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종주님 화한독에서 회복 덜하고 붕대감고 있었을때로, 종주님 앞에 애기 경염이 뚝 떨어져 나타났으면 좋겠다.


린신은 외출하고 외진 방에서 매장소 혼자 누워있었음. 그러다 그날따라 마음이 답답하여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음. 린신이 알면 펄쩍 뛰며 뭐라 했겠지만 지금 자리에도 없는 자가 뭐 어쩌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다른 사람과는 마주치지 않게 조심하여 밖으로 나가겠지. 날은 따뜻하여 큰 부담없이 걷다가 잠시 너른 바위에 걸터앉아 쉬는데 갑자기 나무 사이로 그림자가 비치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남. 혹시 필요할까 싶어 가지고 나온 지팡이를 그러쥐며 매장소가 긴장했는데 잠시간의 적막 후에 물체가 튀어나왔는데 다름 아닌 어린 아이였음. 약간의 흙먼지로 더러워졌지만 랑야각에서 일하는 동자로 보기엔 고급지고 기품있는 옷을 입고 있어 어찌 어린 아이가 이런 곳에 있는가 매장소가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아이와 얼굴을 확인하고 순간 멍해짐. 내가 지금 한낮에 꿈을 꾸고 있는가. 아이도 저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그건 아이에겐 자기가 낯선 사람이고 얼굴에 붕대까지 감고있어서겠지 싶어 매장소는 씁쓸해졌음. 조용히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잠시 망설이더니 쭈뼛거리며 매장소에게 다가와 말을 걸음.

여기가 어디지요?

그에 바로 답하지 않고 어딜 가던 길이었는지 매장소가 묻자 아이가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잠시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중얼거리겠지.
유년 시절 경염과 꼭 닮은 아이는 퍽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는데 불안해하는게 눈에 다 보였음. 매장소는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랬지.

여기서 혼자 산을 내려가기는 어려울겁니다. 가까운 곳에 제가 머무는 곳이 있으니 같이 가서 도움을 청하도록 하시지요.

아이는 잠시 혼란과 경계를 담은 눈으로 매장소를 살펴보다가 혼자 무엇을 납득했는지 굳게 다문 입으로 고개를 주억거렸음. 그리고 먼저 발걸음을 떼는 매장소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어.
조용히 걷고 있었지만 매장소 머릿속은 그러지 못했지. 단지 경염을 닮은 아이인가? 설마 이미 장성한 경염이 아기가 되어 제 앞에 나타날리 없으니 당연한 것인데도 매장소는 믿을 수가 없었음. 저렇게까지 똑같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깊게 생각에 빠져있던 매장소는 쿵 하는 소리에 깜짝놀라 뒤 돌아봤어. 아이가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에 채여 넘어진거야. 울상을 지었다가 매장소가 돌아보고 놀라 제게 다가오니 아이는 입을 앙 다물고 씩씩하게 일어났음. 보아하니 다행이 피는 안나는 모양인데 무릎이 헤진 것이 꽤나 크게 부딪힌 듯 싶었음. 매장소가 무릎을 구부려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 봤어. 괜찮으십니까. 한마디에 아이는 다시 금방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입술을 삐죽거렸지.

어머니가 해주신 옷인데 망가져버렸어요. 어머니가 속상해 하실거에요.

제가 말해놓고나니 더욱 서러워졌는지 눈에 눈물이 고이는데 귀여우면서도 안쓰럽겠지. 매장소가 달래주니 다행히 조금 훌쩍이다 말았는데 그러고나선 경계심이 풀렸는지 아이는 조잘조잘 말을 하기 시작했음. 어렸을적 저나 기왕에게 못본 사이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던 경염의 모습과 겹쳐보였지.

사실 제 어머니는 제가 좋아하는 과자를 제일 잘 만들어주셔요.
근데 수아는 그걸 못먹어서 매번 내가 다 먹지요.
얼마 전부터 글씨 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니, 읽을 줄은 아는데 쓰는게 서툴러서요.
수아는 자기도 아직 글씨 못쓰면서 날 놀려요. 그래도 형님이 옆에서 제 편을 들어주어 화는 내지 않았지요.
그래도 수아랑 놀면 재밌어요. 저는 수아가 좋거든요.
분명 오늘도 수아랑 놀러가기로 하여서 기다리다가..오지 않아서...형님도 안계시고...
수아가 너무 보고 싶어요.

주로 아이가 말하고 매장소는 들으며 간간히 맞장구를 치거나 간단하게 질문해가며 길을 계속 걸어감. 신이 났다가 시무룩해졌다가, 아이의 목소리만 들어도 심심하지 않았음.
분명 거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아이와 마주쳤었는데도 돌아가는 길은 길었음.
그러다 시선의 끝에 건물 자락이 들어오고 매장소가 걸음을 늦추며 이제 다 왔다고 해. 근데 머뭇거리며 아이가 저기까진 안되겠네요, 고마웠어요, 하는거야. 의아해하며 매장소가 돌아보는데 아무도 없는거임. 아무리 둘러봐도 인기척조차 안느껴짐. 정말 꿈을 꾸었나 귀신에 홀렸나. 매장소는 랑야각의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나올때까지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음.







그리고 나중에나중에 아직 정왕이 매장소 정체 알기전 소택에서 정무 보고나서 잠시 차 한잔 하는데 문득 정왕이 말을 꺼내는거 보고싶다.

예전에 소선생을 보면 내 친우가 생각난다고 했던거 기억하시오?

혹시나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 무슨 옛버릇이 또 나왔었나 표정관리하며 매장소가 기억한다고 대답하니 정왕이 소선생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한명 더 있다고 하는거야. 그동안 임수가 아닌 또 누군가 생각이 나는데 기억이 안났다가 생각이 났다고. 자기를 보면서 임수가 아닌 사람을 떠올린다니 그 사람이 누구인가 매장소도 궁금해지겠지. 누구인지 물으니 정왕이 말하기를,

누구인지는 나도 모르오. 그저.. 소선생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소.

대답을 기다리는 매장소의 눈빛에 정왕이 작게 웃으며 말함.

사실 꿈속에 나왔던 사내라오.  
꿈,입니까. 괜찮으시다면 더 듣고 싶습니다.

멋쩍게 웃으며 말을 삼키는 정왕을 두어번 보챈 다음에야 정왕이 입을 열었음.
매령 사건 이후에 전장만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꾼 꿈인데 꿈에서 저는 어린 아이였고 어느 사내를 만나 길을 같이 걸었던 꿈이었다고 말함.
너무 자세하지 않게 꿈 얘기를 마치고 나니 너무 조용하여 정왕이 매장소를 바라보니 매장소는 살짝 고개를 숙인채로 찻잔 가장자리만 가만히 만지고 있었음. 저에겐 그리운 꿈이라지만 실제 인물도 아닌 자와 닮았다는 이야기에 혹시 기분이 상하였을 수도 있겠다 싶어 정왕이 급히 사과하겠지. 아니라고 손을 저으며 고개를 든 매장소는 가만히 미소짓고 있었음.

인상깊은 꿈이었나봅니다. 아직도 기억하시는걸 보니.
원래 꿈을 자주 꾸지 않는 편이라.... 그리고 아무리 꿈이었다지만 내 그 사내에게 너무 어리광을 피워 기억에 남았지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데 참 그리운 사람이오.
...그러셨습니까. 전하의 어리광이라니 궁금해지는군요.
놀리지마시오, 선생. 아무튼 그동안 가물가물했으나 얼마 전 비류와 대화 나누는 선생 모습에 문득 떠올라 이야기한 것인데..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구려.

쉬라며 일어난 정왕이 비밀통로로 향하고 매장소가 좋은 꿈 꾸시라고 말하며 배웅하니 정왕도 마주 웃고는 소선생도 편한 밤 되라고 말하고는 건너갔으면 좋겠다.


려강이 잠자리 봐주는 동안 매장소는 외출했다 들어온 비류를 불러 정왕이 두고 간 간식거리를 건네줌. 물소 왔다갔어? 간식을 보고는 화색이 도는 비류를 보고 매장소가 웃는데 그 웃음에 비류가 더 신나겠지.

수거거 기분 좋아. 비류 행복해.
그렇구나. 오늘 밤은 비류도, 수거거도, 그리고... 얼굴 없는 사내도 모두 행복한 밤이 되겠구나.



하는 그런거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