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
몸에 배어있는 습관이란 생각보다 강력하다. 알람 시간 오 분 전에 눈을 뜬 천우는 눈을 깜빡였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아직 차가웠지만 그는 몸을 일으켰고 마른 세수를 했다. 집에서 쓰는 것보다 넓고 비싼 침대에서 잤지만 내내 몸을 긴장시킨 탓에 온 몸이 뻐근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천우는 옆에 누운 호가를 바라보았다. ‘엎드려서 자면 목 아플 텐데.’ 하나마나한 걱정을 머릿속에서 흘리곤 핸드폰을 들어 알람을 미리 꺼둔다.
샤워라도 하고 갈까 싶었지만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았다. 호가를 깨운다면 갈아입을 옷은 물론이고 아마 회사까지 바래다주겠지만(아침까지 제공할지도) 그는 그러지 않았다. 구체적으론 한 침대에서 일어나 눈 마주치는 상황이 어색했다.
천우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비싼 값인지 모르겠지만 매트리스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뚫어지게 살펴봤지만 호가의 얼굴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콘솔 의자 위에 웅크린 고양이가 천우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술 사이로 가져다댔다. 너희 아빠 자니까 조용히 해.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밖으로 나왔다. 소리 없이 방문이 닫히고, 그제야 숨이 틔였다. 아침 여섯시 반. 집에 들렀다가 회사로 가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천우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내곤,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몇 분 후, 멀찍이서 들리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호가가 눈을 떴다. 옆자리의 공백에도 그의 얼굴엔 표정이 딱히 없다.
이미 체온이 식은 시트를 쓸어보자, 그 자리에 덜렁 고양이가 뛰어올랐다. 호가는 충동적으로 고양이를 끌어안고 허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꽤애액- 기습을 당한 앨리스의 입에서 괴상한 울음이 터졌지만, 호가의 타는 속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석비서 양진은 까칠한 인상에 비해 사람은 털털하고 격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비서실 식구들에 한해선 관대했고, 외부 부서의 사람들에겐 그 까칠하고 날카로운 인상에 걸맞는 행동거지를 갖추었다. 비서실 문고리, 경영자와 실무자 사이의 최전선이었다.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외부의 공격에 맞서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죄송하지만 일이 있어 1시간 정도 늦을 거 같습니다.’ 새벽녘부터 온 천우의 문자에 양진은 별 다른 언급 없이 그렇게 하라 답했다. 여전히 대표는 출장 중이었고, 무두절은 상대적으로 덜 긴장해도 되는 시즌이었다. 그는 관대하게도 천우에게 왜 늦는지 또한 묻지 않았다.
물론 궁금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출근시간에서 1시간이 지난 이후 허겁지겁 들어오는 천우의 모습을 양진은 가느다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대충 옷만 걸친 상태에, 머리는 제대로 말리지도 않았다.
커피를 더 타오기 위해 탕비실로 가는 척, 양진은 천우의 곁으로 다가갔다. 젖어서 뭉쳐진 천우의 머리카락들을 보며 양진은 슬쩍 고개를 기울였다.
“어제 뭐 했냐?”
“아 깜짝이야?!”
갑자기 들이대고 뭐하는 건데요, 놀랐잖아요! 기겁한 천우에게 양진은 도리어 자신이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
“내가 뭐 잡아 먹냐? 어제 뭐 했었냐고?”
“어제 뭘 하긴...뭘 해요.”
머릿속에서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르는 호가의 얼굴을 지우기 위해 천우는 안간힘을 썼다. ‘사무실에 곽건화 있다, 사무실에 곽건화 있다...’ 턱을 손으로 감싸는 척, 표정을 숨기며 천우는 시선을 피했다.
“늦잠 잤어요. 무슨 별 일이 있다고.”
“너 새벽 여섯시에 문자 보냈잖아. 더 자고 싶어서 미리 허락받은 거냐?”
1초도 가지 못하고 산산조각 난 알리바이 앞에서 천우는 침묵했다.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얼굴로 모니터 속 메일함을 뚫어져라 주시하는 그를 보며 양진은 웃긴다는 듯 낄낄거렸다. 뭘 그렇게 쫄고 있냐.
그는 천우의 어깨를 한 번 툭 쳤다.
“너 요새 좀 얼이 빠진 거 같다. 연애 하냐?”
“연애는 무슨 연애에요, 여기만큼 연애에 부적합한 직장도 없거든요.”
남의 속도 모르고 속 편한 농담이나 거는 양진이 얄미워 천우는 저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양진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내젓는다. 연애야 너 하기 나름인데 왜 회사 탓이야. 더 이상 천우를 놀리는 것에 흥미가 떨어진 건지 그는 자리를 떴다.
그 직후, 책상 위에 엎어둔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양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보냐?”
틀림없이 호가일 것이 분명했기에 천우는 핸드폰 쪽으론 시선도 두지 않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양진의 표정이 미심쩍다. 저게 진짜 연애를 하나?
한 시간 후, 천우는 화장실 핑계로 슬그머니 사무실에서 일어섰다. 화장실 맨 마지막 칸으로 들어가 문까지 걸어 잠그고 나서야 그는 핸드폰에 온 문자를 확인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에요? :)
내 팔자야. 앓는 소리를 내며 두어 번 뒤통수를 박다가, 이내 진지하게 어제 장보고 남은 것들을 곰곰이 떠올려보다, 문득 천우는 좀 더 근본적인 고뇌에 봉착하곤 모든 머릿속 기능이 일시정지 되었다. 이거 좀 신혼부부 같지 않나?
후에엥 내 시엔셩이 왔다ㅠㅠㅠㅠㅠ 신혼부부 천우 후거 좋아요 더 주세요ㅠㅠ
헉헉 내아내 돌아왔어ㅠㅠ
으으ㅡㅇ 천우야 얼른 후거한테 넘어가ㅜㅜ 그런 다음에 건화한테 둘 사이 들키는거지
으아아아아아타아ㅏㅏ 너무 좋아서 우주 뿌순다!!!!!!!!!!
천우 이 시키 후거 옆에 있을깨 잘해 광광 곽건화꺼 눈치보지 말고 마음가대로 해 어차피 들킬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엔셩이와ㅛ어 ㅠㅠㅜㅜㅜㅜ 천우그만애태워라
내아내 귀국해따!!!!!!!!
신혼부부놀이 빨리빨리!!!! 곽건화 출장 끝난다
억나더
거의 살림차린각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천우야 이미 게임 끝난것 같구낰ㅋㅋㅋ
시엔셩 다음편 언제와오 ㅠㅠㅠㅠㅠㅠ 기다리고 있어오 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