떻게 깨웠는지 알아? 응?”


식당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입이 댓발이나 나온 명대는 거칠게 의자에 몸을 앉히며 칭얼거렸다. 그 모습에 명루는 뒤이어 들어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명경은 해사하게 웃으며 명대의 앞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집안의 실질적 서열 최상위 계층을 점하고 있는 명대에게 아무도 나무랄 사람이 없었다. 단 한사람만 빼고.


“명대. 누님 식사하시잖니. 나중에.”


다정함을 가장한 퍽 단호한 아성의 목소리에 명대는 칭얼거림을 멈췄다. 입은 오리부리처럼 삐죽 튀어나왔지만 말이다.


“알았어…,요.”


명대의 반응에 다들 키들키들 웃었다. 확 수그러드는 그의 반응에 또 아성에게 단단히 잘못한 게 있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조용하지만 부산한 그리고 우아하지만 실은 명공관 서열순위 재확인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 시간이 말이다. 그렇지만 결코 평소와 같지만은 않았다. 외부인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소소한 변화가 명공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일상에 끼어든 미미하고 미약한 변화는 때론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너무도 사소한 변화였기에 변화의 시작과 과정에서 알아차리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사소하고 미미하며 미약한 변화는 결국 변화의 결과에서 알아차리게 되는 법이었다.

 

*


아침을 챙겨 먹자마자 회사로 향한 명루와 아성은 제법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실로 직행한 명루는 아성의 일정 보고를 받았고 그 후로부터 자리에서 꼼짝도 않은 채 업무를 시작했다. 그에 비해 아성은 의자에 앉을 정신도 없이 바삐 움직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한 시간에 몇 번씩 “아성, 아성” 하고 불러대는 사장 명루와 여기저기에서 “실장님, 실장.”하고 아성을 불러대는 통에 그는 출근과 동시에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수가 없었으며 정확했다. 그런 그를 이번에 M그룹 사상실 신입으로 들어온 윤비서는 동경하고 있었다. 아성의 재빠른 판단력과 날카로운 업무처리는 보고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윤비서는 의문이 생겨났다.


‘대체 왜 실장님은 비서실장이나 하고 있는 거지?’ 하고 말이다.


사실 아성이 하고 있는 일을 보며 저게 비서 일인지 임원일인지 헷갈릴 때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명루의 비서를 일을 자처해서 나선 것이 아성이었다. 명경은 아성에게 전무이사 자리를 권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아성의 입지가 단순한 비서에서 머문다는 것은 아니었다.

M그룹 주식을 회장인 명경, 사장인 명루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성이었고 현금 보유량을 따지면 아마 명경과 명루보다 많을 것이었다. 아니, 아마가 아니라 분명, 필시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실장님. D그룹에서…….”

“그건 저번에 이번 주 금요일에 만나서 다시 확인하기로 한 거잖아. 그쪽에 다시 연락해서 확인해 봐. 지들이 뭔데 맨날 자기들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막나가려고 하면 나에게로 전화 돌려.”


서류를 바라보며 미간을 좁히는 아성을 바라보며 윤비서는 꼴깍 침을 삼켰다. 잘생긴 미간에 생긴 주름이 그렇게 잘나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윤비서는 아주 자그마한 이변을 눈치 챘다. 언제나와 다를 바 없는, 평소와 하등 달라 보일 것 없는 일상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아차렸다.


“실장님.”

“응?”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요. 이마에 땀도 나고.”


아성은 윤비서의 말에 제 손으로 이마를 살짝 만졌다. 손끝에 묻어나오는 물기에 저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그는 평소대로 돌아와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실내가 좀 더워서. 괜찮아.”


아성은 팽팽 잘 돌아가는 에어컨을 손가락질하며 상의 안쪽 포켓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를 훔쳐냈다.


“그렇지만…….”

-아성.-

“잠깐, 윤비서. 사장님께서 찾으시네.”


그렇지만 오늘은 날이 포근해 난방을 틀지 않았다. 저건 단순히 공기청정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성의 말에 윤비서는 그것을 말하려 하였지만 아성을 찾는 명루의 목소리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사장실 안에서 나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아성은 단번에 알아차리고 사장실로 향했다.


“부르셨어요?”

“응. 미국 쪽은?”

“그쪽에서도 마침 무슨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일정 조절 가능하냐는 연락이 먼저 왔어요. 최종 조율해서 다시 알려드릴게요.”

“그래. 그럼 그건 됐고. 아성, 약.”

“아, 네.”


명루의 책상 앞에 섰던 아성은 익숙하게 몸을 돌려 사장실 중앙에 놓여있는 테이블과 소파 쪽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물 잔에 물을 따르고 약통에서 약을 꺼냈다. 수십 번도 더 해봤던 행위인지라 헛된 움직임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명루는 피식 저도 왜 웃는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작게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아성은 의아하게 명루는 보았다.


“뭐가 이상합니까?”

“아니. 아무것도.”


약을 들고 와 책상 위로 올려놓은 아성을 보면서 명루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알약을 집었다.


“3시에 회의실로 가셔야합니다.”

“응. 알아.”


평소와 다름없는 행위에 명루는 평소와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그것이 큰 문제 될 건 없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이렇게 회사에서의 시간도 명공관의 아침처럼 항상 하던 그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그럴 예정이었다.


*


임원회의를 하기 위해 사장실에서 내려온 명루는 어두운 회의실의 가장 상석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는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 M기업에서 새로 착수하게 된 사업의 최종 보고가 있는 날이었다. 누구보다 날카로운 눈을 하고 화면을 보고 있던 명루는 조심스럽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안으로 쏙 들어오는 인영을 향해 잠시 시선을 두었다. 그리고 그 인영은 곧 뚜렷한 선을 만들어내더니 명루를 향해 다가왔다.


“아성.”


뒤늦게 회의실로 입장한 것은 아성이었다. 아성은 조금 전 라이벌 기업에서 들려온 소식을 쪽지에 적어 명루에게로 건넸다. 그 순간 명루와 아성의 손이 찰나지만 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에 명루는 쓰게 미간을 좁히며 아성이 손을 붙잡았다.


“왜 그러세요.”


한참 회의를 이어가는 도중에 갑작스런 행동을 보이는 명루를 향해 아성은 의아함으로 물었다.


“손이 너무 차.”

“또 뭐라고. 항상 따뜻한 법만 있나요. 집중하세요.”


아성은 대수롭지 않게 명루의 손을 떼어내며 그에게서 멀어졌다. 사장실의 비서진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아성은 발소리를 조심하며 걸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곧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 하는 소리에 명루의 얼굴이 돌아갔고 그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아성!!”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느라 명루의 의자가 뒤로 벌렁 넘어져 또 다시 바닥과의 아찔한 마찰음을 만들어냈다. 의자의 안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라 명루는 오로지 아성만 바라보며 달려갔다. 막 바닥에 쓰러진 아성의 몸을 명루가 추슬러 안았을 무렵 회의실의 조명이 일제히 들어왔다. 명루의 얼굴은 핏기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평소함의 냉철함이나 날카로움은 볼 수 없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람 가슴을 아리게 만들던지 윤비서는 울컥 눈물 날 뻔 했더랬다.


“구급차! 빨리 구급차!!”


명루의 안색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창백하게 질린 아성을 끌어안고 회의실이 떠나가라 명루가 외치자 그제야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


“명루!!”


병실로 들이닥치며 다짜고짜 제 큰 동생의 이름을 부르던 명경은 하얀 가운을 입고선 의사의 뒷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냥 이렇게 끝낼 사람이 아니었다. 눈빛이 얼마나 흉흉하던지 이곳에 어린 아이가 있었다면 단박에 울음을 터트렸을 터였다.


“선생님, 이 아이 어떤가요?”


명루에게로 보냈던 서슬 퍼런 시선을 거둬드리고 의사를 향해 물었다.


“쓰러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친 바람에 가벼운 뇌진탕 증상이 있습니다. 검사 결과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의식이 돌아오면 가벼운 어지러움증과 구토 증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장님?”


명경을 바라보며 아성의 증상에 대해 말하던 의사는 명루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초기라 제대로 자리 잡을 때까진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자궁이 약해서 더더 다른 산모분들 보다 몇 배는 신경을 써야한다고 그렇게 일러드렸는데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신 모양입니다. 사‧장‧님.”


의사의 까칠한 태도에도 명루는 들 얼굴이 없었다. 그저 아성의 마른 손을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회장님, 다행히 태아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음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요. 정말, 정말 앞으로 더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론이죠. 여부가 있나요.”


의사의 당부에 크게 고개를 끄덕인 명경이 가볍게 묵례를 하고 떠나는 의사를 향해 저도 역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뒤돌아서자마자 명경은 조금 전에 못한 응징을 가했다.


짝!


날카로운 마찰음이 병실을 울렸다.


“너는! 대체 뭐하는 사람이니?! 곁에 있으면 뭐해!”


명경이 단단히 화가나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말은 하나 틀린 것이 없기에 명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성의 손을 잡고 있었다. 파랗게 도드라진 혈관 속에 꽂혀있는 링거 바늘이 어딘가 애처로웠다.


“뇌진탕이라니! 뇌진탕이라니! 아이 가진 산모한테 뇌진탕이라니! 너는 애 쓰러질 때 제대로 안 잡고 뭐했어?!”

“거야. 큰 형이 요즘 살쪄서 그렇지 뭐. 아성형 입덧하느라 못 먹은 거 큰형이 다 먹어서 그렇잖아.”


마침 병실로 들어서던 명대가 명경의 물음에 대신 답하며 비웃었다. 명루가 째려보긴 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명대는 명공관 최상위 계층이었고 명루는 명공관 최하위 계층이었다. 이젠 하다하다 병원 의사에게조차 그런 대우를 받고 있지 않는가.


“명루. 오늘부터 다이어트 하거라!”

“네.”


명경은 명령에 명루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작게 대답했다. 성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명공관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들의 일과는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들의 일상에 소소한 변화가 생겨났다. 명공관 식사에서는 강한 향신료를 사용한 음식들이 싹 사라졌고 아성의 방은 1층으로 완전히 옮겨왔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것이 혹시 무리가 될까 명대의 아침을 깨우는 몫은 명루의 것이 되어버렸고 명대는 답지 않게 아성에게만 존대를 썼다. 이것은 아성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말이다.


어느 날 아성이 명대에게 물었다


<명대. 너 갑자기 왜 나한테 존댓말 해?>

<고청명이 그랬어. 아이를 가진 사람은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봐야한다고.>


어물어물거리며 말을 꺼내놓는 명대를 향해 아성은 저도 모르게 아이의 머리를 흩트리고 말았고 그때 명대는 귀 끝까지 빨개져 제 방으로 뛰어올라갔더랬다. 그것은 아성과 명대만이 아는 비밀 아닌 비밀.


어쨌든 이렇게 명공관의 생활에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말이다. 명루와 아성이 같이 출근을 하긴 했지만 운전석에서 나오는 것은 아성이 아니라 명루였고 뒷자석 문을 여는 것 또한 아성이 아니라 명루였다. 명루는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보는 틈틈이 평소보다 더 자주 아성을 불러들였고 그때마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채 아성을 소파에 앉혀 놓기만 했었다. 들쑥날쑥 하는 아성의 호르몬 변화를 조절하고자 함이었고 요즘 잠이 많아진 아성을 위한 배려였다. 실은 남들에게 아성의 잠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명루의 욕심이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아스피린은 어느 새 명루의 책상으로 옮겨왔으며 아스피린이 있던 자리에는 철분을 비롯한 산모들이 먹어야할 영양제로 바뀌어있었다. 명루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성이 제대로 약을 챙겨먹나, 혹시 한 알이라도 빠지지 않았나 항상 확인을 했고 아성이 제 눈앞에서 영양제를 먹는 것을 봐야만 직성이 풀려했다. 미국 일정 조율도 다음 주 아성의 병원을 함께 가기 위함이었다.

한 공간에서 일하는 비서진들은 모를, 그러나 묘하게 티가 나는 그들의 변화는 회사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오늘 아성이 그곳에서 쓰러지게 될 것이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지만.


*


아성이 쓰러지고 이틀 뒤. 명공관에 작은 사건이 있긴 했지만 오늘 역시 평범하게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아성.”

“네?”

“누님이 부르시는구나.”


명루가 저희들의 방에서 나오는 아성을 향해 말했다. 어쩐 일인지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는 명루는 보며 아성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올라가자.”


계단의 끝에 서서 명루가 아성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성에겐 어느 순간부터 금지 구역이 되어버린 계단으로 그는 명루의 손을 잡으며 올라섰다.


“어찌 이곳으로 가십니까?”


2층 누님의 방의로 향할 줄 알았던 아성은 전혀 반대 방향으로 향하자 멈칫 걸음을 멈췄다.


“누님이 이곳에 계시니까.”


명루는 별 것 아니라는 어조로 말했지만 아성에겐 그럴 수 없었다. 그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계단과 다르게 아주 오랜 옛날부터 금지 구역이었던 사당이었기 때문이다.


“형님.”

“누님. 저희 왔습니다.”


사당의 문을 향해 손을 뻗는 명루를 향해 아성은 급하게 그를 불렀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그의 손은 사당의 문에 닿아 있었고 똑똑똑똑 네 번의 노크가 끝난 뒤였다.


-들어오렴.-


문 너머에서 들리는 명경의 목소리에 아성의 얼굴이 어딘가 희게 질린 것 같았다.


“들어가자.”

“형님.”


명루가 아성을 이끌어 가볍게 당기자 아성은 몸을 뒤로 빼며 거부했다.


“괜찮아.”

“저희 들어갑니다. 누님.”


명루는 아성의 손을 가져와 사당의 문고리에 손을 포개고 힘주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아성의 손이 잘게 떨렸던 것은 명루의 착각이었을까.

“아버님, 어머님. 목소리는 많이 들어보셨죠? 우리 아이들 목소리 하나는 다들 좋지 않습니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아이가 바로 아성이에요. 이곳에선 얼굴은 처음 보시겠네요.”

사당의 문이 열렸고 명루는 조심스레 아성은 안으로 데려왔다. 한 발작 내미는 것이 무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아성은 어린 아이가 걷는 것처럼 힘겹게 사당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명경의 목소리에 아성은 저도 모르게 입안 살을 짓이겼다.


“아성 여기 와서 앉거라. 인사드려야지.”


아성은 지금 도통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명경의 말에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는 아성을 향해 명경은 아련하게 웃으며 말했다.


“호적 정리를 하긴 해야 하잖니. 나는 널 내 둘째 동생으로 올리고 싶었지만 저 놈이 나보다 먼저 손을 쓰지 않았니? 어쩔 수 없지. 이래도 너는 명성이고 저래도 너는 명성인 걸.”

“누님?”


여전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아성은 명경을 불렀다.


“결혼식은 아무래도 아이를 낳고 난 후가 낫겠지? 명대가 잔뜩 뿔이 나 있으니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잘 달래거라.”


명경은 명루와 명성의 혼인신고서 증인란에 서명을 하던 명대를 떠 올렸다.


<나보고는 고청명이랑 손도 잡지 말라 해 놓고!! 그래놓고 형은 혼전임신이 말이 돼??!!!!>

하면서 노발대발했던 명대가 말이다.


명경은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웃으며 돌아서서 부모님의 위패를 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며느리 하나는 잘 보셨어요. 얼마나 똑부러진지 몰라요. 저 녀석의 머리를 닮았으면 아주 똑똑한 아이가 태어날 겁니다. 그러니 잘 좀 지켜주세요. 자, 너희들도 인사를 하려무나. 아무래도 아성 네가 쓰러진 건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지 않아서 작은 벌을 받은 것 같구나.”


명경은 얼떨떨해 하는 아성은 데려와 위패 앞에 앉혔다. 얼떨결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아성은 위패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뚝뚝 굵은 눈물방울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어린 시절 명공관에서 갈 수 없는 곳은 없었지만 단 한 곳. 이곳만큼은 들어가서도 들어갈 생각을 해서도 안 되는 곳이었다. 가족과 같았지만 타인임을 뼈저리게 느껴야만 했던 어린 시절의 아성이었고 그것은 커서도 저도 모르게 자리 잡은 상처이자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드디어 그도 명가의 사람이 되었다.

아성은 아니 명성은 위패 앞에 절을 올리며 그렇게 한참을 울어야했다.


*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뭐가.”

“제가 병원에 있는 사이에 혼인신고를 하는 게 어딨냐구요.”

“내가 무슨 힘이 있니. 누님이 하라면 하는 거지. 그리고 사실 서류야 다 만들어 놓았던 것 아니냐. 제출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뭐.”

“치사해.”


퇴근을 해 옷을 갈아입던 아성은 쀼루퉁하게 입술을 삐죽거렸다. 거울에 비치는 명루의 얼굴을 은근히 노려보면서 말이다.


“아니면 이혼하고 다시 제출하든가.”

“하아. 정말 못됐어.”


둘이서 꼭 같이 하고 싶었던 것이었기에 조금 김은 빠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명루의 말대로 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신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나저나 이건 진짜 안 입어 줄 거냐? 어울리는데.”


거울 앞에 서 있는 아성의 앞으로 옷 하나를 펼쳐 대었다. 명루는 썩 마음에 드는 양 얼빠진 사람처럼 웃었다.


“차라리 야한 속옷을 사 오셔서 입으라면 입겠습니다. 대체 이게…….”


아성은 못 만질 것이라도 만지는 식으로 명루가 펼친 옷을 엄지와 검지 손끝으로 잡고 휘 멀리 던져 버렸다. 명루가 건넨 것은 다름 아닌 레이스와 꽃무늬가 송송 박힌 임부복이었다. 아직 티도 나지 않는 편편한 배를 가진 아성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랄까. 몇 개월 후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아마 아성의 성격엔 절대 입어주지 않은 것임이 분명했다.

 

“네 속옷은 지금으로도 충분히 야한데?”


명루는 아성의 바지춤을 살짝 당겨보며 말했다.


“그러는 형님은요?”


아성의 취향으로 맞춰진 명루의 속옷을 상기시키며 아성이 짓궂게 웃었다.


“전적으로 내 취향이 아님을 밝히는 바이다.”

“바람 잘 통한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십니까? 여보?”

“그것과 취향과는……. 잠깐, 지금 뭐라고…….”


생전 들을 수나 있을까 했던 목소리가 명루의 귓가를 울렸다. 그러나 명루는 되물을 사이도 없이 아성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동그랗고 예쁜 토끼 같은 눈을 한 아성이 요망한 웃음을 흘리며 명루의 바지춤을 잡고 아래로 몸을 내렸다. 시선은 여전히 명루의 얼굴에 눈 채, 아성은 언제나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그의 바지 지퍼를 내렸다. 오늘도 이렇게 명비서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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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 들어가는 아성이 보고 싶었을 뿐인데... 너무 길었다..

아 기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