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봄의 장마는 한겨울의 폭설 보다 더 지독했다.
뼈속까지 스며드는 습습한 기운에 병사들의 막사에선 잠결에 내뱉어지는 주체되지 못한 한탄같은 신음이 새어나왔다.
주변에 물길을 냈음에도 간이로 높인 침상 높이의 절반 쯤 빗물이 차올랐다.
도랑을 낸 수고따위 알바아니라는 듯 차오르는 수위를 경염은 그저 바라만보았다. 이대로 차오르는 물이 저를 덮쳐 숨이 앗아진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일인가.
전쟁에 나간 황자가 전장이 아닌 침상위에서 자다 빗물에 빠져죽다니. 기록을 올리기도 민망한 일일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네 뒤를 따르면 이 지루한 지옥도 끝이 날터인데.
\"....어리석은 벗도 모자라, 천하의 불효자로군.\"
경염은 쓰게 웃으며 지라궁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려 애썼다. 어머니가 계시는 동안만은 살아 금릉에 돌아가기로 한 혼자만 아는 수 만번째의 다짐을 그렇게 한 번 더 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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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황자 소경염은 세간에서 앞 뒤로 꽉막힌 답답한 인사라는 평을 듣는 사람이었지만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었다.오히려 그 성격에 가려졌을뿐 기민했고 무엇보다 누구도 믿지 않았다.
12년 전, 부친인 황제가 제 몸같던 친우와 황자로서 완성할 삶의 목표 같던 이의 생을 의심으로 종결시킨 이후 경염은 어머니인 정비 말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조건이야 천천히 생각하지요.시간은 많으니까요.\"
요구없이 저를 보위에 올려주겠다는 난데없는 사내를 경염이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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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전 황제의 의혹이 어디에서 시작 되었는지 잊을 수 없는 경염은 책사라는 부류의 인사들을 혐오하였다. 그들은 뱀처럼 가벼운 혀놀림으로 황제 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독니로 그 피에 의혹이라는 독을 풀어넣었다. 그리고 수 만이 죽었다. 그 이름 조차 잃었다.
매장소는 그런 책사들 중에서도 으뜸인 자였다. 사람 쓰는데는 주저함이 없었고, 모든 것을 그 앙상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 보았다. 경염은 그런자의 지혜를 빌려야 하는 자신 또한 혐오하게 되었다. 적염군을,기왕과 임수를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가 아니었다면 경염은 견디지 않았을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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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계절이 지나고 소경염은 그의 책사에 대한 의견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첫째는 그가 적염군의 일을 후에라도 바로 세우는 것을 도울거라 약속했기 때문이며, 둘째는 그가 내놓는 계책이 저 하나를 보위에 세우기 위함이 아닌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 세우는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소경염은 의심이 많은 자였지만 아둔한 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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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염에겐 측비 두 여인이 있었다.
경염은 그들을 애처롭다 생각했다. 홀대 받는 황자. 그것도 몇 달, 혹은 년을 넘는 기다림만 주는 자신을 그녀들은 그저 미소로 반겼다. 경염은 지난 12년을 통털어 채 반 년도 정왕부에서 지내지 못하였다.저를 반기는 두 비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련하고 무던한 여인들이라 경염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두 여인이 애처로운 것은 경염의 눈 앞에 그 얼굴이 보이는 순간뿐이었다.
전장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거나 죽음의 유혹을 느꼈을때 경염이 떠올렸던 이는 언제나 임수였고,찰나같은 정왕부의 평화에서도 빈 시간을 채우는 것은 추억이던 그리움이던 서러움이던 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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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허약함으로인해 소택은 자주 폐관되곤 하였다.
- 나는 병문안도 오면 아니되오?
책사는 드물게 당황하였다. 움켜잡은 이불을 가만두지 못하고 바르작거리는 몸짓이 기린재자가 아닌 덤불에 걸린 흰토끼같아 경염은 미소했다.
십수년만의 진심인 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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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염은 아둔한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순간 제 책사를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고 당황하였다. 그를 만난 봄 이후 경염을 분노케하는것도,미소하게하였던것도 대부분 저의 책사였음을 경염은 쉽게 인정 할 수 없었다.13년만에 그간의 아픔과 그리움이 친우를 기리는 감정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기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실체를 알게 한 것이 제 책사인 것에 경염은 더욱 당황하였다.
경염은 저도 모르는사이 제 마음속에 임수의 제단이 차려졌음을 알았다. 그 긴세월, 그리고 제 숨이 붙어있는한 현재여야할 임수를 제단으로 밀어내고 있는 이가 제 책사라는 것에 경염은 분노했다. 분노는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으나 표출은 방향을 가리지 않았다.
폐관 된 소택안의 제 책사를 걱정하다가도 뜬금없는 가시돋힌 말을 뱉어내었다. 머리속에 봄바람과 한풍이 오가는 정신사나운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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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생은 더 이상, 나 소경염의 일에 관여치 마시오!\"
고작 저런이에게 임수의 자리를 야금야금 내어줬던 것인가 경염의 머리속에 불길이 일었다.
\"..전하\"
절망을 담아 저를 부르는 책사의 목소리가 한번 더 울리기전에 경염은 종을 끊었다. 그 와중에도 연유를 묻고 싶은 스스로의 미련함을 대신하여 그렇게 밀실의 종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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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택이 다시 폐관돼었다. 이번엔 그 주인의 허약함이 아닌 그 주인의 부재때문이었다. 금족령으로 발이 묶인 경염은 그가 제발로 현경사로 갔음을 전해들었다. 그 조차 제 책사의 계획이었다.
- 아비의 어리석음으로 임수를 잃고, 이제 네 어리석음으로 그 자를 잃겠구나.
이래서 피는 못속인다하는것이지.
임수의 얼굴을 한 임수가 아닌이가 한참을 킬킬대었다. 잠에서 깬 경염은 살이베인 짐승마냥 울부짖었다.깨어나도 악몽은 진행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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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로...나를 원망한다하여도 할 말이 없소.\"
그저 앞으로는 제 주인의 충심을 의심치 말아달라는 견평의 간곡한 부탁으로 악몽은 끝났다.
아무말 없이 저를 용서한 제 책사의 얼굴이 그리운것에 경염은 제 염치없음과 그리움을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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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의 문이 열리고 촛불을 옆에 든 그리운 얼굴이 나타났다. 남아있던 한 점의 생기마저 도둑맞은 낯빛에 경염은 그저 저를 탓할 수 밖에 없었다. 흔들리는 촛불에 앞서 걷는 책사의 그림자가 위태로워 보였다. 이것은 꿈이 아닌가. 흔들리는 저 검은 그림자들 속으로 제 앞의 이가 잡아먹히는 또 다른 악몽은 아닌가 경염은 의심하였다. 흘러 넘치기 시작한 마음은 이제 그 벽을 부수고 그 끝을 저도 모르겠다는 듯 쏟아져 내리고만 있었다.
\"소선생\"
\"예, 전하\"
성큼, 뒤를 돌아 설 수 없을 만큼 다가선 주군의 부름에, 책사는 당황한 기색없이 앞을 보며 바로 대답하였다.
\"..선생은 가지마시오.\"
이번엔 즉답이 없었다.
\"밤이 짧으니 어서 가시지요. 밀린 이야기가 많습니다.\"
제 책사는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다만 답해주지 않을뿐. 비싼값을 치루고야 그것을 알게 된 경염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조금 힘을 주어 당겼을 뿐인데, 하얀침의를 입은 뒷모습은 너무도 쉽게 품에 담겼졌다.거둬들인 몸이 너무 앙상하고 차가워 경염은 울고 싶어졌다.
\"이리도 어리석은 주군을 두고 가면 큰일이지 않소\"
여전히 대답없는 책사를 경염은 조심스레 더 가까이 제 품에 가두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또 다른 십수년을 견딜 자신이 경염은 없었다.
얼굴을 묻은 책사의 등이 제 눈물로 젖어들었다.
촛불을 들지 않은 한기도는 책사의 빈 손이 우는아이를 얼르듯 허리에 감겨진 주군의 손을 다독였다. 진정 어리석은 주군이라 내치면 어찌하나 하는 걱정은 하지 않기로 한다.염치를 버리기로 한다.
임수를 과거로 보내기로 한다.
정왕종주 왕카이후거
시엔셩ㅠㅠㅠㅠ우종살로 억나더ㅣ해주세요ㅠㅠ
ㅠㅠㅠㅠㅠㅠ어나더
조타 ㅠㅠㅠㅠㅠ
어나더!!!!