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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화는 차게 언 땅에 다시 한번 곡괭이를 박아넣었어. 마을 사람들은 저 놈이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며 도울 생각은 하지 않았지. 하얗게 시야가 흐려질만큼 눈이 쏟아져. 이따금 아기는 작은 손을 뻗어 눈을 쥐려 했지. 작디 작은 몸을 돌돌 싸맨 모포 위로 눈에 덮혀갔어. 그럼 건화는 땅 파던걸 잠시 멈추고 땀을 훔치며 모포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눈을 뭉쳐 목을 축였지. 조금만 참아. 건화는 간신히 만든 구덩이 안에 누나의 몸을 뉘었어. 생명이 빠져나간 몸뚱이었지만 건화한테는 아직 따뜻하게 느껴졌지.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이기 직전에 다시 한번 누나의 얼굴을 쓸어줬어. 살려보려고 애썼는데 결국은 놓치고 말았지. 화르륵 하고 불이 붙었어. 그냥 화장을 해도 됐지만 아무리 이런 때라도 무덤을 만들어주고 싶었기에 남향으로 좋은 터를 찾아 땅을 판거야. 더럽게 힘들었지만 삽으로 봉분을 다져올리면서 하길 잘했단 생각이들어. 살면서 제일 잘 한 일같아. 내내 굽혔던 허리를 펴니 눈발은 잦아들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아기는 언제부터인가 빼애애액 울고 있었지. 젖 먹을 때인데 어미가 죽었으니 어쩐다. 나 먹을 보급품도 다 떨어졌는데. 이 근방에서는 우유를 구할 수 없어. 양을 몇마리 키우는 집이 있지만 건화에게 우유를 나눠주느니 총알을 박아넣겠지. 건화는 아기바구니를 끌어안고 터벅터벅 산을 내려왔어. 배도 곯았으면서 우는건 어찌나 기운찬지. 문득 발길이 멈췄어. 건화는 우성이라 알 수 있어. 머지 않은 곳에 오메가가 있어. 그것도 아는 사람의 체향이야. 아담한 집 하나가 시야에 잡혀. 동시에 개가 사납게 짓어대는 소리가 들렸어. 오면 죽이겠다는 위협이었지만 건화는 개의치않고 문을 두드렸지. 도와줘.

그는 언젠가 임신 중이었던 누나를 데리고 갔을 때 병원에서 만난 오메가야. 그도 아이를 가지고 있어서 누나랑 좋게지냈지. 누나가 아이 아빠는요? 하고 물었을때 군인인데 죽었어요 하고 담담하게 말했어. 누나는 저도요. 하고 웃으면서 얘는 내 동생이에요 하고 건화를 소개시켜줬지. 남자는 후거라고 했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 끝에 꽃향기 같은게 일랑이는것 같았지. 우성이라 그런지 체향이 진짜 좋아. 너는 더 잘 느끼지? 그지? 누나가 나중에 놀리듯 물었지.

현관 앞에 후거가 서 있는게 느껴졌어. 미친듯이 짖어대는 개를 진정시키는 것 같았지. 건화는 다시 한번 말했어. 누나가 죽었어요. 아이가 너무 굶어서...딸깍하고 문이 조심스레 열렸어. 체인이 걸린 채였지만 경계 없는 모습으로 건화와 아이를 살폈지. 개는 살기를 띄고 건화에게 으르렁댔어. 후거는 그때보다 훨씬 말라보였어. 약간 더 기른 머리칼이 한쪽 눈가를 가리면서 흘러내렸지. 체인을 풀고 아기바구니에서 아가를 꺼내 안은 후거의 눈빛이 젖어들었어. 나는 아이를 잃었어. 얘는 엄마를 잃었네. 건화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어. 도와줘. 난 여기서 기다릴게. 한번만 젖을 물려줘. 내일 해뜨면 옆마을에 보급품을 구하러 갈거야. 누나가 살아있을때도 젖은 많이 못줬어. 한끼한끼가 아쉬워. 부탁이야. 자꾸 뒷걸음질 치는 건화를 보거 후거가 웃었어. 설마 류아가 무서워서 그런건 아니지? 아직도 살기를 거두지 않는 커다란 늑대개는 후거가 쉿 앉아, 하고 고개를 젓자 끼이잉 하고 얌전하게 앉았어.

밥 한끼 정도는 대접할게. 들어와.

후거는 문을 좀더 열었어. 건화는 하지만..하고 머뭇대다가 다시 크게 울기 시작한 아기때문에 일단 들어가기로 했지. 집 안은 따뜻했어. 언제나 냉기가 도는 건화의 집과는 달랐지. 하긴 그런 구역이니까. 원래대로라면 건화는 이쪽으로 넘어올 수 없어. 후거가 신고하면 잡혀가겠지. 누나와의 일을 생각하면 그럴 사람은 아니지만, 요즘같은때 어찌알아. 이 공간에 오메가는 난데 왜 니가 더 긴장을 해? 후거는 의자에 앉아 아기를 몇번 어르더니 셔츠를 끌러내렸어. 하얗게 부푼 가슴둔덕이 스륵 하고 드러났지. 건화는 고개를 돌렸어. 아기가 몇번 칭얼대다가 후거의 젖을 물었는지 쫍쫍대는 소리가 났어. 으으 후거는 아파했어. 오랜만이라 아프대. 따뜻한 수건 좀 만들어 줄래? 건화는 잔뜩 찌푸리고 통증을 참는 후거를 보고 당황해서 허둥댔어. 아니 거기 말고 아랫선반. 헛손질을 몇번 하고서야 수건을 찾아 따뜻한 물에 담궜지.

건화는 최대한 후거의 얼굴을 보지 않으며 수건을 후거의 가슴에 올렸어. 손을 뗄라치면 수건이 흘러내려서 아이가 젖 빠는걸 방해하니까 건화는 어쩔 줄을 몰랐지. 자꾸 몰캉한 가슴이 손끝을 스쳤어. 후거는 으응..니가 좀 더 도와줘야겠다. 하고 건화를 끌어 앉혔어. 그리고 그 품에 안기듯 후거가 기대 앉았지. 건화의 손은 따뜻한 수건 위로 후거의 가슴에 얹어졌어. 후거는 내일분까지 젖병에 담아줄게. 옆마을 갈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거야 하고 아예 고개를 젖혀 건화의 어깨에 기대왔어. 머리칼이 부드럽게 목덜미를 스치며 흩어졌어. 건화는 후거가 편하도록 다시 고쳐앉으며 손으로 조금씩 가슴을 쓸어줬어. 류아가 낮게 으르르 댔어. 창 밖으로 눈발이 다시 거세져. 건화는 자신의 어깨가 조금씩 젖어드는걸 느꼈지. 후거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어. 이게 내 아이였으면 좋겠다. 건화는 후거가 아이를 받혀든 팔을 지탱해주듯 둘러 안고 그의 이마에 입술을 내렸어. 괜찮아. 괜찮아질거야.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